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찬열은 그 단어를 소름끼치도록 싫어한다.
철없던 스물 셋의 여름, 부모님의 앞에서 두 무릎을 단단히 꿇어앉히고
저 게이입니다. 소리친 이후의 일이 크나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먹고 살만 하다고 찬열은 표현하지만 남들이 보면 제 자랑과도 같다.
수십 년을 이어 내려온 전통 있는 주류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요식업으로 유명한 모 회사의 이사직을 맡고 있는 어머니 사이의 외동아들은
먹고 살만 하다는 표현이 우스울 정도로 하찮기 때문이다.
뭐, 집안이 그런데다가 외동아들이니 당연히 찬열의 말은 대를 끊겠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라 두 분 모두 뒷목을 잡고 쓰러지셨다.
다행히도 어린 애인을 옆에 함께 앉히지는 않았지만, 정신병동 키를 내미는 부모님 앞에 젊은 찬열은 소리쳤었다.
“전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실 거면 차라리 박 씨 집안 아들 없다고 생각하세요!”
부모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큰 캐리어 하나를 덜렁 주시고는 찬열을 내쫓았더란다.
모든 경제적 지원은 끊겠다는 한 마디와 함께.
그렇게 스물 셋의 여름은 찬열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저물어갔다.
육년 후 스물아홉의 찬열은 담배를 든 손만 빼꼼 내민 채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미친 새끼... 무릎을 꿇고 빌어도 모자랐다, 모자랐어. 씨이발...”
“열이 형! 주인 누나가 빨리 안 들어오면 인센티브 깐다고, 얼른 들어오래요.”
“씨이발... 미친년”
거친 쌍욕을 내뱉으면서도 찬열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담배를 벽에 지져 꺼버리고는 머리를 한번 쓱 손을 댄다. 잘난 이마와 콧대, 단번에 호감을 살 만한 미소가 띄워진 얄팍한 입술.
스물아홉, Bar Simple의 메인 호스트 ‘열’ 로서의 밤이 시작되었다.
게이. 정확히는 가난한 게이인 경수는 휴대폰 요금 고지서를 들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뭘 했다고 삼 만원이나 나온 거야. 이럴 일이 없는데.”
뚫어지게 고지서만 쳐다봐도 도통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잡혀 경수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내렸다.
단정히 가라앉아 있던 까만 머리칼이 경수의 머릿속 마냥 헝클어졌다.
“씨발, 삼각 김밥만 졸라 쳐 먹게 생겼네. 아오, 아오 빡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경수는 쿵쿵대며 집안을 돌아다녔다. 삭지 않는 분노에 결국 세면대 앞에서 분노의 세수를 하다가 수도세 걱정에 찌질하게도 수도를 꼭 잠갔다.
앉은뱅이책상 하나 없이 달랑 매트리스만 있는, 난방도 틀지 않는 황량한 방에서 가난한 게이는 고지서를 찢는 일로 분을 삭여야 했다.
종잇조각들이 흐트러진 매트리스 위에 멍하니 누운 경수의 신경을 날카로운 전화 벨 소리가 건드렸다.
짜증스레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 경수는 한숨을 한번 푹 내쉰 뒤 마지못해 받아들었다.
- 왜.
- 전화 받는 싸가지 하고는, 오늘 비번이지?
- 알면서 왜 전화해.
- 쉬면 돈 없잖아. 내가 너 뻔히 아는데.
- 어쩌라고.
- 나오라고, 나오라고. 1.5배 쳐 드릴 테니까 나오시라고.
- 2배.
- 돌았니?
- 2배 아니면 끊어. 너 나 아니면 전화할 인간도 없지? 나오라고 해도 나올 인간들도 아니고.
전화기 너머 여자, 그러니까 이름이- 면접 이후로는 가물가물 한. 통칭 ‘주인’ 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 두 배! 그 이상은 장사 하지 말란 소리. 빨리나와.
- 교통비도 내놔. 휴대폰 요금 많이 나와서 택시 못 타.
- 저녁도 먹여 주고 택시비도 줄 테니까 당장 안와!
까칠한 여자의 목소리에 경수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번졌다.
- 30분.
가서 하는 일이라곤 남자와 뒹굴 일 뿐인데. 가뿐히 샤워를 생략한 경수는 거울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
겉옷을 걸쳐 입고 모자를 뒤집어 쓴 후 신발을 구겨 신었다. 높은 달동네의 언덕을 뛰어내려오며 경수는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3분 안으로 부탁드립니다!”
스물 셋. Bar Simple로 출근하는 가난한 게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전후상황 알고 나니까 이이경 AAA에서 한 수상소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