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이 가득해 서로의 숨소리만이 유일한 소리로 들려오는 공간.
그 적막을 깬 것은 수수하지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한복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덩그러니 서 있는 한 사내였다.
"후회..안하십니까?"
내뱉은 말은 물기를 머금은 양, 절절하게 들려왔다.
그의 물음에 여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안합니다.'라고 대답을 하였고 그 대답에 사내는 또 한 번 물어왔다.
"그렇다면 떠난 당신을 그리워 하며 지낼 저는 생각은 하신겁니까?"
미동도 없던 여인은 그 물음에 여린 몸을 흠칫- 떨어오며 떨림을 감추기 위해 옷 소매에 작은 손을 더욱 감추어온다.
"그게 저와...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여인의 말에 사내는 작은 실소를 터뜨리며 여전히 뒷모습을 보이는 여인에게 '여전히 고집이 세십니다.'라며 허무한 듯 고개를 떨군다.
또 다시 찾아온 적막에 고개를 떨궜던 사내는 마지막을 결심한 듯 굳은 얼굴로 뒷모습을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본 당신은 뒷모습마저도 아름다우십니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보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딱딱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절절한 목소리로 말을 마친 사내는 뒤를 돌아 문으로 걸음을 옮긴다.그 발소리를 들은 밖에 있던 궁녀들은 문을 조심스레 스르륵- 열어 사내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멈춰진 발걸음에 궁녀들은 문을 닫지도 못하고 머뭇거릴 뿐 이도저도 못하였다.
"제 옆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행복은 바라지 않지만 행복하지 않은 공주마마의 모습은 더욱 싫습니다. 그러니 부디 행복하시길바랍니다."
스르륵- 소리와 함께 닫혀진 문. 그와 동시에 여인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여인은 생각했다. 백현이 너가 아닌 다른 사람의 곁에 있는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것 이라고, 그 말을 지킬 수 없어 미안 하다고.
소리 없는 외침은 입 안에서 맴돌 뿐 이였다. 볼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눈물 한 방울은 그저 밤새 잠을 뒤척여 눈이 피로하여 나는 것 뿐이라며 애써 지워냈다.
빙탄지간(氷炭之間) 01
얼음과 숯의 사이처럼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를 말함.
(부제: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훌쩍-"
얼마 전, 영화 DVD를 대여하기 위해 간 대여점에서 영화를 고르다 구석에 쓰여진 문구에 궁금증이 생겨 가까기 가보니 '일주일만 대여해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어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께 이게 무슨 말이냐고 여쭤보니 말그대로 일주일동안만 대여해주고 이제 대여가 불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그럼 일주일이 지나면 대여가 불가능 하다는 건가?
갑자기 밀려오는 궁금증에 빙탄지간(氷炭之間)이라 쓰여있는 DVD를 집어 계산대에 놓곤 대여비를 내며 또 할아버지께 여쭈어봤다.
"할아버지, 그런데 왜 일주일만 대여하고 대여 안해주는거에요?"
"우리 할멈 마지막 작품이거든. 그 여편네 마지막 소원이 이거 재밌게 봐주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그러고 떠났어. 망할 여편네."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할아버지였지만 험한 말 속에서 느껴지는 애정과 먹먹함에 더는 물어보지 않기로 다짐하고 DVD를 빌린 후,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런데, 미친...
이렇게 슬픈 영화가 어떻게 유명하지 않을 수 가있어?
아직 초중반인데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명연기에 눈물샘이 폭발해 훌쩍- 거리며 옆에 있던 휴지를 몇 장 뽑아 코를 풀었다.
그런데 여주 왜 저렇게 답답해..내가 영화 주인공이였으면 어? 박력있게!!!! 뙇!!!!! 난 너가 좋아!!!!!!!라고 말했을텐데..쩝.
잠시 진정하기 위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뒤,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았다.
아까 그 할아버지가 분명 자기 아내의 작품이랬던가.
와...이 정도 작품이면 흥행하고도 남을 법 한데 어떻게 된게 언급 한 번 된적이 없지?
아직도 가시지 않는 여운에 고개를 흔들며 재생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어디선가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우이.'
방금 어디서 고맙다고 그런 것 같은데...잘못들은 건가? 하며 다시 리모컨으로 손을 뻗는데 또 한 번 그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마지막 작품 재미있게 봐줘서 진심으로 고마우이.'
'그런 기념으로 이 늙은이 저승으로 가기 전에 선물 하나 주려하는데 어떻겠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목소리는 뚜렷하게 들려왔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내가 지금 미친건가, 하며 생각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작품'이란 말에 대여점에서의 할아버지 말씀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내가 원래 이렇게 차분했나 싶을 정도로 침착하게 허공에 말을 건냈다.
"선물..이라뇨?"
허공에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 나 지금 미친짓 한건가? '그럼 그렇지-'라며 중얼 거린 뒤, 소름 돋은 팔뚝을 한 번 쓰다듬었다.
'...그 늙은이가 내 이야길 했나보네. 부질없는 짓을..'
'아, 늙은이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대답이 늦었구려. 내 빨리 선물을 주고 떠나야겠네.'
쏟아지는 말들에 잠시 멍-하다가 다시 한 번 '선물이라니...'라고 묻기도 전에 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오면...그 늙은이한테 나 없어도 잘 살라고 전해주이.'
그 말을 끝으로 탁- 소리와 함께 더 이상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뭐,뭐야. 나 진짜로 귀신이랑 대화한건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선물은 무엇을 말하는 건지 골똘히 생각하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냥 영화나 보자, 라고 생각하며 리모컨을 손에 쥔 뒤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몰려오는 잠.
갑자기 쏟아지는 잠에 눈커풀에 힘을 줘보려 노력해도 서서히 감기는 눈에 무기력하게 잠에 들고말았다.
그렇게 잠든 여주의 앞에 켜진 티비에는 주저앉은 여인의 모습에서 잠시 검은화면으로 바뀌었다 서서히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내의 모습으로 장면이 바뀐다.
이제 막 잠에서 깬 사내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에 방금 막 들어온 어머니가 사내에게 물어온다.
"무서운 꿈이라도 꾼 게로구나."
자신의 눈물을 쓱- 닦아오며 물어오는 어미에 사내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닙니다."
"그럼 슬픈 꿈을 꾼것이냐?"
"아닙니다."
"그럼 대체 우는 이유가 무엇이냐."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행복한 꿈을 꾸었는데 어찌 운것이야."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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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잡에 처음 글을 쓰게 된 넌센스퀴즈입니다.
맞춤법 지적 환영하고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사진은 한복을 입은 상태라고 생각해주시길 바랄게요ㅠㅠ
첫화는 무료!
[암호닉] 받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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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혁 혹시 턱 자란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