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차기작과 도부자 메일링을 기다리시는 우리 독자님들을 달래줄 단편 프로젝트
EP1. 수호 : 오빠입니다
EP2. 세훈 : 오! 마이 로미오!
EP3. ?? : ?
오! 마이 로미오! : 이과 로미오 문과 줄리엣
Oh!
( BGM : Supreme Team - 로미오&줄리엣 )
* 약간의 비속어 주의, 이번 편만 남주 시점 많음 주의
높은 인서울 대학교 합격률을 자랑하는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세문 고등학교
그런 세문 고등학교의 삼학년 이과반 남자아이들은 오늘도 반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명문고 학생의 명성에 걸맞게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했다. 당장 들이닥쳐오는 입시 문제부터 사회에 나가면 뭘 해먹고 살지, 남성 인구 비율이 여성 인구 비율보다 높아져가는 이 시점 장가는 어떻게 가야할지, 정작 하라는 공부는 안하는게 함정이지만.
쉬는 시간에도 열나게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않게 한다고는 하지만 남자 세 명이 모여 마음먹고 떠들면 웬만한 여자아이들 버금가는 데시벨이 나오기 마련. 한낱 고삐리 남자아이들에 지나치지않은 3학년 10반 오세훈,변백현,김종인 학생둘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의자에 눕듯이 앉아있던 백현이는 피실피실 웃으며 핸드폰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허리를 튕기듯이 일으며 이거봐봐 하며 화면을 보였다. 거기에 고등학생 답지않게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종인이는 잘게 떨던 발을 멈추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 뭔데 "
" 존예보스 "
" 누구야 "
" 안젤라, 신인 걸그룹. 존나 예쁘지 "
" 이 새끼는 맨날 이런것만 봐 "
아프지않게 머리를 치며하는 타박에도 백현은 익숙한지 그저 좋다며 실실 웃는데 어느새 종인의 입꼬리도 같이 슬금슬금 올라간다.
" 존나 좋게, 사진 더없냐. 개이쁘네 "
" 당빠 더있지. 야 세훈아 너도 얘 봐봐, 존예 "
" ... "
가만히 앉아 망부석처럼 볼까말까 고민을 때리던 세훈은 백현의 재촉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힐끔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대체 얼마나 이쁘길래...
...
이쁘네.. 이름이 ㅇ..안젤라? 넋을 놓고 사진을 쳐다보고 있던 세훈에 백현이는 금방이라도 자지러질듯 웃으며 핸드폰을 옆에 있던 책상에 던졌다.
" 야 오세훈 이 새끼 봐라!! 줄리엣밖에 없다면서!! "
" 이렇게 세문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라지는 건가요 "
..이런 사악한 새끼들...어쩌다가 꼬투리 한 번 잡히면 이 난리야.. 당했다. 라는 생각에 세훈이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이럴 줄 알았어, 이래서 짝사랑은 혼자하는게 마음 편한데 제기랄, 어쩌다가 걸려가지고... 백현이는 이제 줄리엣이 더이상 줄리엣이 아닌건가?? 이제 짝사랑은 쫑났나?? 하며 전교에 소문낼 듯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세훈이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부글부글 끓는 속만 다잡고 있는데
" 너네 좀 조용히 해 "
보다못한 쉬는 시간에도 열공하는 그룹에 속해있는 탑클래스 공부벌레, 책상열 한가운데 맨 앞자리를 차지한 학급반장이 총대를 메고 일침을 날렸다. 비교적 날카로운 말투에 흠칫한 백현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고개를 숙여 낮게 속삭였다.
