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변백현] Eternal Sunshine 01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50513/3207020bc079d21b553341f6dd869d41.jpg)
Eternal Sunshine (영원한 눈부심)
1. 나의 불행을 바라는 당신
"아, 왜 하필 여기야."
꿋꿋하게 자리를 잡고 식판을 올려놓았다. 내가 앉자마자 주변에 있던 애들이 하나같이 자리를 뜬다. 마치 비둘기가 후드득 날개짓을 하며 떠나는것 마냥.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다. 누군가와 마주하고 밥을 먹은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않는다.
그냥 언젠가부터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런 나를 보며 애들은 무인도라고 불렀다. 넓은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버려진 섬. 나는 그 단어가 나를 아주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버려진 섬. 그 부분을 나는 꽤나 마음에 들어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것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리가 여기밖에 없는데."
"미친년. 왜 여기서 밥을 먹고 지랄이야."
"그러게. 눈치가 있으면 얼른 먹고 일어나지."
미친년. 무인도와 더불어 나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 무인도보다도 더 자주 쓰이곤 하는 말이었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않아도 나는 미친년으로 통하곤 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난 공공연한 미친년이었다. 그냥 그것도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어버렸다. 하긴, 내가 보기에도 내 모습은 미친년이라 불리기 딱 좋았다. 허구한날 더럽혀진 교복 대신에 체육복을 입고 다니며 수업시간에 갑자기 일어나 뛰쳐나가 버리곤 했으니까. 그렇게 불리는게 당연하다.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에 젓가락을 놓고 일어나려다 다시 고쳐잡았다.
신경쓰지말자. 나는 배고프고 오늘의 메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떡볶이니까. 집어든 젓가락으로 떡볶이를 찔러 들어올렸다. 아, 맛있어. 언제 먹어도 우리학교 떡볶이는 참 맛있는거같다.
"아."
"아이고, 의자에 발이 걸렸네. 그러게 왜 여기 앉았어. 거슬리게."
얼굴로 뜨거운 국물이 튀었다. 나도 모르게 아 라는 단발마의 비명 비슷한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내 식판위로 여러개의 식판이 올려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던져진게 맞는거겠지.누가 봐도 고의적인거였지만 나는 딱히 따질 생각은 없었다. 얼굴에 튄 뜨거운 국물보다 걱정되는건 떡볶이였다. 아직 두개밖에 못 먹었는데.
아쉬움에 젓가락을 놓는 순간, 어디선가 숟가락이 날아와 머리에 부딪혔다. 동시에 수많은 애들이 나를 향해 식판을 던졌고, 교복은 금새 더러워졌다. 그래, 조용히 지나갈리가 없지.
"너때문에 밥맛 떨어졌잖아, 미친년아."
머리위로 쏟아지는 요거트가 대박이었다. 늘 국물로 샤워했었는데 요거트를 들이부을 생각을 하다니. 웃음이 났다. 오늘은 좀 참신한 괴롭힘이었다. 이 상황에도 웃음이 나다니.
하도 주변에서 미친년, 미친년 하더니 내가 정말로 미쳤나보다.
그래도 계속 이러고있는건 내 비싼 교복에 대한 예의가 아닌것같아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런 나를 보며 애들은 더럽다고 피했다. 떡볶이 국물이 진하게 베인 교복을 보니 보통 세탁으로 끝날것같지는 않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급식실을 나가려는 순간, 머리위에서 흘러내리는 요거트보다 더 진득한 시선으로 날 보는 변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시야를 가리는 요거트를 손으로 치워내며 그 눈을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미친놈.'
-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고 동시에 눈이 떠졌다. 밤새 뒤척였다. 사실 푹 자는건 손에 꼽을만큼 드물다. 늘 얕은잠에 들었다 깨기를 수십번 반복한다. 고칠 수 없는 고질병 같은거였다.
'교복 핑계로 학교 안 올 생각하지마.'
