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그가 이불을 잔뜩 끌어안고 벽으로 몸을 돌렸다. 간헐적으로 떨리는 어깨. 아마 이유에는 못 견디게 괴로운 어깨와 무릎 통증도 있었겠지만, ‘그날’이 생각나는 듯 싶었다. 우리에게 그날은 언급해서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역린이 되어있었다. 평소에는 미친 사람처럼 잊고 지내더라도 그날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는 이불을 끌어안고 울음을 숨겼다. 나는 차마 위로할 수 없는 손을 이불 속에 꽁꽁 숨긴 체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기를 수만번 반복했다.
“으악!”
“…조심하십시오.”
그는 부러 다음날이면 쾌활하게 굴었다. 성한 어깨에 그의 어깨 높이의 목발을 지고 총총거리다가 얼마 못 가 미끄러지곤 허허 웃기 일쑤였다. 나는 그러면 그가 안쓰러워 아무런 말도 못하고 꽃들을 갈무리해서 병들에 꽂아 넣었다. 우리는 먼 외국으로 나와서 어울리진 않지만 꽃집을 열었다.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꽃들이 그는 좋다고 말했고, 나는 비웃었지만 동조했다. 가끔씩 남한이건, 북한이건 감시자들이 따라붙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처음에는 불같이 성을 내보기도 했지만 모두 부질 없는 짓이란 것을 깨닫고 포기하게 되었다. 다만, 언제고 우리를 죽일지 모르는 그들이라 날 선 칼들을 몸에 지니고 다닐 뿐이었다.
“오늘은 부케 주문이 들어왔으니까, 리해진 동무가 솜씨 좀 발휘해보게.”
근사한 바닷가 근처에 자리 잡은 꽃집 앞에서는 종종 결혼식이 성대하게 열리곤 했다. 이국의 신랑 신부가 멋진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자태를 뽐내며 만인의 축복을 받곤 할 때면, 그는 내게 성한 너는 얼른 장가를 들라며 닦달하곤 했다. 나는 그러면 그를 노려보지만 그는 석양 지는 바다를 바라볼 뿐 내게 고개 한번 돌린 적이 없었다.
“정말 제가 장가라도 들었으면 좋겠습니까?”
“당연한 거 아니네. 음, 아이도 태어나면 더 좋고.”
“정말…,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상하게 심각해져서 집요하게 캐묻자 그는 더 이상의 대답 없이 푸시시 웃은 후에 내 머리를 탈탈 털었다. 골 난 내가 엉성하게 걷는 그에게 다가가 정말입니까? 귀찮게 반문하자 그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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