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13101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아우디 전체글ll조회 35900


 

bgm 두번째 달 - 복장 불량!

 

 

"경수 총각! 20층 청소 총각이 했어?"
"네? 왜, 왜요? 문제 생겼어요?"

룸메이드 오피스에서 학창시절을 회상한다. 올 여름,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수험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안일하고 행복한 청춘의 안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때의 경수는 옹졸한 교복 차림을 하고도 점심과 저녁을 굶는 일 따위는 없었고, 참고서를 살 돈이 쥐어지면 여가 비용에 보탬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한때는 저가 치열한 경쟁의 시기를 기꺼이 짊어진 어린 영웅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2001호 투숙객 비품이 없어졌다잖어."

비록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지만 무사히 대학이라는 종착역에 발을 디딘 경수가,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기도 전에 육체 노동의 현장에서 혹사를 당하고 있다. 경수에겐 소박한 꿈이 있었다. 명석한 브레인을 주무기로 장학금을 싹쓸이하는 것. 경수는 그 꿈이 얼마나 자아도취적이고 허황된 꿈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둘째 아들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나 남다른 포부로 대학에 당도하여 좋은 벗-중딩 때부터 열라게 배워온 반어법이 맞다- 박찬열을 만났더니 장학금은 커녕 부끄러운 학점과 입학금, 어마어마한 학비가 남았더랬다.

"저는 아무것도 안 건들였는데.."

학자금 대출은 희망인 척하며 손길을 내밀었지만 부끄럽게도 성적은 지원자격 미달의 수준까지 이르렀다. 장학재단이 등진 남자 도경수는 그렇게 구인 구직의 현장에 뛰어들었다. 경수와 달리 집이 부유한 찬열이 녀석은 흥청망청 술값을 쓰는 것만 봐도 학비에 대한 근심이 없어 보였다. 찬열을 따라 작년 방학의 목표는 딱 질릴 때까지만 놀기였으나, 뱁새가 황새 따라 놀면 안 된다던가? 올 방학 경수의 목표는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또 벌기로 바뀌었다. 구직 사이트를 다 뒤져도 나오는 건 시시껄렁한 시급의 편의점 알바와 당일치기 공돌이 알바.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결과 높은 페이로 경수를 유혹한 건 대리운전과 퀵서비스 알바였는데, 멍청하게 10초 뒤 자신이 무면허라는 것을 상기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후보는 지금 일터인 호텔의 하우스맨 자리였다.

 

 

 

 

 

 


Maid In Korea

W. 아우디

 

 

 

 

 

 


첫날은 그럴싸했다. 비록 소매가 남고 정사이즈대로라면 타이트할 바지가 배기 팬츠처럼 헐렁거리긴 했으나 벨보이 유니폼은 알바를 뛴다는 것에 자부심을 부여할 만했다. 유니폼을 입고 거울을 향해 웃어 보였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는 거다. 호텔에 방문하는 모든 업타운 걸을 꼬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예감과 다르게 그날 하루는 엉망으로 흘러갔다. 아무리 작은 고추가 맵다지만 체구 작은 한낱 알바생이었던 경수는 짐꾼 역할을 수행하기엔 역량 부족이었다. 종일 시원찮다는 눈빛으로 경수를 감시하던 매니저는 '경수 씨, 이럼 안 되는데..'라는 우회적인 말로 운을 뗐고, '해고야.'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아직도 경수는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일생일대의 위기상황에서 자존심을 기꺼이 벗어던진 채 제발 일만 하게 해달라고 생떼를 썼다. 경수의 눈물 연기가 꽤 탁월했는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룸메이드 자리를 점할 수 있었다. 아줌마들의 '저 총각 참 불쌍하네.'도 수준급 조연 대사였다.

"아무리 그렇더래두 총각이 해결을 봐야 할 것 아녀. 얼른 안 올라가고 뭐 혀?"

