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먼지 04 - 선악과.
“하아-!”
눈을 질끈 감고 Enter 을 눌렀다.
이어 나오는 그의 탄식. 화면을 꺼버리고 재빨리 의자에서 일어나 컴퓨터에서 도망가듯 멀어졌다.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 주저앉았다.
하면 안 될 짓을 알면서 저지른 건 처음이었다. 처음인 만큼 두려움뿐만 아니라 호기심 또한 컸다.
하지만 그 감정들은 이내 배로 돌아와 후회를 낳았다.
“아….”
두 무릎을 천천히 세우고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온 몸에 나는 열들이 무릎 사이에 모여 묻힌 태형의 얼굴을 적셨다.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좁은 고시텔의 정적.
일정한 고주파가 그의 머리를 쏘는 듯, 정적이 내는 소리와 함께 멍해졌다.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조차 그 멍한 소리에 묻혀 고요했다.
“아 진짜 내가 미쳤지”
머리를 두 손으로 세게 헤집었다. 자책하는 외침과 동시에 정신이 돌아왔다.
글을 지워야겠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컴퓨터에서 도망친 속도보다 더 빨리 컴퓨터로 다가가 의자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켰다.
“…”
혼동의 그 몇 분 안에 모니터엔 엄청난 수의 채팅방이 열려있었다.
‘몇 살 이세요? 아 저는 그냥-’
‘일단 문자주세요 기혼이라 컴퓨터를 오래 못해요 010-’
‘처음이라고 글 올리셨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40살-’
‘SM?’
수 십 개의 채팅방의 글은 거의 비슷했다.
자기의 나이 연락처 심지어 단도직입 적인 성적 취향 질문까지 모든 채팅방의 관심이 태형에게로 쏟아졌다.
내용은 달라도 모두 태형을 바라고 있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렀다. 재빨리 역겨운 채팅방들을 닫아 버렸다.
닫아도, 또 닫아도 끝없이 열리는 채팅방에 결국 한숨과 동시에 키보드에 머리를 박았다.
아픈 머리가 방전돼 물을 부은 컴퓨터 마냥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옆 창문으로 비친 모니터에 쉴 새 없이 뜨는 채팅방이 지친 그의 눈 속에 담겼다. 현기증이 났다.
"우욱-"
태형은 헛구역질이 나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았다. 온 몸의 남은 기운마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사회에서 비참하게 내쫓겼던 그가, 사회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름표 없는 그가,
사회라는 계단으로 부터 한 칸 더 아래로 내려오니 그제야 자신을 반기듯 쏟아지는 관심이었다. 기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역겨웠다.
그를 원하는 게 아니었기에, 밑바닥의 세상은 그 이름처럼 그의 몸을 바랬기에 그 현실에 그는 넌더리가 났다.
역겨움과 동시에 두려웠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큰 현기증이 한 번 더 일렀다.
날아 갈 것 같은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컴퓨터로 다시 다가가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순간 다친 머리를 그 날 악몽이었던 소주병 보다 더 세게 강타 당한 기분이었다.
‘한번에 100만 일단 만나. 010-’
마우스를 쥔 손이 서서히 떨려왔다.
‘100’
100라는 숫자가 태형의 숨을 잠시 막았다.
모든 게 멈춘 기분,
비좁은 고시텔안 알바에 쫓겨 치우지 못한 어지러운 옷들과 여러 가지 짐들은 깨끗이 사라지고 어느새 모니터와 그 둘만 있는 것 같았다.
멍하게 다른 채팅방을 닫는데도 그 채팅방만 은 쉽사리 닫지 못했다.
“백…?”
병원비를 독촉하던 그들의 얼굴이, 매번 자신을 찾아와 모든 걸 부술 기세이던 빚쟁이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그의 현실에 꽉 조여진 숨통을 조금이라도 트이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 딱 감고 한번만 만난다면 눈 딱 감고 한번만…
“못해!”
마우스를 던져버렸다.
웃기게도 닫기에도 두려웠고 그렇다고 그 전화번호로 전화하기에도 두려웠다.
두 개의 벽이 그를 가로막았다. 가로막는 동시에 자신의 발밑에 얇은 선을 그었다.
넘어 갈래 아님 원래대로 돌아갈래?
두 가지의 무서운 현실들을 둔 그런 얄궂은 얇은 선 위에 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체 어차피 쓰러질 균형만 억지로 잡고 있었다.
“아…!”
고개를 세운 무릎에 묻고 머리를 때리고 또 때렸다.
애석하게도 때린다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그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무거운 고개가 들자 뒷목이 뻐근했다. 그의 큰 눈에 비친 흰 채팅방 검은 글자
‘한번에 100만 일단 만나.’
그 글자가 다시 눈에 들어와 하와를 유혹하는 뱀처럼 그의 감정적인 마음이 아닌 현실을 깨달은 머리와 몸을 유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