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ness |
경수를 데려와.
크리스는 한참이나 멍하니 서있다가 고개를 숙이고 나가는 레이의 뒷모습을 응시한 뒤 쇼파로 걸어가 앉았다. 손에 쥐여져 있는 티켓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이없다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을 흘려버리고는 고개를 젓혀 눈을 감았다. 과연 내가 이것을 주면 그 아이는 이것을 받아줄까. 경수의 웃는 모습이 생각이 나지않는다. 자신과 있었을때 웃은적이 있는기는 한걸까.. 복잡한 생각에 크리스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는데 서재의 문이 열리고 경수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처연하게 말라있는 가느다란 팔목이 가슴터지게 슬퍼보였다.
멍하니 마주치는 눈빛에 무엇이 그렇게 안타깝게 오고갔을까, 아마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앉아. 툭하니 내뱉는 크리스의 말에 경수가 발걸음을 옮겨 쇼파에 앉았다. 조용함이 어색한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눈을 굴리다가 크리스의 손에 쥐어진 비행기 티켓을 보았는지 그곳만 물끄러미 응시한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해 하던 크리스가 문득 경수의 눈빛을 눈치채고 자신의 손에 쥐여진 티켓을 보다가 티켓 한장을 경수의 앞에 밀어놓는다. 진한 흑갈색의 탁자위에 하얀 티켓 한장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계속 맴돌았다.
" .... 같이 가자고 하면 같이 가줄래? "
" ..... "
" 네 말대로 난 자기멋대로인 인간이라 니가 싫다고 해도.. 억지도 데려갈꺼야. "
" .... "
" .... 사랑해... "
아무 말 없이 티켓만 내려다보는 경수의 모습이 꾀나 무서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크리스는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에 경수에게 해줄 말은 저 말 한마디 밖에 없어서, 그래서 말했다. 사랑한다고. 너를 이만큼이나 절절하게 사랑한다고. 내 인생에 너말고 다른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수는 없을꺼라고. 경수가 원한다면 크리스는 자신의 심장을 꺼내 보여주고 싶었다. 조금은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그러고싶었다.
크리스의 사랑에 경수의 대답은 눈물이었다. 그가 어렵게 말한 사랑을 자신이 모를리가 없다. 자신도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 당연히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서웠다. 이번엔 왼손을 잃었지만 다음번엔 무엇을 잃을까, 분명 자신이 선택했지만 그런 선택을 생각하고 실행하게 만든 이 남자의 세계가 무서웠다. 어찌보면 자신도 이미 그 세계에 일원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 실행을 옮겼으니, 그랬으니깐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한번 맛을 봤기에 다음번에는 어쩌면 자신의 목숨까지 쉽게 생각할까봐 그래서 무서웠다. 있잖아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하는 경수의 말에 크리스가 귀를 귀울였다. 놓아달라고 하면 정말 놓아줘야되는것일까, 그건 싫은데.. 미간을 찢부리는 크리스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 난.. 앞으로 뭘 더 잃어야 해요? "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뱉는 경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뭘 잃다니, 니가 뭘 잃는데.. 당황함에 눈을 내리깔은 크리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경수의 왼손이었다. 곧이어 작은 탄식과 함께 크리스가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우습게도 저 겁이 많은 나의 아이는 앞으로도 놓여진 그 상황에 겁이 난 것이었다. 그래, 잃는 것이 두렵겠지 한번도 이렇게 큰 것을 잃어본적도 잃을것이라고 생각도 안해봤겠지..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가 경수의 옆모습을 홀린듯이 응시했다. 이리와. 낮게 깔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경수가 고개를 들어 크리스를 바라봤다.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고 몇분이 지났을까, 경수가 몸을 일으켜 크리스의 앞으로 가서 가만히 서있었다.
그 순간 강하게 잡아 당기는 힘에 경수가 힘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듯 크리스의 품에 안겼고 크리스는 경수의 어깨에 손을 두른채 가만가만 쓸어주었다.
" 내 뒤에 숨어있어라 "
" .... 흑 "
" 내 뒤에, 내 품에 지금처럼 숨어서 내 힘을 이용해 "
" 난.... 난.. "
" 내가 가진 힘이 너의 무기가 될꺼야, 도경수. 나를 이용해 "
멍하니 고개를 올려 크리스를 바라보는 경수의 눈빛에 눈물이 그득하다. 그래, 나를 이용해. 내가 가진 이 힘으로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못하게 지켜. 기꺼이 너에게 나는 이용당하겠다. 미소 짓는 크리스의 얼굴이 어쩐지 조금은 슬퍼보인다. 경수의 볼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크리스의 손길이 다정하다. 경수는 허리를 세워 크리스를 안았다. 그래요.. 내가.. 내가 당신 이용할꺼야.. 그러니깐.. 흑.. 당신도 나 버리면 안돼. 귓가에 조근하니 울려 퍼지는 경수의 목소리가 좋다. 크리스가 미소지어 고개를 끄덕였다.
