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생활자들의 작업의 원리 C
백현 경수
(주의: 1 야해서 불마크가 아니라 불꽃 튀니까 불마크... 2 떡이 빨리 쓰고 싶어서 용량 조절 실패.. 기니까 포인트도 40..)
| 스릉흐는 암호닉 |
함박눈 떡덕후 댜릉 레디 노리 우산 폼 망고 타어타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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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지금 갑작스러움의 연속인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 상황이라기보다는 오늘이. 그것도 아주 많이. 갑작스럽게 백현이 저를 찾았고, 갑작스럽게 찬열이 찾아왔으며. 갑작스럽게 셋이 식사까지 했다. 그리고, 더욱 갑작스럽게........ 셋이, 술을 마시러, 왔다.
우리 지금 밥 먹으러 갈건데 같이 갈래? 라는 찬열의 뜬금없는 물음에 백현은 흔쾌히 승낙했고, 그때도 백현의 꽃미소에 허덕이느라 상황 파악이 느렸던 경수는 뒤늦게야 어? 어? 어..? 어어.. 하며 둘을 따라나섰다. 오늘따라 백현의 발걸음이 전투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셋이 향한 곳은 학교 근처의 백반 집이었다. 평소 백현과 경수가 자주 찾는 곳으로, 저렴한 가격에 저렴한 재료. 대신 푸짐한 양과 맛으로 교내에선 입소문이 난 곳이었다. 양 옆에 백현과 찬열을 끼고 들어간 경수는 그때부터 뭔갈 느끼기 시작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자면, 자리 문제. 일행은 세명이었고 의자는 네 개. 백현과 찬열은 각자 두 자리 중 양 끝에 앉았다. 그리고 그들은 경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경수야, 여기 앉아. 응? 아, 그래.. 앉아야 하는데.. 경수는 다리가 바닥에 붙어버린 것 마냥 멀뚱히 서서 두 사람을 연신 훑었다. 오늘 이상하게 자꾸 능구렁이마냥 구는 찬열 옆에 앉느냐, 아니면 오늘따라 더 다정한 백현의 옆에 앉느냐. 물론 찬열의 옆에 앉는 것이 더 편하겠지만, 그렇다면 백현을 마주보고 밥을 먹어야 하는데. 못 생겨 보이잖아! 그럼 차라리 백현이 옆에.. 경수는 한 발, 백현의 쪽으로 움직였다. 백현의 얼굴이 눈에 띄게 환해졌지만 경수는 발을 떼다 말고 멈칫, 하며 그 자리에 섰다. 아, 아니야. 백현이 옆에 앉으면 떨리잖아.. 그리고 옆에 있으면 백현이 얼굴을 못 봐. 그래서 경수는 이번엔 찬열의 쪽으로 한 발 움직였다. 찬열의 얼굴이 환해진 것 같았지만 경수는 다시금 고개를 드는, 백현이가 볼 '밥 먹을 때 못생긴 도경수'에 대한 걱정에 다시 멈춰섰다. 결국 경수는 처음 그 자리였고, 답답함을 못이긴 찬열이 빨리 앉으라니까. 하며 제 옆에 앉힘으로써 자리 쟁탈은 끝이 났다. 아, 좀 살살 잡아당겨. 찬열에게 잡힌 팔을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경수가 투정을 부렸다. 아팠어? 미안해. 하고 경수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은 찬열이 제 앞에 앉은 백현을 쳐다봤다. 아직도 아픈 티를 팍팍 내며 팔을 문지르느라 정신 없는 도경수를 무시한 채 백현에게 벙긋벙긋, 입모양으로 한 마디. 봤냐? 백현의 얼굴이 구겨졌고, 찬열은 실실 웃었다. 이 상황이, 너무 즐겁다. 현재 스코어 1:0.
경수야, 이거 먹어봐. 맛있다. 미안한데 경수 뜨거운 거 잘 못 먹거든. 친하다면서 아직 그런 것도 몰랐나봐. 맞지, 경수야.
