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리야!”
나는 다시 그녀를 부르며 2층 복도를 돌아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1층 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이용해서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남녀 한 쌍과 예리가 마주보고 서있었다.
“예리야”
그녀를 부르자 예리는 물론 그녀를 마주보고 있던 남녀 또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예리에게서 파안의 힘을 사용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느껴지는 지독한 살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급하게 뛰어 그녀를 막아섰다.
“잠깐 예리야.!! 가만히 있어 죽이지마!!”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잠깐만 있어봐!! 이 사람들은 어떻게 누구야?”
“몰라. 너 따라서 2층으로 가다가. 인기척이 느껴져서 내려와 봤더니 있었어.”
한마디로 그녀의 뛰어난 감으로 발견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사람이 나타 난거지?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나는 그런 의문점에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가까이서 보니. 참 특이한 조합이었다.
여자는 예리보다 두어 살 아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150도 안될 것 같은 키가 그녀를 더 어리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남자는 40대를 넘은 것 같았는데 호남형의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부녀지간 이라면 모를까.
모텔에서 이런 조합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당신들이야 말로 대체 누구죠?”
그러나 중년의 남성은 경계의 빛을 띠면서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이래서야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단도직입 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Z”를 아세요?“
“ ! ! ! ”
"Z”라는 말이 나오자 남자가 움찔거렸다.
남자의 옆구리를 잡고 나를 쳐다보던 소녀 또한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만을 봐도 이들이 "Z” 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난 무슨 관계냐고 물으려 했으나,
중년남성이 한발 앞서.
머뭇머뭇 거리며 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저기.. 그럼 혹시 바깥의 시체들도 당신이?”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예리지만.
별로 일일이 설명 하고 싶지가 않았기에 대강 대답하였다.
“네. 뭐.. 그런데 "Z” 하고는 무슨 관련이? 참고로 여기 그녀와 저도 "Z” 에 쫒기는 신세인데 댁들도?“
나는 예리를 가리키며 여전히 경계심을 내 비치는 그들에게 은근히 떠보았다.
“정말 인가요?”
이번에는 남자대신 소녀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왠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가능하면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없을까요?“
나는 그들이 "Z” 에게 쫒기고 있다면 나보다는 아는 것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그럽시다. 바깥의 시체들을 정말 당신들의 작품이라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남자또한 그렇게 말했기에 우리는 여관을 빠져 나와 인근의 공원으로 향했다.
"Z” 에게 노출된 이 여관에 더 있는 것은 위험했으니까.
걷는 도중 예리는 몇 번이나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알아볼 것이 있다며 조금만 더 참으라고 부탁한 끝에 겨우겨우
그녀를 말릴 수 있었다.
아니 여전히 말리고 있는 중이다.
조용한 새벽의 공원.
추운 겨울이라 노숙을 하는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을 것 같았다.
“저는 강선욱 이라고 하고. 얘는 서예리 라고하고요. "Z” 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신세 입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정친철. 그리고 이 아이는 김지나 라고 하는데...
당신들은 왜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지..?”
“아. 뭐 별거 아닌 이유입니다만. 당신들이야 말로 그렇게 어울리는 커플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사정이 있습니까?”
나의 말에 진철 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남성의 옷자락을 붙잡고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던 소녀-김지나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지??
“그렇게 보이겠죠? 아마도 "Z” 에 대해서 아시는 것 같으니 말하겠습니다.
이 아이는 "Z” 의 실험체 중 하나였습니다.“
“실험체라면??”
그래 분명히 실험체라면.
예리와 같은 처지란 말인가.
나는 조금 반가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그저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Z"의 실험체라면.
분명 어떤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 능력도 없는 소녀를 대려다 실험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인신매매 조직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저 아이도 초능력자?”
“역시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저는 그들이 운영하는 연구소의 말단 직원입니다만 지나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그만 대리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헐.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지금 놓여 진 상황과 너무 똑같은 것이다.
동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괜히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경계심이 풀렸는지
나는 뒤 돌아 예리에게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어때?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고 했지?”
“웃기지마.”
그러나 예리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그 모습에서는 비록 파안은 뜨지 않았지만 여전히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과 대면했을 때부터 살기를 풍기고 있었던 것 같다.
“Z"의 군인도 아니고..
보통의 인간이 상대라면.
이렇게까지 대놓고 살기를 풍긴 적은 없었는데.
그런 이유로.
그녀의 상태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생각에 답이라도 내려주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인간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엥???”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충분히 그들에게도 들렸는지.
진철 이라 소개한 남자는 불쾌해 하며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지?”
“흥”
예리는 더 이상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또 괜한 심술을 부리는 건가?
나는 뭐라고 한마디 해주려다가.
남자의 표정이 살짝 구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먼저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얘가 입이 좀 거칠어서요..”
내가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하자 남자는 불쾌한 표정을 애써 지우며 말을 이었다.
“사과하시니 넘어가겠습니다만. 기분은 좋지 않군요. 아무튼 그래서 그들의 추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왜인지 그녀도 예리를 노려보고 서있었다.
아까 예리가 이용이 어쩌구 할 때부터였다.