" 쟤는 예민보스 "
" 인정, 무슨 쉬는시간까지 공부를 해. 난 가서 잘래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김종인ㅋㅋㅋㅋㅋㅋㅋㅋ 가서 공부한다는줄 "
" 미쳤냐 "
" 니네 형은 한송대 다닌다면서 너는 왜 이러냐 "
" 김종대가 한송대 다니든 말든 나랑 뭔 상관이야 "
다시금 높아지는 데시벨에 조용히 있던 세훈이는 괜히 반장의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나 잠깐 나갔다온다 "
" 어딜가 "
" 에이 종인아, 줄리엣 만나러 가겠지 "
" 아하, 잘갔다와 로미오. 오늘은 말이라도 좀 걸어보고 이 찌질이 새끼야 "
그래, 로미오. 그게 바로 세훈이의 별명이다. 왜 로미오인지 궁금해한다면 먼저 알아야할게 세문고등학교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아닌 전통이다. 똥군기, 졸업식 밀가루,계란 파티, 마니또 그 어떤 것도 아닌 조금 독특한 전통.
바로 이과 VS 문과 로 이루어진 라이벌 구도로 사실상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부질없고 명문고등학교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유치하다고 해야할까.
이게 참 귀여운게 1학년때만해도 같은 반에서 생활하며 잘 지내다가 2학년,3학년 올라와 분과하고 갑자기 라이벌 구도라며 이과는 문과반 근처에 안가고 문과는 이과반 근처에 안가고, 대학 합격률로 경쟁하고, 서로 먹물 냄새 난다는둥 삼각자 냄새 난다는둥 별 같잖은 거리로 시비를 거는데 선생님들이 보기에는 쪼그만 것들이 왕왕 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거기다 아직 애들이라고 경쟁심에 불을 붙이면 끝이 없어서 이제는 복도를 지나가다 문과, 이과끼리 서로 눈만 마주치면 스파크가 일어날 지경이니 언제든지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할게 없는 분위기지만 지금껏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은게 신기하다면 신기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교내에 한창 연애중인 커플이 있어도 재빠르게 소문이 날 일인데 이런 세문 고등학교에서는 얼마나 더 이슈가 될까.
이전에도 문과,이과 커플이 없었던건 아니었지만 마당발인 친구들 때문인지 세훈이의 절절한 짝사랑 이야기는 이과반 아이들은 대부분이 알 정도로 소문이 나버렸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나서 생긴 별명이 세문 고등학교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가 있는 이과반이 몬테규家, 로미오의 사랑 줄리엣이 있는 문과반이 캐플릿家. 누가 지은건지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바람에 세문고등학교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문과반으로도 슬금슬금 전해지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세문고등학교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작은 세훈이 이공계에 막 입문하는 시기인 고등학교 2학년 초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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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은 로미오의 첫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캐퓰렛 집안 파티에서 줄리엣을 처음 만나기까지 로미오는 로잘린이라는 도도하고 차가운 처녀에게 반해 제정신이 아니었죠. 자신의 열정을 받아주지 않는 로잘린 때문에 삶의 의욕을 잃고 스스로를 '산송장'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요. 로미오의 친구 벤볼리오는 그런 로미오에게 로잘린을 잊을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줍니다. "다른 예쁜 여자를 찾아봐." 바로 그게 정답이었죠. 줄리엣을 처음 본 순간 로잘린은 로미오의 뇌리에서 깨끗이 지워지니까요.
로미오와 줄리엣 줄거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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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해 "
" 미안, 나는 남자 만나는거에 관심이 없어서 "
" ... "
" 그리고 나는 변백현같이 순하게 생긴 애가 좋아 "
...
학기 초부터 1학년 때에는 같은 반이었지만 지금은 기억에 이름조차 남아있지않은 로잘린으로부터 쓰디 쓴 실연의 상처를 받은 세훈이는 한동안 샤프를 손에 잡지 못했다. 보통의 남자아이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했기때문일까 아니면 난생 처음 해본 고백이 실패로 끝났기때문일까, 수학Ⅰ을 풀던 세훈이는 갑자기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만물의 기운이 샘솟고 한창 따뜻해져오는 시기에 실연이라니... 인생이란게 참 고달프구나
서러움이 북받쳐올랐지만 로잘린이 변백현같이 순하게 생긴 애가 좋다고해서 옆 책상에서 깔짝거리는 백현이가 싫은 건 아니었다. 생긴걸 바꿀 수도 없고 엄마가 이렇게 낳아줬는데 어떡해..
