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 조각
관계의 편린
![[EXO] 편린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22117/7b22812407d41a4f3060c742d94afe31.gif)
두 남녀가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옆에 항상 두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떨구어내기 바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종종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다른 이들은 참 애매한 관계라고 표현한다. 남자는 좋아라 웃고 있는데, 여자는 울고 있었으니, 그 관계는 참으로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자를 좋아했다. 어느 한 날은 노란 노을이 제법 우수있게 지던 봄날이었다. 이 날도 역시나 남자는 여자의 곁에 있었다. 떨어질 틈이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며 여자에게 말했다.
"야야, 같이 좀 가자.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하지않아?"
"……."
"체, 이젠 말도 안하네."
남자는 여전히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는 여자가 익숙해질때도 되었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난제와도 같아 남자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그 자리에 멈춰서 하염없이 걸음을 옮기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 처량하기 그지 없다. 도대체 넌 언제 쯤 뒤를 돌아봐줄까. 남자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남자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자는 늘상 같은 표정 같은 걸음이었다. 늘, 얄밉게도 여자는 같았다. 그래서 남자는 한걸음 두걸음 내딛었다. 같이가!
"……."
"천천히 갈게."
"……."
"그러니까 나 좀 봐주라. 어?"
"……."
"내가 잘못했어. 진짜 바보같았고, 어리석었어."
"……."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도, 자신에게 등을 돌려도 남자는 말했다. 천천히 가겠다고, 그렇게 말했다. 한걸음 두걸음 내딛으면 그렇게 세걸음이 되고 그렇게 여자가 자신을 바라봐줄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자신을 믿어줬고, 자신에게 늘 웃어주며 항상 지켜주겠다고 말하던 여자였다. 하지만 모든 건 달라졌다. 그건 온전히 남자때문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용서를 빌었다.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라고.
"……."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였다. 속눈썹은 파르르 떨려왔고, 입꼬리는 속상한 듯 축 쳐져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했다. 그때, 여자가 하염없이 옮기던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와 동시에 봄날의 바람이 불어왔다. 봄날의 내음이 남자의 코 끝에 불어왔다. 여자의 긴 생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다 이내 멈추었다.
"백현아."
"……."
유난스럽게도 다니던 전철의 소리도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남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말만 제 귓가를 아련히 간지럽혔다. 남자는 그때 비로소 고개를 들어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두 눈가가 붉어져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하지마."
"……."
계절이 흘러 봄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었다. 시린 바람만 불어와 따스한 봄날이 찾아올성 싶으면 항상 아스라이 사라져버리는 그 봄의 끝.
"네 잘못이 아니야."
"……."
"천천히 와."
"……."
두 남녀가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했고, 여자도 남자를 사랑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시작의 봄.
후회의 편린
![[EXO] 편린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1210/b1fc077a8a7bcfa8278d8dbdb359c218.gif)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 좀 처럼 잘 뚫리지 않던 여름날의 비가 쏟아졌다. 후두둑 후두둑 오더니 이내 쏴아아아 제법 경쾌한 소리를 내며 하늘이 울었다. 그리고 낡은 도로의 위 한 남자가 우산도 없이 정처없는 걸음을 내딛었다. 텅 빈 눈으로 구멍뚫린 하늘을 바라보던 남자의 눈에는 이내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 날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날이었다, 오랜만에 오는 여름날의 마지막 비였으며 그날은, 남자의 친구가 하늘나라로 떠난 날이었다. 아주 멀리멀리, 남자가 차마 닿을 수 없는 곳.
'민석아.'
'왜?'
'김민석.'
'아,왜. 왜 자꾸 불러? 뭐 필요한거 있어?'
'…민석아.'
'졌다졌어, 왜.'
"다녀왔습니다."
물에 젖은 생쥐꼴을 한 채 집으로 돌아온 민석을 반기는 건 그런 엄마의 타박이었다. 우산을 가져갔는데도 왜 비를 맞았냐며 민석의 귓가를 시끄럽게 울리는 엄마의 타박거림. 민석은 그저 고개만 끄덕인 채 제 방으로 올라갔고 이내 그 찝찝한 몸으로 침대에 털썩 힘없이 누워버린다. 그리고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문득 무언가를 회상했다. 늘,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아이가 오늘은 좀 많이 생각나 그의 눈빛은 이내 쓸쓸함으로 바뀌어있었다. 항상 그의 이름을 부르던 아이었다. 그럴때마다 민석이 왜 냐고 물을때면 항상 히죽 미소를 짓던 그 아이었다. 참, 알수없는 아이었다. 왜,왜 왜 이름을 부르냐고 몇번이나 되물어도 그저 싱긋 미소를 짓던 그 아이. 민석은 그 아이를 회상하다 이내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왜 부르냐고 꼬치꼬치 캐물어도 볼걸 그랬나.민석이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곤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읏챠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쪽으로 다가갔다.
