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 꼴이 왜 이 모양이야? ”
도어락이 해제되는 경쾌한 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양 손 가득 무언가를 든 백현이 거실로 들어섰다. 잘 지냈어? 하고 다정히 물으려던 백현은 소파에 뻣뻣하게 앉아있는 경수에 이내 입을 다물었다. 현관에서 들려오는 기척에도 전혀 움직임이 없는 경수에 가만히 상황을 파악하던 백현이 장을 봐온 봉지들을 내려놓고 경수에게로 향했다. 이리저리 흐트러진 머리가 볼품없었다.
“ 도경수. ”
“ …… ”
“ … 사람 답답하게 하지말고 말 좀 해. 또 무슨 일인데. ”
“ …… ”
“ … 야. ”
“ 약혼해. ”
뭐?
뜬금없이 튀어나온 경수의 말에 백현이 팍, 미간에 힘을 준다. 무슨 소리야 또. 백현이 경수의 어깨를 붙들었다. 어디로 향해있는지 모를 시선이 불안정하게 움직였다. … 도경수, 너 울었어?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 주변이 금방까지도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음을 알려줬다. 게다가 잠도 자지 않았는지 붉게 충혈된 눈이 별안간 또 볼품이 없다.
맛있는 거 해주려고 잔뜩 장도 봐왔는데. 오늘 도경수의 상태를 보아하니 음식을 씹어넘길 상태가 아닌 것 같다. 백현은 한숨을 쉬며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 김종인이, 약혼해. ”
“ …… 뭐? ”
“ …… 김종인이 … ”
충격을 받은 건 역시 경수 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김종인이, 뭐? 널 두고 약혼을 해? 뒷통수를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것 마냥 얼얼하다. 백현이 픽 웃었다. 약혼?
“ 뒷통수 한번 제대로 때리네. ”
“ …… ”
“ …… 골 때리는 새끼. ”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나간 건 알았지만 이렇게 의외의 방향으로 내용을 전개시킬줄은 꿈에도 몰랐다. 뜬금없이 약혼이라니. 경수의 말에 백현은 그 어떤 말을 들었던 것보다 놀랐지만 티낼 수는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경수의 멍한 동공이 다른 생각 같은 건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하얀 카드를 발견했다. 축하합니다, 라는 다섯글자를 읽어내리기가 무섭게 백현이 그것을 낚아채었다. 경수가 그것을 저지하기도 전이었다.
“ 김종인이 준거야? ”
“ …… ”
“ 잔인한 놈. ”
“ …… ”
“ …… 널 얼만큼 망가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
[ 초대합니다. ]
초대장을 펼치는 백현의 손이 떨리고 있었음을 경수는 알았다.
“ 백현아. ”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던 경수의 첫 마디였다.
“ …… 어? ”
“ …… 여자 이름이 뭐야? ”
“ …… ”
“ … 김종인이 만나는 여자 이름쯤이야 … 알아둬도 괜찮잖아. ”
“ …… ”
“ …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사인데. ”
힘겹게 몸을 기대고 앉는 경수가 힘겨워보인 건 비단 아픈 눈 탓이었을까. 아릿한 것이 꼭 눈물이라도 터질 것만 같이 고통스러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겹게 버티고 있는 네가 안쓰러웠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어올리던 경수가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 …… 양한나. ”
“ …… 이름 예쁘네. ”
큰 눈이 조용히 깜빡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히 감긴다. 경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 그거, 쓰레기통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온거야. ”
“ …… ”
“ … 화가 나서 … 홧김에 버렸었는데. ”
“ …… ”
“ … 안되더라. 못 버리겠더라고. ”
“ …… ”
“ … 알잖아, 나 엄청 약아빠진 거 …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해도 내용은 못 읽겠더라. ”
그 작은 카드 하나로 무너져 내릴 내가 싫어서, 펼쳐들진 못했어.
“ … 돌려달라고 그랬어. ”
“ …… ”
“ … 너에게 받친 나의 20대, 내 청춘, 내 시간. ”
돌려달라고 소리쳤지만, 돌아오는 건 건조하기만 한 대답 뿐.
“ … 모르는 것 같더라. ”
“ …… ”
“ … 그 크기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 ”
“ …… ”
“ … 나는, 지금도 내려놓지 못해 버거운데 …… ”
나는 언제쯤 내가 떠안긴 것들을 내려놓고 편안히 숨쉴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걸 바랄 수 있는 자격조차 박탈 당했는지도 모른다. 널 사랑했던 그 순간부터, 나는 인간임에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을 내려놓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날 사랑하는 줄 알았고, 날 버리지 않을 줄 알았다.
“ …… 그러게 내가 뭐랬어 … ”
“ …… ”
“ … 내가 그만하라고 그랬잖아 … ”
“ …… ”
“ … 너한테 이미 마음 떠난 것 같으니까. ”
“ …… ”
“ … 그만두라고 그랬었잖아 … ”
귀가 먹먹하다. 그리고 백현의 눈도 먹먹하다.
거실 안을 가득 메우는 울먹임의 목소리는 눈물이 마르지 않은 한 사람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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