어떻게 연명한 일자리인데 문제가 생기다니, 가슴이 다시 한 번 내려앉는다. 아무리 돈이 궁해도 남의 물건에 감히 손대는 내가 아니잖아? 침착하자. 속으로 곱씹었지만 생각과 달리 2001호 문 앞에서 죄인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푹 숙이고 섰다. 노크를 하기도 전에 안쪽에서 문이 열려 화들짝 놀랐다. 그 찰나의 제스쳐는 제가 보아도 충분한 의심의 촉진제였다.

"뭐야."
"저, 뭐가 없어지셨다고.."
"청소 아줌마 부르랬더니 웬 남자애를 데려다놨어?"
"이 방 청소 제가 했거든요?"

케케묵은 욱하는 성질이 올라와서 큰 소리를 쳤더니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이 불쾌감을 드러내며 일그러진다. 짙은 쌍커풀을 한 눈매에 힘이 들어가자 한층 더 험상궂은 인상이 완성됐다.

"그럼 저기 책상 위에 있던 서류 어딨는지 알겠네. 어디다 치웠어?"

내가 이 방만 전용으로 청소하는 줄 아세요? 아니, 중요한 서류 같은 건 알아서 잘 보관하셨어야지. 생사람 잡고 있네. 그리고 왜 반말이야. 마음의 소리는 그렇게 경수에게만 들렸다.

"글쎄요.. 제가 이 방만 청소하는 게 아니라서요."
"지금 내가 그 소리 듣자고 질문하는 걸로 보여?"

정말 기억을 못해낸다면 죽일 듯한 눈초리를 쏘아대길래 방 안을 흘끗 살펴보니 오전에 청소하느라 애를 먹은 스위트룸이었다. 오피스 내 유일한 청일점이 힘 좀 쓰라는 아주머니들의 등살에 떠밀려 맡은 방이다. 책상 위에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던 종이들이라면 티끌 하나 없이 싹 분리수거를 한 기억 말곤 없는데?

"아, 그 종이들이요? 그거 다 버렸는데.."
"잘리고 싶어서 작정했어?"
"체크아웃 하신 줄 알고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스위트룸은 비싼 요금 때문에 1박 투숙이 다반사다. 성실한 일개 직원이고 싶었던 경수는 메뉴얼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고, 그 다음 변명은 잘리고 싶냐는 남자의 물음에 생각해낼 수 없었다. 융통성 없이 멋대로 넘겨짚은 경수의 실수가 완전히 맞았다.

"찾아내."
"네?"
"내일까지 가져와."

더이상의 말마디는 필요없었는지 객실의 문은 쾅, 닫혔다.

"저기!"

저 퇴근해야 되는데요!






 

 

 

 




손목시계는 벌써 9시를 가르킨다. 이 많은 종이뭉치를 언제 다 뒤져. 지하주차장 구석에 위치한 분리수거장에 홀로 남겨진 경수는 서러운 심사에 울먹였다. 초여름인데도 바람이 차구나. 전화벨이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발신인은 박찬열이다.

- 찌질아. 어디냐.
"바빠."
- 찌질이 주제에 바쁘긴. 나와.
"나 일해."
- 그만하고 나와.
"나 일한다고......."

찬열의 독촉에 괜히 더 서럽고 울적해져서 울음이 터졌다. 종이박스를 짚고 어깨를 들썩이는 경수의 모습은 누가 보았더라면 정말 '저놈의 찌질이.'라는 감탄사를 자아냈을 게 분명하다. 서륜지 뭔지는 아직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데 뒤져야 할 박스는 아직 열댓개가 남은 상태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설움은 배로 부풀었다.

- 왜 짜? 잘렸어? 누가 우리 차세대 벨보이를 울려? 누구야.
"끊어."

이거 못 찾으면 당장 해고니까 오늘은 널 등져야겠다.



 

 

 

 

 



손전등까지 동원해 하룻밤을 꼬박 새어 서류 비스무리한 것은 모두 색출해냈다. 간밤에 평생 동안 볼 수 있는 전단지는 다 구경한 것 같다. 순찰을 돌던 경비아저씨의 호통에 간이 떨어질 듯이 놀라기도 했다. 어디 외박이냐며 엄마께 잔소리를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경수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광대뼈와와 하이파이브라도 할 듯이 내려온 다크서클, 수면 부족으로 파닥파닥 뛰어대는 심장 하며, 감기기운까지 돌고 있었다.

