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데뷔한다면서요!"
갑자기 들어와서는 해맑은 표정으로 던지는 줄리안의 말에 다니엘은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라떼를 뱉을 뻔 했다. 알베르토의 굳은 주장에 마지못하는 척 고려해본다고 말하긴 했는데, 벌써 데뷔라니. 어딘가 소문이 많이 왜곡된 것 같다, 다니엘은 따뜻한 라떼를 삼키며 생각했다.
달큰한 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기분이 좋아진 다니엘은 그런 셈 치는 것도 괜찮겠다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알베르토의 사업에 협조하기로 했지."
"그럼 이제 내가 선배네요."
장난스러운 줄리안의 말에 다니엘이 웃었다.
"맞잖아요, 가요계 선배!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어깨를 으쓱이며 디니엘의 옆자리에 앉은 줄리안이 말한다. 유세떠는 선배는 싫지만, 궁금한 점이라....다니엘은 잠시 생각하다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모든 사람에게 보여지는게 두렵지 않아? 그러니까....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던가...."
"뭐야~형 벌써 안티를 두려워하는 거에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정 중에 가장 무서운 정이 미운정이라고.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찾아본다니까요? 그것도 나름의 관심이라고 생각하면서 참아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말하는 줄리안에 다니엘이 따라 웃는다. 의도는 이게 아니었지만 꽤 맞는 말이다. 정말 싫어한다면 찾아내려고도 하지 않겠지, 내가 그런 것처럼. 다니엘이 이안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줄리안이 별 볼일 없는 수다쟁인 것 같지만 가끔은 이렇게 정곡을 찌른다.
"근데 작곡 수업은 언제 해줄 거에요! 이거 프리랜서라고 너무 날로 드시네."
"나중에, 지금은 내 곡 만들기도 바빠요 선배님."
칭찬좀 해 주려 했더니 또다시 징징거리는 줄리안에 다니엘이 혀를 내두르며 도망치듯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
"젠장."
잔뜩 헝크러진 머리를 감싼 다니엘이 건반을 내려치며 작게 욕을 내뱉었다. 그 충격에 피아노 위에 올려 두었던 빈 커피잔이 쓰러졌다. 알베르토가 사다 주었을 때의 그 달콤한 향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도대체 며칠째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니엘이 악보를 구겨 던져버리며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남의 노래 써 줄 때에는 잘만 써지더니 막상 내 노래를 만드려니까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내가 부를 노래라고 생각하니 음표 하나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 다니엘이 인상을 쓰며 피아노 위에 엎드렸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흔히들 창작의 고통이라고 불리는 그것을 겪어서 잔뜩 예민해진 상태이다.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은 다니엘이 잠에 빠져들 때쯤, 작업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도없이 당당히 들어오는 발소리가 무례한 게 알베르토인 것을 눈을 뜨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아직도 잘 안 풀리나봐."
알베르토가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자신의 양 팔에 얼굴을 묻고 있는 다니엘에게 알베르토가 말했다. 다니엘은 듣는 둥 마는 둥 손가락만 들고 이리저리 휘젓는다. 알베르토가 피식 웃더니 그 요망한 손가락을 낚아채고 끌어당겨 다니엘을 일으킨다.
"뭐야."
"따라와, 갈 데가 있어."
퉁명스레 쏘아붙이는 다니엘을 이끌고 알베르토가 무작정 회사를 나선다. 다니엘은 작게 저항해보이지만 곧 바람도 쐴 겸 터덜터덜 따라나섰다.
"하?"
눈 앞에 펼쳐진 의외의 장소에 다니엘이 어이없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알베르토가 데려온 곳은 바로 빈 소극장이었다. 그다지 높지 않은 무대에 적은 관객석 수, 아마추어 연극이나 할 것 같은 극장이다.
"이제 무대 오르는 것도 연습해야지."
"무대 안 서도 가수할 수 있어."
"무대 서려고 가수되는거 아니고?"
질색하는 다니엘을 알베르토가 능청스럽게 무대 위로 끌고 올라갔다.
"노래하라곤 안 할게, 그냥 서 있기만이라도 해 봐."
알베르토가 타이르듯 말하곤 다니엘에게서 몇 발짝 떨어져 섰다. 다니엘이 불안한 눈빛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지만, 이내 떠오르는 기억에 눈을 질끈 감는다. 안그래도 잔뜩 예민해져 있던 머리가 아려오자 다니엘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빈 극장이지만 사람들의 웅성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점점 다니엘의 숨 소리가 거칠어지고 긴 속눈썹이 안쓰럽게 파르르 떨린다. 참지 못하고 주저앉으려는 순간, 이제는 익숙해진 향기가 다니엘을 향해 다가온다. 그리곤 곧 다니엘의 양 손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눈 뜨고 나 봐."
묵직한 목소리에 다니엘이 살짝 젖은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짙은 선을 가진 얼굴이 다니엘을 부드러운 눈길로 보고 있다. 아직은 떨리는 양 손이지만 다니엘의 시야를 가득 채운 알베르토 덕분에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내가 계속 보고있을게."
살짝 미소지으며 알베르토가 속삭였다. 믿음직한 모습에 다니엘의 거친 숨소리가 점차 안정되어간다.
"걱정하지 말고 걸어봐."
알베르토는 다니엘의 허리를, 다니엘은 알베르토의 팔을 잡고 천천히 한 걸음씩 움직인다. 긴장한 듯 알베르토를 잡은 다니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알베르토는 웃으며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다니엘을 이끈다. 작은 무대 위 두 사람의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흔들린다. 아직까지도 불안한듯 눈을 빠르게 깜빡이는 다니엘의 고개가 떨어질 때 마다 알베르토가 다니엘의 이마와 눈꺼풀에 입을 맞추어 다니엘의 시선을 끌어올린다. 이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다니엘이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 모습을 본 알베르토도 기쁜 듯이 웃으며 다니엘을 껴안았다.
"잘했어, 다니엘."
생각보다 많이 노력해준 다니엘이 기특해 알베르토는 다니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이렇게만 한다면 앞으로 몇 년, 아니 어쩌면 몇 달 안에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알베르토는 노래하는 다니엘의 행복한 표정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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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왔는데 분량이 적네요ㅠ
빨리 쓰고싶었는데 제가 의도치 않게 병원신세를 지는 바람에....
목표는 3월 전에 완결이었는데...ㅎ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끝까지 함께해요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은 더 감사하겠습니다! 초록글도 감사해요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