서로를 죽일듯이 노려본 것은.
설마 실험체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나?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잠깐 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남자에게 다른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폭발에서?”
아마도 "Z” 그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여관방에다가 폭탄을 장치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 궁금했고. 게다가 여관안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것도 이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아이는 사람의 정신을 얼마간 혼동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뇌라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그거보다는 훨씬 약하면서도, 또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능력 이죠
아무튼 그 능력으로 "Z” 가 엉뚱한 곳을 폭발 시키게 만들었죠.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은 "Z”가 대피시킨 것 같습니다. “
“아... 그런 능력이..”
나는 감탄한 눈으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정신을 혼동시킨다고?
문득 아까 전 예리의 말이 떠올랐다.
‘저 인간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설마??
나는 예리를 쳐다보았다.
“예리야. 설마..?”
“설마라니?”
“그러니까.......”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었으므로.
게다가 눈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예리에게 더 이상을 묻는 다는 건 불가능 했다.
설마. 정신을 혼동시키는 것만으로.
자신을 돕게 만들 수 있을 리는.
그렇게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부인하고 있는데
지나가 진철 의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적대감을 마구 드러내며 애써 부인하고 있던 생각을 증명해 주었다.
“당신들 어떻게??”
손가락으로 예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남자의 옷자락을 잡고 불쌍하게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너무나 당당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안거야!”
나는 놀라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사려져 있었다.
분명히 예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 남자가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대체 어떻게?
예리를 놀라운 얼굴로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지나를 쏘아보고 있을 뿐 이었다.
예리에게 내가 모르는 다른 능력이 있는 건가?
그런 예리가 지나를 쏘아보던 눈을 나에게 돌리고 묻는다.
“이제 죽여도 돼?”
“자...잠깐만...”
내가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 위해서 예리를 말리려고 하는 찰나
소녀의 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정신도!!!...”
소녀가 그렇게 말하는 찰나.
공원의 반대편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09782- 도망을 치다니... 겨우 c급의 능력주제에 어이가 없다니까.
어차피 소거하려고 했는데 조금 늦춰 진 것 뿐 이니까 상관없지“
나는 목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정장차림의 여성 두 명과 "Z” 의 군인들이 우리 쪽으로 총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본 소녀는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겨우....겨우.... 아저씨와 도망쳤는데..... ”
겨우 아저씨와 도망쳤다고?
나는 소녀의 중얼거림에서 순간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그나저나 남자를 이용해서 도망칠 생각을 다하고, 너도 꽤 약았구나?”
정장여성 중 한명이 조롱 섞인 말투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예리의 앞으로 조금 나오며. 그녀의 돌발행동을 제지하고서는.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조금 상황을 지켜보자. 가만히 있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소녀가 "Z”를 향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아저씨를 이용한게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저 인간이 너 가 좋아서 돕기라도 했다는 건가?”
“응. 아저씨가 말했어. 사랑한다고 말했어. 도망치게 해준다고 말했어!!”
“호오. 그런데 정신은 왜 조작한거지? 도망치게 해준다고 했으면. 그럴 필요 없었잖아?
이상한데. 왜일까나~?“
정장 차림의 여성 중 계속 지나와 말하고 있는 쪽이 정장A.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쪽은 정장B 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모르니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정장A는 계속 소녀를 놀리듯이 말했고. 그녀는 정곡을 찔렸는지 잠시 움찔거렸다.
그러나 다시 정장A에게 소리쳤다.
“아저씨는 조금 용기가 부족했던 것뿐이야.
나는 용기를 불어 넣어준 것뿐이라고!!“
“푸하하하하하하!!!”
지나의 말에 정장A는 배꼽까지 잡아가며 조금은 오버 하는 듯 싶을 정도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봐서는 지나는 진철을 그저 이용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왠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껴졌다.
아까부터 들던 위화감의 정체는 이거였던 것 같다.
이용만 했다고 하기에는 소녀의 태도가 너무 이상했다.
소녀.
즉 지나는 정장A가 크게 비웃자 지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예리가 아니다.
보통의 초능력자들이 그렇듯 직접적인 살상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저 몸을 떨고 있을 뿐. 그것 뿐 이었다.
나는 그런 소녀에게 동정이 갔다.
그녀도 역시 광신도 같은 이상한 집단에게 잡혀간 피해자 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철은.
소녀가 그렇게 믿고 있는 진철의 진심은 어떤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멍한 얼굴.
예리도 멍하게 있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녀하고는 다르다.
눈도 풀려있고.
살아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정신을 조작당하기전 지나를 어떻게 생각 하고 있던거지?
어떻게 지나를 대했길래.
지나가 저렇게 아저씨라 부르며 따르는 걸까.
그렇게 진철을 한창 관찰하고 있으려니 드디어 정장A의 웃음소리가 그쳐버렸다.
정말 오래 웃을 수 있는 여자였다.
“웃지마!! 웃지마!!”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친 지나가 마음껏 소리 질렀으나. 정장A는 여전히 조롱 섞인 얼굴로 싱글벙글 쪼갤 뿐이었다.
솔직히 제삼자인 내가 봐도 재수 없었다.