종이를 담은 박스를 들고 오피스에 들어섰는데 잠잠했던 짜증이 치민다. 저녁에 울었던 것이 생각나 괜히 발을 구르기도 했다.

"총각 몰골이 왜 그런디야."
"이모. 2001호 오늘은 체크아웃 하겠죠?"
"장기 투숙객이라던디?"
"에이, 설마요. 하루에 600 짜리 방을.."

경수의 머리가 자동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6 곱하기 7은? 42. 거기다 100을 또 곱하면? 4200. 일 주일만 묵어도 사천 이백이 날라가는데 거기서 장기 투숙을 한다고? 예사롭지 않은 남자임이 분명하다.
2001호로 향하는 경수의 발걸음은 어제처럼 점점 느릿느릿해졌고, 노크를 하기까지는 몇 분이나 소요됐다. 이 남자는 5분이 지나도 기척이 없다.

"안 계세요?"
"..."
"저기요."
"또 뭐야. 아침부터."

벌컥 문 열어재끼는 게 취미인가 싶을 정도로 당차게 등장한 남자는 상의도 벗어재낀 상태였다. 악몽이라도 꿨는지 앞머리는 땀에 젖어 축 늘어졌다.

"이거 받으세요. 어제 말씀하신 거."
"필요없어."
"어제 분명히 다시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여기 직원들은 원래 그렇게 눈치가 없나?"

열불 터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이었다. 초딩 시절 그렇게나 좋아하던 윌리를 찾아라에서 윌리를 찾을 때처럼 열심히 종이박스를 뒤졌던 경수다. 윌리 백 명을 찾을 때만큼의 에너지를 다 쏟았단 말이다.

"이보세요."

한계점을 지나 이성의 끈은 놓으려는 찰나였다. 한 마디 던지려는 순간, 새하얀 침대 시트를 몸에 두른 미모의 여성이 나타나 남자의 등 뒤로 붙으며 말했다.

"무슨 일 생겼어?"

어디에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 낯이 익는 얼굴이라 자세히 보니 효진이었다. 경수에겐 그저 대학 동기, 과의 꽃이자 과대의 구여친 자리를 거쳐 현직은 박찬열의 여자친구인 이효진. 이런 사실만 들어도 바로 추측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자주 화두에 올랐고, 갈등 유발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기억력에 하자 있는 경수라도 자주 본 얼굴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효진도 경수를 알아봤는지 놀란 기색을 재빨리 숨기고 경수의 눈치를 살살 본다.

"종인씨. 이 사람 뭔데?"
"신경 끄고 들어가."

양쪽 다 무안한 상황이 되자 효진은 방 안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반면 경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표정 관리가 어려웠다.

"표정이 왜 그래? 이 호텔 인사과에 전화 안 넣은 걸 다행으로 알라고."
"..."
"아줌마 안 쓰고 사내 새낄 데려다 쓰니까 이 사단이 나지."
"죄송합니다.."

그때 경수에겐 대화를 빨리 종결시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야."
- 어제 내 문자고 전화고 다 씹더니 이제서야 연락하고 있어, 이게.
"여기 어디 호텔인지 알지. 데리러 와."
- 얼씨구. 기사님 고용하셨어요?
"너 차 뒀다가 뭐 해?"

찬열이한테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답 없는 고민 때문에 종일 청소를 발로 하는지 손으로 하는지도 몰랐다. 얼마 안 돼 등장한 찬열이의 해맑은 표정은 고맙게도 경수에게 해답을 주었다. 그냥 다물자. 입을 열면 자존심 박살난 박찬열이 뿜어내는 저기압에 덩달아 기빨릴지도 모르니까.

"가자. 술 사준다며."
"어젠 왜 그랬어. 짐셔틀 하기 힘드냐? 그러게 내가 그런 건 나처럼 키 큰 장정들이나 가능한 일이라고 했잖아."
"안 닥쳐?"

