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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전체글ll조회 867l






축구부 변백현 x 테디베어부 도경수 
; 곰돌이 한마리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경수는 초췌한 얼굴로 반에 들어섰다. 마지막까지 곰인형을 붙잡고 날밤을 깐 뒤라 온몸은 피로했지만, 가방 안에 다소곳이 앉아있을 인형을 생각하면 마음만은 풍요로웠다. 방금 관 속에서 나온 시체같은 경수의 몰골을 발견한 종대는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 왜이래? " 
 " 뭐가. "
 " 눈 밑만 까맣고 얼굴이 아주 그냥 허옇게 질렸어. 존나 팬더세요? "
 " 시끄러워. "


 경수는 눈을 부비적 거리며 힘없이 종대의 말을 받아쳤다. 잠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경수는 이내


 " 흐흐흐. "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에 종대는 흠칫하며 묵주 팔찌를 두어번 문질렀다. 이렇게 정성 가득한 선물을 챙겨주는 친구는 나밖에 없을거다 변백현아. 경수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오는 길에 산 카드를 가방에서 꺼냈다. 생일 카드는 그로 하여금 작전명 곰변뿅, 이 한 달 간의 대장정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이었다.


  " 오늘 변백 생일이더라? "

  " 어. 어떻게 알았어? "

  " 모를 수가 없지. 여자 애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 "

  " 뭐? "

  " 그 8반에 김윤하 알지? 엄청 예쁜 애. 걔도 오늘 변백현한테 고백한다고 소문 쫙 났어. "


 경수는 일순간 호흡을 정지했다. 그와 함께 'To.변'까지 쓰고있던 오른손도 함께 멈추었다. 종대의 말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에서 흩어졌다. 책을 읽는 난독증 환자처럼, 어느것 하나 제대로 인식되는 단어가 없었다. 변백현. 여자 애들. 김윤하. 그리고, 고백. 겨우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경수는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놀란 종대가 어디가냐고 묻기도 전에, 경수는 가방에서 곰인형을 꺼내 재빨리 반을 뛰쳐나갔다. 


 위층인 백현의 반까지 단숨에 달려온 경수는 달리던 것을 멈추고 급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백현의 반 주위에는 이미 많은 아이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 있었다. 경수는 엄습해오는 불안한 기운을 애써 떨쳐내며 아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겨우 보이는 백현의 자리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선물들이 쌓여 있었다. 초콜릿, 축구화, 운동복 까지. 경수는 제 손에 들린 곰인형을 내려다 보았다. 손바닥 보다 조금 큰 갈색 곰인형은 엉성한 박음질 처리에, 눈마저 삐뚤게 달려 있었다. 성처럼 쌓여있는 저 선물들과는 비교도 안되게 초라했다. 경수는 방금까지 잘못된 생각으로 우쭐해있던 제 자신이 하염없이 부끄러웠다. 백현이는 이런 이아였지. 내가 아니어도 챙겨줄 사람이 차고 넘치는 그런 아이.그때 한 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 사겨라! 사겨라! "


 경수는 까치발을 서서 고개를 쭉 내밀었다. 그러자 교실 뒤편에 서 있는 윤하의 옆모습이 보였다. 윤하는 새카만 결좋은 머릿결을 귀 뒤로 넘기며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 깔았다. 그 모습에 경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윤하는 평소 백현이 좋아하는 이상적인 외모를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뽀얀 피부에 동그란 눈 그리고 아담한 키까지. 그런 윤하의 앞에는 백현이 서 있었다. 백현은 제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미간은 찌푸린 채였다. 경수에게는 그저 기쁜 감정을 애써 숨기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힘없이 까치발을 내린 경수는 멍하니 백현을 바라보았다. 영화의 한장면처럼 주변의 소음속에서 오직 백현의 숨소리만이 정확하게 귓가에 꽂혔다. 그순간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린 백현은 경수와 눈이 마주쳤다. 


 " …. "


 그리고 경수는 무작정 뛰었다. 초라한 제 모습이 너무 한심해서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결말은 결국 이렇게 될 뿐인데. 괜시리 허황된 꿈에 젖어 시간과 마음을 모두 허비한 꼴이었다. 경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울지마. 도경수. 


 어차피 변백현은 신경도 안 쓸 테니까. 


 경수와 눈이 마주친 백현은 그대로 윤하를 지나쳐 교실을 뛰쳐나갔다. 저 멀리 작아진 경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지금 뛰면 충분히 경수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백현은 쉽사리 경수를 쫓아갈 수 없었다. 복도 끝에 다다른 경수는 이미 아득하게 멀어져 있었지만 백현은 알 수 있었다. 경수의 작은 뒷모습은 울고 있었다. 




*




 " 사랑은 개나 소나 다 한다지만~ 나는 개소만도 못한 바보야. "


 딸꾹. 경수는 알 수 없는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서늘한 저녁 바람이 하얀 얼굴을 훑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발치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맥주캔들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냈다. 쇠 녹슨 냄새가 지독한 오래된 놀이터에서 경수는 구석진 벤치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벌써 세 캔 째였다. 학교가 파하고 애써 백현을 피해 돌아온 집에서 경수는 무작정 냉장고에 가득한 형의 맥주 캔들을 쓸어담았다. 무슨 생각 이였는지는 본인도 설명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걸 잊고 어디론가 도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경수는 손에 쥔 맥주캔을 찌그러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그렇게 고대하던 백현의 생일을 가장 멋지게 챙겨주기는 커녕,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겁을 먹고 실망한 것도, 도망친것도 모두 경수 자신이었기에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백현이는 지금쯤 뭐하려나. 김윤하 고백을 받아 줬겠지? 받아 줬을거야. 나 같아도 그렇게 예쁘고 공부 잘하고 성격 좋은 애가 고백하면 얼씨구나 했겠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둘이 되게 잘 어울리네. 백현이는 좋겠다. 