'ㅇㅇ이 유품말인데 민석아.'
'아, 그거 저한테 주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그래주겠니? 고마워, ㅇㅇ이…챙겨줘서 고마웠어.'
'…….'
그 아이는 친구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참 외로움이 많은 아이었던거 같다. 외로워서 누군가의 이름이라도 부르고 싶었던 아이. 민석은 책상을 뒤적거리다 이내 조금은 낡은 스크래치가 되어 있는 시집을 꺼내 제 손으로 들어보였다. '이거 뭐야?' '아 이거? 시집이야. 가끔 짬날때마다 읽는데, 재밌어.' '뭐 그런걸 읽냐….' 그 아이의 마지막 유품인 시집이었다. 자신도 꼭 커서 시집을 내고 싶다며 말하던 ㅇㅇㅇ.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민석은 쓰라린 미소를 지어보이며 책을 펼쳤다. 그건,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민석아 밥먹어!"
"네."
막 책의 첫장을 펼치려는 순간 민석을 부르는 어머니의 말에 민석은 하던 것을 멈추고 서둘러 밑으로 내려갔다. 아, 옷도 안갈아 입었네. 엄마 알면 또 혼나겠다. 민석은 아직은 축축한 제 몸과 옷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체념한 듯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나가는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져 그는 다시 뒤를 돌았다. ㅇㅇ의 시집이었다. 비스듬히 열린 창문 사이로 비 바람이 불어와 책상에 놓여져 있던 시집이 떨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민석은 줍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다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민석에게 ㅇㅇ은 그저 자신의 이름을 유달시리도 많이 부르던 아이. 그뿐이었던 것 같다. 하늘나라로 친구가 가버렸다. 한순간에 제 목숨을 끊은 어느 가여운 아이. 그래, 너무 외로워서 제 몸을 던진 가여운 아이. 김민석에게 ㅇㅇㅇ은 그런 존재였다. 너 방안에서 옷 안갈아 입고 뭐했어? 어유, 물 떨어지는 것 좀 봐. 어머니의 밉지않은 타박이 이어졌다. 민석은 묵묵히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 입에 넣었다. 답답했다. 그리고 먹먹했다. 밥이 목구멍에 막혀 잘 들어가지지 않아 그는 제 가슴을 팡팡 치며 물을 한모금 꿀꺽 마셔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은 무언가에 맥힌 것 처럼 답답했다. 민석은 밥을 반쯤 남겨 둔 채 입맛이 없다며 다시금 제 방으로 올라가는 걸음을 옮겼다. 계단으로 가는 걸음이 오늘따라 무겁다, 방문 앞에 다다랐을때 그는 비스듬히 열린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바닥에 홀로 덩그러니 떨어진 시집. 그 아이의 시집.
"……."
'민석아.'
'왜?'
'김민석.'
ㅇㅇㅇ, 그 아이의 이름이 조금은 날린 글자로 적혀져 있는 그 시집의 앞을 열어 펼쳐진 장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쓰여진 글이 하나 있었다. 민석은 그 글을 보기 위해 제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글을 본 순간 그는 멍하니 그 시집을 놓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외로움이 많아, 자주 민석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민석아.'
민석아.
'왜?'
'김민석.'
김민석.
'아,왜.왜.'
민석의 이름을 부르던, 나지막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아무말 없이 미소만 짓던 그 외로움을 많이 탔던 아이. 그건 외로움만이 아니었다. 비스듬히 열린 창문 사이로 오소솔 바람이 불어와 민석은 바람이 부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 아인, 외로운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지나버렸다. 민석은 그저 ㅇㅇ을 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반 친구이자, 유난히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가여운 존재. 하지만 시간이 흘러 돌고 돌아 비로소 그는 알게 되었다. 정작 가여운 존재는 자신이라고. 그와 동시에 민석의 뺨에 툭 눈물이 타고 흘렀다. 어리석은 자신의 마음을 그저 반 친구로만 치부를 하던 자신에 대한 얄궂은 원망과 이미 가버린 그 아이의 못다한 대답. 감정의 찰나 그 감정은 너무나도 어린 감정이라 아직은 어린 민석은 알 수 없었다. ㅇㅇ이 하늘나라로 갔다, 하늘나라로 간지 한달. 그리고 ㅇㅇ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 날. 그날은 비가 내렸다.
민석아
김민석.
좋아해.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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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이 출근때마다 아메리카노 손에 들고 출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