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현택운] 풋사랑 07 - 인스티즈(instiz) 픽션 카테고리

[규현택운] 풋사랑 07 | 인스티즈

체육대회가 끝나고 다같이 반단합을 갔다. 반단합이라고 해봤자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가는 게 전부지만 반 전체가 학교를 떠나 다같이 움직이는 게 처음이였다.

반 아이들이 하루종일 뛰느라 배고파 죽겠다고 성화인 탓에 체육대회가 끝나자마자 선생님 통솔하에 우리는 근처 고기집에 갔다. 친한 애, 안 친한 애 따질 것 없이 무작위 섞여 앉아있는 아이들 사이로 대충 비어있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둘러보니 선생님은 나와 정반대 끝 구석 테이블에 앉아계셨고 내가 앉은 테이블엔 그나마 차학연 다음으로 친한 김원식말고는 한번도 대화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였다. 뭐, 반 아이들 중 대화를 해본 아이들이 손에 꼽을 정도이긴 하지만.

식당에 우리반 아이들의 굵직한 목소리로 가득차 시끄러웠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아이들과 처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름 재밌는 식사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다른 테이블에 앉았던 차학연이 내 입에 억지로 우겨넣고 간 마늘과 고추가 가득한 쌈을 먹지않았다면 완벽하게 즐거웠을텐데 말이다.

선생님은 계산할 때 우리가 모르게 하려고 했으나 눈치빠른 몇몇 아이들이 주문서를 보고 계산해보니 식비로만 상당히 많은 돈을 지불한 듯 했다. 식당에 오기 전 단합비를 모으긴 했지만 예상보다 너무 잘 먹은 탓에 아마도 돈이 부족해서 모자란 금액은 선생님 지갑에서 빠져나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이 모자란 돈을 모아 선생님께 드리려 했으나 선생님은 본인이 먹은 값을 지불한 것뿐이라며 한사코 거절하셨다.

반단합은 단연 노래방이 최고라며 차학연은 반 아이들을 이끌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비는 반장인 자신이 내겠다며 차학연이 선생님 몰래 제일 먼저 노래방에 뛰어들어가 방을 잡고 계산을 끝내놓자 뒤늦게 노래방에 들어선 선생님이 차학연에게 어린 놈이 돈 아낄 줄 모른다고 화를 내며 잠시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져 부반장인 한상혁의 중재로 결국 둘이 노래방비를 반반 내는 걸로 합의를 보고 선생님이 절반의 돈을 차학연 손에 쥐어주셨지만 선생님도 차학연도 맘에 들지않는지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길 순 없었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우르르 방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에 밀려 대충 아무 방이나 들어왔더니 아무래도 잘못 들어왔는지 차학연 무리가 밀집된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첫곡부터 알 수 없는 춤사위와 노래인지 고성인지 모를 괴상한 소리를 내며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쿵쿵거리는 댄스곡을 불러대며 방 안을 요란하게 뛰어다니는 탓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옆 방으로 옮기려 했으나 그나마도 차학연한테 붙잡혀 실패했다.

"운아, 너도 노래해야지!"

놀만큼 놀았는지 대뜸 나에게 예약하라며 리모컨을 건내는 차학연을 무시하고 싫다며 버텨봤지만 차학연은 포기하지않고 내 손에 리모컨을 쥐어주고 내가 노래를 예약할 때까지 지켜볼거라며 옆자리에 앉아버린 탓에 난 꼼짝없이 노래를 예약해야만 했다.

내 노래를 빨리 듣겠다며 차학연이 내가 예약을 누르기도 전에 손을 뻗어 우선예약을 누른 탓에 어느새 난 손에 마이크를 쥐고 방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노래부르는 걸 보겠다며 옆 방에 있던 선생님과 아이들까지 몰려온 바람에 난 우리반 아이들과 선생님이 모두 있는 가운데서 노래를 하게되었다.