아니, 근데 이 잡 것들이 진짜.. 처음은 백현이 제가 먹던 찌개를 한 수저 떠서 건네주며 한 말이었고, 그 다음은 진짜? 하며 입을 벌리려는 찰나에 찬열이 제 목덜미를 당겨 뒤로 놓으며 던진 말이었다. 박찬열 대체 왜 저래? 경수는 이를 악물고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열아, 나 뜨거운 거 이제 잘 먹어. 괜찮아. 그르느끄 으즈 그믄 흐. 즈그 브르그 즌으. 뒤엣 말은 물론 백현이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게. 거지같은 박찬열은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지만 경수는 여전히 불안했다. 저새끼가 무슨 약을 빨아서 오늘 이러냐고.. 그 뒤의 상황은 뻔했다. 아, 그래? 미안해. 경수야. 하고 곧바로 사과한 백현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왜인지 모르게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 경수가 생각하기엔 백현도 찬열만큼이나 사교성이 무척 좋아 서로 친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이 적다. 백현이는 은근히 낯 가리는 타입인가, 근데 박찬열은? 절대 아닌데? 경수가 우물거리며 찬열을 힐끗 올려보자 찬열은 묵묵히 밥만 먹고 있는 백현의 머리 꼭지를 보며 실실 웃고 있다. 경수는 백현을 따라 조용히 눈을 내리 깔고 식사에 집중 했다. 그래, 박찬열이 오늘 약을 한게 분명해.. 마약 신고는 경찰서에 해야 하나.. 그렇게 셋은 묵묵히 밥만 먹었다. 간간히 실실거리며 경수에게 시비 아닌 시비ㅡ경수야, 너 눈 떨어지겠다. 경수야, 맛있어? 경수야. 왜 오늘따라 말이 없어. 경수야, 왜 이렇게 작아? 따위의ㅡ 를 걸던 찬열을 제외하고.
이제 밥도 다 먹었는데, 뭐하지?
집에 가자고! 집에!!!!!! 집!!!!!!! 너는 니네 집!!! 나는 우리 집!!!!! 뜨거운 거 못 먹는 경수 이후 급속도로 냉각된 분위기의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ㅡ 경수는 일 분이 한 시간 같았다ㅡ 찬열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자고 일어나서 소리치고 싶은 경수였지만, 앞에 앉아 저를 무표정으로 저를 빤히 쳐다보는 백현의 눈치를 보느라 입도 뻥긋 할 수 없었다. 저렇게 표정이 없는 백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혹시 제게 화가 났나. 싶지만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걸.. 대체 왜때문이죠? 경수가 혹시 내가 잘못봤나. 싶어 눈을 이리 데굴, 저리 데굴 굴리다 백현을 다시 쳐다봐도 백현은 경수를 보고 있었다. 마치 태울 것 처럼. 경수는 다시 가슴이 뛰는 걸 느꼈고, 그래서 더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우리, 이제 그만 각자 헤어지는 게.. 라고 운을 뗀 경수였지만, 그와 동시에 벨소리가 울렸다. 그것도 경수의 테이블에서.
열아, 너야? 아니? 나 아닌데? 내 벨소리 그거 아니잖아. 그럼 백현아, 너야? .......나도 아냐. 그래? 나도 아닌데..
박찬열의 벨소리는 시대에 뒤떨어진 소년시대의 아가러보이였다. 소년시대의 대연이 그렇게 제 스타일이라나. 물론 경수도 소년시대의 제시가 좋았지만 저런 오덕과 저는 별개였다. 감히 나를 누구랑.. 그리고 백현의 벨소리도 아니라면 저라는 얘길텐데, 제 벨소리는 저게 아니다. 아닌가? 확실히, 대학 친구들용 벨소리는 팝송이다. 게다가 그건 지금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그리고 가족들과 클럽 전용 핸드폰은 항상 무음인데.. 벨소리는 와중에도 계속 울리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확인을 해봐야지. 하하, 잠깐만. 경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오. 마이. 갓. 내 핸드폰이 맞다.