* * *
" 왜, 왜이러는건가!!! 총수께서도 아시는건가!!! "
" 미친.. 당연한거 아니야? 그러니깐 돈은 왜 받아 쳐 먹니, 썩은 줄 잡은게 니 죄야. "
비웃음을 짓는 백현의 얼굴이 하얗게 빛이 났다. 이사진중에서도 딸랑딸랑 아부만 하던 놈이라 기분이 나빴는데 잘됬네. 고개를 끄덕이는 백현의 손에서 나이프의 날이 빛이 나고 있다. 남자의 뒤에서 찬열은 서울의 경관을 바라보며 담배만 뻐끔뻐끔 피워대고 있었다. 뇌물 받은걸로 좋은 집을 샀는지 강남 땅에서도 비싼 한강변 아파트, 그것도 로얄층에 살고 있는 남자의 집에 쳐들어왔을때, 남자는 돈을 세고 있었다. 저건 누구의 돈일까.. 남자에게 주먹을 날리는 찬열의 뒤에서 백현이 상황에 어울리지않는 제법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집안을 기웃거렸다.
" 미친, 박찬열 담배 끄라고! 냄새 존나 나네.. "
" 아오.. 백현아, 너 한국어 선생이 누구였지? "
홍콩 돌아가면 그 새끼부터 존나 족칠꺼야. 휴대용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면서 툴툴 거리는 찬열을 보며 백현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전에 니가 맞아 디진다. 섬뜩한 발언에 찬열이 어깨를 들썩이며 어색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아 소름돋게 이쁘네.. 그런 찬열을 비웃어준 백현이 다시 남자의 앞에 쭈그려 앉곤 고개를 끄덕였다. 너 카이가 뭐라고 하던? 겁에 질린 남자는 벌벌 떨다가 이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 이 병신.. 백현이 피곤한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 백현아 "
" 엉? "
" 쫌 빨리 죽이면 안돼? 우리 점심 먹자, 내가 디저트 맛있는 코스요리집 알아놨어. "
" .... 진짜? "
응! 진짜지. 사람좋게 웃는 찬열의 모습에 백현이 순간 고민했다. 알아낼수있는건 빨리 알아내야되는데.. 아 어차피 죽일꺼.. 고민하는 것이 확연히 눈에 보이는 것에 찬열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딱봐도 저 놈은 뭔가를 더 불꺼같지는 않는데 짜증나게 백현을 뭘 더 알아보겠다고 시간을 질질 끄는지 알수가 없다. 이러다가 점심 못 먹고 본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초조한 마음에 결국 찬열은 재빨리 백현의 손에서 나이프를 뺏어들고 남자의 이마에 박았다.
아 씨발! 남자의 머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왔고 백현의 하얀 셔츠에 빨간 피자국이 꼭 꽃잎처럼 붉게 물들어있었다. 눈을 감은채 입술을 꼭 깨문 백현이 화를 참으려는듯 심호흡을 하자 찬열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그니깐 내가 밥 먹으러 가자고 했잖아.. 얼굴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조용히 닦은 백현이 몸을 일으켜 찬열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발로 찼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주저 앉은 찬열은 바라보며 숨을 내쉰 백현이 뒤를 돌아 옷매무새를 다듬자 찬열이 벌떡 일어나 백현의 어깨에 손을 두른다. 미소짓는 모습이 이렇게 맞고도 좋은건가, 잠시 미친놈처럼 보였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리고 찬열이 윙크를 날린 뒤 수트 안쪽 포켓에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몇번 대답을 하더니 전화를 끊고 물끄러미 백현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크리스가 홍콩본사 정리 잘 해놓으래, 그리고 팰리스매매 시작하래. "
" 팰리스를? 벌써? "
" 응, 아마도 본격적으로 물갈이 할 생각인가봐. 아 또 여름휴가 못가겠네... "
" 기회 살짝 봐서 우리 층 하나만 빼놓자. "
팰리스는 디렉트 소유의 고층 아파트였다. 50층의 모든 층은 복층구조이고 호화스러움의 극치였으며 크리스가 자리를 물려받자마자 홍콩에 제일 먼저 세우기 시작한 건물이었다.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얼마전 팰리스의 건축이 완료되었고 그 기세가 등등한 것이 벌써부터 홍콩의 온갖 고위층들이 입주하려 눈치를 보고있는 아파트였다. 대박! 좋은 생각이야! 박수를 짝하고 친 찬열이 백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자신의 품으로 당겨 안았다. 그리고 뒤에 펼쳐진 핏빛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둘의 화사한 미소가 눈이 부셨다. 아참, 백현이 찬열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웃다가 고개를 들어올려 찬열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제일 중요한거 말 안했어. 단호한 백현의 말투에 찬열이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 팰리스 맨 꼭대기 층은 비워두래. "
" 아 그게 제일 중요하냐! "
" 당연하지! "
" 아.. 존나 ㅉ.. "
" 도경수가 중국국적을 취득할껀데. "
깜짝 놀란 백현이 눈을 크게 뜨고 찬열을 쳐다봤다. 정말이야? 놀란 마음에 목소리까지 부들부들 떨려왔다. 고개를 끄덕인 찬열이 백현의 어깨를 고쳐잡고는 앞으로 걸었다. 이제부터 할일이 산더미였다. 그렇다면 밥이라도 잘 먹여야지.. 처음봤을때와는 다르게 조금 마른 백현의 볼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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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
안녕하세요! 씨엘입니다 ㅎㅎㅎ 벌써 10편이 끝났어요 ㅠㅠㅠㅠㅠ 그런 의미로 여기서 메일링을 할까 생각중인데! 괜찮으세요? 메일링이 허용되는거라면 살포시 이메일을 남겨주세요...
된다면 부록이랑 번외도 조금 넣을 생각입니다.. 아 이제 절대가인 써야지... ㅁ7ㅁ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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