사실 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발라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는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노래방에 온다해도 노래를 거의 안부르는 편이였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 부르는 곡은 거의 '동요'였다. 전주가 흘러나오고 티비 화면 가득 노래 제목이 뜨자 모두 예상하지못했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고 몇몇은 이게 뭐냐며 야유를 하기 시작했다.

꿋꿋하게 2절까지 부르고 옆에 있던 차학연에게 마이크를 건내자 날 쳐다보던 아이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고 '우~'하는 소리를 내며 야유를 했다. 난 어깨를 으쓱이며 노래를 했다고 말하자 김원식이 제대로 하라며 타박했고 선생님도 옆에서 한 곡 제대로 뽑으라며 부추겼다. 난 제대로 한건데...

리모컨을 한참을 만지던 차학연은 노래 한 곡을 틀었고 막무가내로 나에게 노래 하라며 강요했다. 내가 발라드밖에 안 부르는 걸 아는 차학연은 내가 부를만한 곡을 튼건지 잔잔한 전주가 흘렀고 아이들은 마이크를 쥔 날보며 환호성인지 고함인지 소리를 질러댔다.

박효신의 It's You. 남자만 가득한 곳에서 사랑 노래라니, 차학연 선곡 센스도 참 별로다. 싶은 생각을 하지만 최근들어 가사가 공감되는 기분에 자주 듣는 노래였기에 차학연의 선곡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내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가사의 노래를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는 곳에서 부르게 될거란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않았기에 너무 부끄럽고 민망했다.

It's you 사랑한답니다 그게 내 진심입니다 그대 모르고 살아도 오늘도 내 맘은 그대뿐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

노래방 기계 바로 옆에 앉아있는 선생님덕분에 노래 한 곡을 부르는 동안 고개 한 번 돌리지 못하고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부른 것 같다.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은 또 다시 박수와 환호성을 질러댔고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와, 택운이 노래 엄청 잘하네."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는 선생님을 바라보기도 못할만큼 부끄러움이 밀려와 이 곳이 어두운 노래방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노래방이 아니였다면 분명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들켜버렸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쌤, 택운이가 하나 불렀으니까 쌤이 답가 불러주세요!"

한상혁의 말에 어느새 아이들은 선생님의 이름을 외치며 선생님을 방 가운데에 서있는 내 옆으로 밀어내고 마이크를 건냈다. 당황한 표정을 짓던 선생님은 이내 "콜!"하고 외치며 리모컨을 들고 노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쌤이 성시경 엄청 좋아해."

성시경의 좋을텐데. 답가가 이 정도는 되야지, 하는 선생님의 장난스런 목소리에 아이들은 와하하 웃었고 선생님은 그에 화답하듯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웃으셨다.

좋을텐데 너의 손 꼭 잡고 그냥 이 길을 걸었으면 내겐 너뿐인걸 니가 알았으면 좋을텐데

가사에 충실하게 나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는 선생님덕에 너무 떨려서 선생님 노래가 귀에 잘 들어오지않았지만 언젠가 누군가 선생님께 노래를 잘하냐고 물었을때 고등학교때 밴드부 보컬이였다고 자신있게 했던 대답이 이해될 정도로 선생님은 노래를 잘하셨다.

노래가 끝나고 선생님은 멀뚱히 굳어있는 내 머릴 한번 쓰다듬고는 모여있으니까 너무 좁다며 나와 선생님을 향해 썸을 부르고 있는 아이들을 진정시켜서 다시 옆 방으로 가셨다.

여전히 날 보며 썸을 불러대는 차학연과 이재환에게 소파 위에 있던 쿠션을 던지고 소파에 앉았다. 잠깐 사이에 기가 빨린 기분이였다. 여전히 바쁘게 뛰고있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예쁜이들 즐거운 설연휴 보내고 있어?

연재 빨리 끝냈다해놓고 오랜만에 와서 미안해 8ㅅ8

다들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