아, 응. 응. 알았어요. 주말에 한 번 갈게. 나도 보고 싶어. 사랑해. 하트. 누구야. 아줌마? 어, 반찬 가지러 한 번 내려오라고.
야, 나도 아줌마가 해주는 반찬 먹고 싶어. 안 먹은지 진짜 오래 됐단 말야. 건강 하시지? 나 안 보고 싶으시대? 아줌마 너보다 나 더 좋아하는데. 네가 맨날 그랬잖아, 엄마 바꾸자고. 그래, 그래.. 그래.. 경수의 대답엔 영혼이 결여되어 있었지만 찬열은 끝도 없이 주절거렸다. 너 다음에 갈 때 나 꼭 데려가. 어? 아줌마가 박서방 왔냐고 좋아하실걸. 그러던지 말던지.. 경수는 여전히 영혼리스의 상태로 전화를 받느라 반쯤 앞으로 숙였던 몸을 의자에 기댔다. 어제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제 다른 폰들에게까지 초대를 보내 다운 받게 한 것이 화근이었나보다. 실행시킬 때 소리로 바뀌었나봐. 그치만 좀비 쿠키가 너무 가지고 싶었는걸.. 갑자기 엄마 보고 싶네. 경수는 핸드폰을 쉽사리 가방에 넣지 못하고 매만지며 혼자만의 세상에 빠졌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 내 방도 보고 싶어. 아, 나 왜 자취? 아냐, 자취는 좋은 거야. 좋고 말고요.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가 자취의 로망 아니겠냐고. 경수는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는데. 아, 맞다. 백현이가 있었지..
경수야, 핸드폰이 두 개야? 어? 어.. 으어.. 어. 두, 두 개야. 피곤하거나 힘들 때 전화 꺼두면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가족들 전용으로 하나 더 가지고 있어. 아아. 그렇구나. 효자네, 경수.
사실 세 개야, 백현아.. 아까의 무표정은 간데 없이 온화하게 웃고있는 백현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경수는 울상을 지었다. 들키진 않았겠지? 그치만 백현인 내가 게인 걸 모르잖아! 그냥 좀 유별난 애라고 생각할 거야. 그렇구 말구. 오늘은 여러모로 날이 안 풀리는 것 같다. 이건 다 박찬열 때문이야. 얘, 얘들아. 우리 이제 집에 갈래?
벌써 집에 가게? 그렇게 빨리 나랑 단 둘이 있고 싶은거야? 친구가 되게 성격이 짓궂네. 경수야, 나 네 친구랑 아직 못 친해졌는데. 그, 그래서, 어쩌자고? 술 마시러 가자. 준면이 형이 너 보고 싶대. 맞아, 경수야. 나 사실 오늘 너한테 같이 술 마시자고 하려고 했어. 할 말 있거든.
이게 바로 셋이 새벽까지 준면ㅡ경수의 고등학교 시절 첫 사랑이자 첫 애인, 첫 키스부터 첫 섹스까지 모든 걸 가져간 1년 선배ㅡ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부어라, 마셔라! 를 하고 있는 이유였다.