알람을 끄고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의 홀드버튼을 누르자마자 보이는 문자에 기분이 나빠졌다. 발신인은 변백현이었다. 현관문 앞에 보란듯이 놓여있는 새 교복이 담긴 쇼핑백은 더 기분 나빴다. 어차피 늘 좋을리 없는 기분이지만.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자 검은색 차 한대가 집앞을 가로막고있다. 보나마나 뻔하지. 내가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도록 변백현이 보낸 차일것이다. 순순히 차에 올라타기엔 오늘따라 내 별로 남지않은 자존심이 허락하지않는다. 결국 난 보란듯이 차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마치 날 보고있는듯한 변백현의 문자가 온다. 바로 지금처럼.
'다리병신 되기전에 차에 타.'
변백현은 좋게 말하면 될것을 꼭 험한말로 바꿔 말하는 이상한 재주가 있다. 그냥 차에 올라타라고 해도 나는 올라탔을텐데.
나를 겁주려는 의도로 하는 험한말이라면 완벽한 실패다. 이젠 이런 말들을 들어도 하나도 무섭지않기 때문이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날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는것을 알기에 녀석의 험한말을 들을때면 비웃고싶어진다. 유치하게 겨우 그런말로 날 겁주려는거냐며.
"미친년. 학교는 꼬박꼬박 나오네."
"오늘 하루 조심해라. 아침부터 재수없는 얼굴봤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시선들. 이젠 별 감흥도 없다. 지나친 관심은 나를 무뎌지게 만들었다. 아니 무뎌져야만 했다. 나의 불행을 보며 행복감을 느끼는 변백현이 싫어서. 내가 불행하다면 변백현도 같이 불행해져야 한다. 녀석의 행복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할 생각은 죽어도 없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가방을 내려둔 채 책상위로 고개를 쳐박았다. 조회를 하러 들어오신 담임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고도 아무말도 하지않는다. 어차피 말해봤자 듣지않을 나임을 숱하게 겪으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창 조회가 진행중이던 때, 뒷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곧 맨뒷자리의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고 끊겼던 담임선생님의 조회는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안다. 담임선생도 왜 늦었냐며 타박할 수 없는 이 학교의 유일한 사람. 변백현이다. 돈 많은 집안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여러면에서 꽤나 쓸모가 있는 모양이다. 역시 사람은 돈앞에서 제일 비굴해진다.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나는 지금 다니고있는 학교는 꿈도 꾸지 못할만큼 찢어지게 가난하다. 그냥, 언젠가부터 그랬다. 아마 기억도 나지않는 어릴 때 부터 그랬던것같다. 좋은 옷, 좋은 신발, 좋은 가방. 지금 내 몸에 걸치고있는 것들중 내 돈이 들어간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변백현이 오늘 아침의 쇼핑백에 담겨있던 교복처럼 하나둘씩 놓고 간것들이다.
가끔은 하얀봉투를 두고 가기도 한다. 그 하얀봉투 안에는 내가 한달을 써도 남을만큼의 현금이 들어있다. 그걸 볼때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언니를 상상한다. 언니는 이 돈들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울었을까 아니면 웃었을까. 아마 언니는, 후자에 더 가까웠을것이다. 내가 가난을 싫어하는것보다 더 가난을 싫어했던 사람이니까.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잠에 빠졌다. 책상속에 넣어뒀던 휴대폰이 내는 진동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도 한참을 정신을 못 차렸다. 집에서 제대로 자지못해 쌓이는 피곤함을 학교 책상위에서 풀곤한다. 뭔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야 마음이 더 편해지는것 같다. 편했던 순간들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책상위에 엎어져있던 머리를 들어올리곤 책상속에 손을 넣었다. 휴대폰이 손에 잡히고 그것을 끄집어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누구인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번호를 아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니까. 홀드키를 누르자마자 보이는것은 변백현이 보낸 문자였다.
