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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손에 물집이 하나 더 올라왔다.
쏟은 커피로 진득진득해진 손을 씻고, 쏟아져 나오는 차가운 물에 데인 손등을 가만히 가져다 놓았다. '사회 생활 쉽지 않다' 라는 말은 어렵지 않게 주변에서 쉽게 들어봤지만 생각하던것 보다 훨씬, 그에 배하여 만만치 않았다. 나름 저대로 상상하던 회사생활과는 조금 차이가 많이 났다. 처음에는 조금의 잡심부름도 있겠지만 선배들에게 일을 배우고 친해지고. 허나, '처음에는 뭐,'하며 의욕 넘치던 몇일이 지나고, '아직인가' 눈치보며 지새던 몇주가 지나고, 한달이 채워져가며 나에게 남은것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상사들에게 찍힌 나를 보여주는것 같은 카페 쿠폰 도장들이였다.
"엘런씨?"
"아, 팀장님." 엘런은 급히 물을 끄고 긴장을 품은 눈빛으로 자신의 옆에 다가오는 팀장을 바라보았다.
"엘런씨, 여기서 뭐하는 중이죠?" "아...저..." 손이 데여서 물에 씻고 있었다고 사실대로 말해야 되나 고민핟 끝내 판단이 서지 않아 뒷말을 뭉그려트렸다. 엘런은 팀장의 시선이 자신의 손끝에 머무는 것을 느끼고 손 을 급히 등 뒤로 감췄다. 흐흥, 팀장은 상처투성이인 손을 등 뒤로 감추며 긴장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엘런을 보며 콧바람을 내보내며 엘런의 눈동자를 깊이 쳐다봤다. 그 눈빛을 엘런은 방금 전 자신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재촉하는 것으로 인식했는지,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고개를 숙였다. "아...죄송합니다." "아니예요." "..." "..."
팀장의 눈치가 보여 더이상 물에 데인곳을 가져다 델 수 도 없고, 그러자니 화장실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이대로 화장실은 나갈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여서 엘런은 괜히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얕게 움직였다.
"...엘런씨 입사한지 얼마정도 됐죠?" "ㅎ,한달정도요."
팀장님이 이런 질문을 한건 처음인데, 예상치 못한 질문에 갸웃되기도 했지만 혹시 이제 이 지치 일상에서 벗어나나 하는 약간의 설렘에 들떴다. 드디어 제대로 된 회사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건가.
"그때가 제일 좋을때죠."
"하하..네..."
누구 놀리나, 제 3자가 본다면 어려워하는 신입에게 자신의 경험을 알려주며 격려하는 보기 좋은 신입과 상사 사이 같겠네. 따듯해보이는 웃음을 지어주는 팀장님의 얼굴을 보고 전과 같이 불순한 의도가 섞이지 않은 말이였다는것을 깨닫고 급히 어색한 웃음을 한껏 짓고 뒷머리를 긁으며 대답 했다. 눈에서 웃음이 풀리고 저를 바라보는 팀장님과 눈이 맞았다. 아주 조금 시간이 지나고 팀장님의 웃음이 전과는 달라진것을 느끼며 얼굴에 남아있던 웃음의 흔적이 서서히 굳어졌다.
"요즘 바쁘겠어."
"...아...네."
"이곳 저곳 커피 사러 다니느라."
"..."
"제대로 된 일은 한번도 한적 없지?"
"..."
"하긴... 우리 엘런씨, 밤에 사장님한테가서 뒤 대주려면... 그렇고 말고. 엄청 바쁘지. 낙하산에다 무능력하고."
"...죄송합니다."
"죄송할게 뭐 있어. 엘런씨 반반한 얼굴만 믿고 있으면 안돼, 금방 잘린다. 사장님 마음에 들도록 매일 매일 만족시켜드려야지."
"죄송합니다." 팀장은 손에 물기를 툭툭 털어내고 세면대 위에 올려놓은 커피를 집어들어 한모금 마셨다. '커피 마니아'라고 하는 깐깐한 팀장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는지 인상을 있는대 로 찌푸리며 커피 속에 침을 뱉었다.
"이거, 엘런씨가 사온거지?"
"네."
"너무 달더라. 시럽은 두번만. 잊었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좀 조심해줘."
그대로 세면대에 커피를 부어버리려던 팀장은 컵을 기울이던 손을 멈추고 엘런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들어 당황해하는 표정으로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길잃은 눈빛. 한달 내내 들었으면 익숙해 질법도 한데. 어지간히 적응력이 떨어지는것같다. 팀장은 수치심에 덜덜 떠는 엘런에게 다가가 커피잔을 내밀었다.
"엘런씨, 목마르지? 버리려고 했는데 그러면 더럽다고 리바이가 난리를 치기도 하고, 엘런씨한테는 매일 얻어먹으면서 정작 한번도 커피한잔 건네준 적은 없는것 같아서. 마셔."
"..감...감사합니다."