“네가 화내면 어쩔껀데? 고작 실험체 주제에...”
고작 실험체 주제에..
힘이 없으면 그냥 얌전히 있으라는 소리였다.
엄청나게 비위에 거슬리는 단어.
정장A는 지나를 비웃어주더니 여태껏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정장B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정장B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철이 서 있는쪽을 바라보았다.
“09782. 너 가 보잘 것도 없는 능력으로 헤집어 놓은 정진철을 원래대로 해놓겠어. 과연 너를 대리고 도망이라도 쳐줄지 두고 보자고. 참고로 말하자면 옆에 있는 이분께서는 너랑 같은 능력자이지만. 너의 능력과는 하늘과 땅차이란다. 호호호!”
정장A가 정장B를 가리켜 그렇게 말하자 지나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 져 버렸다.
“그...그런..”
소녀가 당황하던 말든.
정장B는 진철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지그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아아악!!”
정장B가 눈을 감은과 동시에 진철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하악..아악....하하아악!!”
“그만해!! 무슨 짓을 하는거야!!”
지나는 괴로워하는 진철의 곁에서 그의 팔을 잡고는 소리쳤지만 정장B는 애시 당초 멈출 생각 따윈 없어보였다.
“하...아아악.....”
몇 분이 지나자 진철의 신음소리가 잦아들면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도 어느새 보통의 것으로 돌아왔다.
“아저씨. 나야..지나야.. 괜찮아?”
진철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지나를 쳐다보았다.
“여기는?”
“아저씨가 나를 대리고 도망 쳤잖아? 여기는 서울이야”
“뭐라고!!!”
순간 진철의 눈이 보통보다 배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놀란듯 한 표정.
그 표정은.
지나을 대하는 그 표정은.
이 조그만 소녀에게.
아무런 감정 따위 없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파왔다.
“정진철 씨?”
“당신은?”
“우린 "Z”. 정확히는 "Z”의 ECP“
“!!!!!!!”
ECP라는 말에 진철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너무나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대체 ECP가 뭐길래?
“당신은 뭐 거기 있는 쓰레기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니까. 살려두라는 지시에요. 이리와요.
다시 연구소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저...정말 입니까?”
“당연하죠”
정장A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진철은 지나를 밀쳐버리더니 그대로 "Z” 에게 뛰어가 버렸다.
얼굴이 저절로 찌뿌려 졌다.
저런 놈에게 순간이라도 동류의식을 느꼈던 것 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아까부터 증폭되던 슬픈 마음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예리와 달리 사람을 믿어버린 지나.
하지만 그런 지나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
그런건가.
불합리 하다.
"아저씨...왜그래? 나하고 도망쳐 준다고 했잖아. 그들이 무서워서 그래? 얼른 이리와.
다시 도망치면 되니까!“
지나는 자기를 밀치며 달아나는 그에게 거의 절규하듯 싶을 정도로 소리쳤다.
하지만 진철은 그런 지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
거의 패닉에 빠진 조그만 소녀.
그런 그녀를 즐거운 듯 쳐다보던 정장A가 그녀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아저씨는 단지 너를 않고 싶었을 뿐 이란다?
그저 성욕을 채우려고 달콤한 말을 해준 거지.
이런 남자를 믿다니? 하여튼 쓰레기는 쓰레기라니까.“
정장A의 말이 지나에게는 카운트펀치와 마찬가지였는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증폭된 감정.
그래.
내안에 있던 감정이.
결국은 터져버렸다.
나는 그녀들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사람을 믿는 것이 뭐가 나빠!!!”
그러자 정장A는 예외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는 뭐냐?
거기꼬마에게 정신을 조작당한 인간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지?“
“사람을 믿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나는 정장A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마음 따윈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반복했다.
어차피 지나를 죽이러 왔다면.
그냥 죽일 것이지.
상대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며 실컷 즐거워하는 모습은 정말 최저다.
정말로 더러워.
“사람을 믿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보통은 말이야. 자기를 믿는 사람의 마음을 배신한 놈이나!!
그런 마음을 이용 하는 녀석을 나쁘다고 말하는 거라고.
안 그러냐. 이 썩을 년아!“
“썩을 년...? 이 새끼가 미쳤나”
정장A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으나.
나는 계속해서 소리쳐 주었다.
그들이 겨냥하고 있는 총구에 대한 두려움도 잊어 버렸다.
“난. 나다! 적어도 자기를 믿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고!! 사람!!“
“푸하하하하하! 이 녀석이 뭐라는 거냐.
정말 웃기고 있네”
내말에 아까처럼 웃기 시작하는 정장A의 모습에.
나는 지나가 그랬던 것처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버렸다.
“너는 우리가 누군지나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별놈을 다보겠네. 똑같은 힘없는 쓰레기 주제에”
그렇다.
나도 힘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분노할 뿐이지만.
힘이 있다고 해도.
너희들처럼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힘은 그런게 아니다.
힘이 있다고 같은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는 건 이미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야.
“힘이 없으면 모두 쓰레기냐?
힘이 있어야 인간이고?