하...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세훈이는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노래 가사에 크흣, 하며 미간을 부여잡았다. 바로 옆에 있는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지금 상황과 가사가 너무 똑같은 나머지 감수성이 폭발하고만것이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머릿속에 흘러가는 가사를 따라 슬며시 고개를 들자 옆에서 교과서에 수학 선생님이라며 끄적끄적 낙서를 하던 백현이는 세훈이의 눈가에 촉촉히 맺힌 눈물을 보고 눈치없이 크게 어!!! 하고 외쳤다.
" 야 세훈아 너 우냐???? "
" ... 하품해서그래.. "
변명한다고 했지만 조용한 수업시간 도중에 거대한 어그로를 끌어버린 나머지 반 아이들과 선생님의 시선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 울지마!!! 사내새끼가 왜 울고그러냐!! "
" 우는거아니야 "
" 으이구 우리 뎨후니 누가 울려써!! "
..... 지금 일부러 이러는거 맞지?.... 잔뜩 욕을 해주고 싶었지만 서른명에 가까운 아이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자신에게 쏠리자 세훈이는 멋쩍게 정수리를 긁적이다가 진도나가죠. 하며 관심을 돌렸다. 내가 살다가 이런 모범생같은 대사도 다 날려보고...역시 실연이란...
선생님은 백현이덕분에 끊긴 수업 흐름을 이어가기위해 칠판을 탕탕 두드려 아이들의 이목을 끌었고 다시 진행되는 수업에 몰래 눈물을 훔친 세훈이가 샤프를 딸깍거리자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백현이 작게 속삭였다.
" 왜 그래, 집안에 무슨 일 있어? "
" ... "
" 말 좀 해 새끼야, 우리가 하루이틀 안 사이도 아니고 "
누가 들으면 한 10년은 안줄알겠네, 고작 해봤자 고등학교 올라와 만났으면서. 해탈한 표정으로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던 세훈이 말했다.
" 아무 일 없어 "
" 구라 "
" ... "
" 구라치지마, 니 얼굴이 무슨 일 있ㄴ. "
백현이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기위해 애쓰던 세훈이는 깊게 콧바람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 야, 백현아 "
" ... "
" 넌 좋겠다 순하게 생겨서 "
그 말을 끝으로 세훈이는 손에 쥐었던 샤프를 책 사이에 놓고는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도대체 칭찬인건지, 싸우자는건지, 세훈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이는 뚱한 표정으로 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던 종인이와 눈빛교환을 하다 별일 아니라는듯이 어깨를 으쓱여주고는 다시 수학선생님 그리기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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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걔가 나 좋아한다 그랬다고? 그래서 수학시간에 그 지랄 떤거고?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오세훈 존나 소녀야 소녀 "
빠르게 점심을 해치우고 평화로운 여유 시간, 매점에서 나나콘을 사들고 나온 백현이는 세훈이를 붙잡고 강한 의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학생들 가까이서 민심을 살피는 전교부회장으로서 지켜볼 수 없다는 개소리를 짓거리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처음에는 아, 뭘, 일 없어. 하며 대답을 피했지만 끝까지 말 안하면 나나콘으로 쳐맞는다는 소리에 결국 가슴 아픈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결과는 위에서 보다시피 호탕한 웃음들.
" ㅋㅋㅋㅋㅋㅋㅋ난 또, 창밖보다가 갑자기 또르르 눈물 흘리길래 문학소년인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웃지마, 진짜 나 ... "
" 웅 알겠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언행불일치가 이거라고 보여주듯이 계속해서 웃던 백현이는 과자 봉지를 뜯고 실실거리며 입을 열었다.
