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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목 - 보고야 말다 (은교 OST)

도작가의 은밀한 취미 Main Theme

 

 

 

 

 

 

 


도작가 은밀한 취미         W. Richter     

취미


1. 전문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EXO/경수] 도작가의 은밀한 취미 0 | 인스티즈


 

 

끊임 없이 흘러내리는 빗방울에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 보이지 않던 날이었다.

앞쪽 자리에 승객 두어 명만 태운 텅텅 빈 버스 안, 규칙적으로 덜컹이는 요동에 몸을 맡긴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에 시선을 던지던 나는 옆에 두었던 캐리어의 손잡이를 잡은 왼손에 힘을 주었다.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달리던 버스에서 어느샌가 나를 제외한 승객 모두가 모습을 감추었고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하늘은 더욱더 진한 먹색으로 물들었다. 한 시간 동안이나 버스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어서일까 노곤히 잠이 밀려와 느리게 눈을 깜빡거리던 찰나, 안내 방송이 이번 정류장은 한가람 빌딩입니다. 하며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던 목적지를 말해주었다.



 한가람 빌딩이라는 말이 귀에 박히자마자 눈을 번쩍 뜬 나는 얼른 하차벨을 눌렀다. 머지않아 버스 문이 열리며 성급히 들어오는 습한 공기가 턱, 하고 내 목을 조른다. 물기 때문에 넘어질까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 팡, 튕기듯이 우산을 펴 쓰자 기다렸다는 듯이 빗방울이 세차게 우산을 내리친다. 낯선 곳에 홀로 남겨진 나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다 바지 주머니에서 어젯밤부터 설레발치며 미리 그려놓은 약도를 꺼냈다. 구김과 습기 때문에 눅눅하지만 알아볼 수는 있을 정도로 번진 글씨에 한참 약도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캐리어를 끌었다.




 한가람 빌딩을 지나서 직진을 하고 두 번째 골목길로 들어가서 보이는 집들 중 왼쪽에서부터 세 번째. 낮게 읊조리던 나는 더 이상 약도를 안 보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손에 꼭 쥐고 있던 종잇조각을 자연스럽게 바닥에 흘려보냈다.






 

나는 오늘 그의 문하생이 되러 간다.








 



도작가 의 은밀한 취미    :    어서 와요.   







 

 


 

[EXO/경수] 도작가의 은밀한 취미 0 | 인스티즈




" 어서 와요 "



 한가람 빌딩을 지나서 직진을 하고 두 번째 골목길로 들어가서 보이는 집들 중 왼쪽에서부터 세 번째. 페인트칠을 한지 얼마 안 되었는지 최상의 상태를 자랑하는 검은색 대문을 가진 자그마한 주택이었다. 습기인지 땀인지 모르게 축축한 손을 허벅지에 쓱쓱 문지르고 초인종을 누를까 말까 속으로 백 번 천 번은 더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겨우 초인종을 누르자 곧바로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가 인터폰에서 흘러나왔다. 묘하게 사람을 경직시키는 낮은 목소리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만 축이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문하생..이라는 단 세 글자만 내뱉을 수 있었다.

 그러자 아- 하는 짧은 탄성을 뱉고는 잠깐만 기다려요. 하며 뚝, 인터폰을 끊어버린다. 머지않아 대문 창살 틈 사이로 커다란 검은 우산 하나가 천천히 다가와 철컹, 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서서히 문을 열었다.

 틈 사이로 보이는 남자가 끼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어서 와요. 인사를 건넸다. 남자치고는 하얀 살결과 짙은 쌍꺼풀은 없지만 또렷한 두 눈, 굵게 굴곡진 입술은 그동안 내가 그려왔던 그의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 안녕하세요 "


" 비 오는데 고생 많았어요, 어서 들어와요 "



 그의 안내에 따라 우산을 접은 후, 캐리어를 들고 조심스럽게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잔디가 깔끔하게 관리되어있는 작은 정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찬다. 밖에서 보았을 때에는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들어와보니 정원도 있고 무엇보다 혼자 사는 사람의 집치고는 무척이나 호화롭다. 대문을 닫아 잠군 그는 내가 비에 맞지 않도록 뒤에서 우산을 가까이서 들어주었다. 가요, 하는 말에 캐리어 손잡이를 고쳐잡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알 수 없는 삭막함이 나를 감싼다.



