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주택에 산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부럽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곤 하지만 사실 하나도 부러워할 게 없었다. 왜냐? 전원주택은 너무 더웠으니까. 백현은 땀이 가득 베어 냄새를 풀풀 풍기는 교복 와이셔츠를 거칠게 팔락거리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어디에 사는지 아는 사람은 밴드부 선배인 찬열과 같은 반 친구인 경수 뿐이었다. 전학온지 일주일, 적응이라는 단어는 필요치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적응할 게 또 뭐가 있을까. 같은 것 투성이인데. 조금 다른 디자인의 학교를 다니고, 조금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조금 다른 규정에 길들여지는 것 뿐인데. 백현은 학교 앞에서 나눠받은 부채를 펄럭였다.
“백현이는 부럽다 전원주택도 살구. 너 꼭 집들이 시켜주는거다? 같이가요 찬열선배!”
“부러울 게 뭐 있담. 얼마나 더운데 그래. 난 아파트 사는 게 소원이다 소원.”
“크흐흐 그래도 좋잖아, 내 로망인데! 경수랑 언제 한번 쳐들어간다 조심해.”
셋은 고등학생이라기에 너무 순수했다. 알 건 다 아는 나이였지만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웃는 게 참 예뻐서, 여학생은 물론 남학생과 선생님들까지도 한 번쯤 뒤 돌아보게 만드는. 백현은 두 눈을 비비적거리며 집 앞에 우뚝 멈춰섰다. 오늘도 대문 앞에서 백현을 바래다주고 뒤 돌아서야 하는 게 아쉬운지 입맛을 쩝 다시는 경수와 찬열에게 미안해진 백현이 망설이는 듯 하다 땀에 살짝 젖어든 앞머리를 베베 꼬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기….”
“응? 백현아 왜애애?”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구 갈래? 어제 준면이형 월급 날이라 좀 사왔는데.”
“완전 땡큐지! 드디어 이 집에 들어가보는구나, 으하항.”
신나서 발걸음을 옮기는 찬열과 경수를 보며 살풋 미소짓던 백현이 시계를 흘끗 바라보았다. 준면이형 오기엔 멀었네. 냉동고 문을 열어 아이스크림을 건네자 초스피드로 포장지를 까 와그작 와그작 아이스크림을 씹어먹은 모습이 여간 장난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백현은 다행이다 싶은 생각에 오랜만에 에어컨 리모컨을 틀어 삐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에어컨을 틀었다. 후아, 시원해! 경수의 외침에 소파에 주저앉은 백현이 남몰래 울상을 지었다. 전기세 많이 나오겠다.
“아이스크림 잘 먹었어! 집도 왕왕 좋다. 부자 아니라더니만 완전 부자네 변백현.”
“아… 진짜 아냐. 집만 좋은거야, 이것도 물려받은건데.”
“어쨌든 가 볼게. 찬열선배 빨랑 와요, 오늘 피씨방 가서 조져버릴거야. 지면 떡볶이 콜?”
요란한 집들이였다. 생소했지만 뿌듯했다. 백현은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치고 간듯한 공허함에 허탈히 한숨 섞인 웃음을 털어냈다. 세탁기가 삐빅 요란스레 울렸음을 그제서야 인지한 백현은 서둘러 뽀송뽀송 잘 세탁된 옷가지들을 들고 옥상으로 나섰다. 전원주택의 장점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이게 아닐까 싶다. 넓지막한 옥상. 올라서면 하늘이 가득 품 안에 들어올듯한. 백현은 미소를 한가득 머금었다. 사람들을 무서워했던 자신에게 도움이 되준 건 딱 세가지였다. 준면이형, 경수랑 찬열선배, 그리고 이 옥상. 분홍빛 빨랫줄에 차곡차곡 옷들을 널어놓자 따끔한 시선이 느껴졌다.
“…… 어.”
옆집에 살던 꼬마 아이는 이사간듯 보였다.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려보고 있다는 게 맞으려나. 따가운 햇살에 타기라도 한 건지 까무잡잡한 피부가 눈에 띄었지만, 꾀죄죄 해 보인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오히려 건강미가 넘쳐보였다. 뻘쭘함에 큼큼 헛기침을 두어번 내뱉은 백현이 다시 집게를 손에 들었다.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날 노려보지. 잘못한 거라도 있는건가. 이 서먹함을 빨리 깨기위해 서둘러 바구니를 들고 내려가려는데, 나즈막한 목소리가 백현을 붙들었다.
“어제 인사왔는데 인사를 못 드렸네요. 이렇게 만날 줄이야…. 반가워요, 새 이웃.”
상당히 신사적인 인사였다. 백현은 그제서야 더듬더듬 뒤 돌아 옅은 미소와 함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모든 걸 판단해선 안되는구나. 준면의 가르침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사람 대하는 것은 어려웠기에 백현은 그럼 나중에 뵈요 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계단을 나서려했다. 아쉬운건지 그런 제 자신이 흥미로운건지 끝없이 백현을 직시하던 남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몇 년전에 누구한테 맞은 적 있죠? 외국인이었는데…, 크리스랬나.”