술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셋은 여전히 미묘하게 냉랭했다. 경수는 제가 왕따인가 싶을 만큼 백현은 여전히 웃으며 찬열의 질문에 상냥하게 대답해주었고, 찬열 또한 그런 백현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꾸만 말을 걸었다. 분명 경수가 없어도 말이 잘 통하는 둘인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음산한지. 요즘 몸이 허한가? 보약이나 지어야겠어. 이미 찬열과 백현은 둘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듯 했고, 딱히 방해할 생각이 없던 경수는 먼저 성큼성큼 앞서 술집의 문을 열었다. 준멘! 나 왔어! 경수가 소리치자 주방에서 낯익은 얼굴이 걸어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경수는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준면에게 안겼다. 혀엉, 보고 싶었어. 찬열이 좀 혼내줘, 나 오늘 진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아.. 그래, 그래. 찬열의 욕을 늘어놓는 동안 준면은 품에 안긴 저를 도닥이며 맞장구를 쳐줬다. 내가 이래서 형이랑은 연락을 못 끊겠는거야. 실상 경수는 사귀고 난 뒤 헤어지게 된다면 그 남자와의 모든 연결고리ㅡ선물, 편지, 소품, 옷, 핸드폰 번호. 심지어 친구들까지도ㅡ 를 정리하는게 예의라고 생각했고, 늘 그렇게 했다. 그러나 경수에게 준면은 예외였다. 헤어진 이유 역시 제 바람 때문이었고, 그럼에도 준면은 저와 과거의 사귀기 전 친한 형 동생 사이처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경수는 처음엔 그럴 수 없다며 준면을 끊어내었지만 힘들거나 쳐지는 날엔 준면이 생각났다. 준면에게 안겨 울고 싶었고, 그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받고 싶었다. 결국 경수는 준면을 다시 찾게 되었다. 언제나 제 말을 들어주는 온전하게 제 편인 남자. 준면은 예전처럼 경수의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한참을 준면의 가슴팍에 매달려 부비적거리고 있었을까. 느그적느그적 걸어온 걸 티내듯 찬열과 백현이 들어왔다. 야, 그만 떨어져라. 무슨 매번 신파를 찍어. 쯧쯧 거리며 혀를 차며 들어온 찬열의 뒤엔 아까보단 얼굴이 밝아진 백현이 있었다. 혀엉, 저것 봐. 박찬열 말하는 것 봐. 또 이르냐? 당연하지. 넌 내 인생의 암이야! 백현의 앞이란 것도 까맣게 잊고 경수는 준면에게 매달려 투정을 부렸다. 형, 빨리. 빨리 쟤 좀 혼내봐. 준면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찬열아.
어? 왜. 오늘 계산은 네가 해. 오늘은 형이 돈을 좀 받아야겠어.
찬열의 얼굴이 굳어짐과 동시에 경수의 얼굴은 환해졌다. 극심한 희비교차. 아오, 씨발.. 내 알바비.. 얏호! 역시 준멘이 짱이야. 그럼 이제 자리에 앉아. 새 친구 무안하겠다. 얼른 앉아요, 가져다 줄게. 신이 난 경수는 어쩐지 서서 굳어진 것 같은 백현의 팔을 잡아 끌어 옆에 앉혔다. 백현아, 많이 먹어. 오늘 쟤가 쏠 거야. 그러곤 바닥에 주저 앉은 채 알바비.. 알바비.. 를 중얼거리며 돌이 된 찬열에게도 한마디. 야, 빨리 앉아. 어디 오늘 지갑 한 번 털어보자.
오늘은 마시고 죽는 거야. 알았어?
찬열의 협박 아닌 협박에 뉘예 뉘예. 하며 셋이 술잔을 주고 받은 게 얼마쯤 지났을까. 셋의 분위기는 상당히 유해져있었다. 이제 백현은 찬열에게 농담도 스스럼없이 툭, 툭 던졌고. 찬열도 그런 백현에게 질세라 받아쳤다. 그리고 경수는, 경수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사실 경수는 주량이 그렇게 세지 않았다. 언제나 바에 가면 칵테일이나 위스키 한 잔 시켜 놓고 반 잔도 채 다 마시기 전에 호텔로 향했으니까. 맥주나 소주는 대학 동기들 덕에 어느 정도 마실 줄 알았으나 그것들은 박찬열의 양주 러쉬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러니까 경수는 아마, 취한 것 같다. 준면의 술집이 언제 리모델링 한 건지 모르겠지만 술집 천장은 노란 색이었고, 그걸로도 모자란 건지 뱅글뱅글 돌았다. 준멘 취향이 바뀌었나보네... 어지러운 걸로.. 앞의 찬열은 세 명이고, 옆의 백현은 네 명이다. 그럼, 나까지.. 열 명? 우리 왜 이렇게 많아.. 많아.. 가뜩이나 좁은 어깨를 움츠리고 양 옆으로 흔들흔들하며 으헤, 하고 웃던 경수는 백현의 어깨로 픽 쓰러졌다. 우우왕. 백현이 어깨 짱 딱딱해.. 목침 같다..