 열댓 발자국 정도 걸어서 도착한 현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대문에서처럼 문이 닫히지 않게 잡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작게 인사하며 들어선 나는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으며 내심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들어서자마자 전체적으로 깔린 하얀 대리석이 눈에 들어왔으며 중간중간 걸려있는 액자들은 간결하지만 고고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거실로 들어가기까지 복도가 얼마나 긴지 앞서가는 그를 따라 한참을 걸어야 했다.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다 문뜩 발이 축축해지는 느낌에 바닥을 내려다보자 캐리어에 묻어온 빗물이 새하얀 바닥을 더럽혔다. 나도 모르게 어, 하자 그가 걸음을 멈추고 등을 돌렸다.



" 죄송해요, 들어오기 전에 바퀴 닦았어야 하는데 "


"  괜찮아요, 바닥이야 나중에 닦으면 되죠 "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다시 집 깊숙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캐리어 바퀴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다다른 넓디넓은 거실, 한중간에 매달려있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나를 먼저 맞아주었다. 비가 와서 차분히 가라앉은 그의 내음을 깊게 들이마시며 눈을 굴리자 바로 오른편 진열장에 세로로  맞춰 놓아져있는 네 권의 책들에 눈이 간다. 각 책들 옆에는 반짝거리는 트로피가 수도 없이 세워져있었다. 대한 문학재단 신인상부터 한제 그룹 문학 상까지 글쟁이라면 누구든 꿈 꿀만 한 상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있는 것이었다. 경이로운 심경에 한걸음 다가가 하나하나 세세하게 살펴보자 책이고 트로피고 할 거 없이 공통적으로 쓰여있는 한 이름.



 


도 경수




 


 스물넷, 비교적 젊은 나이에 문학계에 데뷔해서부터 데뷔작인 ' 청춘의 가격 '을 히트시키고 그 이후 모든 작품이 중박은 쳤다 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신인 작가의 선두주자, 도경수가 바로 내 앞에 서있다. 올해로 스물아홉에 들어선 그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만큼 앳되고 고운 얼굴로 멍하니 정신이 팔려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 불편한 거라도 있어요? "


" ..아뇨 "


" ... "


" 믿기지가 않아서요 "


" ... "


" 제가 존경하는 작가님 문하생이 된 게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요 "


 속없이 내뱉은 내 말에 묵묵히 있다가 픽, 웃던 그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끄덕거렸다. 황홀에 가까운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우두커니 서서 그의 뒷모습만 쳐다보는데 또다시 먼저 쓱쓱 실내화를 끌며 발을 옮긴다. 집안 여기저기를 눈으로 바쁘게 탐색하며 그를 따라가자 앞으로 지내게 될 방이라며 오픈되어있는 주방 가까이에 위치한 문 하나를 연다. 침대 하나와 옆에 놓인 나무 탁상, 창문가에 자리 잡은 기다란 책상과 책장 그리고 방 구석에 놓인 커다란 장롱은 이전까지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티가 확 난다.


