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눈치를 주세요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411232/492e878519dfb57d3b103eb700f54fb2.jpg)
축구공이 곡선을 그리며 운동장을 가른다. 그 공을 따라 몇 명의 아이들이 비튼 숨을 뱉으며 달린다. 옅은 갈색 머리의 남자가 중간에 공을 가로채가고, 그대로 막힘없이 골대로 직진한다. 남자아이의 곁에는 아무도 없어 완벽한 찬스다. 남자아이는 그대로 공을 찼고, 그대로 공이 골키퍼를 지나쳐 들어간다. 희비교차의 순간, 반은 웃고 반은 울상이다. 남자아이의 주변에 공을 차던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둘러싸인 남자아이는 멋쩍게 웃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공을 뺏긴 상대팀은 억울해 죽을 맛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저 갈색머리 아이는 축구부에서도 꽤 각광받는 아이니깐. 그런 루한을 보던 민석은 입술을 삐죽인다.
“루한, 나 좀 봐.”
축구가 끝난 뒤, 바튼 숨을 뱉는 루한의 앞에 민석이 말했다. 왜? 루한은 얼떨결에 알겠다는 답을 했다. 루한은 의아했다. 민석과 루한은 같은 반이지만 그닥 친하지도 않았고, 또 친구들조차도 전혀 달랐다. 루한의 친구들이라면 찬열과 백현처럼 쉬는 시간마다 뒤에서 떠드는 타입이라면(루한은 딱히 동조하지 않는다.), 민석의 친구들은 경수나 준면처럼 끼리끼리 논다고 죄다 쪼그만 애들만 모아 놨달 까, 그나마 민석이 축구를 좋아해 축구 할 때를 제외하곤 말을 할 일이 드물었다.
근데 나를 왜? 그것도 따로 보자고?
수돗가에서 대충 얼굴을 씻은 루한의 턱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짜증나, 짜증나. 민석은 짝사랑하는 소녀의 마음으로 한숨을 푹 내쉰다. 검은 반팔 티 하나만 입은 루한의 희고 가늘지만 강단 있는 팔뚝이 그대로 드러났다. 루한은 불러놓고 말이 없는 조그만 검정 뒤통수를 내려 봤다. 족히 얼굴 반은 차이 날 듯 한 키다. 기다리다 지친 루한이 무어라 말을 할 때쯤 굳게 닫혀있던 민석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선선한 봄바람이 불었다.
“루한 넌 왜 이렇게 잘생겼어?!”
“……어?”
“씨, 짜증나게 잘생기고 지랄이야.”
“…….”
“오늘 축구를 너무 잘해서, 마음 접으려 했는데 또 반했잖아…!”
수줍게 우물쭈물 하던 때는 언제고, 말을 하니 원망조로 버럭! 소리친다. 말을 미친 민석은 다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인다. 분명 날 싫어 할 거야, 루한이 게이라 소문내면 어쩌지…? 하지만 난 게이 아닌데… 지금까지 여자 좋아했는데… 민석의 머릿속은 혼돈의 카오스가 되었다. 루한의 답을 기다리던 민석은 눈을 꾹 감았다. 루한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어서 빨리 욕해줘. 달게 받을게.”
“나랑 사귀자는 거야?”
그 정도로 과분한 결과를 바란 고백이 아니었다. 단지 골을 넣던 루한이 너무 멋있어서 한 충동적인 고백인데…!
[루한 X 시우민] 눈치를 주세요
W. 소년
체육 시간 이후부터 정신없이 발발거리는 민석을 보며 경수는 쯧쯧, 혀를 찼다. 눈치 백단 도경수는 당연히 민석이 루한을 좋아한다는 것쯤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눈치 영단 김민석은 제가 루한을 좋아한다는 것이 철저히 티를 안낸다고 생각하나보다. 그러니까, 얘가 실실 쪼개며 이러는 이유는.