" 경수야, 경수야. 취했어? 정신 차려봐." " 으으응, 아니야.. 안, 안 치해써.. 나 갱차나, 징짜루.. "
눈을 감은 채 입술만 오물오물 하던 경수는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 안 취해써.. 이거 바.. 하며 제 앞의 잔을 들었고, 기우뚱하며 상체를 한번 휘청인 경수는 바닥으로 잔을 놓쳤다. 쨍! 하는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경수는 백현의 어깨에 픽 고꾸라져 눈을 감았다. 아으응, 누가 내 침대에 목침 가져다 놨어. 나 목침 싫은데.. 경수는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그대로 놓고 잠에 빠졌다. 잠에 빠지기 전 경수야, 집에 가자. 하고 목침이 말을 한 것 같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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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가 제 어깨 위로 쓰러졌다. 잔이 깨지며 바닥엔 유리 조각과 여기저기 흩뿌려진 양주가 퍼졌다. 싸하게 코로 스미는 알코올 냄새. 썩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지만 백현은 웃을 수 있었다. 도경수가 제 어깨에 기대 잠이 든 이 완벽한 상황에 무슨 할 말이 필요할까. 경수는 취했고, 잠들었고, 제 옆에 있다. 제 손아귀에 있다. 이제 경수는 애석하게도 제게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백현은 잠이 든 경수의 얼굴을 꼼꼼히 훑었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볼, 가지런하게 감긴 눈. 흐트러진 머리, 살짝 벌어져 색색거리며 단내를 풍기는 발간 입술까지. 이제 이 모든 것은 백현의 것이 될 것이다. 백현은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백현은 환하게 웃으며 저를 흥미롭게 보고 있는 찬열에게 입을 열었다. 고마워. 일단은.
" 고마워 해야지. 나도 큰 맘 먹고 양보하는 거라고. 도경수가 네가 좋다지만 않았어도 끝까지 덤볐을텐데. " " 그래도 졌을걸? 너는 나한테 안 돼. "
무슨 근거로? 찬열이 살짝 발끈한듯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지만 백현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나는, 도경수 옆에서 친구나 파트너 따위로는 절대 만족 못했을 거거든. 근데 너는 그런 자질구레한 관계에 만족했잖아. 응? 그게 너랑 내 차이야. 찬열은 허, 하며 백현을 노려봤고 백현 또한 담담하게 찬열과 시선을 마주쳤다. 이윽고 찬열이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인정. 이제 데려 가. 여기 있다가 깨면 곤란하잖아? 그건 그렇지. 백현은 잠이 든 경수를 업었다. 그리곤 뒤를 돌아 걸어나갔고, 그대로 술집 문을 나서려나 싶더니 다시 뒤를 돌았다. 아, 박찬열. 어? 술 값 잘 내고 와. 깨진 잔 변상도 네가 하겠다. 고마워. 말을 마친 백현은 이제 아무 미련 없다는 듯 등을 돌려 술집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찬열은 여전히 멍하게 문을 응시했다. 아, 씨발.. 내 알바비..
아저씨. D오피스텔로 가주세요.
