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냥냥이와 댕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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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프닝과 해프닝
" 나 왔어. "
" 형님. 요즘 외박이 잦으십니다. "
주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지민이 지친 걸음으로 들어오는 윤기를 맞이했다.
뭐, 윤기가 무심하게 대꾸하며 쇼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태형과 지민이 그 눈치를 살피다가 동시에 옆에 달라붙었다.
" 맨날 집이나 작업실에만 박혀있는 사람이 요즘 자꾸 외박하는 게 영 수상하단 말이죠. "
" ... "
" 형. 어제 새벽에 어디 갔어요. "
" 알아서 뭐하게. "
" 아니 요즘은 나갔다 하면 외박이잖아요. 궁금해서 그러죠. 그 누나하고 사귄 다음부터 유독 그러니까. "
" ... "
" 말해봐요. 그 누나랑 어디까지 갔어요. "
윤기가 귀찮다는 듯 팔을 휘적거렸다. 지난 새벽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실 희주의 전화에 반쯤은 의무적인 기분으로 나간 윤기였다. 술에 취할 때마다 잔뜩 텐션이 높아져선 전화를 걸고 계속해서 애정표현을 하는 희주가 부담스러웠으니까. 차라리 직접 가서 데려다 주는 걸로 그 보챔을 달래는 게 나았다. 그럴 때마다 희주는 끈질기게 모텔로 저를 이끌었다. 정말 뭐에 미친 사람처럼. 오늘도 결국은 모텔에 갔다가 오후가 되서야 저를 보내준 희주였다. 윤기는 쇼파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제대로 된 연애가 처음이라곤 해도, 어딘가 자꾸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다. 매번 만나기만 하면 모텔에서 마무리되는 이 연애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요근래 외박이 잦다며 성화인 태형과 지민의 말도 유난은 아니었다. 데이트만 나가면 외박을 하고 돌아왔으니까.
" ...좀 떨어져. 술냄새 나. "
가까이 달라붙은 태형과 지민에게서 술냄새가 났다. 둘 다 붓기가 빠지지 않은 게 늦게까지 술을 마신 듯 했다. 윤기가 얼굴을 잔뜩 구기며 밀치자 태형과 지민이 힘없이 나자빠졌다. 태형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윤기에게 말했다.
" 잉. 재미없어. "
" 몇시까지 마셨냐. "
" ...여섯신가? "
아냐. 일곱시야, 아닌데. 여섯신데? 태형과 지민이 들어온 시간으로 투닥거렸다. 보아하니 인사불성 상태로 아침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둘 다 술이 약한데도 끝까지 가는 타입이라 동기들과 마시는 날이면 꼭 다음날에 들어오곤 했다.
윤기는 그런 둘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보통 낮이면 거실에 나와있는 여주가 보이지 않았다.
" 여주는. "
" 누나 아침부터 안보였는데. "
' 내가 호석이 챙길테니까 넌 들어가라고. '
윤기는 어제 제가 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밤 늦게까지 여주가 호석을 기다린다는 말에 심사가 뒤틀려서 무심결에 한 말이었다.
