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 말고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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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톨즈를 구상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중장편 단위로 생각하다보니까 너무 풀 이야기가 많아지고 그러다보니까 복잡해지고 하아아 머리가 아파서 잠시 멈췄어요.. 그래서 그동안 보시라고 은여우 백현이.. 전 그냥 피스톨즈라기보단 은여우 백현이가 보고 싶은가봅니다......... 반인반수.......조으다...................... 기다리신 분 있으시다면 정말 죄송해요ㅜㅜ 그리고 암호닉은 꾸준히 받긴 하지만 여기엔 쓰지 않겠슴당! 중복된 암호닉도 있는 것 같고 해서 다시 글 확인하고 다음 편에 올릴게요.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여름이니까 더위 조심하세요.. 감기도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백도 안에서 행쇼! 못 쓴 썰도 점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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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신부 上 |
여우신부: (제물과_여우가_.txt) (피스톨즈 쓰려다가 생각 안 나서 쓰는 썰)
"아가, 우리 아가.. 어쩌면 좋누. 응? 이걸 어쩌면 좋아."
이미 잔뜩 부어 뜰 수조차 없을 것 같이 붉게 부은 눈두덩이에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제 어미는 울었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물이 나올까, 혹여 저러다가 몸이 빼싹 말라 죽어버리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 경수는 손을 들어 제 어미의 어깨를 쥐었다. 어머니, 저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정말, 정말루……. 어떻게든 어미를 위로해보고자 하는 손짓으로 하얀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아 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새어나오지 못한 말들과 함께 울음이 속에서 끓어올랐지만 경수는 괜찮았다. 그저 지금 제 어미가 그만 울기를 바랄 뿐.
"살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어쩌면, 어쩌면. 좋은 분일지두 모르잖아요. 어머니가 그러셨잖아요, 저는 어딜가서두 사랑 받을 수 있을거라구. 정말 괜찮아요. 그리구 제가 가면 우리 집도 훨씬 좋아질 거예요. 아시잖아요. 아버지랑, 어머니랑……누이까지, 다들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머니. 그만 우세요. 네?"
경수는 잔뜩 굳은 안면 근육을 애써 끌어올려 웃는 낯으로 바꿔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억지로 끌어올린 근육에 눈 밑이 파들거리며 떨려왔지만 웃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경수의 말은 사실 어미도, 저도. 그리고 밖에서 자신의 무능을 탓하고 있을 아비 또한 알고 있는 거짓말이다. 그리고, 제 방에서 어쩌면 저보다 더 울고 있을 누이까지. 경수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아니, 살 수 없을 것이다. 제물로 선택 된 이상, 앞선 제물들과 다를 바 없이 죽을 것이다. 몸이 갈가리 찢겨져 핏물 선연한 채 강가에 나부끼고, 채 정리되지 않은 뼈만이 동굴에 남아 부모를 반길테다. 아아, 머릿가죽이라도 남는다면 가져가 태워 묻어주기라도 할텐데, 뼈만이 남아 굴러다닌다면 이미 동굴을 가득 채운 뼈들과 엉켜 저는 죽어서도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경수는, 홀로 남을테다. 눈 앞이 선득한 두려움에 경수는 제 마른 어깨에 고개를 묻고 흐느끼는 어미의 등을 토닥여주지 못했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경수는 눈을 감았다.
"올해엔 또 흉년이 들겠어, 흉년이…" "이번엔 또 뉘집 딸년이 잡혀갈꼬.. 어이구, 불쌍한 년들."
