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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훈] 너 이기에 웃는다.       

       

  

  

Written by. 매실  

  

       

그날 너를 본건 순전히 우연이였다.       

3년을 함께한 중학교 담임선생임이 전근을 가신다는 소문에 모교 졸업식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졸업식에 간다는 날 붙잡고 내 손에 꼬깃꼬깃한 2만원을 쥐여주셨다. 선생님 얼굴만 보고 올거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아는 동생들 있으면 꽃이라도 사주라며 돈이 쥐여진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중학교로 가는길, 저마다 꽃다발을 들고 왁자지껄 웃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구석에 찌그러져있는 캔과 같았다. 어색함을 달래고자 오랜만에 카톡에 들어갔다. 300+개라는 알람이 떠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전에 했던 대화 내리던 도중 나는 성윤이의 동생, 성재가 오늘 졸업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년전에 같이 어울려 다녔던 기억이 나서 나는 꽃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홍색이 물씬 감도는 포장지에 싸인 장미 꽃 한아름을 안고있는 나는 꽤나 긴장한듯 보였다. 내가 성윤이에게 다가가 인사하자 성윤이는 뭘 또 이런걸 사왔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네 동생이 졸업하는데 어떻게 안사오냐라고 말하며 웃었다.       

     

식은 정말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끝없는 영상자료때문에 귀가 웅웅거릴 정도다. 나는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접어 웅크리고 앉았다. 장미꽃의 포장이 살짝 찌그러진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2시간이 지나서야 식이 모두 끝났다. 나는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켜세워 성윤이에게 동생의 행방을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서 걸어오는 성재의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지고 말았다. 3년 전보다 훨씬 커진 키, 남자다워진 얼굴에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뻔 했다. 나는 성재한테 대뜸 꽃다발을 건냈다. 날 기억 못하는지 당황하는 모습이 내심 귀여웠다. 그리고 자꾸 꾸물거리는 성윤이의 정강이를 발로 찬 뒤 바쁘다며, 빨리 찍어 라고 구박했다. 성윤이는 알겠다며 폰을 꺼내 들더니 꽃을 들고 있는 성재의 모습을 대충 한 장을 찍었다. 하늘색 패딩을 입고 있던 성재는 정말 순수해 보였고, 그때 그 모습을 나는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것 같았다.       

       

성재는 무슨 우연인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마주친 성재에게 나는 내가 속해있는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성재는 날 쓱 보더니 알겠다고 했고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았다.       

동아리 면접당일, 면접장에 와있는 성재를 보자 기쁨은 두배로 커졌다. 그리고 성재를 뽑자는 내 의견에 모두가 만장일치를 하며 성재는 나와 같은 동아리를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동아리가 있는 매주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그저 너의 순수한 웃음이 보고싶었다. 하지만 난 그만큼 혼란스러웠다. 후배를, 그것도 남자를 좋아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나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날 달랬다. 이건 사랑의 감정이 아닌 그저 선배로써 후배를 챙기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듯, 난 성재에게 젖어버렸다.       

난 빠르게 너와 가까워져서 이제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고, 볼을 만지는 스킨쉽아닌 스킨쉽또한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었다. 너는 동아리실에서 나갈때마다 항상 문앞에서 널 따라 나오는 날 기다렸고, 같이 교실로 돌아갔다. 또한 시험기간 내내, 넌 한층 높은 내 반에 와서 날 보고 인사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뒤에는 시험 잘봤냐며 남은 시험도 힘내라는 격려의 카톡도 주고 받았다. 내가 동아리실에 늦게 간날, 왜 늦었어?라는 너의 말이 날 생기있게 만들었다. 너가 일훈이형 이라고 날 부를때 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추스리기에 바빴다. 그렇게 난 하루하루 너를 보기 위해 학교에 갔고, 또 너를 보기 위해 점심시간에 흘러나오는 노래도 포기했다.       

       

너가 날 끌어들인거다. 아무런 힘도 없는 난, 너의 이끌림에 딸려 들어갔을 뿐이었다. 넌 애매한 말과 행동으로 날 쥐고 흔들렸고, 난 그저 너에게 흔들린 죄밖에 없다.       

       

결국 이 모든게 내가 지어낸 소설이었을까. 아님 내가 눈 병신이라 너가 나에게만 특별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한걸까.       

나는 너가 유수린과 노는게 싫었다. 특별한 이유같은건 없었다. 그냥 너가 유수린에게만 적극적인게 싫었을 뿐이다. 유수린의 얼굴을 보고 말하는것고, 유수린의 농담에 웃는 것도 난 그저 내 착각일거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유머러스 했기 때문에 너가 그런 반응을 보인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굳이 그년이 아니여도 많은 선택지가 있었을텐데. 아니, 그냥 나처럼 게임을 안해도 됬을텐데. 다른 사람이 본다면 내가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은 앞뒤 안가리고 그저 너가 미웠다. 아무 생각 없이 친한 유수린과 한 팀을 하겠다고 했겠지만, 나는 병신같이 울고 싶었었다. 그래서 옆에 앉은 애한테 괜히 더 짜증을 부렸다. 너는 이런 내 모습에 더 실망했겠지? 안봐도 뻔하다. 그래서 그냥 접을려고 한다. 어짜피 헛된 희망이였음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기때문이였을까. 너가 유수린에게 나에게 보내지 않았던 선톡을 보냈을때, 나는 너에 대한 마지막 끈을 놔버렸다. 기분이 저 멀리 바다 깊숙히 박혀버렸다. 다시 뽑아 낼 수도 없게 꽉 박혔다.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이미 너가 내 마음속에 자리잡아서 널 뜯어내고 남은 자리에 너를 닮은 상처가 났다. 그리고 그 상처는 이미 흉터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너의 잘못은 1도 없다. 그냥 내 이기심과 오해가 상처를 불러온 것이다. 인간의 눈은 너무나 간사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이나 보다. 넌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자 멋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제 난 너를 놔주려 한다. 너를 사랑하기엔 내가 너무 작고 약해서 너를 보내려 한다. 너가 누구와 사귄다는 말이 들려오지 않게, 들려와도 축하해줄 수 있을만큼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내가 병신이니까 내가 다 끝내야지. 넌 마지막까지도 순수하고 예뻐서 감히 너에게 화를 낼수도 욕을 할수도 없다. 그러니까 더러운 내가 끝내야지. 그래야지... 넌 항상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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