잠이 든 경수를 태운 택시는 출발했다. 백현은 경수의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한 후 경수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사락사락,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고 백현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사실 초반까지만 해도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박찬열은 끊임없이 저를 도발했다. 그리고 도경수는, 박찬열의 도발을 도왔다. 그게 고의던 아니던지 간에. 박찬열의 옆에 앉았고, 뜨거운 걸 먹지 못한다는 찬열의 말에도 난처하게 웃기만 할 뿐 부인하지 않았다. 자신은 모르고 있던 사실을 그 개만도 못한 새끼는 알고 있었다. 백현은 그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경수에 대해선 자신이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했고, 자신만이 알고 있어야 했는데. 자신이 모르고 있던 사실을 누군가가 안다는 게 백현은 참을 수 없었다. 거기에 박찬열은 자신이 모르는 어린 경수까지도 알고 있었다. 경수의 어머니와도 아는 사이인 듯 했고, 경수는 찬열이 귀찮아 아무렇게나 대답했던 모양이지만 찬열이 자신을 박서방이라고 칭하는 것도 백현은, 사실, 굉장히 좆같았다. 당장이라도 그 개만도 못한 새끼의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을 만큼. 그렇지만 백현은 혹시라도 경수가 제 표정을 보고 뭔가를 알아차릴까, 아니면 저를 무서워할까 싶어 고개를 숙인 채 밥만 꾸역꾸역 먹었다. 물론 반도 다 못먹고 남기긴 했지만. 아, 맞아. 그러고 보니..
" 핸드폰이 두 개란 말이지, 도경수. "
백현은 색색 잠이 든 경수를 힐끔 내려봤다. 테이블 위에 있던 핸드폰은 분명 내가 아는 번호일 것이고, 경수의 주머니에 있겠지. 다른 건.. 백현은 제 옆에 놓아둔 경수의 가방을 열었다. 어깨에 기댄 경수가 혹시 깰까, 꽤나 불편한 자세로 손만 집어 넣어 뒤적거리던 백현은 둔탁한 무언가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두 개 라며, 더 있어? 이거 정말 씨발년이네. 백현은 간신히 핸드폰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하나는, 아까 경수가 엄마랑 통화하던 핸드폰이 맞았다. 전화번호부를 보니 엄마, 아빠, 형. 그리고.. 박찬열이 있었다. 이새낀 여기 왜 있는데? 확 택시에서 떡을 쳐버려. 백현은 가족용 핸드폰을 다시 경수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나머지 하나의 전화번호부는 꽤 복잡한 편이었다. ㄱ부터 ㅎ까지, a부터 z까지 없는 이름이 없었다. 카이는 또 누구야. 외국인이야? 이 미친년을 진짜. 그 핸드폰에도 찬열의 번호가 있었다. 저장명은, my hero. 백현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이 썅년을 지금 깨워야 할까? 그러나 백현은 말 없이 그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물론, 이번엔 자신의 가방에.
술을 마시러 가는 동안에도 찬열은 끝없이 자신을 자극했다. 키가 몇이야? 머리가 되게 길었나봐. 머리 긴 애들이 키가 안 큰다던데. 어디서 성격 고치라는 소리 안 들어봤어? 야, 근데 너 진짜 억울하게 생겼다. 등등. 인신 공격에서부터 유치한 이름 공격까지. 그 전의 심리전에 비하면 이건 코웃음 칠 거리도 아니었지만 상대가 박찬열이라는 사실에 백현은 짜증이 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 조목조목 다 대답해주었고, 은근히 되받아쳤다. 너는 키만 컸나보다. 원래 키큰 애들이 좀 멍청하다던데. 진짜야? 있지, 찬열아. 너 어디서 이빨 많다는 소리 못 들었어? 경수는 저와 찬열이 친해진 줄 알았겠지만, 그저 심리전의 연속이었을 뿐. 관계의 판도가 뒤바뀐 건 경수가 술집으로 먼저 들어가고 난 뒤 근처 골목에서의 십 분 때문이었다.
너 도경수 좋아하지. 그렇다면? 근데 왜 모르는 척 해, 저 둔탱이 불쌍하게. 서서히 길들이는 맛도 있잖아. 모르나? 하긴, 멍청해서 알 리가 있나.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너도 도경수 좋아하는 거 아니야? 좋아해. 그치만 난 원래 친구고 파트너라. 이제 와서 애인 자리 꿰차긴 좀. 나랑 사귀면 도경수랑 두 번 다신 떡 못칠걸. 글쎄. 그건 나중에 가봐야 알겠지. 경수 술 못해. 취하면 데려가. 그런 다음은 똑똑한 네가 더 잘 알겠지, 뭐. 왜 도와주는건데? 그을쎄.