원래 여주가 호석이 술자리에 나갈 때마다 걱정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제는 그게 참을 수 없이 불쾌했다. 그저 친구일 뿐인 사이에서 여주가 그 정도의 마음을 호석에게 쓰고 있다는 게 새삼 이상했다. 결국은 자신도 친구일 뿐이었지만, 윤기는 그 모순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관계의 깊이가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여주와 윤기는 어떤 바람에도 결코 뿌리째 뽑히지 않을 단단한 관계였다. 되먹지도 않은 연애를 끝내고서도, 전과 같이 제 마음만 잘 다스리면 여주는 끝까지 제 편에서 제 친구로 남을 사람이었다. 언젠가 져버릴 불완전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묶어둘 수 없는 아이였다. 지금처럼 사랑인지 의무감인지 반쯤은 헷갈리는 감정으로 만나는 희주와는 격이 달랐다. 언젠가 희주의 손은 가차없이 놓을 수 있는 윤기였지만, 여주의 손만큼은 놓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윤기에게 여주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제 손을 잡고 있는 여주가 똑같은 무게로 호석의 손을 잡고 있다고는 생각치 않았다. 여주의 곁에 없던 열아홉, 그 찰나에 끼어든 호석은 둘 사이를 넘볼 수 없는 사람이었다. 윤기에게도 호석은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그 선을 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여주가 호석을 각별하게 생각한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불쾌했던 건, 제가 그어놓은 경계가 자꾸 흐려졌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고 제게 기울어져있어야 하는 여주의 무게추가 자꾸만 호석쪽으로 향하는 게 윤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젯밤 여주의 말에 대신 호석을 기다리겠다고 한 건 그런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예정에 없던 희주의 전화로 인해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희주와 있으면서도 윤기는 내내 그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결국은 호석이 올 때까지 기다렸을 여주에 대한 조바심, 어느 쪽이 더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윤기는 당장이라도 여주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오늘 하루종일 같이 있어달라는 희주의 애원에도 급한 일이 있다는 변명으로 꾸역꾸역 온 건 그 때문이었다. 여주의 얼굴을 마주하고 무슨 말이라도 해야 내내 답답하던 속이 뚫릴 것 같았다. 윤기는 저를 보내주며 눈물까지 그렁했던 희주의 얼굴따위는 새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 아침부터? "
" 넹. 저희도 오늘 아침에 들어와가지구, 볼 틈이 없었어요. 어디 나간 거 아닐까요? "
아예 생각치도 않은 듯 태형의 눈이 말갛게 빛났다. 저보다 집순이인 애가 어딜 나갈 턱이 없었다. 윤기는 대각선으로 보이는 여주의 방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 덜컥 '
그 때 여주의 방문이 열렸다.
" ... "
" 어. 누나! "
태형이 벌떡 일어나서 여주를 불렀다. 그 부름이 들리지 않는지 여주는 고개를 고정한 채 터벅터벅 냉장고 앞으로만 직진했다. 그 앞을 태형이 가로막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든 듯 눈을 크게 떴다.
" 누나. 얼굴이 왜 그래요? "
고개를 갸웃해가며 대낮부터 꽤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태형이었다. 하지만 여주는 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늦은 아침까지 잠을 설친 까닭에 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
" 잠을 제대로 못잤어. "
" 잠만 못잔 얼굴이 아닌데에. "
" 좀 비켜봐. 물 마시게. "
여주는 성가신 듯 제 앞의 태형을 밀쳤다. 지난 새벽 제 침대에서 소리없는 비명을 몇번이고 지르며 이불이고 베개고 전부 던지면서 지랄발광을 한 덕에 목이 바짝바짝 마르고 몸도 쿡쿡 쑤셨다. 난장판이 된 제 방은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그냥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물을 들이마시며 아직까지 소란스러운 머릿 속이 차분하게 가라앉기만을 바랐다.
" 잉. 누나 목에 모기 물렸어요? "
" ㅍㅜ훕!!!!!!!!!!! "
하지만 제 목을 정확히 가리키는 태형으로 인해 여주는 평정심을 잃고 마시던 물을 그대로 뿜고 말았다.
“ 우악! “
정통으로 물에 맞은 태형이 소매로 거칠게 얼굴을 부볐다. 미안, 여주는 건성으로 사과하며 급하게 냉장고에 비추는 목을 살폈다. 흐물흐물한 형상속에서 빨갛게 부어오른 목덜미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침에 목이 타서 몰골도 확인하지 못하고 나오는 바람에 미처 살피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여주는 잽싸게 손으로 목덜미를 가렸다. 누구에게라도 들키면 곤란한 것이었다.
이건 명백한 키스마크였으니까.
지난 새벽 호석과 키스를 했다. 그것도, 입맞춤의 수준을 넘어서서 아주 진하게.