" 근데 걔는 내 타입 아니야 "
" ... "
" 가서 말해줘, 변백현이 너, 자기 타입 아니래 "
" 됐어 "
이미 차인 마당에.... 먹을래? 하며 백현이가 내미는 과자 봉지에서 과자를 한움큼 꺼낸 세훈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싫다는 여자 붙잡는거 아니야. 근데 왜 여전히 멘탈에 가해진 충격은 사라지지 않는걸까. 차인지 일주일이 넘었는데...곧 쓰러질 사람마냥 비실비실 거리는 세훈이를 보던 종인이는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 야, 세상에 여자가 걔 하나 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꼴이 이게 뭐냐 "
" 맞아. 걔가 뭐라고, 더 이쁜 애 찾아봐 "
으즈 그믑드... 도움도 안되는 위로에 이를 악물고 억지로 웃던 세훈이는 안면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 그래, 나때문에 세훈이가 차였으니까 내가 또 그냥 이러고 있을 수 없지 "
" ... "
과자를 입안에 털어넣다가 뜬금없이 팔을 걷어붙이는 백현이에 불안감을 느낀 세훈이는 과자를 씹던 입을 멈추었다.
" 우리 세훈이 여친 만들어줘야지! 누가 좋을까, 너 이상형 뭐야 "
" 필요없어 "
" 튕기지말고 만들어준다고 할 때, 고맙쯉니다~ 하고 받는거야 "
" ... "
" 누구누구~ 누가 좋을까 "
왠지 오늘따라 신난 백현이는 반으로 돌아가면서 쟤? 하고 이제 막 급식을 먹고 나오는 여자애들 무리 중 한 명을 아무렇게나 찍었다. 그리고는 사르르 미소를 지우는데
" ... 좀 아닌가 "
" 어 쟤는 좀 아니다 "
본인이 찍어놓고 좀 아닌가라니.. 거기다가 좀 아니다. 라고 못까지 박는 종인에 세훈이는 괜시리 이름 모르는 여자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대체 어떤 여자애이길래 아니라고만 하는건지 고개를 빼고 제대로 얼굴을 보니
" 그냥.. 괜찮은데 "
예상외로 긍정의 대답을 하는 세훈. 내 친구가 차이고나니 눈이 삐었구나..! 백현이는 눈물 없는 울음을 터뜨렸고 종인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미 지나가버린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괜찮다고? "
" 어, 그냥. 뭐... "
말끝을 흐리는 세훈이는 쑥스러운듯 입꼬리를 긁적였다. 저정도면 괜찮은거 아닌가. 하지만 종인이와 백현이는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하고 혼돈의 카오스 상태에 빠져버렸다.지금까지 그렇게 미란다 커가 좋다고 팔월달에 얼어죽는 소리를 하더니 난데없이 저런 평범한 여자애가 좋다고 하는 걸보면 현실이라도 직시한걸까? 백현이는 여자아이가 사라진 곳만 빤히 쳐다보고있는 세훈이를 붙잡고 말했다.
" 너, 너의 여신님 미란다 커는 어쩌고 "
백현이도, 종인이도 알고 있었다. 아까 전 지목했던 여자아이는 그냥 평범했었다고, 하지만 좀 아니라고 한건 세훈이 첫만남에 자신의 이상형은 미란다 커라고 당당히 이야기 할 때부터 아 이 새끼는 눈이 정수리에 달렸구나. 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여자애보고 괜찮다니..
" 내 이상형, 아직도 미란다 커인데 "
...
그럼 그렇지. 아까 전 여자애는 그냥 괜찮을뿐 사귈만한 애는 아니라는 뜻이었나.
" 알았어 새끼야, 미란다 커 같은 여자애 한 번 찾아보자 "
미란다 커같은 여자라니. 세훈이의 가슴은 두근두근 설레였다.
이미 줄리엣과는 만났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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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커같은 여자애를 찾아보자며 백현이 세훈과 종인을 끌고 온건 문과반 라인이었다. 남자아이들의 비율이 더 많은 이과반과 반대로 흡사 여고를 보는 것 같은 문과반이었기에 백현이는 자신의 두뇌를 칭찬하며 당당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봐라, 미란다 커 "
학교에서 미란다 커를 찾다니, 뒤에서 설렁설렁 걷던 종인이는 어이가 없었다. 명동,홍대,가로수길을 걸어도 미란다 커는 찾아보기 힘들텐데. 사실 종인의 옆에서 걷고있던 세훈이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미란다 커는 지금 미국에서 잘먹고 잘살고 있을텐데. 작게 한숨을 쉬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보는데 때마침 지나가던 교실 앞문이 쾅하고 열리며 휴지를 품에 앉은 여자아이가 다급하게 나왔다.
