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아직도 못 만났어?"
궁금증을 대놓고 표현하며 얼굴을 들이대는 종현을 잠시 가만히 노려보다가, 작게 한숨 쉬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았으니, 나로서는 피해다니는 게 당연할텐데 다른 놈들은 재밌다고 연신 찔러대기 바쁘다. 못 만났어 새끼야, 하며 어깨를 툭 치니 낄낄대며 야, 또 만나자고 했다며-장난스럽게 외친다. 저걸 진짜. 가방을 들어올리며 나 오늘 전공 책 세 권인가 있는데, 하고 웃어보이니 이내 딴청을 부린다. 그나저나 최민호 이 자식은 또 언제 끝나.
"야, 우리 도서관 가 있으면 안돼? 왜 최민호 끝날때까지 기다려야 돼?"
"오늘 점심을 쏘기로 한 귀인이십니다, 자식아."
"...아니 그래도..."
기필코 점심을 뜯어내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섞인 눈빛을 억지로 받아내려 했으나, 공룡을 닮은 페이스 덕분인지 기에 밀려 결국 시선을 돌리고야 말았다. 진짜 한 밖에서 20분 가량 기다린 것 같은데, 도대체 언제 끝나는거야! 다시 강의실 뒷문의 쪽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려는데, 문이 열리며 학생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 이제야 끝난거야? 무더기마냥 쏟아져 나오는 1학년들을 피해 잠시 구석으로 몸을 돌렸다가 강의실 안쪽을 쳐다보니, 훤칠한 녀석이 여자애들에 둘러쌓여 어쩔 줄 몰라하며 가방을 둘러메고 있다. 옆에서 부럽다...하고 중얼거리는 종현을 어처구니없게 쳐다보다가, 크게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야, 최민호!"
아직은 조금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 이쪽을 보고 생긋 웃는다. 이윽고 매너좋게 여자애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선배들...점심때문에 기다렸어요?"
"...티 나냐?"
"확이요."
나보다 키가 커서 내려다보는 눈빛에 한심함이 서려있다. 괜히 얼굴이 붉어지려 해서, 기다리자고 우기던 종현의 어깨를 내려치고는-억울한 듯 소리를 지르는 종현은 무시했다-천천히 밖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늘이 파래서 굉장히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이런 날 다시 수업 들어가기는 싫은데-싶어 대출이나 부탁할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 타이밍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오, 쉣, 갓뎀!
"어이, 동생-점심 먹으러 가?"
"형.학교에서는 오랜만에 보네?"
"오, 공룡이랑 팬더-Hello~"
"하하하, 형이 제일 공룡같으면서 뭘."
저 해맑은 최씨 형제의 대화는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겁나게 잘생겨서 부담스러운 승현 형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가운 인사? 놀리는 듯한 애칭? 얼굴이 눈에 안들어왔는데 그 뭐가 눈에 들어오겠냐. 옆에서 나를 쿡쿡 찔러오는 종현의 손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앞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안녕, 이승현군? 우리 또 보자고 했잖아."
스키니와 후드자켓만 걸친 프리한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핏이 좋은 남자는 머리에 쓴 비니를 만지작거리며 웃고 있었다. 손에 낀 반지가 여전히 인공적으로 빛난다. 승현이 형이 자신보다 조금 작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팬더랑 아는 사이야? 그러자 남자는 아까의 해맑은 웃음과는 조금 의미가 다른,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 남자친구...일까."
승현 형의 눈이 커지며 경악으로 물든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욕이 나올 뻔 한걸 겨우겨우 붙잡았다. 저 자식, 날 가지고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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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네 도대체 무슨 사이야? 하며 수없이 나를 찌르는 승현형의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독심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뭔가 저 눈빛은 너무나도 잘 읽혀진다. 이건 전부 저 남자, 그러니까 권지용이 말을 어정쩡하게 내뱉어서 생긴 일이다 이거야. 있는 짜증을 다 담아 내 앞에 앉은 그를 쳐다보니, 아무것도 몰라요 눈빛을 하고는 어깨를 으쓱한다. 젠장, 내가 왜 저 인간까지 포함해서 밥을 먹으러 온 거야.
"승현이 형."
"엉? 팬더 왜?"
"지금 당장이라도 좋으니까 형 친구 데리고 나가서 따로 드시면 안 돼요?"
"...팬더야, 형 상처 받아..."
"그리고 돈도 잘 벌면서 뭘 동생에게 얻어먹으려 그래요, 당장 안 나가요?"
왜냐면 난 지금 권지용이랑 같이 밥을 먹으면 체할 것 같거든. 비싼 밥 얻어먹고 체하면 돈낭비지. 조금 버릇없어 보이는 것을 감수하고 승현형에게 말했지만, 승현형은 불쌍한 척 가녀린 척 온갖 척을 다 하며 들러붙어 있었다. 권지용? 말할 것도 없이 그저 턱을 손으로 괴고 싱글싱글 웃으며 구경하고 있지 뭐. 그냥 내가 나가버릴까, 싶었지만은 종현이 녀석이 가지말라는 신호를 하며 아까부터 내 옷깃을 붙잡고 있었다. 망할, 그렇게 해서라도 밥을 얻어먹고 싶냐! 겨우 패밀리 레스토랑이잖, 패밀리 레스,...고기...젠장.
"아, GD."
"왜?"
"채린이는?"
"CL?글쎄, 지금은 친구랑 있겠지?"
...왜 이름을 안 부르고 저딴식으로 부르는거야?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는 호칭에 고개를 갸웃이고 있었다. 종현은 솟아오르는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지, 제 옆에 앉은 민호를 툭툭 치며 이미 이유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나 민호마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것을 보니...답을 알아내는 것은 그른 듯 싶다. 결국 우리들의 시선을 받은 민호가 제 형을 쳐다보며 형, 작지만 침착하게 불렀다.
"GD나 CL이 뭐야?"
"엉? 아, 애칭 비슷한 거?"
"왜 그렇게 불러?"
"재밌잖냐-그리고 시작은 GD가 먼저 했다."
그렇다고 그걸 금세 부르고 다녀? 쌔액 웃으며 말하는 형에게 그럼 형은 뭐라고 불려? 라니까 TOP란다. 참 어디 편의점 커피같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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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아마 지디랑 승리가 본격적으로 만나서 깽알깽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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