처음엔 맞닿을 뿐이었던 호석의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며 제 아랫입술을 깨물고, 제 입안으로 따뜻하고 물컹한 게 들어왔다. 분명 부드러웠지만 숨이 가파올 만큼 격한 키스였다. 중간중간 숨 쉬는 틈마다 아랫 입술을 훔쳐오는 그 입술과, 반쯤 감긴 채 농염하게 눈을 맞춰오는 호석의 눈동자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아찔했다. 제 눈 앞의 호석이 오랜 친구라는 사실조차 새까맣게 잊었을 만큼. 처음 느끼는 수컷의 향기에 여주는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호석의 깊은 눈동자에 중독된 채 몸을 맡길 뿐이었다. 긴 입맞춤 뒤 호석은 낮게 숨을 내쉬며 제 목으로 입술을 옮겼다.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자연스럽게 여주는 거실바닥에 등을 맞대고, 호석은 그 위를 올라타는 형상이 됐다. 그조차 의식할 틈 없이 호석은 마치 저를 탐하듯 제 목덜미에 입을 맞춰왔다. 여주는 눈을 꼭 감은 채 터져나오는 신음을 참아야 했다. 정말이지, 소름돋는 목소리가 저 끝에서 비집고 튀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온 몸의 감각이 목에만 집중된 것처럼 떨려왔다. 거실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아무래도 좋았다. 위에서 내려오는 호석의 온기가 훨씬 따뜻했으니까. 여주는 자기도 모르게 그 등을 감싸 안고, 제 쪽으로 호석을 더 끌어당겼다. 때마침 호석의 몸이 순식간에 제게 쏟아지며 온 몸을 덮었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칠던 호석의 숨이 규칙적으로 제 귓가에 간질거렸다. 여주는 감고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호석을 살폈다. 어느새 호석은 제 위에 쓰러진 채 잠들어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주 평온하고 예쁜 얼굴로. 여주는 그 상태로 하염없이 천장만 바라보았다. 불알친구를 상대로 순간적인 충동에 휩싸인 저를 원망하면서.
호석이야 술에 만취했다곤 해도, 여주는 제정신이었다. 잠이 쏟아지는 시간이긴 했지만 그 새벽만큼은 지나칠 만큼 정신이 또렷했다. 그래서 지난 새벽 호석의 눈빛 하나하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부 기억났다. 분명히 다가오는 호석을 거부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눈빛을 멀리 할 수가 없었다. 순간 파문처럼 번진 그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그 순간만큼은 호석을 원했다. 그게 무엇이든간에.
여주는 입술을 훔치며 호석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오늘만큼은 그 얼굴을 마주하지 않길 바랐다. 이상한 죄책감과 야릇한 기분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여주였으니까.
“ 아 진짜, 누나. 왜 갑자기 물을 뿜고 그래요 “
“ 미안미안. 내가 좀 피곤해가지고. 방에 좀 들어가서 좀 쉬어야겠다. “
여주는 진짜 미안하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여전히 한 손으로 목을 가린 채 다시 방으로 몸을 돌렸다. 거실에 있어봤자 추궁할 껀덕지만 던져줄 뿐이었다. 그대로 방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데, 별안간 큰 손이 제 손목을 잡았다. 윤기였다.
“ 잠 제대로 못잤어? “
호석생각에 잠깐 잊고 있던 얼굴이었다. 윤기 얼굴을 마주하자 여주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결국은 또 아침까지 들어오지 않은 윤기였다. 분명히 빨리 돌아온다고 했으면서. 윤기가 떠날 때부터 예감은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을 어기는 건 역시 상처였다. 하지만 구태여 말을 꺼내고 싶진 않았다. 연애중인 윤기에게 누가 더 중요한 지 여주는 알았으니까. 오히려 그래서 더 초연해질 수 있었다. 여주는 태연하게 윤기의 물음에 답했다.
“ 응. 좀. “
여주는 윤기의 손을 조심스레 떼어내고, 다시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또 윤기의 손에 손목이 잡히고 말았다.
목 가리느라 한 손은 자유롭지도 않은데, 여주는 짜증을 감추지 않고 윤기를 바라봤다.