오히려 그딴 잘난 힘에 오만을 부리는 너 가 더 쓰레기 같아 보이는데?“
“푸하하하하하!
더 지껄여 보라 구.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하니? 쓰레기야? “
“웃지마.”
엥?
내가 한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들려온 한 마디.
여태까지 내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예리가 한 말이었다.
나는 놀라서 예리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장A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그녀를 깜박 잊고 있었다.
“넌 또 뭐야. 미치겠네. 잘 논다 잘 놀아”
정장A는 여전히 똑같은 말투로 예리를 보며 지껄였지만.
예리는 나와 지나하고는 다르다.
“푸아아아앗. 푸각...”
순간 총을 들고 있던 군인들이 죄다 피를 뿌리며 터져 버렸다.
“뭐...뭐야....”
정장A는 놀라서 그들을 돌아보았으나.
대답하는 건 그저 뿜어져 나오는 핏소리 뿐이었다.
“너...넌 뭐야?”
정장A는 돌발 상황에 조금은 당황하며 예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장B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장B의 모습은 변화가 없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죽어도.
그저 동료들의 피만을 뒤집어쓴 것이 변화한 모습의 다였다.
계속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저. 무표정하게.
마치 예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00367."
그런 그녀가 나지막히 중얼거린 말에.
정장A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00367? 저 여자가!? 어째서 ... 이런곳에..”
“그러고 보니. 09782를 소거하러간 부대가 00367에게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도 같은..”
“그..그딴 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정장A는 여전히 당황하며 말했지만.
정장B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너희도 죽어”
예리가 남은 그녀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될껄?”
“안되다니?”
“09872는 곧 죽여주겠어. 우리는 이만. ”
정장A는 그렇게 말하더니 정장B의 어깨를 잡고 또 멀찍이 떨어져서 떨고 있는 진철의 다리를 잡고는 없어져 버렸다.
생각컨대 텔레포트 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사라지기 전 정장A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에 있는 의미는.
그저 살기였다.
이것 참.
나는 점점 위험해 지고 있는 걸까.
“.......”
나는 남모르게 심호흡을 하곤.
사라진 그들의 서있던 곳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예리야?”
“저 여자들은 남자들하고 세트야. 게다가 남자들과는 다르게 각자 이상한 능력이 있어서 쉽게는 죽지 않아.
쳇.. 말도 걸지 말고 바로 죽였어야 했는데. 너 때문이야.“
“그....그러냐...”
아쉽다는 듯이 말하는 예리였지만.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정장A가 예리에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정장A 에게 힘이 최고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결국 힘으로 그들을 쫒아낸 것 같기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지나에게 로 다가갔다.
“괜찮아?”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봐?”
“그런 애는 내버려 두고. 돌아가자. 잘래”
“무슨 소리야. 어떻게 내버려둬”
“인간을 믿은게 잘못이지 뭐”
“너도 그 소리야?”
“응 인간은 믿을게 못돼? 사실이잖아? 너도 봐 놓구선.”
정장A와 똑같은 말을 하는 예리였다.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진철이 지나를 배신한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꼬투리를 잡았다.
“그런데 인간은 믿을게 못된다면서? 그럼 나도 안 믿는 다는 거야?”
“아니.....”
“그럼 너하고 지나하고는 다를 바가 없는 거네?”
“나하고 쟤 하고? 움.... 그런가?”
그녀는 약간 생각하는 듯.
고개를 까딱하더니.
잠시 후 대답을 이었다.
“그래도 너하고 그 남자하고는 다르잖아?
넌 달라. 그래 넌 인간이 아니야.
그니까는 믿어도 돼“
뭔 소리라냐.
나도 엄연히 인간이 라고...
뭐 결국은 그 남자하고 내가 다르다고 칭찬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따진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삐뚤어진 세계관은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문제도 있으니까.
“아무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나는 지나를 업어들고는 그 공원을 빠져나왔다.
어째서인지 예리는 계속 싫다고 신경질을 부렸지만 결국은 내가 이겼다.
근처의 다른 여인숙을 찾아 들어갔다. 여관주인이 여자 두 명을 대리고 방 하나를 찾는 나를 이상하면서도 부럽게 쳐다보면서 방을 내주었다.
그런 시선으로 볼 것 없다우.
나는 방으로 들어와 대충 이불을 깔고는 지나를 눕혔다.
“아저씨...아저씨...”
지나는 계속 고개를 이로 돌리고 저리 돌리며 진철을 찾고 있었다.
아마 의식을 잃고는. 꿈속이라도 해매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차려...그놈은 널 떠났다고..”
그런 소녀에게서....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저씨....”
나는 다시 그녀를 부르며 2층 복도를 돌아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1층 쪽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이용해서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남녀 한 쌍과 예리가 마주보고 서있었다.
“예리야”
그녀를 부르자 예리는 물론 그녀를 마주보고 있던 남녀 또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예리에게서 파안의 힘을 사용하려고 할 때면 언제나 느껴지는 지독한 살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급하게 뛰어 그녀를 막아섰다.
“잠깐 예리야.!! 가만히 있어 죽이지마!!”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왜?”
“잠깐만 있어봐!! 이 사람들은 어떻게 누구야?”