“경수야 나 고민 들어줘.”
“뭔데.”
“내 친구 얘긴데…”
“네 얘기겠지.”
“아니야! 친구 일이야.”
“말해봐.”
“친구가 좋아하던 사람이랑 사귀게 되었거든?”
“루한?”
“아니라니깐?!”
루한이랑 사귀게 됐다는 거겠지.
민석의 목소리가 튀어 교실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물론, 교실 뒤편에서 떠들던 루한까지도. 루한, 제발 너만은 보지 말아줘…!제발! 간절한 민석의 바램과는 다르게 루한은 민석을 보고 있다. 순간 루한과 눈이 마주친 민석은 얼굴이 붉어지며 다시 쭈글쭈글 쭈구리가 된다.
“나 연애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자고로 민석은, 글로 연애를 배운 케이스였다. 민석의 멘토는 지식인 형님들이었으며, 참고서는 막장 한국드라마였다. 거기다 눈치까지 없어 연애 상대로 치면 줘도 안 받는 폭탄 수준이라고 할까, 물론 민석도 반반한 얼굴로 연애는 해봤다. 깨지는 케이스도 가지각각이다. 사랑을 하면 불도저 수준인 민석은, 데이트코스를 짜놓는 남자들이 멋있다는 포털 사이트에 의존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빼곡히 데이트 코스를 짜놓았다가 차인적도 있고, 학교에서 공개 고백도 해봤다가 차였고, 사귄 다음날부터 날짜별로 장미꽃 한 송이씩 선물하다 질린다고 차였고, 그외 등등 이유도 다양하다. 그러니깐, 민석은. 마음으론 이미 별을 땄지만 현실은 땅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연애고자다. 길게 간 여자가 한 달? 이번엔 얼마나 가려나, 게다가 상대가 학교에서 여자들의 만인의 이상형이라는 루한이라니. 꽤 볼만하겠네.
“내가 뭐라 조언 할 처지는 아닌데.”
“응? 어?”
“그냥 오버 하지 말고 마음 가는대로 해.”
큰 눈이 깜빡인다. 이 정도는 알아서 눈치 것 행동하지… 쓸 때 없이 이런 면에선 둔해가지고, 경수는 심드렁하게 턱을 괴며 제 팔에 들러붙은 중생을 밀어냈다. 책 펴. 걔 걱정하기 전에 너 앞날이나 걱정해. 도경수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민석은 황홀함에 빠졌다. 내가 루한이랑… 루한… 그나저나 날 싫어하면 어쩌지? 수업이 다 끝나도 앉아있는 민석의 셔츠자락을 잡고 일으킨 경수 때문에 민석은 하교를 할 수 있었다. 루한은 갖으려나? 항상 있던 교실 뒤편에는 역시 루한이 있었다. 어디 가려는 모양인지 친구들과 웃으며 가방을 정리한다.
나도 루한이랑 어디 놀러갔으면… 멍하니 있는 민석을 발견한 루한이 살짝 웃는다. 지금 루한 나보고 웃은 거야?!
“내일봐. 민석.”
“어?! 어…”
루한이 해사하게 웃었다. 씨발. 씨발! 존나 잘생겼어! 민석은 가방끈을 바싹 당겨 루한과 친구들을 지나쳐갔다. 매번 수업 때 보는 거지만 동글동글한 뒤통수가 귀엽다. 종종 걸을 때마다 민석의 생머리가 바람에 살짝 휘날린다. 여름 되기 싫은데, 봄만 사계절이었으면 좋겠다.
*
「민석아 뭐해?」
씻고 잘 준비를 마친 민석이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보통 이럴 때 라면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오늘부터 사귀게 된 다정한 제 연인의 문자라 생각하겠지만, 이 남자는 눈치 꽝인 김민석이다. 민석은 문자를 씹으려다 퍽 인상을 썼다. 아니, 어떤 새끼가 지 소개도 안하고 뭐 하냐 물어? 모르는 번호면 그닥 친한 사인 아닌 거 같은데. 문자 꼴을 보니 급한 부탁인거 같아 괘씸해 졌다.