마을에 흉년이 들었다고 했다. 유난히도 흉년이 잦은 경수의 마을은 해마다 마을을 지켜준다는 여우신에게 처녀를 바쳤다. 갓 스무살이 된, 결혼을 하지 않은 순결한 처녀. 제사장이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제사를 지내면 그 해엔 누구를 바쳐야 할 지 명령이 내린다고 했다. 해마다 스무살이 되는 처녀 아이들은 제사 날이 다가워질 때까지 벌벌 떨며 방 안에 박혀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거나 시집을 가곤 했다. 처녀 아이들을 바쳐서 뭘 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경수는 잘 모르겠다. 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심 끝에 골라낸 처녀를 단장시키고 여우신이 잠자고 있다는 산 속 동굴에 데려다두면 이튿날 그 처녀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몇일 뒤 산을 끼고 흐르는 강물을 타고 갈기갈기 찢긴 살덩이가 냇가로 떠내려 왔다. 어미는 울다 실신했고, 아비는 자살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었다. 한, 십 몇 년 되었을까….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사실은, 신이 아닌 산속 짐승들이 처녀를 뜯어 먹고 버린 것이라는 것을. 결국 그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해마다 제물을 바치는 일을 감행했다. 그것이 선례에 대한 예의였고, 마지막 희망이었다. 올해 경수와 경수의 누이 경아는 스무살이 되었다. 경아는 스무살이 되던 첫 달의 마지막 날 경수의 벗 찬열과 혼인을 했다. 달이 오르고, 붉은 혼례복을 입은 채 복숭아 꽃처럼 환한 얼굴로 수줍게 웃는 제 누이는 참으로 예뻤다. 그리고, 제가 남몰래 품어왔던……저의 오랜 벗의 얼굴도 참으로, 고왔다. 둘의 얼굴이 참으로 고와서, 너무 고와서, 경수는 식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식이 끝난 뒤, 경수는 아무도 모르게 냇가로 달려가 저린 가슴을 내리치며 엉엉 울었다. 그 환하던 얼굴이, 그 굳센 성질을 보여주듯 곧게 뻗은 눈썹이, 언제나 저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던 그 눈빛이, 제게 누이를 은애하고 있다고 말하던 그 입술이…… 이제 영영 누이의 것이 되겠구나. 찬열이 소중한 만큼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누이이기에 경수는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없었다. 실컷 울고 난 뒤 바위에 앉아있던 경수는 허리께에 닿은 머리카락이 어색해 끌어 모아 앞으로 내렸다. 신부는 붉은 색과 황금 색의 비단옷, 신랑은 푸른 색과 금색의 비단 옷. 신랑과 신부, 그리고 부모를 제외한 모든 객들은 흰 색과 검은 색의 옷을 입어야 했다. 땋아 올린 신부와는 다르게 신부의 형제들은 긴 흑발의 가발을 써야했는데, 이는 신부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의 복은 높이, 과거에 쌓았던 액은 모두 형제들이 나누어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가발, 벗어버릴까…. 제 것이 아닌 머리결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긴 경수의 뒤로 사락, 하는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게 누구십니까." "……" "누구나 얼굴을 밝히고 밝은 곳만을 밟아야 하는 신성한 혼례의 날입니다. 객은 누구신데…!" "밝은 곳만을 밟는다…. 이미 네 먼저 어긴 언약이로구나. 이곳은 어두워. 안 그래?"
어두운 나무 사이로 나타난 사내는 빛을 몰고 들어왔다. 설명이 안 되겠지만 경수는 그렇게 밖에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빛을 몰고 다니는 사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은빛으로 휘감은 사내의 입술과 머리색은 붉었다. 마치 오래 전에 언뜻 봤던, 덮인 지푸라기 사이로 흘러나온 살덩이에 말라 붙은 피마냥 검붉은 머리. 존재부터 위화감을 조성하는 사내에 경수는 슬금슬금 앉은 바위 뒤로 엉덩이를 끌었다.
" 누, 누구. 누구세요." "네 생김새 꼭, 복숭아 꽃을 닮았어. 향이 달아. 응? 계집, 이름이 뭐야." "ㄷ, 도가의 경이라고 합니다. 이제 객의 이름을 말씀해주세요. " "내 이름? …알게 되면, 벗어날 수 없을 텐데. …그것도 나쁘진 않지. 이런 날 만나는 걸 보니 인연인가. 백, 백이라고 불러."
백, 백? 낯선 사내의 등장에 예전에 쓰던 아명을 말해버린 경수였지만 사내의 이름 또한 외자일 줄은 몰랐다. 백, 백이라.. 어느 집안이지. 저런 옷이면, 저런 머리색이면 필시 평민은 아닐테다. 그렇다면, 왕족.... 왕족이 왜, 여기? 퍼뜩 고개를 든 경수의 눈 앞엔 바람만이 스쳤다. 백이라던 사내는 온데 없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귀신에 홀린걸까.. 두려움에 빠진 경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직도 환하게 비추는 혼례식의 잔치에 참여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경수를 스치고, 귓가에 목소리가 흘렀다.