 생각보다 넓은 방의 규모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문턱에 서서 거실 쪽으로 고개를 쭉 빼던 그는 내가 있는 방안으로 걸어들어와 탁상 위에 놓인 스탠드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이제 곧 저녁시간이니까 밥 먹으면서 이야기해요 "


" .. 네 "


" 그럼 그때까지 짐 좀 정리하면서 쉬어요 "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방을 빠져나가버렸고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은 내가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을 때, 시계는 오후 5시 12분을 가리켰다. 멍하니 닫힌 문만 바라보다가 컥, 하고 숨이 막힐 듯 답답한 공기에 커다란 창문가로 향했다. 환기라도 시킬 겸 손을 뻗어 몇 겹이나 되는 창문을 죄다 열어버리자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빗방울이 나를 덮쳤다. 인상을 찌푸리며 활짝 열었던 창문 하나를 반쯤 닫아버리자 놀리기라도 하듯 바람은 더 이상 불어오지 않았고 검은 하늘만 요상하게 쿠르릉 거릴 뿐이다.






오늘 아침부터 온 비는






아직까지 그치지 않았다.


 



***




 


 

“  우리 ' 청춘을 말하다' 의 스태프들이 이 분 한 번 모셔보려고 엄청 고생했습니다. 문학에 무관심한 우리나라 이십 대들도 한 권씩은 꼭 가지고 있다는 화제의 작품,'청춘의 가격','젊음의 모든 것' 등을 써내신 천재 작가님이죠. 공식 석상에서 처음 얼굴을 드러내신 거라고 하시는데요. 그만큼 기대가 됩니다. 그럼 도경수 작가님!!  모셔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회자의 우렁찬 외침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우고 방청객들은 높은 환호성과 박수를 친다. 스튜디오 뒤편에서 그 흔한 웃음기 하나도 없이 제 머리를 쓸어넘기며 나오는 도경수. 항상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만 보여주어야 하는 연예인들과 다르게 작가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EXO/경수] 도작가의 은밀한 취미 0 | 인스티즈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사회자의 손을 의무적으로 잡아주고 손짓하는 대로 커다란 의자에 앉을 때까지 도경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커다랗지만 나른함이 담겨있는 눈으로 앞에 앉은 방청객들을 훑어보다가 자, 하고 관심을 끄는 사회자에 눈을 길게 한 번 깜빡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사회자는 시작부터 쥐고 있던 책 하나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데뷔작 '청춘의 가격'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요. 흡입력과 내용 구성이 이십 대 신인작가라고 하시기에는 엄청나던데 오래 준비하셨을 것 같아요 ”

 

도경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사회자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살며시 앞에 놓인 마이크를 들었다.

 

 

“ ' 청춘의 가격 '은 꿈 없이 이끌리는 대로 살았던 스물셋 후반부터 글을 써나가기 시작해서 스물넷 중반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아~ 생각보다 그렇게 기간이 길지는 않네요, 다른 작가분들은 적게는 일 년 정도 걸리시던데.. "

 

일정한 형식이 없는 자유로운 수필이니까요

 

 언뜻 들으면 뚝, 뚝 끊어지는 듯한 대화였지만 그건 아마 통통 튀는 사회자의 목소리에 비교되는 도경수의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을 띄우다 질문이 적힌 종이를 넘기며 억지로 하하 웃었다. 곧이어 글을 쓰게 된 계기, 대학교를 자퇴한 이유 등 비교적 상투적인 질문을 맥없이 받아주던 도경수는 사회자가 옆에 내려놓은 자신의 책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도경수의 얼굴에서 조금씩 지루함이 피어오를 즈음, 사회자가 ' 이건 좀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네요' 하며 멋쩍게 웃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무료하다는 티를 감추지 못 했던 도경수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얼른 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한 번 까닥였다.



작가님은 아직 젊으시잖아요, 그래서인지 얼마 전에 한효명 작가님께서 자신의 SNS에 ' 젊으면 청춘이나 즐겨라'라는 글을 남기셨는데 대중들은 그 글이 도경수 작가님을 저격하는 글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도경수 작가님은 이 부분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도경수가 있기 전에 한효명이 있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던 수필의 대가가 한 달 전, 공개적으로 그를 저격한 사건은 하루 동안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창에서 오르내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일이었다. 그 일에 대해 도경수가 직접 입을 연다니 사회자는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이크를 든 손을 내려놓고 대답할 기미를 보여주지 않던 도경수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가만히 허공에 시선을 두었고 정적이 오래도록 지속되자 방청객들의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스튜디오가 더 이상 쇼를 진행할 수가 없을 정도로 소란스러워져 피디가 방청객들에게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소리를 치려던 때였다.