「니 알빠 근데 너 ㄴㄱ?」
「쓸데없는 부탁하지마라 형 바쁘다」
초고속으로 문자를 전송한 민석이 게임을 하기위해 거실에서 간식을 한 아름 챙겨왔다. 오늘 렙업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밀었더니만 제 등급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민석은 기겁했다. 어떻게 올려 논건데…! 승급전이 코앞이다. 민석은 손을 털고 비장하게 키보드위에 작은 손을 올렸다. 오른손은 비장하게 마우스를 쥔 채로.
정신없이 게임을 하며 과자를 집어먹던 손이 핸드폰을 스쳤다. 아, 씹! 민석은 현실로 짜증을 냈다. 게임을 하던 것을 멈추고 민석은 물티슈를 뽑아들었다. 자고로 민석은, 청결도 면에서는 흠 잡을 데가 없다. 꼼꼼히 액정부터 말랑한 실리콘케이스까지 닦은 민석은 제 얼굴이 비치는 액정을 켰다. 문자 한통. 문자? 그 새낀가?
「ㅋㅋㅋ나 루한」
민석의 표정이 격하게 일그러져간다. 헐 미친... 루한에게 문자가 온 시간은 10시 10분, 지금은 12시 23분. 늦게 보낸 게 문제가 아니라 씨발...! 민석은 절망하며 자판을 누른다.
「헐 루한아 너인지 몰랐어ㅜ.ㅜ」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나 너무 늦었지ㅠㅠ (울먹)(울먹)」
게임이고 나발이고 평소에 쓰지도 않는 이모티콘까지 써가며 전송한 민석은 휴대폰을 구명줄처럼 쥐고 침대에 데굴데굴 굴렀다. 미쳤어 미쳤어 김민석!
답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왔다.
「이 시간까지 안자고 뭐해」
「경수한테 물어봤는데 기분 나빴어?」
루한은 왜 이리 다정할까… 민석은 급하게 게임을 끄고 침대위에 누워 잘 자세를 잡았다. 아마도 내일이면 길드원들에게 욕을 쳐먹을 것이다. 이따 던전 돌기로 했는데,
좀 미안하네.
「안 나빴어! 난 게임했지~ 루한 넌?」
「ㅋㅋ게임 좋아해? 공부 하느라」
「응! 루한 넌 공부 좋아해?」
「공부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민석은 이 문자를 보는 루한의 표정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잘 자라는 말로 마친 문자를 올려보며 민석은 몰래 웃었다. 귀가 붉어지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와… 이런 게 연애라니…
카페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민석을 보며 루한은 맞은편에 앉아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이런 곳 불편한가? 이상하게 눈치를 보는 민석을 보며 루한은 생각했다. 평소에는 제 친구들과 발발거리며 잘 다니더만, 어디 아픈가. 진동 벨이 울리자 민석이 버저를 집고 벌떡 일어났다. 루한의 예쁜 눈이 따라 올라간다. 푸스스, 루한은 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눈가가 곱게 굽이친다. 민석이 커피와 베이글, 머핀을 가져올 동안 루한의 시선은 올곧게 민석을 보았다. 쟁반을 내려놓은 민석은 커피를 사약 들이키듯 마셨다. 역시 내가 루한과 사귀는 건 중죄야.
“민석아.”
“…어? 나 불렀어 루한?”
“응. 너 불렀어.”