" 왜 자꾸. "
" ...나한테 할 말은 따로 없어? "
윤기가 망설이는 듯 물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곧 죽어도 하지 않는 윤기의 버릇이었다. 그 한 마디가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윤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럴 때는 상대에게 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게 물음을 던졌다. 윤기는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제 잘못을 수긍하는 늬앙스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릴때나, 다 컸을 때나 변함이 없었다. 여주는 윤기를 가만히 보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평소였다면 그 말에 노발대발 화가 난 이유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했겠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혼자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일이 몇가지는 더 생긴 하루였다.
" 무슨 말을 해 내가. 여자친구 만나러 간 애한테. "
" ... "
" 그래도 오늘은 일찍왔네. 그 시간에 나가면 저녁은 되서 오더니. "
태연하게 굴려고 했는데 무의식 중에 비꼬듯 말을 내뱉어버린 여주였다. 마지막 말에서 가시가 잔뜩 돋친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윤기도 그 말에 움찔 어깨를 들썩였다.
여주가 그게 그런 말이 아니고, 어버버 수습하려는 듯 잡혀있는 손으로 손사레를 치자 윤기가 그 손을 누르고 말했다.
" 미안. "
" ...어? "
" 미안하다고. 내가 기다린다고, 빨리 오겠다고 했으면서 지금 들어온 거. "
난생처음 보는 윤기의 얼굴이었다. 민망한 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귓볼이 윤기의 심정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여주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윤기가 물었다.
" 그래서 몇시에 잤는데. "
" ...여덟시? "
" 덜렁아. 얼굴에 물도 안닦고 뭐하냐, "
아까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얼굴로 제 손목을 다급하게 잡아챘으면서 겨우 이런 말이나 하려고 그랬던건가. 여주는 평소처럼 다정하고 나른해진 윤기가 소매로 조심스레 제 얼굴을 닦는 손길을 가만히 받아내며 의아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윤기의 입에서 처음 튀어나온 미안하다는 말도, 상대가 먼저 이유를 말하기도 전에 잘못한 지점을 짚어낸 것도 전부 생소했다. 저를 바라보는 윤기의 눈길이 전보다 따스해서 속이 울렁거렸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고 생각한 심장이 또다시 쿵쿵 뛰었다. 무뎌질 법하면 이렇게 혼자 고민할 여지를 만드는 윤기가 괜히 원망스러울 정도로, 시끄럽게.
여주는 빤히 윤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 아잇, 그만 닦어. 나 얼굴도 안씻었어. "
" 왠지 눈곱 붙어있더라. "
" ...뒤질래 진짜. "
윤기는 피식 웃음이 났다. 처음 내뱉은 미안하다는 말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지난 새벽 내내 집으로 돌아가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윤기는 여주를 알았다. 티는 내지 않지만 이런 작은 것들에도 잘 상처받는 아이라는 걸. 몇번이고 그런 순간들을 무심하게 지나쳤던 윤기였지만 오늘만큼은 먼저 말을 꺼내고 싶었다. 생각보다 쉽게 내뱉은 제 사과에 묘하게 굳어있던 여주의 표정이 사르르 풀리는 모습이 윤기를 웃게 했다.
여주가 후다닥 거칠게 눈가를 부비자 산발인 머리가 작은 움직임에도 나풀대는 게 귀여웠다. 윤기는 그 머리칼을 더 헤집어 놓으며 여주에게 물었다.
" 여덟시에 잤다고? "
" 어어. "
" 그럼 호석ㅇ, "
" 엉??!!?? 호석이!!?????왜!?뭐?!왜!? "
별안간 윤기의 입에서 튀어나온 호석의 이름에 여주가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쳤다. 그 모습에 윤기의 미간이 좁아졌다.
“ ...몇시까지 기다렸냐고. “
" 아우 난 또. 방에서 나왔다는 줄 알았네. "
" ... "
" 네신가 다섯신가. 여튼 그 쯤. "
정확히 만취한 호석을 데리러 갔다가 도착한 시간이 다섯시쯤이었다. 그 전후사정이야 말해봤자 제 몹쓸 기억만 떠올릴 것 같아서 여주는 시간을 어림잡아 대충 답했다.
