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변백현] Eternal Sunshine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50518/cb58f31acb80b8e5f8c639c0dede647a.jpg)
Eternal Sunshine (영원한 눈부심)
2. 내가 사랑해 마다않던 당신
한동안 꾸지않던 악몽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깊은 물 속을 허우적거리는 내 팔목을 누군가가 잡아끈다. 조금씩 조금씩 물 밖으로 나를 이끄는 손에 나는 막혀오는 숨을 다시 한번 꾹 참아낸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다시 숨을 쉴 수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뭍으로 향하던 내 몸이 어느 순간 자꾸만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점점 숨은 막혀오고 입에선 공기기포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나를 잡아 이끄는 누군가는 잡았던 내 손을 서서히 놓는다. 어쩔 수 없다는듯이 아주 천천히 놓아버린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가 나의 발목에 매달려 나를 자꾸만 밑으로 이끈다.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깜깜한 물 속에서 나는 눈을 뜨고 내 밑을 바라본다. 내 발목을 붙잡아 나를 밑으로 이끄는 누군가의 얼굴이 서서히 형태를 드러낸다. 긴 머리와 하얀 원피스. 웃고있는 얼굴. 김윤주. 나의 언니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언니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내 몸은 점점 더 가라앉는다. 나의 손을 놓은 누군가는 유유히 헤엄치며 위로 향한다. 나의 손을 놓아버린 채. 나를 언니와 함께 가라앉게 만든 채.
그렇게 눈을 감아버리면 악몽은 끝이 난다.
-
변백현을 처음 만난것은 열다섯, 어느 봄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종종 학교를 땡땡이 치기 바빴다. 가난을 가지고 놀리는것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내 가난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준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와 내 앞에서 모진말들을 내뱉었다. 엄마아빠 없는 년, 돈없어서 학교에 점심 먹으러 오는 년. 딱 열다섯살 수준의 모진말들이었다. 그러나 나도 같은 열다섯이었고 그 모진말들은 내게 큰 상처로 다가왔다. 그래서 도망치기 일쑤였다. 거창한 도망은 아니었다. 그냥 학교 근처에 있는 악기상가의 맘씨 좋은 주인 아저씨의 가게에 들어가 피아노를 한참 들여다보는것이었다. 가끔씩은 연주를 하기도 했다. 가난속에서 배운 내 유일한 학습이었다.
그 날도 나는 학교에서 수업 도중에 뛰쳐나와 악기상가로 향하는 길이었다. 좁은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가 악기상가의 입구에 멈춰섰다. 검은색 차는 반짝반짝 광이 났고 쨍쨍 내려쬐는 봄 햇살에 반사된 빛에 나는 눈이 부셨다. 이마 위로 손그늘을 만들며 악기상가의 입구를 막은 차 옆을 지나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가 그 차의 뒷자석에서 내렸다. 누가 봐도 부잣집 귀한 자식같아 보였다. 말끔한 옷차림과 흰 피부가 그 사실을 뒷받침 해주었다.
그 남자애는 수행비서 쯤으로 보이는 남자와 함께 내가 즐겨찾던 맘씨 좋은 주인 아저씨의 가게로 들어갔고 곧 나도 뒤따라서 들어가 늘 들여다보던 피아노의 앞에 놓인 의자에 조심히 앉았다. 남자애는 주인 아저씨와 뭐라뭐라 하며 이야기 하더니 그 가게에서 제일로 좋아보이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 위로 손을 올려 아무 건반이나 몇번 눌러보더니 곧 서투른 연주를 시작했다. 내가 듣기에는 틀린 구석이 수도 없이 많은 연주였지만 희고 긴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것이 보기 좋았다. 아무렇게나 방치해놓은 내 손은 너무도 더럽고 추접스러워 보였는데 남자애의 손가락은 여자인 나보다도 훨씬 예뻤다.
그게 내가 변백현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예쁜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던 모습. 그 손가락에 빠져 나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변백현을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
"여주야! 이거 봐. 언니 교복이야."
"갑자기 무슨 교복이야? 언니 학교 다닐 돈 없잖아."
"이제 다닐 수 있어. 우리를 후원해주는 기업이 생겼대."
내가 열다섯일 때 언니는 열일곱. 고등학교 입학을 했어야 할 나이다. 그렇지만 우리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우리 둘이 학교를 같이 다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언니는 동생인 나를 위해 학교를 포기했다. 그런 언니 때문에 나는 학교를 땡땡이 치기는 하지만 결석은 하지않았다. 아침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집을 나서는 나를 보며 언니는 부러운 눈길을 보내곤했다. 그런 언니에게 드디어 교복이 생겼다. 그것도 사립중에 최고 명문사립이라는 학교의 교복이었다. 그 교복을 나에게 보여주며 언니는 신나하는 얼굴이었다.