지 여친 단속이나 잘하지. 경수는 이 순간 진심으로 찬열의 멀대가 허당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허당이라 할지라도 벨보이 잘려서 열심히 방 청소하게 된 에피소드를 실토하면 평생치 놀림감이 될 게 분명하다. 창 밖을 넋 놓고 바라보자 잡생각이 둥둥 떠다니는데, 그 사이에 싸가지 투숙객이 튀어나왔다. 재수없게 생긴 면상에 걸맞은 재수없는 멘트가 떠오른다. '아줌마 안 쓰고 사내 새낄 데려다 쓰니까 이 사단이 나지.'


"싸가지없는 자식.."
"뭐라고 궁시렁대냐?"
"뭐. 운전이나 제대로 해."

오랜만에 벌인 술판이라 찬열과 경수는 진상떡이 되어 널부러졌다. 오늘 경수는 사랑하는 치킨도 마다하고 술만 꼴딱꼴딱 넘겼다. 찬열과 다르게 약한 주량 때문에 500cc 두 잔에 엎어진 지 오래였다. 취기가 돌자 의도치 않은 헛소리들이 줄줄 새어나온다.

"박찬열아. 니 여친 그, 효지니. 걔. 헤어져!"
"웬 귀신이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못생겼어. 헤어져. 당장!"
"미쳤냐? 두 잔 먹고 맛이 갔네."
"걔는 니 인생에 도움이 안 될 애라구... 엉?"
"우리 경수 내가 예쁜 여친 얻었다고 질투났쩌요."
"징그러워 새꺄."
"아직 걔랑 키스까지밖에 못 나갔는데 지금 파토내기엔 아쉬워."

이 새낀 정말 겉만 뺀질뺀질한 멍청이가 아닌가 싶다. 다른 남자랑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신바람 난 것 같던데.


"오늘 아침부터 연락 안 돼서 걱정된다. 전화해봐야겠네."

효진이는 외간남자랑 떡방아 찧느라 허리에 디스크 걸려서 집에 누워 계시겠죠. 멍청이라는 말은 취소다. 병신이다, 상병신.


 

 

 





어제 찬열이와의 술자리는 경수의 구토로 마무리됐다. 차라리 잠을 더 자는 것이 경수에게 이로웠을 것이다. 술냄새에 쩔어서 출근하는 경수가 아니꼬운지 아줌마들이 한 소리씩 거드신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알콜에 의지하면 해결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둥, 애정어린 잔소리였다. 그럴 땐 저를 친아들처럼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친아들처럼 부려먹을 땐 예외였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다.

"경수 총각도 엄마 있으면 알겠지마는, 이 나이 묵으믄 관절염이 장난이 아니여."
"무릎 패치 사다드려요?"
"아이고, 접때 총각이 대신 거 큰 방 맡아줬을 땐 살 만했는디."

이런 식으로 아줌마들은 스위트룸 청소를 경수에게 미루는 것이다. 이모들, 저는 사실 병약한 소년입니다. 보세요. 체구도 남다르게 작잖아요? 저 벨보이도 못해서 잘린 거 잊으셨나요? 말하기엔 경수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항의를 꾹 삼켜내고 20층 버튼을 누른다. 남자가 오늘은 영영 체크아웃 했길 바라며.

다행히 재수없는 낯짝과 마주치진 않았지만 옷장에 가지런히 걸려져 있는 와이셔츠들을 보니 아직 퇴실 전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돈이 얼마나 남아돌기에 이 방에 계속 묵는 걸까? 그리고 힘이 얼마나 남아돌기에 콘돔 껍질 여러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걸까? 이걸 봤을 땐 경수는 정말 식겁했다. 나이는 몇일까? 궁금증은 이미 도를 지나쳤다. 경수는 이미 이곳저곳에 있는 남자의 물건들을 염탐하고 있었다.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찔려서 흘끔흘끔 훔쳐보았다. 저번과 달리 책상 위에는 두꺼운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마케팅원론.. 경영학 진리체계.. 김종인.."

