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달렸는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민석의 손을 잡고 앞장서서 달리고 있는 루한의 어깨에는 두줄의 깊고 검붉은 생채기가 나있었다. 이미 피딱지가 내려앉아 쩍쩍 갈라져 보기 흉한 상처를 민석은 차마 만져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거진 나무들은 도데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어디에도 없었고, 흙으로 이루어져 있던 땅덩이는 콘크리트로 변해있었다. 다시 2013년으로 돌아왔구나, 민석이 직감적으로 느꼈다. 오랜만에 밟아보는 현세의 것은 먼 곳의 돌멩이들 보다도 아프고 거칠었다. 루한이 지칠법도 했지만 계속해서 달렸고, 민석 역시 그러했다. 마침내 다다른 곳에는 커다란 터널이 있었다. 터널은 그저 바람이 통하는 소리 뿐이였다.
"저 터널로 들어가서 곧장 뛰어가, 절대 뒤돌아보면 안돼."
"...응, 응..."
"많이 좋아했었어, 민석아."
루한의 말에 민석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랫입술은 하얀 자국이 나더니 이내 붉게 잇자국이 나버리고 말았다. 루한이 민석을 바라보다 두팔을 벌리고 안아주었다. 많이 추울수도 있어, 루한이 민석을 염려하며 작은 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여지껏 느꼈던 루한의 체온 중 가장 따뜻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였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럼."
민석의 물음에 루한이 웃어보였고, 민석 역시 미소를 지었다. 루한의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기나긴 터널의 끝에서 빛을 보는 순간 지금의 모든 기억을 다 잃어도 당장은 마주보며 웃을 수 있으니깐. 이 터널의 끝에는 뭐가 있을까, 터널 안을 뚫어져라 응시해도 캄캄해서 도저히 보이지가 않았다.
"석아, 이거. 선물이야."
"..고마워요."
그가 민석에게 건낸것은 빨간 맨드라미 꽃이였다. 어여쁘게 피여있는 꽃은 바람 때문에 조금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맨드라미꽃을 몇번 만지작대던 민석이 어째 떨어지지 않은 발을 억지로 떼어 터널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민석의 뒤로 루한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지만 찬 공기에 휩쓸려 묻혀졌다. 터널 안은 삭막했고, 민석이 남기고 간 자리에는 루한과의 추억이 희고 영롱하게 담겨있었다. 터널의 저 멀리에서는 조그마한 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커져갔고 거의 다다랐다. 민석은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터널의 끝에서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발걸음은 도저히 떨어지지가 않았다. 정말 어쩌면, 루한과의 모든 것이 아무리 기억하려고 노력해봐도 떠오르지 않는 지난 밤 꾸었던 꿈 같을까봐, 민석은 겁이 났던 것이다. 민석이 두 손에 주먹을 쥔 채로 그렇게 한 발자국씩 발을 내디뎠다. 생각보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시원스러운 바람에 민석의 눈물이 금세 말랐다.
터널에서 나왔을 때 민석의 오른손에 쥐어진 맨드라미꽃은 다 말라버려 생기를 잃고 볼품없게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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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을 쓸려고 했는데 도저히 필력이 달려서 안되겠네요 ㅠㅠ 그래서 저번에 써두었던 조각을 넣어서 급마무리 했슴니당 죄송죄송해여,, 맨드라미 꽃말은 시들지 않는 사랑입니다. ㅋㅋㅋㅋ사실 아무 꽃이나 생각한거라 꽃말하고 별 상관없어욬ㅋ..헿 이건 열린결말이니 독자님들 상상에 맡길게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복받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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