'음악실'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실로 향한다. 복도는 한산했고 나는 시간을 보며 지금이 점심시간임을 막 깨달았다. 어쩐지 배가 조금 고픈것도 같다. 그런데 변백현은 급식실이 아닌 음악실로 날 불러낸다. 변백현이 말하는 음악실은 본관에 있는것이 아닌 후관에 있는 낡은 옛날 음악실이다. 먼지가 쌓여 퀘퀘한 냄새를 풍기는 옛날 음악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설렘을,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서러움을 기억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출입금지가 붙은 문을 조심히 열자 보이는 뒷모습은 너무도 익숙하다. 피아노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회색먼지가 가득 쌓인 건반을 누르고있는 뒷모습. 변백현이다. 그러고보니 피아노 앞에 앉아있는 변백현을 보는건 참으로 오랜만이다. 한때는 그 희고 길게 뻗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줄기차게 치던 녀석이었다. 나는 그런 변백현의 손가락을 참 좋아했었다.
"왜 급식실에 안 왔어."
"깜빡 잠들어버렸어."
"지랄맞은 년."
지랄맞은 년. 변백현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저렇게 부르곤 한다.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다. 니가 도망갔을까봐 겁이 났다는 의미.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것이다. 왠지 변백현의 입에서 나온 지랄맞은 년은 그런 의미를 담은 말처럼 들린다. 그냥, 그냥.
"한번에 알아듣는 법이 없지. 왜 사람 입 아프게 여러번 말하게 만들어."
"미안."
"내일도 급식실 빼먹으면 집에 못 갈 줄 알아."
"응. 알겠어."
빠르게 내 잘못을 인정하는 말들에 변백현은 금새 흥미를 잃곤 의자에서 일어난다. 일부러 이러는것이다. 재미없어하는 변백현의 태도가 재미있어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변백현의 행복을 위해 내 한 몸을 희생할 생각은 죽어도 없다. 내가 불행함을 느끼면 변백현도 불행함을 느껴야 한다. 그래서 반항하며 발버둥 치는 대신에 얌전한 고양이가 되기로 한다.
가끔은 발톱을 드러낼 때도 있다. 나의 행복이 아닌 변백현의 불행을 위해서.
"여기 윤주언니가 좋아했던곳인데."
변백현이 일어난 피아노 의자 위에 내가 앉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건반 위에 손을 올려 한음 한음 치기 시작한다. 조율한지 한참 된 피아노는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든다. 실은 나도 오랜만에 만져보는 피아노다. 변백현이 피아노를 치기 훨씬전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로 상도 꽤 탔었다. 가난에 찌든 내게 유일한 장기이기도 했다.
반면에 언니는 피아노의 피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저 내가 치는것을 듣기만 할뿐 도레미파만 간신히 누를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김윤주 얘기 꺼내지마."
"여기에 너랑 윤주언니랑 나란히 앉았었잖아."
"꺼내지말랬지."
"그때 니가 자작곡 만들어서 불러주기까지 했었잖아."
"그만하라고 했잖아!"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른다. 멀리 날아가버린 책상은 볼품없이 으스러졌다. 변백현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나는 건반을 힘없이 쓸어내린다. 방금 변백현은 새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죄책감에 쉼없이 눌린 모습이었다. 그런 변백현의 모습을 보는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나 나의 불행과 맞먹는 녀석의 불행은 나를 살짝 우쭐하게 만든다. 너는 날 절대 이길 수 없다는 무언의 승리감을 준다.
하지만 옛 기억은 나에게 승리감과 동시에 좌절감을 주기도 한다. 몰래 문에 붙어 피아노를 치던 변백현을 훔쳐보던 나의 지난 과거. 내가 아닌 내 언니에게 들려주는 사랑노래를 훔쳐 들으며 문 앞에 주저앉아 서러움을 속으로 삼키던 나.
먼지가 가득한 옛날 음악실은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설렘을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서러움을 기억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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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면홍조입니다.
이 글은 제가 다른 필명으로 올렸던 글을 다시 재구성해서 쓴 글입니다.
지금까지 글잡에 글을 쓰면서 완결을 냈던적이 단 한번도 없어요. 그래서 시작하는것이 많이 두렵습니다.
그래도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짧은 분량입니다. 차차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한 솜씨지만 이쁘게 지켜봐주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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