이젠 대놓고 서적들의 표지를 읽기 시작했는데 책상 한켠에 놓인 도색잡지를 발견했을 땐 웃음이 터졌다. 보아하니 경영학 전공 대학원생 즈음이 되는 것 같다. 이름까진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경수는 부지런한 손길로 베드 메이킹을 마치고 침대 위로 엎어졌다. 어렵사리 각을 잡아놓은 커버가 구겨졌지만 잠시 쉬고 싶었다. 크리스탈 상들리에가 매달린 천장을 바라보며 경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나도 이런 데서 하루만 자보고 싶다. 부럽다. 나른하고 노곤한 기분이다. 어제도 그제도 잠 한 번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침대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꿈을 꿨다. 싸가지 투숙객이 얼굴을 들이대고 '뭐야?'라며 경수를 귀찮게 했다. 저놈의 뭐야, 꿈에서까지 나와서 괴롭히다니.

"꺼져. 이 싸가지 없는 자식아!!"

경수는 당당하게 종인의 거시기를 발로 까준 뒤 악몽을 벗어났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밖은 이미 어두웠고, 누워있는 곳이 안방 침대도 오피스 소파도 아닌 객실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절망감에 힘이 쭉 빠졌다. 근무시간 내에 세상 모르고 자다니. 해고의 예감이 경수를 엄습했다. 저 자신에게 난 화를 풀 길이 없어서 애꿎은 이불을 손으로 팡팡 쳤다.

"에이씨.."
"가지가지 한다."
"어?"

화들짝 놀란 경수가 고개를 돌린 쪽에는 종인이 방문에 기대어 커피를 홀짝이며 경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일은 도경수 인생 역대 쪽팔림 족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것이다.

"그 눈 크게 뜨는 것 좀 안 할 수 없나? 눈알 빠지겠네."
"왜 안 깨우셨어요?"
"깨우니까 발로 거기 깠잖아."
"저는 완전히, 백퍼센트 오늘부로 해고예요..."

경수는 침대에 걸터 앉아 이마를 짚고 혼미한 정신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여전히 몸은 비몽사몽인데다가, 체면은 다 구겨졌다. 경수의 표정은 지금 딱 죽상이었다.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와 경수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위로의 손길인가 싶었던 경수는 이내 유니폼의 깃이 잡힌 상태로 문 앞까지 질질 끌려갔다.

"왜 이러세요! 목 늘어난단 말이에요!"
"나가서 울어."

매정하게 경수를 내친 종인은 문을 쾅 닫아버렸다. 매일 같은 레퍼토리를 겪으니 별로 놀랍지도 않은 경수였다. 다만 저 싸가지의 끝은 어딜까 의문스러울 뿐이다.

"총각! 왜 거기서 나오는겨?"
"아, 아, 음.. 제가 실수로 샴푸를 비치 안 해놨었나봐요."
"퇴근할 시간 아녀?"
"그렇죠.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느라 그걸 까먹었네. 근데 매니저님이 저 안 찾으셨어요?"
"몰러. 오늘 저짝에서 미팅을 한다나 뭐라나 하믄서 일찍 나가던디?"
"청소 안 된 방은 없었고요..?"
"있길래 내가 해부렀지. 또 김씨 아줌마가 농땡이 깐 게 분명혀. 그 여편네는 은제 잘릴란가 몰러."

십 년 감수했다.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섰는데 다리에 힘이 쫙 풀린다. 경수에게 이런 경험은 고등학생 시절에도 있었다. 양호실 청소를 하다 침대가 푹신해 한 번 눕는다는 게 7교시까지의 단잠으로 이어졌고, 행방불명된 경수를 찾아 헤매던 경수의 담임은 분노 게이지가 상승해 결국 벌점 20점을 선물해 주었다. 경수는 여전히 그 사건의 절반은 제 탓이지만 절반은 저를 방관한 친구들과 출장을 떠난 양호선생님 탓이라고 굳게 믿는다.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섰다. 옆에 기척이 느껴져 흘끗 보니 재수탱이 남자다. 이놈의 엘레베이터는 왜 자꾸 안 오는 거야.