의문스러운 여주의 반응에 고개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윤기를 눈치채지 못한 채, 여주는 제 방 옆에 붙어있는 호석의 방문을 힐끔 봤다. 열릴 기미 없이 통 잠잠했다. 호석이 거실로 나오기 전에 얼른 튀어야 했다.
" 그럼 됐지? 나 방 들어간당. "
여주가 자연스럽게 손을 뿌리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 여주 안녕. "
" 으아ㅏㅏㅏ아ㅏㅏㅏㅏ악!!!!! "
기어코 그 방문이 열리고 호석이 나왔다. 경기 일으키듯 놀란 여주가 방으로 향하던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을 헛디뎠다. 순식간에 기울어진 세상 속에서 여주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래, 차라리 쪽팔리더라도 머리 한 번 크게 박고 정신이라도 잃는 게 낫지!!!! 제 한 몸 다쳐서라도 이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여주였다.
'풀썩'
하지만 여주의 바람과는 달리 제 머리통이 안착한 곳은 딱딱한 거실바닥이 아닌 누군가의 품이었다.
" 조심해야지. "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을 뜬 순간, 아주 가까이서 호석의 얼굴이 보였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몸을 한 팔로 지탱한 채 여유롭게 웃고 있는 호석을 보자마자 여주는 푸닥거리며 일어섰다. 평온한 호석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새벽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 숨이 턱 막혔다. 여주는 재빠르게 다시 목을 한 손으로 가렸다.
" 여주야. 나 꿀물 좀 타줄 수 있어? "
별안간 심장이 요동쳐서 얼른 방으로 달려가고 싶었는데, 여주의 손을 잡고 호석이 그런 부탁을 해왔다.
여주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서 앉아있어. 말하곤 얼른 호석의 곁에서 멀어졌다. 여주는 잽싸게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물이 얼른 끓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전기포트가 느린 것만 같았다.
그 사이 호석이 쇼파에 앉자 지민이 그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 형. 어제 몇시까지 마셨어요. "
" 모르겠네. 기억이 하나도 안나. "
" 잉. 아랫입술은 또 왜그래요. "
" 그르게. 아침에 일어나니까 피딱지가 져있더라. "
" 형. 현피 떴어요? "
태형이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호석에게 물었다. 호석은 고럼. 형이 17대 1로 이겼지, 장난을 받아주며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원인제공자인 여주는 가만히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 여주는 제 아랫입술을 깨물어오는 호석을 따라한답시고 무턱대고 물어뜯었다가 호석의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아, 작은 신음을 내며 입술을 뗐지만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 입술을 찾던 호석이었다. 피비린맛이 얽혀오는 입맞춤이 이상하게도 더 짜릿했었다. 여주는 다시 떠오른 몹쓸 기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아하니 호석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대로라면 저 혼자 무덤까지 들고갈 비밀로 남겨두면 됐다.
티격태격 장난을 걸어오는 태형과 지민을 받아주던 호석이 거실을 빙 둘러보며 물었다.
" 나 어제 누가 데려다 준 거야? "
" 넹? "
" 핸드폰도 꺼져있고. 들어온 기억이 전혀 없는데. 옷도 새옷이고. "
호석의 물음에 여주는 등이 섬짓했다. 내내 장난을 치던 태형과 지민도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형 혼자 들어온 거 아니에요? "
" 그런 줄 알았더니 어제 같이 술 마신 동생이 카톡 남겨놨더라고. 하메분이 데리고 갔다고. 너네야? "
" 저랑 지민이는 오늘 아침에 들어왔는데요? "
" 남준이형은. "
" 남준이형은 취업캠프때문에 내일 올걸요. 윤기형은 방금 들어왔고. "
" 그래? "
" 그럼 여주누나뿐인데? "
지민의 말에 모든 하메들의 시선이 여주에게로 꽂혔다. 심장을 추스르던 여주의 동공이 빠른 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어제 형을 집에 데려올 수 있는 사람은 누나밖에 없었는데 옷이 갈아입혀져 있었다...? "
태형이 혼잣말처럼 상황을 정리했다. 마지막 어미를 묘하게 꺾는게 수상하다는 기미가 역력했다. 지가 명탐정코난도 아니고. 여주는 요즘 태형이 잠잠해져서 속에 묻어두었던 합법적으로 김태형 때리는 법을 떠올렸다.
