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ation
그런대로 좋은 날씨 덕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종인이 가만히 바깥을 바라보았다. 5교시인데 오늘따라 잠도 오지 않았고, 수업이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야 뭐 종인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니 느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종인은 아까부터 따끔거리는 발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오세훈 개새끼 잡겠다고 열나게 뛰었더니 계단에서 삐었나 봐. 낮게 중얼거리는 종인을 흘끗 바라보던 백현은 관심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공책에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짝꿍이라는 놈이 야박하긴. 종인은 퉁명스레 입을 내밀며 보건증을 달랑이며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쌤! 아악, 아, 아 존나, 박찬열 개새끼……, 쌤 제가 지금 다쳤는데 뭐 하시는거예요.”
“… 어 종인이 왔어? 미안 미안. 수업 중인데 허락은 맡고 왔니?”
“당근이죠, 절 뭘로 보시는거예요 섭섭하게시리.”
종인은 능글맞게 웃으며 보건증을 달랑였다. 경수는 푸스스 웃으며 종인의 발목을 매만졌다. 아 간지러. 흐흥흥 하는 웃음소리를 꾹 억누른 종인은 부드러워 보이는 경수의 볼을 주물럭거리고 싶다는 생각 또한 꾹 억누르며 가지런히 의자에 앉아있었다. 됐다! 짝하는 박수소리와 함께 단정히 붕대가 감긴 종인의 발목. 종인은 벌써 끝났냐는 듯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보건증에 친히 싸인까지 해주시고, 어서 가라는 표정으로 똘망거리며 종인을 바라보는 게 선생 맞나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쌤 저 여기 쪼금만 더 있다가면 안되요? 5분 있음 수업 끝인데, 네?”
“에이… 안되. 그러다가 너 뿐만 아니라 나까지 혼난단말야. 그대신 점심 같이먹자, 응?”
순간 확 밝아진 표정의 종인이 푸헤헤 웃으며 격격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냥 애같은 종인의 모습에 경수가 웃음을 터트렸고, 드르륵 보건실 문을 열고 나온 종인이 속으로 외쳤다. 경수샘도 날 싫어하진 않구나? 격격격하게 날 아끼는 거 다 알아♡ 라고. 계단을 내려오던 세훈이 팔딱거리던 종인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고, 종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강하게 세훈을 응징했다.
“쌤 오늘 급식 되게 맛없다 그쵸? 근데 보건실은 안 더워요? 난 뒤질 거 같은데….”
“흠 애들 많을 때 빼곤 그럭저럭? 더위 잘 안타서. 너야 맨날 뛰어다니니까 덥지.”
“흐흐… 그런가. 아우 쌤, 이것도 드시고 이것도 드시고 하세요 쫌!”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경수의 숟가락 위에 먹음직스러운 반찬을 올려놓는 종인은 흡사 엄마 같았다. 경수는 밥을 오물거리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아 정말, 보면 볼수록 웃겨. 종인은 그저 이 시간이 꿈같았다. 자신이 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냥 경수와 함께있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 뿐이다 정말로. 종인은 국 한 방울까지 말끔히 해치운 뒤 숟가락으로 식판을 탕탕 두드렸다. 먼저 발걸음을 떼는 종인을 덮친 건 비글 형제… 찬백 브라더스였다.
“야, 너 경수샘이랑 연애라도 해? 교실에 없길래 어딨나 했는데 여기였냐, 우와, 배신자.”
“맞아 맞아, 백현아 왕 수상하다 그치?”
박찬열 너는 대화할 때 사람 눈이나 쳐다보고 말해. 백현만 뚫어져라 아빠미소를 머금고 바라보는 찬열의 뒷통수를 휘갈긴 종인이 능청스레 뭔 개소리? 라며 당당히 대응했다. 말썽부리기에선 전교 1등인 둘이었지만 그만큼 단세포였기에 의심의 여지는 눈꼽만큼도 남겨두지 않은 채로 뒤돌아섰다. 으유 병신들. 둘의 뒷통수를 향해 뻐큐를 강하게 날린 종인은 매점에 들러 마이쮸를 구입 해 비어있는 경수의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놓고 교실로 올라갔다. 수많은 여학생들이 종인선배 잘생겼어요 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오세, 오늘도 준면이형네 빵가게 가서 알바 뛰냐? 힘들지도 않나, 괴물같은 놈.”
“안 힘들기는, 죽어 죽어. 그래도 그 정도면 돈 꽤 버는거니까 하는거지. 루한이한테 선물 보내야되.”
“아 그냥 걔보고 한국 오라 그래! 진짜 뭐 이런 별난 연애를 다 봤나.”
종인은 한심하다는 듯 세훈의 머리를 통통 두드렸고, 마침 지나가던 학생부 선생님과 눈이 마주친 세훈은 염색을 풀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를 붙들린 채 끌려갔다. 왜 내 주위엔 죄다 병신들 뿐인가. 심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종인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준면이형네서 알바나 뛸까. 너무 심심했다. 경수샘도, 병신들도 없는 교실은 너―무나 고요했다. 한숨 잠이나 자야겠다 하는 생각에 그대로 종인은 엎드렸다.
“종인아 마이쮸 네가…… 어, 자네.”
마이쮸를 발견한 경수가 감사의 말을 전하기 위해 기껏 교실까지 올라왔는데 종인은 쿨쿨, 잠에 든지 오래였다. 경수는 제법 귀엽게 자는 종인이 귀여운지 까만 색 머리를 매만졌다. 깜댕이. 혼자 끅끅거리며 웃던 경수 때문에 잠에 서 깬 종인은 벌떡 일어나 두 눈을 비비적거렸다. 경수는 베시시 웃으며 마이쮸를 흔들어보였다. 이거, 고맙다구. 그제서야 종인은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늘 선생님한테 잘 해줘서 고마워. 교생이라서 얼마있음 다른 곳으로 갈텐데.”
“누가 쌤 보낸댔어요? 웃기네…, 쌤 제 소유예요.”
듣기 좋았다. 장난스럽고 진정성 없는 한 마디였지만. 경수는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종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고, 인심 썼다는 생각을 하며 종인에게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며 ‘번호 줘’ 라고 말했다. 헐…헐… 올레!!! 종인은 신나서 경수의 휴대폰을 받아들고 정성스레 자신의 번호 열 한자리를 눌렀다. 여기요! 하고 경쾌히 자신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는 모양이 정말 강아지같아서 경수는 말없이 웃으며 교실을 나갔다.
“아오오오오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제게 이렇게 복을 주시네요!”
종인이 미친듯이 웃어제끼고 있을 때, 교실 뒤편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찬백 브라더스는 중얼거렸다. 저 둘 진짜 왕 이상해. 물론 찬열은 또 다시 중얼거리는 백현만 뿌듯히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지만. 종인은 며칠 전 기말고사에 나왔지만 자신이 처참히 틀린 국어문제를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속담 문제였는데.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 라는 속담. 경수쌤한테 끈덕지게 달라붙어야지, 더 달라붙어야지. 종인은 다짐했다. 저 귀염둥이 선생을 꼭 제 곁에 붙여놓을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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