강렬한 등장에 흠칫 걸음을 멈춘 세훈이 그 얼굴을 자세히보니 아까 전 백현이가 지목했던 여자아이렷다. 또 멍하니 서서 여자아이가 달려간 곳만 바라보는데 어느새 저 앞에서 멀찍이 떨어져 걷고있던 종인이 뭐해! 하며 세훈이를 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겼지만 묘한 기분이 드는게...
뭐지..
한 번 눈에 띄니까 자꾸 눈에 띄네
미란다 커 같은 여자애 찾기를 실패한 이후 이상하게도 그 여자아이는 급식실에 가도, 매점에 가도 자꾸만 세훈의 눈에 띄었다. 한 번 얼굴을 보고 나서 그런가.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아이들을 봐도 딱히 거슬리거나 얼굴을 볼 때마다 어, 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 여자아이는 볼 때마다 묘하게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안녕, 하고 말을 걸만큼 넉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세훈이는 자신이 너무 미웠다.
어느새 실연의 아픔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머릿 속에 온통 그 아이만이 남아있게되었다. 아니 다른 애 좋아한게 1년 전도 아니고 차인것도 아직 한달도 안됐는데? 거기다 얼굴도 얼마전에 처음 본 애인데, 세훈이조차도 자기 자신을 이해 할 수 없었다.
" 또 왜 그르냐 "
지루함의 탑을 달리는 물리 시간 세훈이 초점을 잃은 눈을 하고있자 자려고 엎드렸던 백현이 또다시 말을 걸었다. 맨날 눈치없는 척이란 척은 다하지만 알고보면 여자아이들 버금가는 눈치에 가끔 놀랄 정도다.
" .. 그러게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
" 엄멤메, 아직도 걔한테 차인거때문ㅇ "
" 아니야 "
" 그럼 왜 "
세훈이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축였다.
... 자신조차 자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말 할 수나 있을까. 이 부분에 줄을 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비장하게 빨간볼펜을 드는 세훈이 말했다.
" 시간이 좀 더 필요해 "
내 마음을 좀 더 이해 할 수 있는 시간.
그 때부터였다. 허구한 날 반에 틀어박혀있던 세훈이 습관적으로 생각날 때마다 문과쪽을 중심으로 학교를 돌아다니기 시작한게. 남자아이들의 비율이 비교적 적은 문과에서 세훈의 등장은 위협적이었다. 문이과 통틀어서 엄청난 인맥을 소유하고 있는 전교 부회장과 그 친구들은 말만 안해봤다뿐이지 대부분 그 얼굴을 알만큼 유명인사였으니까.
하지만 세훈이는 자신을 위협적으로 생각하든 말든 아무 생각 없이 문과반 복도를 돌아다녔다. 종종 일학년 때 알던 남자애들이 삼각 플라스크 냄새난다 하면서 장난스레 시비를 걸긴했지만 그것말고는 아무도 세훈이에게 시비를 터는 애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세훈아, 너 왜 자꾸 이쪽 오냐 "
" 오면 안돼? "
" .. 아니.. 아니 너무 좋아서 그렇지.. "
왜 자꾸 오냐며 묻는 문과 친구에게 그저 하나의 악의도 없이 오면 안돼? 하고 물어봤을뿐인데 당황을 하며 줄행랑을 쳐버린다. 왜 저래, 다시 걸음을 옮기던 세훈이는 문뜩 어떤 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아이의 반. 혹시라도 있을까 싶어 까치발을 들고 복도 창문을 통해 반 안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한쪽 구석에 앉아 핸드폰을 하는 그 아이가 보였다. 역시나 그 얼굴을 보자마자 드는 반가운 마음, 이래서 문과반쪽에 계속 오게 된다니까.
세훈이는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등을 돌렸다.