“몰라. 너 따라서 2층으로 가다가. 인기척이 느껴져서 내려와 봤더니 있었어.”
한마디로 그녀의 뛰어난 감으로 발견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사람이 나타 난거지?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나는 그런 의문점에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들은??”
가까이서 보니. 참 특이한 조합이었다.
여자는 예리보다 두어 살 아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150도 안될 것 같은 키가 그녀를 더 어리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남자는 40대를 넘은 것 같았는데 호남형의 멀쩡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부녀지간 이라면 모를까.
모텔에서 이런 조합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당신들이야 말로 대체 누구죠?”
그러나 중년의 남성은 경계의 빛을 띠면서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이래서야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단도직입 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Z”를 아세요?“
“ ! ! ! ”
"Z”라는 말이 나오자 남자가 움찔거렸다.
남자의 옆구리를 잡고 나를 쳐다보던 소녀 또한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만을 봐도 이들이 "Z” 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난 무슨 관계냐고 물으려 했으나,
중년남성이 한발 앞서.
머뭇머뭇 거리며 나에게 질문을 날렸다.
“저기.. 그럼 혹시 바깥의 시체들도 당신이?”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예리지만.
별로 일일이 설명 하고 싶지가 않았기에 대강 대답하였다.
“네. 뭐.. 그런데 "Z” 하고는 무슨 관련이? 참고로 여기 그녀와 저도 "Z” 에 쫒기는 신세인데 댁들도?“
나는 예리를 가리키며 여전히 경계심을 내 비치는 그들에게 은근히 떠보았다.
“정말 인가요?”
이번에는 남자대신 소녀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왠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가능하면 이야기를 좀 나눌 수 없을까요?“
나는 그들이 "Z” 에게 쫒기고 있다면 나보다는 아는 것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정중하게 부탁하였다.
“그럽시다. 바깥의 시체들을 정말 당신들의 작품이라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테니까.”
남자또한 그렇게 말했기에 우리는 여관을 빠져 나와 인근의 공원으로 향했다.
"Z” 에게 노출된 이 여관에 더 있는 것은 위험했으니까.
걷는 도중 예리는 몇 번이나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알아볼 것이 있다며 조금만 더 참으라고 부탁한 끝에 겨우겨우
그녀를 말릴 수 있었다.
아니 여전히 말리고 있는 중이다.
조용한 새벽의 공원.
추운 겨울이라 노숙을 하는 사람하나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을 것 같았다.
“저는 강선욱 이라고 하고. 얘는 서예리 라고하고요. "Z” 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신세 입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정친철. 그리고 이 아이는 김지나 라고 하는데...
당신들은 왜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지..?”
“아. 뭐 별거 아닌 이유입니다만. 당신들이야 말로 그렇게 어울리는 커플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사정이 있습니까?”
나의 말에 진철 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남성의 옷자락을 붙잡고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던 소녀-김지나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지??
“그렇게 보이겠죠? 아마도 "Z” 에 대해서 아시는 것 같으니 말하겠습니다.
이 아이는 "Z” 의 실험체 중 하나였습니다.“
“실험체라면??”
그래 분명히 실험체라면.
예리와 같은 처지란 말인가.
나는 조금 반가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그저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Z"의 실험체라면.
분명 어떤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 능력도 없는 소녀를 대려다 실험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인신매매 조직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저 아이도 초능력자?”
“역시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저는 그들이 운영하는 연구소의 말단 직원입니다만 지나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그만 대리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헐.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지금 놓여 진 상황과 너무 똑같은 것이다.
동지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괜히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경계심이 풀렸는지
나는 뒤 돌아 예리에게 자랑스러운 듯이 말하였다.
“어때?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많다고 했지?”
“웃기지마.”
그러나 예리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그 모습에서는 비록 파안은 뜨지 않았지만 여전히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과 대면했을 때부터 살기를 풍기고 있었던 것 같다.
“Z"의 군인도 아니고..
보통의 인간이 상대라면.
이렇게까지 대놓고 살기를 풍긴 적은 없었는데.
그런 이유로.
그녀의 상태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생각에 답이라도 내려주듯.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인간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엥???”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대사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충분히 그들에게도 들렸는지.
진철 이라 소개한 남자는 불쾌해 하며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지?”
“흥”
예리는 더 이상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또 괜한 심술을 부리는 건가?
나는 뭐라고 한마디 해주려다가.
남자의 표정이 살짝 구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곤.
먼저 사과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얘가 입이 좀 거칠어서요..”
내가 고개까지 숙이며 사과하자 남자는 불쾌한 표정을 애써 지우며 말을 이었다.
“사과하시니 넘어가겠습니다만. 기분은 좋지 않군요. 아무튼 그래서 그들의 추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왜인지 그녀도 예리를 노려보고 서있었다.
아까 예리가 이용이 어쩌구 할 때부터였다.
서로를 죽일듯이 노려본 것은.
설마 실험체들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나?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잠깐 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남자에게 다른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폭발에서?”
