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입니까? (Who am I?)
01
w.화이바
사방이 새하얗다. 작은 어둠이라곤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온통 새하얀 곳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엔 두 갈래의 길이 놓여있다.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이.
꼭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아, 꿈인 건가. 이 두 길은 똑같이 생기긴 했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어쨌든 이 두 길 중에서 한쪽을 택하라는 것 같은데,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래, 이왕이면 우측통행이지. 단순하게 생각한 나는 길게 뻗어있는 오른쪽 길을 택했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 인가.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는지, 점점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고 점점 정신도 희미해지는 기분을 받았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알 수 없는 빛이 반짝였고, 그 빛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으….”
뭐지, 눈을 떠보니 새하얀 천장이 날 마주했다. 아, 나 걷다가 쓰러졌지. 아직도 꿈 인건가.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머리가 아팠고, 또한 생생했다.
내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삑,삑 거리는 기계음은 꿈과는 달리 내 귓가에 너무나도 정확히 들려 왔다. 그리고 코와 입에 씌여진…, 이게 뭐야.
나는 순간적으로 놀라 내 코와 입에 씌여진 무언가를 빼냈고,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허, 벼,병원?”
놀랍게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병원이지 싶었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산소마스크.
1인실 이라도 쓴 건지, 이 병실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고 창문조차 없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대체 왜, 병원에 있는 거지.
나는 누구입니까? (Who am I?)
01
“아…, 이게 무슨 상황이야.”
분명, 지금 난 엄마 아빠랑 외식중이여야 하는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듯 싶어 병실을 나가 둘러보려던 참, 밖에서 들려오는 간호사들의 대화를 듣고 떼려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야, 502호 환자 진짜 불쌍하지 않냐?”
“뭐가 불쌍한데?”
“그렇잖아, 십대 인생을 즐겨보지도 못하고.”
“뭐, 하긴.”
“그렇게 의식 불명으로 누워 있는게 벌써 12년이다 12년.”
“예쁘던데, 진짜 안타깝더라….”
…502호? 의식불명? 12년? 가만있어보자, 내가 몇 호더라. 갑자기 불길함이 엄습해와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병실 앞에 붙어있는 호수를 확인했다.
“…이게, 말이 돼?”
떡하니 내 이름 위에 쓰여 있는 호수. ‘1인실 502호’
이 팻말을 보자마자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맨 마지막에 먹으려 아껴뒀다가 다른 사람한테 뺏긴 기분이 들었다.
그럼, 내가 12년 동안 의식불명이었다고? 잠깐, 그럼 지금 몇 년도인건데? 내 마지막 기억은 분명 엄마랑 아빠랑 내 생일 기념으로 외식한 기억인데.
나는 마지막 희망으로 달력을 확인해보려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왜 이 넓은 병원에 보이는 간호사가 어째 한명도 없어.
그냥 아까 그 간호사한테 물어볼걸 그랬나…. 오랜만에 걸어서 그런 건지, 다리에 무리가 온 듯 싶었다.
그러자 잠깐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놈의 몸뚱아리, 쓸모가 없어 어째.”
그렇게 내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다가와 내 앞에 손을 내밀었다. 뭐지, 잡으라는 건가? 나는 그 남자가 건넨 손을 잡으며 일어났다.
한눈에 보기에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기에 ‘감사합니다.’ 하고 정중히 숙여 인사했다.
“아, 아니에요. 당연한 건데요 뭐.”
아까 손을 내밀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꽤 잘생긴 것 같았다. 뭔가 구릿빛 피부에 짙은 쌍커풀을 보아 꽤나 여자 홀리고 다녔을 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당연하다며 슬며시 웃어 보이는 미소까지. 어느 여자가 안 홀리겠는가. 이 김에 이 남자에게 물어볼까 싶어 살며시 물어봤다. 오늘이 몇 년도 냐고.
“저, 죄송한데 지금이 몇 년도에요?”
“네?”