한효명 작가님은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작가님들 중 한 분이십니다


 도경수는 충분히 생각이 정리되었는지 입술을 축이곤 더디게 말문을 열었다. 한효명 작가님, 할 때부터 굳이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아도 방청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입을 닫았고 스튜디오 내는 도경수의 낮은 목소리만이 웅웅 울려 퍼졌다.



그런 작가님이 제게 젊으면 청춘이나 즐겨라,라고 충고를 해주신 건 정말 영광이죠


...


정말 영광이지만


...


청춘을 즐기는 방법이 꼭 친구들과 놀러 가고 유흥이나 오락을 즐기는 것밖에 없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한효명 작가를 존경한다고 했지만 그를 비꼬는 듯한 도경수의 발언에 다시금 방청객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데뷔한지 이제 막 오 년이 되어가는 햇병아리가 20년 넘게 글만 써온 까마득한 호랑이 대선배에게 덤비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도경수는 그저 이런 상황이 즐거운 듯 아까까지만 해도 일자였던 입꼬리를 씨익 비틀어 올렸다.



청춘을 즐기는 방법이 글 쓰는 것이면 안 되나요?


...


그리고, 지금 청춘인 사람이 쓰는 글만큼 청춘에 대해 생생하게 잘 표현한 글이 어디 있을까요


...


청춘을 다 즐기고 나서인 50대, 60대, 뭐 빠르면 40대의 글?


...


모두가 흔하디 흔하고 거기서 거기거든요 사실, 제가 나올 때, 제 책들 보고 이십 대 분들께서 한 권씩 가지고 있다는 화제의 작품이라고 소개해주셨죠?

 

네.. 그렇죠


 아까까지만 해도 길게 말해봤자 두세 마디가 대답의 전부였던 도경수가 느리지만 강하게 휘몰아치듯이 말을 했고 넋이 나간 표정을 한 사회자는 도경수의 역질문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긍정의 대답을 들은 도경수는 걸렸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잠깐 내려놓았던 마이크를 다시 입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만큼 제 글이 현재 이십 대이신 분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는 증거죠. 청춘이 쓰는 청춘에 관한 책이, 청춘들에게 공감을 산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

한효명 작가님께서는 그게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 아니면 이해를 못하시는 건가 


 그러며 중앙에 있는 카메라를 냉랭하게 응시하는데 나를 향한 눈빛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아니면 이해를 못하시는 건가, 하고 내리는 말꼬리에는 한효명 작가를 향한 조롱이 담겨있었다. 대선배에게 반박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거리인데 은근한 조롱까지, 생각보다 직설적인 도경수에 그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긴 청춘이 지난 사람들에게 백날 청춘에 대해 말하면 뭐 합니까, 이미 지났는데. 심지어 빠르게 바뀌어가는 세상에 맞춰 청춘도 변하거든요 


...


뭐, 아무쪼록 한효명 작가님의 충고는 감사히 듣도록 하겠습니다. 젊으면 청춘이나 즐겨라, 좋은 말이네요


 한순간에 한효명 작가를 구닥다리 취급하던 도경수는 말이 끝나자마자 꼿꼿이 세우고 있던 허리에서 힘을 빼고는 편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거기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무구한 얼굴로 새근새근 숨을 쉬는데 침착한 그에 비해 스튜디오는 막 폭풍이 지나간 자리처럼 적막이 가라앉았다.