얼굴 봤으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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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봤으면 됐어. 됐어. 하던게 반년이 지났다. 여전히 세훈이는 문과반쪽으로 옮기던 걸음을 끊지 못했고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결국 줄리엣의 이름을 알아낸 2학년 2학기 중반 때 백현이와 종인이에게 매일같이 문과반에 발도장을 찍는 사실을 들켜버렸다. 자꾸만 얼굴이 보고싶은건 왜일까 하던 아리송한 세훈의 마음이 짝사랑으로 판명이 났지만 정작 말을 걸 용기가 없어 지켜보기만 한지 더불어 반년이 더 흐르자 고삼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일년이라는 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훈이의 짝사랑은 ing. 2학년 초반에 받은 실연의 상처를 아무도 모르게 고이 모셔두었던 세훈이에겐 용기가 없었다. 줄리엣에게 선뜻 말을 걸 용기가. 상대방이 싫다고하면 금방 포기하는 성격이지만 심장이 쿠크다스로 이루어진 나머지 혹시라도 줄리엣이 싫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쓸모없는 걱정때문에 매번 끙끙 앓을 뿐이었다.
어쩌면 세문고 이과 로미오 세훈이가 원작 로미오와 다른 점은 적극적이지 못한 점이 아닐까.
오늘도 역시 반장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 전에 반에서 빠져나온 세훈이는 문과반으로 달려갔다. 삼학년이 되고 반이 바뀌는 바람에 줄리엣이 어떤 반인지 알아내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지만 그래도 알아냈으니 이게 바로 인간 승리.
줄리엣의 반 앞에서 딱 멈추고는 복도 창문으로 반안을 들여다보려 조심스레 까치발을 드는데
*
" ... "
....
ㅇ.. 이게 뭐야..
한창 산뜻해야할 낭랑 십구세들이 있는 반에 퀘퀘한 창고 냄새가 나서 복도 창문을 벌컥 열자마자 이름 모를 남자애가 서있었다. 눈을 마주치고 깜짝 놀랜 나머지 헉하며 뒷걸음질을 치자 나를 한참동안 노려보던 남자애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돌리더니 뻘줌하게 계속 그 자리에 서있는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이 꽤나 생겨먹어서 2학년때부터 종종 지나가다가 볼 때마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얘가 왜 여기 서있을까,
창문을 마저 다 열고 옆창문을 여는데 그 남자애도 나를 따라 똑같이 한걸음 옮겨 나를 힐끔거렸다. 기분탓인가.. 두어번 나를 힐끔 거리던 남자애가 방황하던 시선을 완전히 내 얼굴에 꽂는데 등골이 서늘하다. 양아치는 아니지만 그냥 무서운게.. 금방이라도 너 왜 눈을 그렇게 떠?하고 물어볼거 같아 눈을 깔아야하나 하다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걸었다.
" ㄴ.. 누구 불러줄까? "
" ... "
ㅁ.. 무서워..!! 기껏 호의를 베풀었는데 아무 대답없는 남자애에 나는 슬며시 눈을 깔며 등을 돌렸다. 그냥 퀘퀘한 창고 냄새 맡으면서 공부할 걸.. 괜히 환기 시키겠다고 나대다가...
" 아, 안녕 "
갑자기 안녕, 하는 인사에 뒤를 돌아보자 남자애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딱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인사? 누구한테? 나한테? 눈을 크게 떠보이자 뒷머리를 긁적이며 다시한 번 말을 건낸다.
" 안녕 줄...아니 안녕 "
....
어... 너 나 알아?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렇게 물었다가는 그냥 닥치고 인사 받아주면 될 것이지 하며 한 대 얻어맞을 것같아 찌질이처럼 ㅇ..안녕, 하고 받아줄 수 밖에 없었다. 그제야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우리 반 앞에서 떠나가는 남자애. 훅 풀리는 긴장에 멍하니 서있자 친구가 내 옆을 기웃거리며 물었다.
" 너 오세훈 알아? "
" ... 몰라.. "
" 저 새끼 이과면서 맨날 문과라인 오네 "
" 이과?? 나 맨날 문과쪽에서 보이길래 문과인줄 알았는데?? "
" 쟤 이과야, 맨날 변백현이랑 김종인이랑 같이 다니잖아 "
뭐야 그냥 이상한 애였네. 이과면서 왜 문과반쪽에 기웃거려.
