성규는 수백 번쯤 휘두른 칼날을 고쳐내렸다. 잠깐 휴식! 길어야 십 분인 휴식시간에 다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탄성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다들 제각기 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성규는 자신의 이마의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근처의 견습 기사들이 너도 나도 앞 다투어 성규에게 수건과 음료 등을 가져다 주었지만 성규는 단칼에 거절하고 걸음을 옮겼다. 지고 있는 중장비가 무겁지도 않다는 듯이, 성규는 성큼성큼 걸었다.
아게니스 아그로 제국 제 62대 기사 교육 단장, 김성규. 그는 지금 몹시 화난 상태로, 아침 연습을 땡땡이 친 남우현을 잡으러 가는 길이었다.
제 방 아니면 술집이지. 성규는 망설임 없이 우현의 방 문을 열어젖혔으나 우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묘한 온기. 성규는 발걸음을 돌렸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금방 찾을 것이다.
화려하게 수놓인 금빛 술집 오두막 안에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쩍한 노랫소리와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번에는 드래곤 토벌이 실패했다느니, 그것을 빌미로 곧 이웃 나라와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될 거라느니, 그렇다면 자기들은 의병에 지원할 것이라느니. 성규는 콧웃음을 치려다 말았다. 농사일이나 하던 작자들의 손놀림은 둔하기 그지없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거늘. 이리저리 둘러보던 성규는 곧 우현을 찾을 수 있었다.
"남우현씨.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어? 성규? 김성규?"
"존칭 붙이세요. 그리고 아침 연습 있는 날입니다. 시종들에게 못 들었습니까."
"아아아, 글쌔. 같이 한 잔만 마셔주면 기억이 완전 잘 날 것 같아."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으시면 다음 실기에서 남우현씨는 빼도록 하겠습니다."
"너무하네. 어차피 아침 연습은 연습 시간에 포함도 안 되잖아."
"그런 마음가짐때문에 몇 년째 실기에서 탈락하는 겁니다."
멍청아. 탈락한 게 아니고 시험을 일부러 안 본 거야. 그런 발가락으로도 통과할 시험을 누가. 우현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순순히 성규를 따라 가게를 나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규는 기사단장이었다. 높은 지위와 그에 걸맞는 실력은 그를 부각시키기에 충분했지만, 성규에게는 늘 날파리가 꼬였다. 그건 아마 지위도, 권력도 아닌 그의 목선이나 눈웃음따위의 영향이었으리라. 그는 결국 기사단에서 나오길 희망했다. 하지만 왕국은 성규같은 인재를 놓치기 싫어했다. 그래서 내려온 자리가,
"휴식 끝! 지금부터 검술록 제 3장의 기초 자제를 연습하고 제게 통과를 받으신 분부터 아침 연습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기사단장 못지 않게 무서운 자리인 거다.
"남우현씨."
성규는 보기 드물게 웃으며 우현이 있을 자리를 가리켰다.
"제 옆에서 기초 제 1장부터 시작해주세요."
우현은 순간 청각적인 분노의 자극보다 시각적 자극에 홀린 나머지 그만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인 자신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못 이겨 검을 내동댕이 쳤다.
"남우현씨. 다시 처음부터 갈게요. 검을 아무렇게나 던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립니까."
"아 씨! 이걸 어떻게 다 해! 다른 애들은 서너시간 전부터 했을 거 아냐!"
"그러면 남우현씨도 그 전부터 나오시면 되겠네요."
벌써 연습장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일부러 우현을 연습시키려는 듯 대강대강 통과를 불러주는 성규에 다들 이때다 하고 우르르 몰려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우현은 칼을 줍는 대신에 성규에게 바짝 붙었다.
"한번만 봐줘. 응?"
"아, 안됩니다. 제대로 하고 가세요."
점점 벽으로 몰린 성규가 당황한 듯 하다 이내 눈살을 찌푸리고 더 이상 우현이 다가오지 못하게 어깨를 잡았다.
"1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검 다시..."
우현의 얼굴이 가까워지더니 이내 입술이 부딪혔다. 전혀 예상도 못한,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상황에 성규가 잠시 주춤거리자 우현은 이때다 싶어 혀를 집어넣었다. 그제야 놀란 성규가 잡은 어깨를 더 세게 밀었고, 우현은 성규의 혀를 한 번 감아올리고는 성규에게서 떨어졌다.
"이, 미친 놈아!! 너, 네가 지금, 뭘,"
"어깨 잡은 건 키스하라는 의미 아닌가?"
"뭐?!! 이런 미친!! 남우현씨 이번 연습 누락입니다. 다시 하세요! 저녁에 다시 와서 확인할테니 6장까지 마쳐놓으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광장쪽으로 달려가는 성규를 보며 우현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사람이 저렇게 생긴 것도 신기한데 저렇게까지 귀여워도 되나. 몇 번이고 시험을 포기해 성규와 만난 건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우현은 검을 집어들며 몇 번이고 생각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