 이후 급하게 이어지는 쇼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앞에 앉아있어야 할 도경수가 사라지고 뒤에서 열심히 움직이던 스태프들만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며 스튜디오를 치우고 있을 뿐이었다. 쇼가 끝난 것이었다. 원하지도 않던 학과에 진학해 아무런 꿈 없이, 미래 없이 알바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내가 방청 알바로 참석한 곳에서 처음 접한 도경수 작가의 인상은 말 그대도 건방지고 오만했다. 신인 작가가 감히 문학에는 문외한인 나도 알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수필 작가 한효명에게 덤비다니, 하지만 마음속에서부터 확하고 퍼져 나오는 전율에 차마 그에게 대놓고 비웃지도, 손가락질할 수도 없었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미친 듯이 인터넷으로 도경수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보의 바다라 불리는 인터넷에서 나오는 도경수의 정보라고는 이메일 주소, 나이, 펴낸 책들 밖에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불이 꺼진 컴컴한 자취방 안에서 노트북 화면 한 중간에 띄워진 그의 이메일 주소만 바라보던 나는 잠을 자지도 않고 원래부터 계획했던 것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학과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는 내게는 크나큰 모험이었다. 그저 도경수가 토크쇼에서 “ ' 청춘의 가격 '은 꿈 없이 이끌리는 대로 살았던 스물셋 후반부터 글을 써나가기 시작해서 스물넷 중반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라고 했던 말만이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그가 꿈 없이 이끌리는 대로 살았던 스물셋 후반, 그리고 나는 지금 꿈 없이 이끌리는 대로 살고 있는 스물둘.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다.



 처음에는 도경수가 낸 네 권의 책들을 모두 사서 책상 위에 쌓아놓고 하염없이 글을 썼다. 하지만 작심삼일이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뭐 하는 건지 하는 생각에 의욕이 사그라질 즈음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는 도경수,한효명, 청춘의 가격이 나란히 1,2,3위를 차지했다. 그날 녹화했던 토크쇼가 방영되었던 날이었다. 예상외로 수많은 청춘들의 공감을 산 후배 작가의 당돌한 반격에 한효명은 곧바로 자신의 SNS를 닫아버렸고 도경수는 건방지고 오만하다,라는 소리를 듣기보다 맹랑한 청춘의 대표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대단해.


 


 토크쇼에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을 지켜봐왔던 내가 결론적으로 도경수에게 내린 평가였다. 홀린 듯이 며칠동안은 도경수의 모습이 녹화되어있는 동영상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반복해서 보았던 것 같다. 자신을 엄청 신뢰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없는 당찬 모습은 나를 매혹했고 성의 없는 듯 설득력 있는 그의 말은 달콤했다.



 가끔 늦은 시간에 이르러 자기 위해 누우면 잘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지금 하는 것이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뭐, 그런 생각은 곧 원하지 않는 걸 배우며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끔찍했던 일상에 잠식 당했지만. 요컨대 그런 일상보다 집안에 틀어박혀 글만 쓰고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글만 쓰며 홀로 세상과 동떨어져 보내던 날이 다섯 달 정도 지나고 잔뜩 부푼 기대로 본 글의 장수는,  일흔 장이 채 되지 못하였다.


다섯 달을 이 일흔 장과 맞바꾼 것이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허망함에 노트북 앞에 앉아 무릎을 안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잡을 수 있는 존재 같았는데, 나도 할 수 있는 존재 같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좌절감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한참을 울던 나는 훌쩍임을 억지로 삼키며 메일함을 열어 도경수의 메일 주소를 써넣고 그동안 내가 써왔던 글을 첨부했다. 비록 허접스럽고 일흔 장이 안되는 비루한 글일지 몰라도 내게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소중하고 간절함이 절절하게 묻어있는 글이었기에. 눈물로 흐려진 눈을 싹싹 훑어내고 제목을 어떻게 적어야 하나 지웠다 썼다를 한 시간 가량 반복하다가 겨우 느리게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힘들게 메일을 보내고 나서 하루가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도경수에게 답장이 오지 않았다. 읽지 않은 건 아닐까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메일함을 들어갔지만 잔인하게도 이미 보낸 메일 옆에는 읽었다는 표시가 보였다. 일순 도경수에 대해 원망과 질투가 커졌고 실패한 인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나는 정말 안되는구나, 꿈도 없고 그나마 하고 싶은 것도 실력이 없어서 못하고, 어느샌가 도경수에 대한 원망과 질투는 자괴감으로 바뀌었고 더 깊숙한 곳으로 창피한 나 자신을 꽁꽁 감추려고 할 때였다.