"다음에 다시 보자, 도화.(桃花)"
목을 쓰다듬는 듯한 바람이 무척이나 묘한, 혼례일의 밤이었다.
"이번 제물은… 댁의 여식이 되었습니다. 명이 내려왔어요. " "이 무슨! 경아는 혼인을 올렸지 않는가. 합당한 제물은 순결한 처녀이건만, 우리 경아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 혹시, 왕실의 사주를 받았나? 나를 몰아낸 것으로도 모자라 내 여식을 죽이고 내가 죽는 걸 보고 오라고 해? 입이 있다면 말을 해보게. 말을!" "저도 잘 모릅니다. 명이 내려왔어요. 언제나와 같은 목소리가 아닌, 훨씬 더 위압적이고 거친. 아무래도, 정말 여우신인가봅니다. 도가의 딸년을 데리고 오라셨어요.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합니다……."
제사장의 목소리와 아비의 목소리가 온 집안에 울리며 방 안에 앉아있던 경수는 퍼뜩 일어나 밖으로 뛰쳐 나갔다. 제사장의 멱살을 잡고 울부짖는 제 아비의 모습과, 그 앞에 서서 자신도 고통스럽다는 듯 눈썹을 찌푸린 채 입술을 짓씹으며 사과를 하는 제사장의 모습. 경수는 유령처럼 발을 옮겼다. 도가는 원래 이런 시골 마을에 있을 가문이 아니었다. 진왕족을 제외한 왕족의 10가문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도가는, 경수와 경아가 어릴 때까지였을 때도 태국은 위세를 떨쳤다. 도가는 대대로 권력을 바라지 않고 후세를 양성하는 교육에 힘써왔고, 그로 인해 왕실의 관직 대부분은 도가가 양성한 후세들이 많았다. 반역을 걱정한 진왕족이 억지 명분을 씌워 도가를 10가문에서 내쳐버리곤 아비의 신분을 평민으로 하락시켰다. 태국은 아비의 신분에 따라 자식과 부인의 신분이 결정되는 나라였고, 결국 쫓겨난 도가는 진왕족의 눈을 피해 시골 마을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남매와 같이 자라며 하루 하루를 같이 했던, 왕실에 있었더라면 왕실 제사장으로 명성을 떨쳤음이 분명할 만큼 그 신력이 대단하지만 저희를 따라 가문의 성까지 버리고 내려온, 김가였었던. 마을 제사장, 준면. 그는 울고 있었다. 제 아비보다 더한 울음을 속으로 울고 있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제 누이가 제물이 된다면, 누이는 죽을 것이다. 어미와 아비의 걱정과 함께 간신히 묻어두었던 벗의 얼굴이 떠올랐다. 찬열…. 많이, 울겠지. 너도. 누이가 죽는다면, 너는… 살 수 있을까. 너는, 누이와 닮은 나를 보며 잘 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찬열은 스스로를 원망하며 하루하루 말라갈 것이다. 그리곤, 누이를 따라 죽겠지. 그걸 두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누이는 지금 아이를 품고 있는 상태였다. 벗과 누이를 닮은 아이. 온 세상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지. 고귀하고 순결한 아이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죽을 수 있다.
