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일.
평화가 유지되던 시간.
4일째 되는 날 새벽에 내가 눈을 뜬 곳은 그동안 묵었던 방이 아닌, 비행기 안이었어.
"뭐야...."
"쉿. 조용히 가요"
"넌 지금...!"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주변 눈치가 보여서 최대한 조용히 한 채로 전정국한테 어디로 가는지만 알려달라고 물었어.
"그걸 알려줄거면 비행기를 이렇게 태우지도 않았겠지."
"너...!"
이렇게 소득없는 말싸움을 할 시간에 차라리 전정국한테 벗어날 수 있는 묘책을 생각해보는게 낫다 싶어 눈을 감았지.
그리고 바보같이 잠들었어.
또 일어나보니 방 안. 진짜 어떻게 공항에서의 기억이 하나도 없지?
"여기 어딘지 빨리 말해."
전정국은 침묵으로 일관했고,
나는 아직 나른하고 뭣때문인지 깨질듯한 두통이 있었지만 참고 소리질렀어.
"전정국!!!!!!!"
"자. 이제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해요. 굳이 가둬두지 않을게"
그 말이 어디 할테면 해보라는 뉘앙스였기 때문에 난 섣불리 방을 빠져나갈 수 없었지.
그도 그런게 나는 지금 신분증도, 여권도, 돈도, 전화도, 여분의 옷도, 심지어 신발도 없었으니까.
내가 가만히 있자 전정국이 나를 흘낏 보더니 피식 웃더라.
화나고 당황스러운 것보단 기분이 상해서 일단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로비로 나갔지.
진짜 뭐 다른 대륙으로 넘어왔나봐. 2월인데 날씨가 너무 화창해.
"May I help you?"
"um.."
전화를 빌려달라고 했어.
다행히도 전화기가 데스크에 비치되어 있더라구.
김태형씨 전화번호를 한참 생각하다가 저번에 번호 처음 받고 외워둔게 겨우 생각나서 급히 전화를 걸었는데...
1F표시와 함께 전정국이 나오는 모습이 보여서 나는 급히 쭈그려 앉아서 로비직원에게 모른 척 해달라고 부탁하고 빨리 전화연결이 되기를 빌었어.
국제전화라 안받는 건 아니겠지? 이러면서...
한 10초쯤 더 기다렸나..? 끊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철컥- 소리가 들리면서
[Hello]
하는 김태형씨 목소리가 들렸어. 아무래도 자다 깬 모양이야.
[김태형씨..]
[누ㄱ...!!!!]
이 세상에서 김태형씨를 김태형씨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금세 알아들었는지 바로 목소리가 또렷해지더라구.
[어디야.]
[나...나도 몰라요...전정국이...]
[전정국?]
[네..전정국이 날 납치해서는 이곳으로 데리고 왔어요. 어딘진 모르겠어요..]
[거기서 전정국이 하라는대로 가만히 있어요. 내가 이틀 안으로 당신 데리러 갈 테니까. 기다려요]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쪼그려 앉은 나의 위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한 사람을 보고서는 금세 전화를 끊어버렸어.
김태형씨랑 통화했다는 사실을 알면 당장 장소를 옮길테니까.
"올라가서 얘기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전정국을 따라 올라갔어.
32층. 제일 위층 스위트룸.
생각해보니까 되게 좋은 호텔방이었어.
근데 미처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김태형이랑 통화했지?"
"으...으윽...ㅇ이거 노...."
전정국이 내 숨이 끊어질 정도로 멱살을 잡았어.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켁켁댔지.
"내가 분명히 말했지. 그냥 내 곁에만 있으라고."
"ㅅ사..살..."
그렇게 정신을 잃은 것 같아.
그 순간에도 나는 김태형씨한테 피해가 가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고 있었어.
"으...으음..."
목이 너무 아파서 의식이 돌아왔어.
다행히 다른데로 옮긴 것이 아닌 처음 왔을 때 본 그 방이었어.
왠지 눈물이 나서 그냥 펑펑 울었지 뭐야.
그 와중에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베개에 얼굴 묻고 울었어.
빨리 김태형씨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