큰 눈이 저를 가득히 담고 있다. 루한은 제 앞에 놓여있는 베이글을 내밀었다. 왜 안 먹어, 이거 싫어해? 그랬더니 귀가 붉어지며 대답한다. 너 먹으라구…
이건 온전히 두 사람의 ‘첫’ 데이트였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 게임을 한다던 민석의 말을 듣고 루한은 곰곰히 생각하다 집 앞에 카페로 나오라했다. 민석은 당연히 냉큼 나왔다. 공부를 하자는 말에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루한이 있다면야. 교복 아닌 베이지 카디건에 검은 슬랙스를 입은 루한 또한 근사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더니, 얼굴이 되니깐 뭔들 안 멋져 보일까.
펜대를 쥐고 막힘없이 풀어나가는 루한을 보며 민석은 지금 96번째 반하는 중이었다. 얼굴도 잘생겼고 돈도 많고 게다가 공부까지 잘해…! 민석은 공부는 제쳐두고 루한을 감상했다. 매일 방청소를 열심히 했더니 신이 내게 주는 상 인걸까. 루한이 고개를 들어 마주보다 살짝 웃었다. 김민석이 원래 저런 애였던가.
제 연인 한정인 민석의 모습은 꽤 귀여웠다. 민석의 손에 직접 펜을 쥐어준 루한이 제 검지로 민석의 참고서를 톡톡 두드린다. 손이 닿을 때 민석이 움찔 거리는 게 느껴져 루한은 웃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 그만보고 공부해.
루한의 입모양을 보며 민석은 홀린 듯 고개를 주억거린다. 근데 나 공부 못하는데…
카페에서 나온 루한과 민석은 나란히 걸었다. 멀찍이 떨어져 걷는 민석의 어깨를 루한이 감싸니 귀가 붉어진다. 얼마쯤 걸었을까, 모퉁이를 돌자 민석의 아파트가 보였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까울까… 속과 다르게 민석은 집에 가까워지자 걸음을 재촉한다. 식은땀이 흐른다. 와, 진짜 루한 옆에 있기에는 심장에 무리가…
“오빠?”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민석은 디스패치에게 걸린 연예인처럼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민석의 동생 민지였다. 쭉 째진 눈과 동글동글한 이목구비가 민석을 빼 박았다.
눈을 깜빡이는 민지는 민석과 루한을 번갈아 보았다. 하여간 저 새끼는 주변에 잘난 인물이 많아.
경수 오빠라던가, 경수 오빠라던가.
“민석 동생이야?”
“응.”
"닮았다."
루한은 민지에게 웃어 보인 뒤 제 집으로 향한다. 민지 역시 루한이야 익히 알고 있었다. 저 오빠를 모르는 여고생이 어디 있을까, 우리 학교 만인의 이상형을. 실제로 보니 죽인다. 민지는 카톡 단체 채팅 방을 켜 빠르게 자판을 누른다.
―야 대박 우리오빠 친구 루한임 나한테 웃는데 존나 반함―
“오빠, 루한 오빠랑 친해?”
“왜?”
“소개시켜주라. 여자 친구 없지?”
“안 돼!!”
“왜!!!”
하나뿐인 동생인데 그거도 못해줘?!! 민지가 버럭 소리친다. 민석은 더한 말이 나오기 전에 냉큼 방으로 들어갔다. 루한한테 연락 와 있겠지?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역시 부재중 전화가 두통이나 와있다. 민석은 당장 통화 버튼을 누른다.
“어. 민석아.”
“전화 왜 했어?”
“목소리 듣고 싶어서.”
민석은 숨을 죽이고 발을 동동 굴렀다. 루한은 어쩜 이렇게 다정하지!! 너무 좋아 존나 좋아! 흠, 헛기침을 한 민석의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들은 루한은 낮게 웃었다.
“복습 하고자. 너무 늦게 자진 말고.”
“알겠어…”
“졸리면 전화하고. 시험 잘 봐야지.”
“응. 그래야지.”
“내일보자. 잘 자.”
민석은 한참동안 끊어진 전화기를 붙들다, 뜨거운 얼굴을 베개에 부볐다. 좋음이 하늘 끝을 찌른다. 민석에게 할 얘기가 있어 방에 들어왔던 민지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김민석이 드디어 도랐구나. 도랐맨.