" 그만, 그만 두세요. 아버지도, 형도. 제가 갈게요. "
순간 아비의 울음과 준면의 한숨이 멈췄다. 둘의 시선이 경수에게 닿았고, 대신 누이는 모르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갈게요. 저는, 살 이유가 없으니까…. 차오르는 뒷말을 삼키며 경수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제물의 명이 내려진 뒤 닷새도 되지 않은 아침이었다. 제물을 가져다 두어야 할 시간은 달이 뜨는 밤이지만 처녀들의 꾸미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여섯 시간이 걸렸고, 경수는 사내다보니 처녀들의 배는 들터였다. 부드럽고 치렁치렁한 속치마를 입고, 그 위에 덧치마. 여성의 태를 위해 허리를 조였다. 풍성해 보이기 위해 걸친 옷들이 무겁다고 느껴질 즈음 옷을 입는 일이 끝났다. 신녀들이 하는대로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니 한 번도 손을 대보지 않은 얼굴에 분이 발라졌다. 눈가와 볼엔 분홍빛 유액이 닿았다. 붉은 꽃잎을 입술에 물고 눈을 뜨니, 거울 속엔 경아가 앉아있었다. 아아, 단 한 번도 사랑해보지 않은 적 없는 나의 분신. 나의…누이. 그래, 나는 너를 위해, 찬열을 위해… 기꺼이 죽을테다. 흑색의 가발을 씌우고 땋아 올린 뒤 갖가지 비녀와 꽃들을 장식하고 나서야 경수의 단장은 끝이났다. 어차피 다 찢겨지고 버려질텐데, 차라리 이 돈으로 버려진 아이들에게.. 하긴, 곧 죽을텐데 이런 생각은 뭣하러 한담. 경수는 신녀들이 이끄는 데로 치마자락마다 상념을 매단 채 걸음을 옮겼다. 시야를 차단해야 인간의 업을 두고 순결한 제물로 태어나 세상의 때를 묻히지 않은 채 가야한다는 신녀들의 주장에 경수의 얼굴 위로 반투명한 면사가 씌워졌다.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희미해진 인영들에 경수는 살짝 비틀거렸다. 이제 정말 안녕이구나…. 희미한 세상의 풍경에 경수는 울컥했다. 조심스레 가마에 오르기 전, 누군가 헐레벌떡 달려와 경수의 팔목을 잡아챘다. 면사에 가려 희미한 인영이었지만, 경수는 자신을 잡은 이 손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찬열. 찬열이었다. 경수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억눌린 웃음을 웃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네 얼굴은 보고 가는구나. 열아. 와줘서, 고마워. "경수야, 나는. 나는…. 나는, 경수야……." "누이를, 잘 부탁해. 알았지, 열아."
툭, 허망하게 떨어지는 손이 애처로와 경수는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만 싶었다. 사실은, 나 사실은 죽기 싫어. 나 너랑 오래 얼굴 맞대고 살고 싶다, 열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을 못 해도,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괜찮으니 너와 늙고 싶었어. 벗으로 남아서라도, 너와 누이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어……. 세게 씹은 탓에 하얗게 질렸을 입술에 피가 맺히는 걸 느끼며 경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젠 다 부질 없는 짓이다. 다 되었다. 나는 기꺼이 너를 위해 죽을테니, 너는 누이를 위해 웃어주렴. 멍하니 서있는 찬열을 뒤로하고 흑빛의 가마는 출발했다. 남은 찬열은 떠나는 가마를 바라보다 털썩 무릎을 꿇었다. 경아, 경아. 나의, 경아…. 차마 오랜 벗에게 줄곧 너를 은애하고 있었다고는 말을 못해 네 누이를 은애하고 있다고 했던 나를, 용서해주겠니. 경아. 너와 닮은 네 누이를 보며 나는……. 홀로 남은 찬열의 어깨가 들썩였다.
산 중턱을 넘어 동굴에 다다르기 직전, 가마의 문을 연 신녀들은 여기서부턴 홀로 가셔야한다며 사라져버렸다. 이 치렁치렁한 걸 입고, 어떻게 저 동굴까지 가라고...! 서늘한 산 속임에도 적응하기 힘든 옷을 입고 걷자니 땀이 금새 배어나왔다. 헉헉 거리며 간신히 도착한 동굴에는 피비린내와 썩은 악취가 물씬 풍겼다. 한 걸음 들어서자마자 세상의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경수를 잠식했다. 이제, 돌아 갈 수 없다. 어차피 경수에겐 남은 선택이 없는 터였다. 끌리는 옷자락을 들고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경수의 얼굴은 점점 굳어졌다. 그때, 달그락 하는 소리와 함께 치마 자락에 뭔가가 채여 굴러갔다. 이게 뭐지? 어두운 동굴 탓에 보이지 않는 것을 주워 눈앞에 가져다 대니 그것은, 해골. 군데군데 부서지고 닳아버렸지만 분명히 해골이었다. 흐웁, 가쁘게 숨을 삼키며 해골을 집어 던졌다. 파삭, 하는 소리와 함께 뼈가 부서지고, 경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두 손을 더듬더듬 바닥을 매만지자 이곳 저곳 뼈들과 함께 머리카락, 썩었는지 뭉클한 살덩이들이 만져졌고. 경수는 그때마다 입을 틀어막고 소리 죽여 울었다. 내가, 이렇게 되겠구나.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동굴 끝의 판판한 바위로 올라가 두 다리를 세우고 앉았다.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고 있으니 악취가 덜 나는 것 같아 경수는 눈을 감았다. 아침부터 피곤했던 탓인지 잠이 몰려왔고, 경수는 스르륵 잠에 빠졌다.