도경수에게서부터 답장이 온 것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오후 11시 24분, 창밖에는 휘영청 보름달이 떠있었던 날. 그에게서부터 답장이 왔다. 제목은 내가 썼던 문장 앞에 [RE]만 붙여졌고 넓은 내용칸에는 딱 두 문장만이 자리잡고 있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도담로 12



편할 때, 아무때나





글은 잘 보았다거나, 어느 부분이 어색하고 이상하다라는 일말의 충고도 들어있지 않았다. 딱 대놓고 찾아오라는 듯이 주소와 편할 때, 아무때나라는 문장밖에 없었다. 말없이 도경수의 답장을 보고 있던 나는 도저히 그 상황이 믿기지않아 가렵지도 않은 눈을 비비기도 했고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그가 나를 받아준다. 청춘의 대표자가 나를 받아준다. 산만한 호랑이를 쓰러뜨린 그가, 나를 받아준다. 어두운 방안에서 버텼던 다섯달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 속에 갇혀있던 애벌레가, 드디어 나비가 되는 것 처럼.

​도경수에게서 답장이 온 다음 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동안 가지않았던 학교에 가서 휴학 기간을 1년 더 연장하고 미용실에 가서는 치렁치렁하게 길어버린 머리카락을 다듬었다. 딱히 새사람이 되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나마 신선한 기분을 만끽하며 어두침침한 집으로 들어가 먼지쌓인 캐리어를 꺼냈다. 작은 자취방이라 크게 정리할 것도, 챙길 것도 없이 딱 내 옷가지와 화장품,노트북,도경수의 책 네 권을 챙겨넣었다. 딱 그 뿐이었다.





밤이 되어 캐리어와 함께 맨 바닥에 고이 누운 나는 눈을 감고 그날의 도경수를 상상했다. 조소를 가득담으며 마치 앞에 일그러진 얼굴을 한 한효명이 있는 것마냥 신랄하게 제 강직한 신념을 내뱉던 그를.

 

방청객들을 쭉 훑다가 문뜩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한참 시선을 옮기지 못하던 

 

그를.







***



 



똑,똑 일정한 간격의 노크 소리에 바닥에 앉아 도경수의 책을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다급하게 책들을 옷가지 사이로 숨겼다. 챙겨온 책들을 못보여줄 이유도, 보여주면 안되는 이유도 없지만 열없는 내 성격탓이려니, 채 정리하지 못한 캐리어의 뚜껑을 닫아버린 후, 네,하고 대답하니 철컥 문고리 돌리는 소리가 난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찬찬히 방 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눈에 가득 담는데 여지껏 이 상황이 꿈만 같다. 빤히 올려다 보고만 있자 그는 눈동자를 굴려 방을 한 번 크게 둘러보고는 말했다.



" 배고플텐데 "


" ... "


" 저녁 먹어요 "


속삭이듯이 낮게, 저녁 먹어요, 라고 말한 그는 여전히 별 말 없이 등을 돌렸다. 네, 하고 작게 대답한 내 목소리가 닿았으련지는 모르겠지만 방 밖에서는 여념없이 달그락 달그락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캐리어 지퍼를 매만지던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바닥에서 일어났고 탁,타탁, 연속적으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창문가를 바라보자 세차게 내리던 비가 바람을 타고 반쯤 열린 창문 새로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을 마저 닫고 본 투명한 유리 너머, 이제는 완전히 시꺼멓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는데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다. 오늘따라 더 특별한 비가 내리는 구나.