" 거의 맨날 오던데? "
" 문과반에 줄리엣 있다더라 "
" 줄리엣? "
" 오세훈이 좋아하는 여자애 "
ㅋㅋㅋㅋㅋㅋㅋㅋ줄리엣? 웬 줄리엣? 이과,문과 커플이라서 로미오와 줄리엣?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참 생각을 하다가 겨우 이해한 나는 풋,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그럼 오세훈은 로미오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어, 어떻게 알았어 "
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글오글!!!!!!!!! 로미오와 줄리엣이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상외의 로맨티스트에 박장대소를 했다. 와 진짜 별명 누가 지은거야 진짜 잘지었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대체 줄리엣 누구냐, 왜 우리 로미오의 사랑을 안받아줰ㅋㅋㅋㅋㅋ "
" 나도 궁금해서 이과반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아는 애가 하나도 없더라 "
" 나 진짜 미치겠네ㅋㅋㅋㅋㅋㅋ 우리 학교에 그런 커플이 있었다니 "
거의 울듯이 끕끕 거리면서 웃는데 마침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바람에 억지로 웃음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이과 로미오 문과 줄리엣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학년에서 처음 들려오는 공개 커플 소식에 괜히 내가 더 설레인다.
이제 곧 있으면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란히 걸어다니는 모습 볼 수 있는건가요
*
아까 전 잠깐 나갔다 들어온 세훈이의 상태가 이상하다. 평소같았다면 다시 백현이와 종인이 옆에 앉아있었을테지만 웬일인지 곧장 자기 자리에 앉아서 계속 기도를 하는건지 양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저 새끼 왜 저러냐 "
매점 갔다온 친구의 빵을 한 입 뺏어먹은 종인이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 울어? 왜 또 울고 그래! "
백현이의 말에도 세훈이는 여전히 얼굴만 가리고 있었다. 이상한 분위기에 종인이는 앉았던 의자를 제자리에 넣어두고 세훈이의 곁에 와 알짱거렸다.
" 왜 그래 "
" 몰라 줄리엣한테 차였나봐 "
거친 콧바람을 내쉬던 세훈이는 안운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리고 계속해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기기위해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 안우네, 뭐야 "
" 왜 이래 이 새끼. 존나 소름돋네 "
주변의 타박에도 고개를 떨구고있다가 천천히 무언가 중얼거리는 세훈이
" .이..ㅅ..했어 "
" 뭐? "
" ㅈ..에..ㅎ..고.. 이..ㅏ..했어 "
듣다못한 종인이 힘을 주어 세훈이의 어깨를 들자 살짝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 인사했어 줄리엣하고 "
" ... "
" ○○○하고 "
인사때문에 이 난리를 떨다니.. 그것도 일년동안 따라다녔으면서...계속해서 좋아하고있는 세훈이를 사이에 두고 백현이와 종인이는 약속이라도 한듯 눈빛을 교환했다.
이 새끼는 진성 찌질이구나
겉은 쎈캐, 속은 진성 찌질이,이과 로미오 오세훈 X 대체 줄리엣이 누구길래 로미오의 사랑을 안받아 주는가, 문과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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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요
제가 많이 늦었져..핰ㅋㅋㅋㅋㅋㅋ죄송합니다 점핑절을 해도 부족하네요..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이번 단편은 조금 고민을 하기도, 처음부터 다 뒤집어 엎기도했던 스토리라서 준비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네요.. 이번편은 남주시점이 많아서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실거라고 생각하지만 다음편부터는 원래처럼 여주 시점이 더 많아질 예정이니 이번 단편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참고로 세개의 에피소드 여자주인공들은 모두 다른 인물입니다. 그점 유의해주시구 전 모든편에 떡밥을 던져놓으니 눈크게 뜨시구 잘 찾아봐주세요!! 저 기다려주시는 독자분들께 말로 다 표현을 못할정도로 너무 감사드리구 사랑합니다!! ㅜㅜ 모두들 일교차 심한데다가 미세먼지도 심하니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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