소년소녀가장의 집들중 하나를 뽑아 후원하는 방식의 프로젝트에 우리집이 뽑혔다고 했다. 우리 두 자매가 학교를 모두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순간까지 필요한 모든것을 후원해준다고 했다. 나는 우리집이 뽑힌것이 언니의 예쁜 얼굴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위해 후원사실을 기사로 퍼뜨릴것이고 그 기사에 얼굴이 실리려면 적어도 평균이상의 외모를 갖춰야 한다는것을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도 언니가 다니는 학교 안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시켜 주신대."
"정말?"
"응. 너 피아노도 계속 칠 수 있도록 피아노과외도 시켜주신대. 잘됐지?"
정말 잘됐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언니의 눈치를 보며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되고, 피아노도 마음대로 칠 수 있다. 매일 끼니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좁은 방에서 서로를 껴안으며 불편하게 잠들지 않아도 된다. 정말로 잘된일이었다.
나는 바로 그 다음날부터 언니의 학교 안에 있는 명문사립 중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우리를 후원해주는 기업의 아들도 그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아마도 그 기업에 속한 재단이 세운 학교인것 같았다. 후원을 받으며 전학 온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모두 착했다. 돈 많은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서 그런가, 아이들은 다른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는것에 있어서 꽤 여유로운 편이었다.
학교의 음악실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받았다. 그래서 점심시간마다 음악실에 들락날락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대회도 나가고 상도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열다섯이 끝나갈 무렵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음악실로 향했다. 그런데 음악실 문앞에 선 순간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시간에는 늘 나말고는 음악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문을 열려는 손을 치우곤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히 들어 음악실 안을 살폈다. 어떤 남자애가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하고 있었다. 건반 위에서 유유히 움직이는 희고 긴 손가락. 나는 보자마자 한눈에 알아봤다. 내가 첫눈에 빠졌던 그 손가락. 그때 깨달았다. 우리 자매를 후원해주는 기업의 아들이 내가 첫눈에 반한 변백현이라는것을.
열여섯의 봄, 언니와 나는 우리를 후원해주는 기업의 회장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에 초대되었다. 물론 그 자리에는 변백현도 함께였다. 그 날 처음으로 스테이크란것을 먹어본 언니와 나는 회장님과 변백현의 칼질을 어설프게 흉내냈다. 그런 우리를 보며 회장님은 알수없는 표정을 지으셨다. 아마도 연민의 눈빛이었을것이다. 가난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눈치를 배웠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눈치가 빨랐다. 내 앞에 마주앉은 변백현은 연신 우리 언니를 훔쳐보고 있었다. 언니 역시 그런 변백현의 눈빛을 읽은것인지 수줍게 스테이크를 한입 베어물었다.
나는 직감했다. 변백현이 언니를, 언니가 변백현을 조만간 좋아하게 될거라는것을.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사실이 되었다. 열일곱의 봄, 나와 변백현이 언니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 언니는 내게 털어놓았다. 나 백현이랑 사귀게 되었어. 백현이가 나를 많이 좋아한대. 언니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이야기했다. 봄같았다. 그때의 언니는 정말로 봄같았다. 그래서 나는 언니의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언니보다 먼저 봤고, 먼저 좋아했지만 나는 그 모든것들을 숨겨야했다. 언니와 변백현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기 때문이다.
![[EXO/변백현] Eternal Sunshine 02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50518/f87eaf0f43a45ada6ed9e832303054cd.jpg)
"아, 더워."
봄이 온듯 싶더니 금새 햇빛은 더 따가워졌다. 여름이 정말 코앞에 다가온듯 싶었다. 나는 늘 그런것처럼 책상 위로 고개를 박았다. 책상의 차가운 기운이 내 볼로 옮겨오는것 같았다. 사람 하나없는 교실은 적막 그 자체였다. 또 잠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눈떠보니 체육시간 이었고 나는 체육복을 갈아입기 귀찮아 그대로 다시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러다 문득 책상 서랍 깊숙히 밀어넣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역시나. 변백현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연달아 세개씩이나. 나는 가방을 뒤져 지갑을 꺼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랄맞은 년'
'튀어와'
'음료수'
녀석이 보낸 문자를 다시 한번 훑고는 창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뜨거운 햇빛에도 연신 공을 몰아대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매점으로 향하러 몸을 돌리는데 변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있는 교실 창가를 올려다보고 있던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운동장으로 돌아가 아이들 틈에 섞였다. 마치 내가 일어나길 기다렸다는듯 올려다보던건 내 착각이겠지. 그러나 착각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했다. 나와 마주친 변백현의 눈빛이 말이다.