"뭘 봐?"
"몇 살인데 자꾸 반말이세요?"
"내가 청소부한테까지 존칭을 써야 되나? 그리고 너, 길이만 보면 열여섯 짜리 애 같다고."
"허이구. 그쪽은 키 커서 좋으시겠어요."
"너는 왜 남자가 돼서 이런 일하는데?"
"남녀 평등 시대에 그런 거 구분을 누가 한대요?"
"너 빼고 다."

말문이 막혔다. 이 순간 경수는 우월한 키, 그리고 체격 유전자를 잊어먹으신 엄마 아빠가 너무 미웠다. 기분이 표정으로 다 드러나는 성격이라 엘레베이터에 탑승해서도 입을 꾹 다물고 바닥만 응시했다.

"일도 엉망으로 하면서 자존심은 상하나 보지."
"아 어쩌라구요~ 앞으로 그 방 안 가요."
"누가 오지 말래? 잘리고 싶으면 그렇게 해. 오늘 엎어져서 잔 거 다 말해버릴 테니까."

이건 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일까?

"그리고, 아줌마들은 다 입는 앞치마 너는 왜 안 입는데?"
"그쪽 같으면 레이스 달린 앞치마 입고 싶겠어요?"
"나는 안 입지. 청소부가 아니니까."
"저는 그냥 안 입어요."
"입어."

종인은 작정한 게 분명해 보였다. 속내는 경수가 짐작한 대로였다. 이 성가시는 새끼 이거 물 좀 제대로 먹여 보자.

"근데 있잖아요.."
"뭐."
"저번에 방에 있던 여자.."