 


다섯 달 전, 도경수를 처음 보고, 꿈꾸고, 질투하고, 바라던 나는.

 

 

 






 

지금 이렇게, 도경수의 집에 있다.




 

 

 


 

 

 

***

 

 

 

 

 

 

 

 


사담

 

하이 여러분 리히터예여!!! 

 

여러분 많이 당황하셨죠? 휴재한다고 징징 거리던 인간이 이런거나 써오고 말이야...

 

스아실.. 제 슬럼프는 마냥 쉬기만해서 극복되는 타입이 아니랍니다. 휴식이 불필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대게 무언가를 더 해야지 극복 해내는 타입인데요.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또 이게 희안한게 그냥 막 아무거나 써서 극복하는게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밝은 글을 썼다면 어둡고 나른,섹시한 글을 써야되고 어두운 글 써서 슬럼프가 오면 밝은 글을 써야하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봐도 이상하네요 이게 뭐하자는 플레이인지..^^

 

여러분들께서 기억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도부자 때도 시도때도없이 슬럼프가 왔었답니다. 그래서 준면이의 나를~하는 시리즈를 쓰면서 극뽁해낸거구요!!!

 

네, 그래서 또 이렇게 변태같은 글을 써왔습니다.(뻔뻔)

 

본래 제 로코를 좋아해주시던 독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그래도 도작가 또한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스토리인지라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무릎을 꿇는다) 거기다 이미 브금들도 가득가득 구해놨다구엿...!

 

단편 시리즈는 텍파 제작 계획은 없지만 도작가는 텍파 만들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좋아하니까요..! 사당행 쿈수쿤!!! 내가 만히 조화해!!! 경수 이쁜거는 아무도 반박캔트!!!  히히!

 

우리 천재작가 도작가도 많이 사랑해주세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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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5

독자352
분위기가....ㄷㄷ 소재며 캐릭터며 빼놓을게 없어요 ㅠㅠㅜ
8년 전
독자353
금요일에 휴학신청서를 내고 왔는데 이 글을 보니까 기분이 되게 이상해요..ㅋㅋ 저도 휴학기간동안 여주처럼, 경수처럼 제 꿈을 찾고싶네요ㅠㅠ
8년 전
독자354
와..작가님 필력 진짜 대단하세요..
7년 전
독자355
어머나 대박... 이게
고마워요 글 써주셔서

7년 전
독자356
저이거완전팬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다시왔어요 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357
정주행하겠습니다! 글의 분위기며 문체며 너무 제 스타일이에요ㅠㅠㅠ
7년 전
독자358
작가님 보고 싶어요... 이제 처음 보는데 1화부터 분위기 취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359
정주행합니다ㅠㅠ
7년 전
독자360
잘읽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7년 전
독자361
와 분위기가 대박이에요......
7년 전
독자362
정주행해요ㅠㅠ
7년 전
독자363
정주행 시작합니다 으헝ㅠㅠ♡
7년 전
독자364
정주행 하러 왔습니다... 작가님 사랑해요
7년 전
독자365
크 넘 ㅠㅠㅠㅠㅠㅠㅠ최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366
1년이 지났는데 작가님.글 정주행하러왔어요 강남도부자 텍파까지있는데도 오랜만에 인티에서보고싶어서 왔다가 이런글이있는지 이제서야ㅠ보고 정주행헙니다ㅠㅠ
7년 전
독자367
굳굳
6년 전
독자368
정주행해요ㅠㅠㅠㅜㅜㅜㅜㅠ
4년 전
독자369
정주행 시작 합니다!! 도경수 빙의글 너무 좋아요ㅠㅠㅠ이런 느낌의 빙의글이 잘 어울려요ㅠㅠ
4년 전
1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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