매점에서 아무 음료수나 집어 계산하곤 운동장으로 향했다. 금새 이마와 인중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나는 더위를 지독하게도 잘 탄다. 언니 역시 더위를 참 잘 탔다. 그런 우리를 보며 변백현은 자매는 그런것도 닮냐며 아이스크림을 건네주곤 했다. 언니는 종종 변백현과 만날 때 나를 데리고 나갔다. 동갑인데 친해지면 좋지않냐는 언니의 강제적인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변백현은 나와도 곧잘 놀아주었다는것이다. 물론 언니의 말때문이었겠지만. 언니는 늘 변백현에게 부탁하는 어조로 말했으니까. 내 동생한테 잘해줘 라고. 가끔은 언니의 그 말이 꼭 불쌍한 애니까 잘 챙겨줘 처럼 들렸다. 실은 언니나 나나 별반 다를거 없는 똑같은 불쌍한 사람이었으면서.
"뭐해, 이리 안 오고."
너무 깊은 생각에 빠졌나보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가 날 발견한 변백현은 어느 새 그늘이 진 스탠딩 계단에 앉아 날 부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멍했던 정신을 붙잡고는 걸음을 서둘러 변백현의 옆에 섰다. 그리곤 음료수를 내밀었다. 내 손에서 음료수를 낚아채간 녀석은 목이 많이 말랐는지 금방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나는 옆에 어정쩡하게 서서 변백현이 음료수를 마시는것을 내려다봤다. 음료수를 쥔 손은 언제나처럼 희고 곱다. 그 손가락을 볼때마다 나는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변백현을 미워하는 마음이 줄어드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체육시간에 안 나오고 뭐했어."
"아, 잠들었어."
"넌 핑계가 그것밖에 없냐."
"진짠데. 아까 창문으로 봤을거 아니야. 나 책상에 엎드려 있는거."
내 말에 변백현은 아무말이 없다. 착각이 아니었다. 녀석은 날 보고있었다. 아니, 나를 보고있었다고 확신할 순 없다. 왜냐하면 내가 엎드려있던 자리는 죽은 내 언니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변백현이 보고있던것은 죽은 내 언니, 김윤주 였을지도 모른다. 변백현은 어정쩡하게 서있던 나를 보다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친다. 나는 녀석과 조금 떨어져 앉았다. 뜨거운 햇빛이 비치지않는 그늘이라 그런지 이마에 맺힌 땀이 식는다.
한가롭다. 운동장에는 여전히 공을 몰고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여자애들은 얼굴이 탄다며 일찌감치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스텐딩에는 나와 변백현만이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아있다. 이런 한가로움은 오랜만에 느껴본다. 그러나 이런 한가로움은 나에게 여유를 주지 못한다. 여유가 생기면 잡생각이 많아진다. 그 말은 곧 내가 변백현을 생각할 겨를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변백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언니가 떠오르고 그러면 언니의 죽음으로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렇기에 나는 늘 불안한 상태가 편하다. 그리고 그런 날 불안하게 만드는것은 변백현이다. 변백현은 나에게 불안함과 동시에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다.
"밤에 뭘 하길래 맨날 학교에서 퍼질러 자."
"악몽을 꿔."
"...어떤 악몽."
"언니가 날 깊은 물속으로 잡아 끌어내리는 악몽. 근데 더 끔찍한게 뭔지 알아?"
"뭔데."
"니가 내 손을 잡았다가 놓는거. 깊은 물 속으로 가라앉던 날 니가 밖으로 이끌어내려다 내 발목에 매달린 언니를 보고는 그 손을 놓아버려."
변백현은 또 아무말이 없다. 그저 날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뚫어져라 바라만 본다. 그 눈속에 담긴것은 누구일까. 지금 변백현이 마주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일까, 아니면 김윤주일까. 나는 변백현이 바라보던 내 얼굴을 무릎 사이로 묻어버린다. 참 이상하게도 나와 언니는 닮은 구석이 없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친자매가 아니라고 말할만큼 똑 닮은게 없다. 언니는 나보다 더 하얗고 눈도 더 크다. 머리도 까만 긴 생머리다. 그에 반해 나는 하얗지도 그렇다고 까맣지도 않다. 머리도 갈색에 단발이다. 이런 나를 보며 김윤주를 떠올리는 변백현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실은 기분이 더럽다. 누군가의 대신으로 옆에 서있는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척이나 기분이 더러운 일이다.
"곧 언니 죽은 지 일년이야."
"김윤주 이야기 하지말라고 했지."
"더운게 싫어서 여름에 간건가."
"닥쳐."
"변백현. 김윤주는 죽었어. 너때문에."
"죽고싶냐."
"그러니까 지금 니 앞에 서있는건 김윤주가 아니라 김여주라고."
"...지랄맞은 년."
내가 선택한 일이다. 변백현 옆에 남는것은 내가 선택했다. 날 보며 언니를 떠올리라고 일부러 변백현의 옆에 남았다. 이런 핑계를 대서라도 옆에 있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그렇지만 세상에서 제일 미워해야 할 사람. 미워하는만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변백현 옆에 김윤주를 핑계로 남았다. 나에게서 김윤주를 보는 변백현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녀석의 눈속에 내가 담긴다면 그걸로도 만족이라고.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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