아마도 "Z” 그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여관방에다가 폭탄을 장치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 궁금했고. 게다가 여관안의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것도 이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아이는 사람의 정신을 얼마간 혼동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뇌라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그거보다는 훨씬 약하면서도, 또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능력 이죠
아무튼 그 능력으로 "Z” 가 엉뚱한 곳을 폭발 시키게 만들었죠. 그리고 아마 다른 사람들은 "Z”가 대피시킨 것 같습니다. “
“아... 그런 능력이..”
나는 감탄한 눈으로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정신을 혼동시킨다고?
문득 아까 전 예리의 말이 떠올랐다.
‘저 인간은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야’
설마??
나는 예리를 쳐다보았다.
“예리야. 설마..?”
“설마라니?”
“그러니까.......”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었으므로.
게다가 눈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예리에게 더 이상을 묻는 다는 건 불가능 했다.
설마. 정신을 혼동시키는 것만으로.
자신을 돕게 만들 수 있을 리는.
그렇게 애써 떠오르는 생각을 부인하고 있는데
지나가 진철 의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적대감을 마구 드러내며 애써 부인하고 있던 생각을 증명해 주었다.
“당신들 어떻게??”
손가락으로 예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남자의 옷자락을 잡고 불쌍하게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너무나 당당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안거야!”
나는 놀라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눈동자에 초점이 사려져 있었다.
분명히 예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 남자가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대체 어떻게?
예리를 놀라운 얼굴로 돌아보았으나.
그녀는 지나를 쏘아보고 있을 뿐 이었다.
예리에게 내가 모르는 다른 능력이 있는 건가?
그런 예리가 지나를 쏘아보던 눈을 나에게 돌리고 묻는다.
“이제 죽여도 돼?”
“자...잠깐만...”
내가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기 위해서 예리를 말리려고 하는 찰나
소녀의 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정신도!!!...”
소녀가 그렇게 말하는 찰나.
공원의 반대편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09782- 도망을 치다니... 겨우 c급의 능력주제에 어이가 없다니까.
어차피 소거하려고 했는데 조금 늦춰 진 것 뿐 이니까 상관없지“
나는 목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정장차림의 여성 두 명과 "Z” 의 군인들이 우리 쪽으로 총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을 본 소녀는 경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겨우....겨우.... 아저씨와 도망쳤는데..... ”
겨우 아저씨와 도망쳤다고?
나는 소녀의 중얼거림에서 순간 위화감이 느껴졌다.
뭐지..??
“그나저나 남자를 이용해서 도망칠 생각을 다하고, 너도 꽤 약았구나?”
정장여성 중 한명이 조롱 섞인 말투로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예리의 앞으로 조금 나오며. 그녀의 돌발행동을 제지하고서는.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조금 상황을 지켜보자. 가만히 있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소녀가 "Z”를 향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야!! 아저씨를 이용한게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럼 저 인간이 너 가 좋아서 돕기라도 했다는 건가?”
“응. 아저씨가 말했어. 사랑한다고 말했어. 도망치게 해준다고 말했어!!”
“호오. 그런데 정신은 왜 조작한거지? 도망치게 해준다고 했으면. 그럴 필요 없었잖아?
이상한데. 왜일까나~?“
정장 차림의 여성 중 계속 지나와 말하고 있는 쪽이 정장A.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쪽은 정장B 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모르니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정장A는 계속 소녀를 놀리듯이 말했고. 그녀는 정곡을 찔렸는지 잠시 움찔거렸다.
그러나 다시 정장A에게 소리쳤다.
“아저씨는 조금 용기가 부족했던 것뿐이야.
나는 용기를 불어 넣어준 것뿐이라고!!“
“푸하하하하하하!!!”
지나의 말에 정장A는 배꼽까지 잡아가며 조금은 오버 하는 듯 싶을 정도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봐서는 지나는 진철을 그저 이용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왠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느껴졌다.
아까부터 들던 위화감의 정체는 이거였던 것 같다.
이용만 했다고 하기에는 소녀의 태도가 너무 이상했다.
소녀.
즉 지나는 정장A가 크게 비웃자 지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예리가 아니다.
보통의 초능력자들이 그렇듯 직접적인 살상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그저 몸을 떨고 있을 뿐. 그것 뿐 이었다.
나는 그런 소녀에게 동정이 갔다.
그녀도 역시 광신도 같은 이상한 집단에게 잡혀간 피해자 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철은.
소녀가 그렇게 믿고 있는 진철의 진심은 어떤 걸까.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멍한 얼굴.
예리도 멍하게 있을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녀하고는 다르다.
눈도 풀려있고.
살아있다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정신을 조작당하기전 지나를 어떻게 생각 하고 있던거지?
어떻게 지나를 대했길래.
지나가 저렇게 아저씨라 부르며 따르는 걸까.
그렇게 진철을 한창 관찰하고 있으려니 드디어 정장A의 웃음소리가 그쳐버렸다.
정말 오래 웃을 수 있는 여자였다.
“웃지마!! 웃지마!!”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친 지나가 마음껏 소리 질렀으나. 정장A는 여전히 조롱 섞인 얼굴로 싱글벙글 쪼갤 뿐이었다.
솔직히 제삼자인 내가 봐도 재수 없었다.