'탁'
때마침 전기포트가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여주는 준비해놨던 꿀이 담겨진 머그컵에 물을 촤라라 붓곤 그대로 호석에게 들이밀었다.
호석이 어리둥절해하며 머그잔을 받자 여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 누나. "
하지만 이번에는 어깨를 붙잡히고 말았다. 다 캐내겠다는 듯한 눈빛의 태형에게.
" 누나, 솔직히 말해봐요.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
" 무, 무슨 일은 무슨... "
" 어제 새벽에 쉐하에 있던 건 누나뿐인데 호석이형 옷이 갈아 입혀져 있었다는 건... "
" 으아니!!!! 옷은 지가 알아서 갈아입었거든! "
" 왜 갑자기 급발진이에요? "
" 뭐, 뭐가아!! "
"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랬는데. "
" ... "
" 이제 보니까 아랫입술이 퉁퉁 부었네요, 누나. "
제 얼굴을 살피는 태형의 눈빛이 집요해졌다. 정확히 입술을 가리키며 머리통을 들이미는 태형이 정말 지난 새벽의 일까지 추리해낼 것 같아 여주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래서 한쪽 목을 가리고 있던 손도 떼고 태형을 있는 힘껏 밀었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호석이 틈만 나면 아랫입술을 깨무는 바람에 제 입술까지 부은 모양이었다.
" 누나도 어제 늦게 잤다잖아. 입술까지 부었나보지. "
호석의 옆에 있던 지민이 무심하게 여주의 편을 들었다. 태형의 추리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고럼고럼, 여주는 고개까지 세차게 끄덕이며 태형을 바라봤다. 아직도 수상하다는 듯 집요한 눈빛이 사라지지 않은 태형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여주는 도망치기 위해 엉덩이를 뒤로 내뺐다. 호석도 호석이었지만 소름 돋을 정도로 눈치가 빠른 태형과 오늘은 최대한 부딪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메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여주가 카펫을 벗어날 무렵, 등 뒤의 무언가와 부딪혔다. 여주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너 목에 이거 뭐야. "
등 뒤에서, 윤기가 지독하게 차가운 눈빛으로 제 목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
여러분 그거 아세요...?
냥댕은요...건전한 제목에 비해...은근히 불건전하다는 거....
그리고 앞으론 점점 더 건전해지지 않을 거란 거...(찡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디 여러분이 미는 어남땡과 찌인하게 불경스럽게 가길 바랍니다!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셨길 바라요!
또 찾아올게요 :->
〈 암호닉 명단 > -12.26기준
연꽃 / 느낌표 / 흩어지게해 / 빙빙 / 티백 / 찰떡쿠키 / 한결 / 청포도 / 사탕 / 토마토 / 김김이 / 어남윤 / 하얀설탕 / 복숭아 / 사삼공 / 만두 / 어남석 / 수박바 / 콩나물 / 고앵이 / 흑슈가 / 참새쨍 / 블루 / 콩이 / 순 / 윤꼬꼬 / 키딩미 / 가든 / 뷰뱌 / 불면증 / 보금자리 / 푸름 / 딸기 / 해결 / 프리지아 / 무럭무럭 / 도리도리 / 유니 / 봄 / 해강 / 율무차 / 토미 / 싱글벙글 / 감자탕 / 서콩이 / 달빛주스 / 새싹이 / 1218 / 가지 / 여나 / 예그리나 / 소우주 / 댕댕 / 하꼬 / 밍밍이 / 솜사탕 / 쪼꼬
- 빠진 암호닉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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