제 목을 스치는 머리카락에 경수는 퍼뜩 눈을 떠 주위를 둘러봤다. 하아, 가발이었구나. 제 것이 아닌 느낌에 놀라 잠에 깨었는데 알고보니 가발이었다. 둘러본 동굴은 아까보다 더 컴컴하고, 더 습했다. 그 동굴의 끝에서 경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이 떴는지 동굴 밖에선 산짐승들이 컹컹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동굴 안까지 들어와 미세한 떨림을 전했고, 소리에 놀라 다시 고개를 묻고 벌벌 떨고 있자니 울부짖는 소리는 어느새 가라 앉았다. 아까와는 달리 고요한 적막. 이게 뭐지..? 의문을 품은 경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드는 순간, 동굴 안으로 인영의 그림자가 생겼다. 누구지. 의문을 품기도 전 그 인영은 이미 동굴의 안으로 들어섰고, 경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 다시 만날 거라고 했었지? 도화."
사내가 들어서는 순간 동굴의 안이 환해졌다. 주변이 온통 핏자국과 뼈, 살덩이들로 널려 있다는 것도 잊게 할 만큼 사내의 빛은 환했다. 자신도 모르게 면사를 걷어낸 경수는 동굴 안으로 들어선 사내를 굳은 채로 응시했다. 빛을 몰고 다니는 사내, 자신의 이름이 백이라던…. 빛, 빛.. 예전에 배웠던 건국 설화에 의하면 태국을 수호하는 신은, 빛을 다룰 줄 아는 신으로, 은빛의 꼬리가 수도 없이 많은 여우라고…. 이름, 이름이.. 백현, 백현. 그래, 백현이었다. 빛을 몰고 다니며 태국을 수호하는 영물. 은여우, 백현이라고.
"…백현?" "맞았어. 내 세계에 들어온 걸 축하해. 신부. "
눈 앞의 사내의 웃음이 빛보다 환하다는 생각을 하며 동시에 경수는 정신을 잃었다. |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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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하지, 그...... 어........ 이름을 불러준다는게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래요. 이름을 부르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받아들였다는? 그런? 뜻? 이라서, 고대 국가 중엔 이름이 세개인 곳도 있었다네요. 하나는 아직도 남아있는 아명. 이건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냥 부르는 이름. 아이들은 어리니까 본명으로 부르면 악귀가 잡아가거나 업이 쌓인다고 해서 성인식 전까지는 아명으로 불렀대요. 두번째가 본명. 성인식 이후로 진짜 가지게 된 이름? 그런 거였고, 하나는 무슨 부모님들만 알고 있는 이름. 본인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고 부모님만 아는 이름이라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한테는 복종하게 된다고. 그래서 자식이 엇나갈 때 부모가 몰래 부르면서 바로 잡아 준다는 카더라.............식의 설화를 본 것 같아서..... 딱히 저건 상관 없고....... 여기서 백현이가 이름을 알게 되면 곤란하다, 하는 건 저거랑 비슷하면서 약간 다른 맥락인데, 본명을 알게 되고 부르게 된다면 그 이름의 주인의 영역에 들어서게 되고, 그 영향력이 점점 세진다면 이름 주인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의미로 썼어요.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그에게로 가 꽃이 되었다라는 시 구절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이런 싸이 다이어리 같은 독백 그만 쓰고 가겠스ㅂ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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