“네가 화내면 어쩔껀데? 고작 실험체 주제에...”
고작 실험체 주제에..
힘이 없으면 그냥 얌전히 있으라는 소리였다.
엄청나게 비위에 거슬리는 단어.
정장A는 지나를 비웃어주더니 여태껏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정장B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정장B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진철이 서 있는쪽을 바라보았다.
“09782. 너 가 보잘 것도 없는 능력으로 헤집어 놓은 정진철을 원래대로 해놓겠어. 과연 너를 대리고 도망이라도 쳐줄지 두고 보자고. 참고로 말하자면 옆에 있는 이분께서는 너랑 같은 능력자이지만. 너의 능력과는 하늘과 땅차이란다. 호호호!”
정장A가 정장B를 가리켜 그렇게 말하자 지나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 져 버렸다.
“그...그런..”
소녀가 당황하던 말든.
정장B는 진철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지그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아아악!!”
정장B가 눈을 감은과 동시에 진철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하악..아악....하하아악!!”
“그만해!! 무슨 짓을 하는거야!!”
지나는 괴로워하는 진철의 곁에서 그의 팔을 잡고는 소리쳤지만 정장B는 애시 당초 멈출 생각 따윈 없어보였다.
“하...아아악.....”
몇 분이 지나자 진철의 신음소리가 잦아들면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도 어느새 보통의 것으로 돌아왔다.
“아저씨. 나야..지나야.. 괜찮아?”
진철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지나를 쳐다보았다.
“여기는?”
“아저씨가 나를 대리고 도망 쳤잖아? 여기는 서울이야”
“뭐라고!!!”
순간 진철의 눈이 보통보다 배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놀란듯 한 표정.
그 표정은.
지나을 대하는 그 표정은.
이 조그만 소녀에게.
아무런 감정 따위 없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져서.....
가슴이 아파왔다.
“정진철 씨?”
“당신은?”
“우린 "Z”. 정확히는 "Z”의 ECP“
“!!!!!!!”
ECP라는 말에 진철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너무나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대체 ECP가 뭐길래?
“당신은 뭐 거기 있는 쓰레기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니까. 살려두라는 지시에요. 이리와요.
다시 연구소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저...정말 입니까?”
“당연하죠”
정장A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진철은 지나를 밀쳐버리더니 그대로 "Z” 에게 뛰어가 버렸다.
얼굴이 저절로 찌뿌려 졌다.
저런 놈에게 순간이라도 동류의식을 느꼈던 것 이 부끄러웠다.
게다가 아까부터 증폭되던 슬픈 마음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예리와 달리 사람을 믿어버린 지나.
하지만 그런 지나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
그런건가.
불합리 하다.
"아저씨...왜그래? 나하고 도망쳐 준다고 했잖아. 그들이 무서워서 그래? 얼른 이리와.
다시 도망치면 되니까!“
지나는 자기를 밀치며 달아나는 그에게 거의 절규하듯 싶을 정도로 소리쳤다.
하지만 진철은 그런 지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
거의 패닉에 빠진 조그만 소녀.
그런 그녀를 즐거운 듯 쳐다보던 정장A가 그녀를 더욱 절망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아저씨는 단지 너를 않고 싶었을 뿐 이란다?
그저 성욕을 채우려고 달콤한 말을 해준 거지.
이런 남자를 믿다니? 하여튼 쓰레기는 쓰레기라니까.“
정장A의 말이 지나에게는 카운트펀치와 마찬가지였는지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증폭된 감정.
그래.
내안에 있던 감정이.
결국은 터져버렸다.
나는 그녀들을 향해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사람을 믿는 것이 뭐가 나빠!!!”
그러자 정장A는 예외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너는 뭐냐?
거기꼬마에게 정신을 조작당한 인간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지?“
“사람을 믿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나는 정장A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마음 따윈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반복했다.
어차피 지나를 죽이러 왔다면.
그냥 죽일 것이지.
상대를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리며 실컷 즐거워하는 모습은 정말 최저다.
정말로 더러워.
“사람을 믿는 것이 뭐가 나쁘냐고.
보통은 말이야. 자기를 믿는 사람의 마음을 배신한 놈이나!!
그런 마음을 이용 하는 녀석을 나쁘다고 말하는 거라고.
안 그러냐. 이 썩을 년아!“
“썩을 년...? 이 새끼가 미쳤나”
정장A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으나.
나는 계속해서 소리쳐 주었다.
그들이 겨냥하고 있는 총구에 대한 두려움도 잊어 버렸다.
“난. 나다! 적어도 자기를 믿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고!! 사람!!“
“푸하하하하하! 이 녀석이 뭐라는 거냐.
정말 웃기고 있네”
내말에 아까처럼 웃기 시작하는 정장A의 모습에.
나는 지나가 그랬던 것처럼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 버렸다.
“너는 우리가 누군지나 알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별놈을 다보겠네. 똑같은 힘없는 쓰레기 주제에”
그렇다.
나도 힘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분노할 뿐이지만.
힘이 있다고 해도.
너희들처럼 사용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힘은 그런게 아니다.