 " 행복하겠지. "


 네가 슬프면 나도 슬프고,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으니까. 나도 행복해야 되는데. 왜이렇게 난 행복하지가 않을까, 백현아.


 " 경수야. "


 도경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적요를 가르며 경수의 가슴께를 두드렸다. 경수는 쉽사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를 들면, 그 순간 억지로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이 파도에 잠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것만 같았다. 

 백현은 지친 걸음으로 경수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아 경수의 시선을 맞추었다. 백현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맥주 캔을 쥔 경수의 작은 손을 감쌌다. 경수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얼굴로 백현의 시선을 피해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 한참 찾았네. 우리 도경수. "

 " …미안해. "

 " 뭐가 미안해. "


 백현은 예의 그 경수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드러운 얼굴로 웃었다. 긴장과 노곤함이 풀려 무장해제된 모습에 경수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백현은 경수의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곰인형을 집어들었다. 경수는 백현의 자리에 쌓여있던 선물들 사이에서 본 제법 여러 개의 곰인형들을 떠올렸다. 모두 경수와 같은 테디베어부 부원들의 산물이었다. 꼼꼼한 여학우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인형에 비해 제 것은 매우 초라하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 이거, 내 생일 선물? "

 " …. "

 " 아님 말고. 근데 오늘 내 생일이니까 내가 얘 데려간다. "

 " …. "

 " 아. 이건 그냥 말하는건데. 나 아까 걔 찼음. " 


 잘했어? 경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백현을 바라보았다. 백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수의 곰인형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품에 안았다. 어디선가 둥둥 북이 울렸다. 경수는 그 근원이 제 가슴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랜 세월 꽁꽁 묶어두고 모른체 했던 엄청난 크기의 감정이 마구 날뛰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경수는 비장함이 감도는 얼굴로 백현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한순간에 백현을 벤치에 앉히고 떨리는 마음으로 백현의 앞에 섰다. 백현은 의아한 얼굴로 경수를 올려다 보았다. 


 " 그,그러니까. 생일 선물, 이게 끝이 아니야. " 

 " 이것 만으로도 충분이 감동인데. "


 경수는 순식간에 내뱉은 말에 본인이 놀라서 허둥댔다. 백현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런 경수를 바라보며 웃었다. 경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테디베어부에서 난생처음 바느질과 함께 귀동냥으로 배운, 바로 그것. 경수는 국가 기밀을 유출하는 사람처럼 아주 신중하고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 너…. "

 " 응. "

 " 곰돌이 한마리라고. 알아? "


 뭐? 백현은 실소를 터트리며 되물었다. 뭐 이런 귀여운게 다있지 진짜.


 " 육행신데…, 아 몰라. 운 띄우던가. "


 경수는 눈을 꾹 감았다. 이미 목끝까지 새빨갛게 물든 얼굴은 잘 익은 사과 같았다. 백현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운을 띄웠다. 


 곰.

 " 곰돌이 한마리가. " 


 경수는 떨리는 손으로 백현의 손을 잡았다. 


 돌.

 "돌아서서. "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돈 경수는 작은 손으로 백현의 양 뺨을 감싸쥐었다.   


 이.

 " 이렇게. "


 쪽, 소리와 함께 오른쪽 뺨에 짧게 스쳐간 경수의 입술에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경수는 알아서 다음 운을 띄웠다. 


 " 한번더 "


 쪽. 백현은 저도 모르는 새 호흡을 멈추었다. 어느새 양쪽 뺨은 무언가에 데인듯 뜨거웠다.  


 마.

 " 마지막으로." 


 잠시 머뭇거리던 경수는 그대로 백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상체를 일으킨 경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동안 무거운 정적이 뜨거워진 공기 사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백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리.

 " 리플레…. "


 그리고. 백현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수의 팔을 끌어당겨 키스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경수가 비틀거리자 백현은 경수의 제 다리 위에 앉혔다. 백현은 천천히 경수의 뒷목을 감싸안았다. 갈 곳을 잃은 경수의 두 주먹은 저처럼 쿵쿵대는 백현의 가슴께에 가 닿았다. 연한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백현의 혀가 빠르게 경수의 고른 치열을 훑었다. 경수는 제 앞에서 눈을 감고있는 잘생긴 백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백현을 따라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래도록 혼자 방백만 하던 짝사랑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fin. 




 

 



 


 > 안녕하세요 한결입니다:) 팬픽은 참 오랜만에 써보네요ㅋㅋ...잘 쓴건지..뭔지..후..(꼬질꼬질)

   저번 上편에서 댓글달아주신 독자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ㅠㅅㅠ 처음에 너무 반응이 없어서

   허약한 쿠크심장은 下편은 써보지도 않고 접으려고 했는데 정말 큰 힘이 되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큰절)♥♥

   저는 됴총이면 라인 가리지 않고 다 씁니다^♡^ 

   떡은 원체 보는것만 좋아하고 쓰지는 못해서.....^^ (눈물) 달달달달달달한 소소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진짜 복받으세여!!!!!!!!!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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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어떻게요... 현기증나요.. 하.. 욀케 이쁘니... 오 주여 아름답다정말사랑스럽다내꺼스럽다... 하... 신알하고 추천 누르고 갑니당~❤️
9년 전
독자3
왼전 달갈달달달달 ㅠㅠㅠㅠㅠㅠ 백도도 이르케 달달하구나ㅠㅠㅠㅠㅠㅠ 귀여워여ㅠㅠㅠㅠㅠ 신알신 누르고 갑니다!!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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