*
시험 마지막 날, 루한과 민석은 영화를 보러 왔다. 죽어도 시험지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민석에게 단호하게 혼을 낸 루한은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제 시험지와 답을 맞춘다.
입술이 자동적으로 말려들어간 민석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민석아.’
‘…….’
‘김민석.’
‘…응?’
‘다음엔 같이 공부하자. 내가 모르는 거 있으면 알려줄게. 나 너랑 같은 대학 가고 싶어. 넌 안 그래?’
다정하게 다그치는 말에 민석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크게 뜨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었다.
다른 학교보다 시험을 늦게 본 민석의 학교 덕에 영화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밝은 스크린이 루한의 얼굴을 비춰 감탄이 나오는 옆태가 보였다. 민석은 땀아 차는 손을 바지에 문지르며 애써 시선을 영화에 두었다. 루한과의 데이트라 해도, 시험기간이 겹친지라 주로 도서관 아님 카페를 갔었고, 제대로 된 스킨십은 꿈도 못 꿨었다.
이렇게 서로를 위한 데이트는 처음이었지만, 민석에겐 루한과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루한은 짱짱 잘생겼어. 루한은 영화 중간 중간 귀에 입을 대고 무어라 말하는데, 사실 잘 들리지도 않았다. 홀린 듯 고개만 주억거렸지.
“루한?”
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고 쉿, 말한 루한은 다시 스크린에 집중한다. 갑작스레 손을 잡아 깍지를 낀 루한의 행동에 민석은 영화 보는 것을 포기했다. 제 심장소리가 루한에게 들릴까 조마조마 마음만 졸였다. 큰 루한의 손이 민석의 머리통을 조심스레 감싸 제 어깨 쪽으로 밀었다. 자연스럽게 루한의 어깨에 기댄 민석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 지져스…
“민석아.”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는 루한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낮은 미성이 듣기 좋다.
“난 관계는 쌍방향이라고 생각해. 너만 날 좋아한다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응. 응.”
얼핏 올려 본 얼굴은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꽤 진지한 표정으로 민석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작을 같이 안했지만, 도착 하는 곳은 서로 같으니깐. 지금부턴 같이 가는 거야. 내 눈치 안 봐도 돼.”
“…….”
“우린 사귀는 사이잖아.”
제 손보다 작은 민석의 손등을 엄지로 문지르던 루한이 입 꼬리를 당겨 웃었다. 민석은 그 자리에서 증발하고 싶어졌다. 어쩜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지. 새삼, 또 반했다. 시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잠시 걸었다.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를 밟는 동안 민석은 내내 루한의 매너에 감탄 또 감탄했다. 사람이 적어지면 민석의 손을 잡고 나중에는 깍지도 꼈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다정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랑 사귄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다만. 집에 오는 거리는 얼마나 짧은 건지. 걸어온 15분이 열다섯 걸음도 안 되는 거 같다. 아쉬운 마음도 있긴 하지만, 민석은 집 앞에 다다르자 루한의 손을 놓았다. 여지도 없어 보이는 듯. 루한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던 건 눈치 없는 민석은 알 리 없다.
하아, 루한이 작게 한숨을 뱉었다. 그 일련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석은 가슴을 졸이며 루한의 눈치를 보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민석의 손을 다시 맞잡은 루한은 작은 손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손을 잡았다 놓길, 어깨를 쓸었다 내리길, 얼마나 반복했을까.
무거운 침묵을 이기지 못하고 민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루한.”
“응.”
“나 이제 들어갈게…”
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말했더니 루한은 작게 웃는다. <민석아.> 어깨를 쓸던 손이 귓볼을 그러쥐었다. 민석이 작게 몸을 떨었다.
“우리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어?”