힘이 있다고 같은 사람을 쓰레기 취급하는 건 이미 사람이 아니다.
짐승이야.
“힘이 없으면 모두 쓰레기냐?
힘이 있어야 인간이고?
오히려 그딴 잘난 힘에 오만을 부리는 너 가 더 쓰레기 같아 보이는데?“
“푸하하하하하!
더 지껄여 보라 구.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하니? 쓰레기야? “
“웃지마.”
엥?
내가 한말이 아니었다.
갑자기 들려온 한 마디.
여태까지 내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예리가 한 말이었다.
나는 놀라서 예리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정장A 때문에 너무 화가 나서 그녀를 깜박 잊고 있었다.
“넌 또 뭐야. 미치겠네. 잘 논다 잘 놀아”
정장A는 여전히 똑같은 말투로 예리를 보며 지껄였지만.
예리는 나와 지나하고는 다르다.
“푸아아아앗. 푸각...”
순간 총을 들고 있던 군인들이 죄다 피를 뿌리며 터져 버렸다.
“뭐...뭐야....”
정장A는 놀라서 그들을 돌아보았으나.
대답하는 건 그저 뿜어져 나오는 핏소리 뿐이었다.
“너...넌 뭐야?”
정장A는 돌발 상황에 조금은 당황하며 예리를 가리켰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정장B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정장B의 모습은 변화가 없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죽어도.
그저 동료들의 피만을 뒤집어쓴 것이 변화한 모습의 다였다.
계속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저. 무표정하게.
마치 예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00367."
그런 그녀가 나지막히 중얼거린 말에.
정장A는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00367? 저 여자가!? 어째서 ... 이런곳에..”
“그러고 보니. 09782를 소거하러간 부대가 00367에게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 도 같은..”
“그..그딴 걸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
정장A는 여전히 당황하며 말했지만.
정장B는 어깨만 으쓱거릴 뿐이었다.
“너희도 죽어”
예리가 남은 그녀 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될껄?”
“안되다니?”
“09872는 곧 죽여주겠어. 우리는 이만. ”
정장A는 그렇게 말하더니 정장B의 어깨를 잡고 또 멀찍이 떨어져서 떨고 있는 진철의 다리를 잡고는 없어져 버렸다.
생각컨대 텔레포트 인 것 같았다.
하지만 사라지기 전 정장A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노려보았다.
그 눈에 있는 의미는.
그저 살기였다.
이것 참.
나는 점점 위험해 지고 있는 걸까.
“.......”
나는 남모르게 심호흡을 하곤.
사라진 그들의 서있던 곳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그녀를 불렀다.
“예리야?”
“저 여자들은 남자들하고 세트야. 게다가 남자들과는 다르게 각자 이상한 능력이 있어서 쉽게는 죽지 않아.
쳇.. 말도 걸지 말고 바로 죽였어야 했는데. 너 때문이야.“
“그....그러냐...”
아쉽다는 듯이 말하는 예리였지만.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정장A가 예리에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정장A 에게 힘이 최고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결국 힘으로 그들을 쫒아낸 것 같기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주저앉아 있는 지나에게 로 다가갔다.
“괜찮아?”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이봐?”
“그런 애는 내버려 두고. 돌아가자. 잘래”
“무슨 소리야. 어떻게 내버려둬”
“인간을 믿은게 잘못이지 뭐”
“너도 그 소리야?”
“응 인간은 믿을게 못돼? 사실이잖아? 너도 봐 놓구선.”
정장A와 똑같은 말을 하는 예리였다.
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진철이 지나를 배신한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꼬투리를 잡았다.
“그런데 인간은 믿을게 못된다면서? 그럼 나도 안 믿는 다는 거야?”
“아니.....”
“그럼 너하고 지나하고는 다를 바가 없는 거네?”
“나하고 쟤 하고? 움.... 그런가?”
그녀는 약간 생각하는 듯.
고개를 까딱하더니.
잠시 후 대답을 이었다.
“그래도 너하고 그 남자하고는 다르잖아?
넌 달라. 그래 넌 인간이 아니야.
그니까는 믿어도 돼“
뭔 소리라냐.
나도 엄연히 인간이 라고...
뭐 결국은 그 남자하고 내가 다르다고 칭찬하는 말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따진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녀의 마음속에 삐뚤어진 세계관은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다른 문제도 있으니까.
“아무튼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어”
나는 지나를 업어들고는 그 공원을 빠져나왔다.
어째서인지 예리는 계속 싫다고 신경질을 부렸지만 결국은 내가 이겼다.
근처의 다른 여인숙을 찾아 들어갔다. 여관주인이 여자 두 명을 대리고 방 하나를 찾는 나를 이상하면서도 부럽게 쳐다보면서 방을 내주었다.
그런 시선으로 볼 것 없다우.
나는 방으로 들어와 대충 이불을 깔고는 지나를 눕혔다.
“아저씨...아저씨...”
지나는 계속 고개를 이로 돌리고 저리 돌리며 진철을 찾고 있었다.
아마 의식을 잃고는. 꿈속이라도 해매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차려...그놈은 널 떠났다고..”
그런 소녀에게서....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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