그대로 엘런을 치고 지나쳐 화장실을 빠져 나가는 팀장님의 모습에 엘런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마나 더 이런 수모를 당해야 이 지긋지긋한 일상이 끝날까. 언제쯤 이면 저들은 나를 향한 오해를 풀어줄까. 몇일이 더 지나야 친구들과 모일때 웃고 떠들며, 홀로 힘들어 하지 않고 회사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요즘 회사생활은 어떠냐고 물어주는 부모님께 거짓없이 너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은 선배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비웃음, 커피 심부름이 아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했다. 엘런은 비상구의 계단에 털썩 앉아 침 섞인 커피를 바라보며 울음이 나왔다. 매일을 회사에 들려 출근도장을 찍고 상사분들에게 불려가 뭐가 그리 죄송한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죄를 하고 , 자리에 엉덩이를 붙여보지도 못한 채 모니터에 붙여둔 카페 포인트 도장을 챙겨 헐레벌떡 카페로 가 상사분들의 모닝커피를 주문하고, 카페 알바생의 동정 가득한 눈빛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밤 잠자리 에 들기전 내일은 볼펜 한번, 마우스 한번 잡아보기를 소망하며, 내일은 나에게도 일거리가 주어질거야 하며 하루를 끝마친다. 그 누구에도 털어놓지 않아도 혼자 속으로 앓았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고 힘들지 않는것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게 나는 강해서 그런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듣고도 울음을 터트리지 않고, 화내지 않고 죄송하다 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란말이다. 매일을 참고, 참고, 또 참는것이다.
"끄흐...흐윽..."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속상하고 누르고 눌르던 울음이 밀려나오는지,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비상구 계단에서 우는것이 다른 상사들에게 들키면 더 힘들어 질까 엘런 은 이를 꽉 물고 소리를 참았다.
"시발, 쥐새끼가 들었나 왜 이렇게 시끄러워."
자신의 부서 직원들이 쓰레기를 이곳저곳 버리고 다녀 한바탕 훈계를 하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대 피러 비상구로 온 리바이의 귀에 들려온것은 바로 밑 계단서 들려오는 작은 울음소리였다. 별 새끼들이 다 들어와서 지랄이야.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거칠게 넥타이를 풀었다. 몇칸 내려온 리바이의 눈에 비친것은 계단에 앉아 울음소리를 참 고 있는 신입이였다. 엘런 예거라고 했나, 입 가볍고 남의 일을 저희끼리 얘기하는것 참 좋아하는 몇 여직원 덕분에 회사내에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낙하산으로 매 우 타박받고 있다는 신입. 남의 일까지 신경쓰는것 좋아하지 않아 그저 잔 심부름을 많이 시키나 보지, 하고 신경쓰지 않았는데, 회사 내에서 저렇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보 니 그 정도가 아니였던것 같다.
"어이, 신입."
얼마나 울고 참았는지 눈가는 빨갛게 물들어 소리를 참으려던 입술은 피가 맺혔다. 엘런은 눈물이 멈춰지지 않는지 눈물을 흘려보내며 뒤돌아 리바이를 올려다 보았다.
"왜 울고 있지?"
저 사람이라면, 저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 하는것이 맞는건지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않을까 생각한 엘런은 입술을 달짝이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끅, 제가, 이 회사를 다녀도, 흐으, 괜찮은가요?"
엘런은 울음을 겨우 겨우 참아내고 어렵게 한단어 한단어 꺼내 물어봤다. 아무말 없이 매몰찬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리바이에, 더 이상 이곳에서 버틸 수 없다고 생각 한 엘런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내어 울었다. 내가 그동안 힘들게 참아낸 나날들의 끝이 이렇게 허무한건가. 그동안 참을 수 없이 힘들어도 다음 날에는 제대로 된 회사 생활을 하게 될거야 하며 매일밤 희망을 품어도 다음날 허무맹랑하게 사라져버리는 일을 수없이 눈앞에서 보아왔다. 너무, 힘들다.
"ㅇ,어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감이 안와 가만히 침묵을 지키는데, 신입은 '안된다'라고 침묵의 뜻을 받아들였는지 멈췄던 울음을 다시 소리내어 터트리기 시작 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우는 신입을 보자, 마치 내가 신입을 괴롭히고 따돌린것 같아 괜히 가슴 한 구석이 찌릿찌릿했다. 당황한 리바이는 신입을 불렀지만 그런 자신의 행 동이 온통 부정적으로 보이는지 울음을 그칠 생각없는 신입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신입."
리바이는 계단을 내려가 먼지 가득한 계단에 털썩 앉으며 울고 있는 엘런을 안아주었다. 자신에게 당장 나가버리라고 할것만 같던 무서운 상사가 자신을 안아주니 엘런은 눈물이 멎어져갔다. 리바이는 엘런의 등을 토닥여주며 엘런의 귀에 입을 대었다.
"괜찮아."
"..."
"나는, 너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
"너는, 그러니까, 좋은..."
"..."
"좋은... 아씨, 너는 좋은 사람이고, 그, 노력파니까."
"..."
"그러니까, 노력하면..."
"..."
"노력하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줄거다. 너는 좋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
엘런은 처음으로 타인에게 듣는 위로에 지금까지 쌓였던 마음들이 모두 사라져버리는것 같았다. 서서히 들썩거림이 줄어드는 엘런을 느끼며 리바이는 등을 작게 토닥여 주었다.
"그러니, 힘들면"
"..."
"힘들면, 나를 찾아와라."
"네...?"
"힘들면 리바이, 리바이를 찾아와라. 엘런 예거."
"...감사합니다."
세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구나, 엘런은 자신의 등을 토닥여주는 리바이의 손에 안심하며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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