백현의 목소리는 예민했다. 그간의 짜증과 의심이 가득했으며 날카로웠지만 반면에 찬열의 목소리는 여유롭고, 느긋했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 백현은 찬열의 오만함에 더는 참을 수 없었고, 다가가 찬열을 멱살을 잡아 채며 아래로 당겨 저와 눈을 마주치게 했다. 왜, 도와주는 거냐고. 찬열은 드디어 제 앞에서 이를 드러낸 들개에게 감격했고, 그래서 더 크게 웃어버렸다. 그리곤 제 웃음에 얼굴의 표정을 지운 채 손에 더욱 힘을 준 백현과 눈을 마주쳐 웃어보였다. 그냥, 재밌잖아.
아무래도 그 새끼는 정말 개만도 못한 새끼 같단 말이지. 재미때문에 친구를 팔아? 뭐, 그덕에 내가 이러고 있는 거긴 하지만. 백현이 이전의 일들을 곱씹는 동안 택시는 D오피스텔에 도착했다. 백현은 잠든 경수를 업고 제 오피스텔로 향했다. 경수를 업고 들어온 백현은 경수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곤 방 문에 걸려있던 넥타이로 경수의 두 손목을 결박 시켰다. 경수는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백현은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워서 창문을 열고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아, 도경수. 백현은 제 침대에 눕혀진 경수를 바라보다 이내 제 서랍에서 박스를 하나 꺼냈다. 플라스틱 따위가 부딪히며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던 박스는 경수가 눕혀진 침대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경수가 깨어나면 선물로 줄 것들이 참 많았다. 하나 하나 경수를 생각하며 사 모으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이렇게 가득 차버렸다.
백현은 경수에게 물어볼 것이 참 많았다. 박찬열과는 언제부터 그런 사이가 된건지, 아까 술집에서 그 남자는 누군지. 또 왜 안겨있었는지. 그리고, 왜 핸드폰이 세 개인지. 사실 물어보자면 끝도 없이 많은 질문이었지만 백현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은 아주 길어질 것 같으니까. 그리고 아마 도경수는, 제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말이지. 백현은 경수의 위에 올라타 고개를 숙여 경수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아주 낮게 속삭였다.
" 왜냐하면 말이지, 경수야. 내가 너를 놔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야. "
오늘 밤은 아주 길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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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으유ㅠㅠㅠㅠㅠㅠㅠㅠ저 진짜 열심히 썼으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이 대체 몇 시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백도 떡을 쓰고야 말겠다는 이 거지같은 의지.. 나징 망징.. 잠이나 자지.. 그렇지만!!!!!!!!!!! 이렇게 모든 이야기를 C에서 마감해쓰니!!!!!!!!!!
드디어!!!!!!!!!!다음 편은!!!!!!!!!!!!! 님들도 기다리고 나도 기다리던 떡!!!!!!!!!!!!!!!!!!! 안 기다리셨쎄여? 괜찮아여.. 제가 기다렸거든여..
저는 그 떡을 쓰기 위해 앞 스토리를 구상한거니까여.. 포인트 10이나 높아서 재성해여 그치만 진짜 길게 썼으니까.. ㅂ.. 봐주세요.. 사랑..
아마 다음 편 떡은 수위가 굉장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포인트도 높을 것으로 예상.. 50 찍을것 같네요.. 또 죄송해요.. 그치만 나중에 번외 떡은 낮게.. 작게..
지금 졸려서 헛소리 하는 거 같지만 그래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사랑해요ㅜㅜ 그치만 성의 없는 댓글은 볼 때마다 약한 쿠크.. 조금.. 상처..
다른 소재도 잔뜩 구상했으니까 이 시리즈 끝나도 저는ㅎㅎ.. 배또를 팔 것 같네요..ㅎㅎ..(사실 됴총 분자에요 수근수근이수근)
백도 안에서 행복하시고 남은 주말 잘 보내세요~♡
월요일까지 약 21시간 남았다고 한다. 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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