그쪽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백현의 머리가 지끈거려옴과 동시에 혼란에 가득 찼다. 어떻게 그런 악몽같은 이야기를 저리 예쁘게, 방긋 웃으면서 할 수 있는걸까. 침체된 표정의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니까. 이 옆집이웃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던간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두 눈을 박차고 달리기 시합을 할듯해서 백현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더 이상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구질구질한 과거가 자꾸만 바짓단을 붙들어서 애써 이 곳으로 멀리멀리 이사를 와 버린건데. 한국이 좁긴 좁은건지 백현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꽤나 가까이에 있었다. 지나치게 가까이.
“그 때 저희 식당 지하주차장에 있었잖아요. 거기 우리 고모부네라서 나 잠깐 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
“내가 너무 민감한 질문을 했나 처음부터.”
“… 물어봐주지 않으셨으면 해요. 사람 대하는 게 서툴러서, 좋은 말씀은 못 드릴 것 같아요.”
“예의바른 학생이네. 내 이름은 김종인이예요, 나이는 스물 다섯 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건너와요.”
유감이지만 그런 일은 없을 듯 해요. 백현은 대꾸를 꾹 참고 빙글 뒤돌아섰다. 잔인한 인간. 백현은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며 계단을 뚜벅거리며 내려왔고,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백현을 발견한 준면이 무슨 일이냐며 따스히 묻자마자 백현의 눈물샘은 터져버렸다. 또 있었다.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이. 처참히 짓밟혀 하루하루가 고통같았던 그 날을 함께했던 사람이 또 있었다. 백현은 무너졌다. 더 이상은 살고싶지 않았다. 경수도 찬열선배도, 정신적 지주와 같던 준면도, 늘 휴식처가 되어준 고마운 옥상까지 모두 다 필요치 않아졌다. 대한민국은 더러워. 꺽꺽 아이마냥 눈물을 토해내던 백현은 빈혈기가 있었는지 픽하니 쓰러져버렸다.
“… 옆집 사람이 네가 그 일 당한 걸 안대?”
“응. 형, 나 싫어. 그 사람 싫어.”
“너도 이사온지 얼마 안됬잖아, 근데 또 어딜 피하려고 그래 백현아…. 이겨내야지.”
이겨내고 싶어 나도 정말. 백현이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그래, 찔려서 혼자 울컥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 옆집 이웃을 피하면 되는 것이다. 스물 다섯 살의 김종인. 미안하지만 이제 지저분한 어른들은 상종하지 않는 게 백현의 방법이었다. 백현에게 순결하고 믿을만한 어른이란 준면 뿐이었다. 이미 너무 깊은 상처가 베어들어 있었으니까.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버려져 빚더미에 허우적대 방황하고, 곱상하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크리스에게 짓밟혔다. 크리스는, 백현의 가장 친한 중학교 친구였는데. 외국에서 왔지만 백현이 누구보다 따스히 감싸줬는데. 그렇게 한 편의 영화처럼 또 슬픈 일들이 백현의 기억을 건넌다. 끊고 부숴도 지워지지 않는다.
“백현이 오늘 학교 못 갈것 같아, 미리 연락을 못 줘서 어떡하지? 미안.”
“에에? 어제 저희가 집에 쳐들어가서 너무 놀랐나봐요, 죄송해요.”
“아냐. 자주 놀러와도 괜찮아. 백현이가 워낙 몸이 약해서, 늘 고맙다 경수랑 찬열아.”
준면이 미안하단 표정으로 경수와 찬열의 손에 사탕을 쥐어주며 백현의 결석 소식을 전했고, 그 모든 대화내용을 윗층 발코니에서 백현이 듣고 있었다. 흰색 니트가 굉장히 잘 어울렸다, 마치 천사처럼. 학교란 여전히 거부감 가득한 공간이었다. 사람을 대하기 힘든 백현에게 천 명이 넘게 득실거리는 학생과 선생님들 틈에서 하루 일곱시간 넘게 생활하라는 것은 불구덩이에 빠져들라는 것과 같달까. 백현은 앞에 놓인 코코아를 홀짝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저 애들도 언젠간 다 알아버리겠지. 회의감에 휩싸였다. 간만에 행복한 게 이상하다 했어. 백현은 또 다시 흐르려드는 눈물을 애써 붙잡고 두 눈을 감았다.
< 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깡총깡총이예요 ㅎㅎ 오래 글잡담을 뜬 건 아니였지만
컴퓨터를 오래 못 해서 그런가 음 굉장히 오랜만인 것 처럼 느껴지네요..
개그픽은 아무래도 제 소질이랑은 안 맞는 것 같아서, 비도 오는데 우중충한 작품 하나 들고 와버렸어요
처음부터 종인이랑 백현이가 짝짝 맞진 않을 것 같아요 ㅎㅎ.. ㅠㅠ
오랜만에 온만큼 저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많은 독자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ㅎ!
암호닉과 신알신은 부담없이 걸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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