당황할 만도 하지. 나였어도 지금 이 미친년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을 거다.
몇일도 아니고 몇 년도 냐니. 조금 당황한 기색이 보였지만 나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저도 지금이게 무슨 개같은 상황인지 모르겠거든요? 한번만 도와주세요.”
내가 이렇게 애원하면서 말하니까 이 남자도 조금은 흥미로운 건지 순수히 핸드폰을 꺼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데 핸드폰 되게 좋은 거 쓰네.
“2015년 1월 7일 이네요, 오늘이.”
“네? 지금 장난 하시는거 아니죠?”
“제가 왜 이런 걸로 장난을 쳐요.”
남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오늘을 말해주었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이라니. 내 기억의 끝은 2003년인데? 아, 진짜 망했다.
그럼 엄마는? 아빠는? 나는 허탈함에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고, 남자는 주저앉은 나를 괜찮냐며 어깨를 잡아 부축해주었다.
아, 이상한 말도 같이.
“근데, 되게 예쁘시네요.”
“…에?”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어 얼굴을 갸우뚱거렸다. 그마저도 이 남자는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뭔가, 이 남자… 위험하다.
위험을 직감한 나는 이 남자에게서 조금 떨어져보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이남자의 품에 안겨있었다.
그렇게 그냥 반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가 우리 쪽으로 들려왔다.
“김종인? 김종인 맞지 너, 오늘도 여자한테 뺨맞아서 왔냐? 좀 작ㅈ,… ?”
“아 형. 미안 미안, 오늘만 좀 봐줘 다음부턴 이런 걸로 안 올게.”
두 남자.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동굴목소리를 가진 저 남자는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이 병원의 의사인 듯 싶었다.
지금 내가 안겨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김종인인 것 같았고.
근데, 나 원래 이렇게 똑똑했나?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굴목소리는 뭐 못본 것을 본 마냥 안 그래도 큰 눈을 튀어 나올듯한 기세로 크게 뜨며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키는 멀대 같이 커서, 조금 무서웠다.
“야, 야 너…”
“저, 저요?”
갑자기 내 앞에 서서 나를 이리저리 살피는 동굴 목소리에 의해 내가 더 놀랐다. 아 맞다. 동굴은 의사고 나는 12년 동안 의식 불명이었던 환자지.
놀랄 법도 하네.
근데 김종인이라는 이 남자는 이상한 말만 내뱉어 댄다.
“형, 형. 내가 먼저 찜했어. 근데 진짜 예쁘지?”
뭐라는 건지…. 속으로 한참을 김종인 이라는 남자를 곱씹다가 갑자기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는 나를 김종인의 품에서 데려와 끌어안았다.
이 병원…왜이래? 스킨십이 인사야?
“왜그래, 나 모르겠어? 나 몰라 보는 거야? 아니, 아니지 일단 고마워 진짜 오빠가 얼마나 걱정, 하… 일단 검사부터 하자. 맥박 체크하고.”
“…네? 오빠? 설마, 너 박찬열 이야?”
“이거 뭐야 진짜. 이제 나 기억 하는 거야? 아아, 아니지 빨리 검사부터 받자.”
나한테 하나밖에 없는 네 살 오빠 박찬열. 엄청 투닥 거리면서 챙길 건 다 챙겨주는 츤데레.
근데,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거야? 게다가 의사 된 거야? 원래 의사 꿈 아니었는데….
왠일 이래.
김종인은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가 하고 골똘히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박찬열은 빨리 검진을 받자며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린 내가 박찬열을 따라가지 못하자, 박찬열은 그대로 나를 어깨에 들춰 매 검진실로 향하는 것 같았다.
나 아직 환잔데, 이래도 되는 거야?
그리고 김종인은 상황 파악이 끝난 듯 보였는데, 아직도 헛소리만 한다.
“형님! 나도 치료해줘야죠!”
“니가 알아서 해, 임마.”
박찬열의 강력한 한방에 입을 다물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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