마주보는 눈이 호선을 그리며 굽이쳤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귓볼을 만지던 손은 뒷목으로 가고 나머지 한손은 허리를 감았다. 올것이 왔구나! 마음속으로는 루한과 별도 딴 민석이었기에 다가오는 루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눈을 꼭 감았다. 긴 루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뜨거운 숨이 스쳐지나가듯 볼을 찍고는 귓가에 퍼졌다.
묵직하게 눌려져 살짝 뒷걸음질 쳤다. 민석의 어깨에 턱을 걸친 루한이 민석의 머리를 쓸었다. 꼼짝없이 루한에게 안긴 민석은 허망함과 안도감에 올라오는 웃음을 참으며 입술을 꾹 물었다.
다시 한 번 쪽 소리 나게 볼에 입을 맞춘 루한이 민석에게 떨어졌다. 얘가 날 좋아하나? 처음엔 그런 생각만 들었다. 관심도 없어 보이고, 일찍 보내려는 것이 영… 미약하게 떨리는 손이 진심이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민석의 팔을 붙잡은 루한이 검지로 제 입술을 툭툭 쳤다. 응? 민석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루한은 이젠 참았다.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얘는 정말 과하다 싶다. 좋아하면 만지고 싶고 다 그런 거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왜 사귀겠어.
“뽀뽀.”
“내가?!”
“응.”
목소리가 튀었지만 루한은 단호했다. <뽀뽀해줘.> 아예 한 번 더 쐐기를 박는다. 민석은 짧은 순간 수 백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것보다도 정말 루한과 뽀뽀하면 그 자리에서 뒤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렴 어떠냐, 루한이 해달라는데. 민석은 결의에 찬 얼굴로 비장하게 루한에게 입을 맞췄다. 가볍게 닿으려고만 했던 건데,
루한이 입술에 닿는 순간 민석의 뒤통수를 살짝 눌렀다. 민석의 눈이 커지고 루한은 아이같이 웃었다.
잠시나마 닿아있던 입술이 떨어지고 루한은 멀어지는 얼굴에 양볼을 손으로 감싸고 한 번 더 진하게 입을 맞췄다. 혀를 섞진 않았지만, 여러 번 맞물렸던 입술이 부드럽게 서로를 찾았다. 긴 입맞춤이 끝나고 민석은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갔다. 잘 가라는 인사는 잊지 않은 채. 루한은 그 자리에서 한바탕 웃고 들어갔다.
*
딱히 비밀연애는 아니지만 학교에선 매번 비밀연애를 하는 기분이다. 친구들과 떠들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같이 밥 먹고, 친구들이 없는 빈 교실에서 손을 잡거나 가끔 가볍게 입도 맞춘다. 다만 문제 될 것이 있다면…
“민석, 체육관에 먼저 가있을래?”
“아냐! 나 경수랑 천천히 올게. 먼저 가서 축구하고 있어.”
루한은 비틀리게 웃어보이곤 제 친구들과 교실을 나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석은 휴대폰으로 오늘 급식 메뉴를 보며 투덜거리고 있다. 얘는 연애를 하자는 건가, 말자는 건가. 경수가 눈가를 가느다랗게 좁혔다.
뭐, 내 연애는 아니니깐.
“진도는 뺐냐.”
“네가 그걸 왜 물어?”
민석이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스킨십은 자주해?”
“…그럴걸?”
한시라도 떨어지기 싫고 붙어있고 싶어 하는 연인의 절절한 마음을, 김민석은 왜 모를까.
체육관에 가서 둘이 키스를 하건 껴안고 있던 그건 내 알빠 아니었지만, 매번 거절하는 김민석을 보는 루한의 표정이 좀…
하여간, 김민석은 이런 면에서는 좀 많이 둔하다.
뭔들 어떨까. 지들끼리 연애하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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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설 보내세요 ^♡^ 컴퓨터를 바꿨더니 모든게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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