기가 막힌 타이밍에 1층에 도착한 엘레베이터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경수의 말엔 별 관심도 없었다는 걸 입증하듯 종인은 반사적으로 걸어나갔다. 엘레베이터가 경수에게 '오지랖은 이제 그만.'이라고 조언하는 것 같았다. 경수가 애꿎은 닫힘 버튼을 누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저 왕재수!"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대표 사진
독자1
아우디님 암내에요!
우아 잼있다..재미써요..굿!!!!!!
찬여리는 왜 저런녀잘만나서..;;;;;;
종인이는 ..참ㅋㅋㅋㅋ얼른 경수한테 반하길... 담편기대할께요!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전형적인 없는 재벌남이에요 ^.ㅜ 로코물의 공식? 묘밐ㅋㅋㅋㅋ?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안녕하세요!와너무재밌어요ㅋㅋㅋㅋ그리고종인이랑경수성격이제스타일이라그런지더재밌내요ㅋㅋ잘읽고갑니닿ㅎ아암호닉신청해도되나요?왓썹입니다ㅎㅎ다음편기대할게요!!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리댓 늦어서 죄송해요....찌지리 경수와 싹아지 종인이가 맘에 드시나봐요 헤헷ㅋ 댓글 감사합니당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으잌ㅋㄱㅋㅋㅋㅋㅋㅋㅋ다시보니 제목이ㅋㅋㅋㅋㅋㅋ메이드인코리아에.메이드가아니었어!!!작가닝 센스넘치시네영ㅋㅋㅋㅋㅋ아진짜재밌게잘봤습니당ㅋㅋㅋ담편 넘 기대되요ㅜㅠㅠ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제 필명이 더 센스 넘치니까 필명 뜻 좀 맞춰주세요 ^ㅇ^ㅋㅋㅋ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4
엌ㅋㅋㅋ재미쎀ㅋㅋㅋㅋㅋㅋ흥미진진돋넼ㅋㅋㅋㅋㅋㅋㅋㅋ아우디님 ㅠ00ㅠ 신알싱해욬ㅋㅋㅋㅋㅋ궁비젬..⊙.⊙상큼터져...로코드라마보는 느낌이야...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5
할 진짜 제목이 made가아니고 maid옇어 유년시절에 씽크빅 좀 하셧나바여...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구몬도 하고 싱크빅도 하고 빨간ㅍ펜도... ^ㅠ^헤헿ㅎ 감사합니당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6
헐 작가님 이거재밌다 진짜재밌다 ㅠㅠㅠㅠㅠ빨리써듀세여!!현기증나니끼어서!!!!!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네!!!!!!!!!!!!!!!!!!!!!!! 씁니다!!!!!!!!!!!!!!!!!!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7
헐재밌어요...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헐 감사해요... ()(__)()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7
우왕ㅇ..........................................................궁비젬 좋으네요 ㅎ.ㅎ.ㅎ..ㅎㅎㅎㅎ신알신하고가요 !! 암호닉 요정하겟슴당..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궁 브금 정말 설레지 않ㄴ나요...? 정말 제가 살아하는 브금이에요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8
신알신 하고가여ㅠㅠㅠ재밌어요..우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잘보고가요>0<!!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0< 우오와오아오앙ㅇ 감사합ㄴㅣ다 乃乃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9
으잌ㅋㅋ좋네여 암호닉 백토끼요~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
(^^)
00
백토끼님 감사의 뜻으로 이모티콘 가지세요ㅋㅋㅋㅋㅋㅋㅋ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10
쩌르다.........재밌어요!!!!!!!!!!!!!!!!!!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감사합니다!!!!!!!!
13년 전
대표 사진
삭제한 댓글
(본인이 직접 삭제한 댓글입니다)
13년 전
대표 사진
아우디
네~ 푸푸님 꼭 기억할게요~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12
정주행할께요ㅠㅠㅠㅠ기대되는 전개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13
어ㅏ재밌다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ㅜㅠ이제정주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ㅠㅜㅠㅜㅠㅠㅜ토켜엉수 신정할게요!!!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14
종인이는 돈많고 까칠해야 맛이제!!! 잘 읽었습니다용
13년 전
대표 사진
독자15
헝ㄹ 이게 글잡거였다니ㅠㅠㅠㅠㅠㅠ다시봐도 완전 꿀잼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대표 사진
독자16
보고또봐도재밌네이건 ㅠㅠㅠㅠㅜ 다시정주행해야지 ㅋㅋㅋㅋㅋㅋ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7
와후.. 와후와후 세쿠시한 니니의 모습이 막그려지네요ㅠㅠ 경수는 왜이리또귀여운건지ㅠ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8
텍스트로 보다가 마지막이 인티 출처길래 이렇게 봅니다ㅠㅠ넘 재밌어요!!♥️
10년 전
대표 사진
독자19
와 핵재밌다 진짜...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배우/주지훈] 시간 낭비 _ #016
12.03 00:21 l 워커홀릭
[김남준] 남친이 잠수 이별을 했다_단편
08.01 05:32 l 김민짱
[전정국] 형사로 나타난 그 녀석_단편 2
06.12 03:22 l 김민짱
[김석진] 전역한 오빠가 옥탑방으로 돌아왔다_단편 4
05.28 00:53 l 김민짱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十一3
01.14 01:10 l 도비
[김선호] 13살이면 뭐 괜찮지 않나? 001
01.09 16:25 l 콩딱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十2
12.29 20:51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九1
12.16 22:46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八2
12.10 22:30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七2
12.05 01:41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六4
11.25 01:33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五2
11.07 12:07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四
11.04 14:50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三
11.03 00:21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二
11.01 11:00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一
10.31 11:18 l 도비
[김재욱] 아저씨! 나 좀 봐요! -024
10.16 16:52 l 유쏘
[주지훈] 아저씨 나 좋아해요? 174
08.01 06:37 l 콩딱
[이동욱] 남은 인생 5년 022
07.30 03:38 l 콩딱
[이동욱] 남은 인생 5년 018
07.26 01:57 l 콩딱
[샤이니] 내 최애가 결혼 상대? 20
07.20 16:03 l 이바라기
[샤이니] 내 최애가 결혼 상대? 192
05.20 13:38 l 이바라기
[주지훈] 아저씨 나 좋아해요? 번외편8
04.30 18:59 l 콩딱
/
11.04 17:54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1.04 17:53
[몬스타엑스/기현] 내 남자친구는 아이돌 #713
03.21 03:16 l 꽁딱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7
03.10 05:15 l 콩딱


12345678910다음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