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적당한 해석 04
w.규닝
04. 카페인과 우산
-너 담배 아직도 못 끊었냐?
마른 담배를 툭툭 털고 입에 물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지청구에 숨이 깜빡 막혔다. 어? 담배를 문 잇새 사이로 뭉개지는 발음과 함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학원 구석에 설치 되어있을 몰래카메라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물론 그런 것은 없었다. 나는 괜히 옆머리를 긁적이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알았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종강과 동시에 담배도 끊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가셨나, 우리 규.
"지랄. 신경 꺼. 언젠가는 끊을거야."
-언제? 환갑잔치 다 하고?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나도 끊어보려고 했어. 아르바이트 시작 전에는."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느라 연속으로 난 오타를 지우며 인상을 그었다.
"그게 잘 안 될 뿐이지."
-어련하시겠어. 그래서 지금 혼자야? 학원에?
"응. 혼자."
-원장님이 그 동갑내기랑 같이 하라고 한 일이라면서. 그냥 존심 세우지 말고 불러서 같이 하지 그래.
"그런 말 할 거면 끊어라. 할 일 많으니까."
장동우의 말에서 은근히 남우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렇잖아도 지우고 다시 쓴 입력란에 또 다시 오타가 났다. 예상치도 못했던 남우현이라는 이름에 컨디션이 엇나가버린 탓이었으리라. 나는 너 걱정돼서. 그렇게 말하며 별로 걱정스러운 것 같지도 않은 목소리는 반쯤 웃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장동우는 대놓고 놀리는 법이 없었다. 은근슬쩍 사람을 약 올릴 줄이나 알지. 창 밖은 이미 장마가 한참이었다. 그 탓에 침침하게 불이 꺼진 내부는 적당히 가라앉아 있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분도 한 층 참참해졌다. 갑갑한 공기 위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걱정하고 말것도 없어. 차라리 이 쪽이 훨씬 스트레스 안 받아."
-니 고집을 누가 꺾겠어. 내 말은 그냥 뭐, 열심히 하라고. 학원 언제까지 한다고 했지?
나는 고개를 들어 벽면에 걸린 달력을 훑어보았다.
"한…10월 말쯤."
-오래도 하네.
"가르치는 일인데 짧게 할 수도 없잖아."
-그러셔. 8월 중에는 시간 안 되고?
"왜?"
-나 군대 가잖아. 그 전에 만나야지.
일부러 징징대는 목소리가 아까처럼 웃고 있었다. 그 때만큼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미친놈아. 졸업하고 갈 거라면서 한 학기 남겨두고 가는 것 자체가 너는 병신이야. 거칠 것 없는 내 타박에도 장동우는 으하하 웃었다. 남들 다 제대하고 마친 군대를 뒤늦게서야 가겠다는 게 좀체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기도 했다. 장동우는 내 말에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대답을 재촉했다. 그래서 올 거지? 나 만나줄거지? 호들갑스러운 장동우의 얼굴이 눈 앞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아 비실비실 웃음이 터졌다.
"그 때 가서 시간 보고. 병신새끼. 내 후배 후임으로나 들어가라."
할 일 많아. 끊는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대충 맞장구를 쳐 주느라 모니터 옆에 쌓인 참고서 더미가 뒤늦게서야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시시콜콜한 악담을 끝으로 전화를 끊고 나니 무거운 실내 공기처럼 묵직한 부담감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걸 다 언제 하냐. 책상 가득 올려 놓았던 참고서를 하릴없이 뒤적이다가 한숨을 뱉었다.
누구도 학원에 발을 들이지 않는 주말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물론 나도 열두시까지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났어야 할 금 같은 휴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주문했던 교재가 들어오는 날이던 그저께. 본사에서 잘못 내려온 교재 재고정리와 함께 떠맡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정리하는 겸, 전 학년 참고서 반 별로 수량이랑 등급 체크도 해줘요. 교재 정리하면서 별책부록 떼어서 따로 보관해주면 더 좋고. 이왕이면 지금까지 출결사항도 체크해서 올려주고요. 결국 본래 용건보다 세배는 더 불어난 일거리에 입을 떠억 벌리자 원장 선생님은 회피하듯이 말을 돌렸다. 물론 추가수당 나가니까 걱정은 말아요. 그리고 성규씨 혼자서 하라는 것도 아니고, 남우현씨랑 둘이 하세요. 박 선생님은 그 날 본사 나가실 일 있으시다니까. 원장 선생님은 진심으로 대수로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었다. 부탁해요. 둘이서 하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거야.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둘이 아니기 때문에 대수로운 일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직후, 당연히 남우현에게 전했어야 할 말을 고민 끝에 묻어버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은 몇 번이나 남우현의 뒷통수에 대고 전할까 말까를 몇번이나 망설였었다. 다른 잔 일 같았으면 당연히 혼자 남아 처리했을 일이었겠지만 주말 출근까지 감수하고 해야 하는 큰 일거리라서. 하지만 고민 끝에 내게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번에도 내 알량한 자존심이 문제였다. 차마 주말에 단 둘이, 일이나 같이 하자는 말을 꺼낼 수가 없어 남우현 앞에서는 아무것도 전해받은 것 없는 척 입을 꾹 다물었다.
그 결과ㅡ 내 앞에 장벽처럼 쌓인 일거리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잠시 고개를 꺾어 의자 등받이에 기대자 덩달아 위로 향한 담배가 높게 연기를 띄워 올렸다.
무슨 미련이 남는 것은 아니지만, 은근슬쩍 내려 본 메신저 창 프로필사진에서 남우현은 웃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없는 걸로 알고 있지만 꼭 그와 버금갈 만큼 다정히 붙어있는 여자와 활짝 웃고있는 남우현의 사진. 꼭 저와 어울리는 셔츠 색상이 녀석의 얼굴에 화사함을 더했다. 주말이라 열심히 놀고 있나보네. 나는 액정을 두어번 툭툭 건드리다가 본능적인 한숨과 함께 전원버튼을 꾸욱 눌렀다. 내가 얼떨결에 제 몫의 일까지 떠맡아버린 걸 녀석은 알까. 아까부터 작성중이던 엑셀창이 눈 앞에 어지럽게 놓였다. 나는 두 눈을 느리게 깜빡이다가 아까처럼 등받이 의자에 고개를 젖혔다.
*
그러다가 깜짝 놀라 뒷목을 퍼득 일으켜 세운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아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까무룩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대책없이 잠에 빠져 시간을 축내고 있을 즈음, 쾅쾅거리며 닫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에 화들짝 고개를 든 내가 여전히 큰 소리를 내고 있는 철문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주말엔 원래 정상수업이 없기 때문에 닫아 놓는 것이 원칙이었음에 들어오자마자 열쇠로 걸어 잠근 문이었다. 별다른 말소리 없이 애먼 문만 시끄럽게 두드리고 있는 상대방은 아마 문이 열릴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 시계를 보니 머리를 기대 잠에 빠지기 전에서부터 두시간 남짓 흐른 시간이었다. 나는 느린 걸음으로 문 앞까지 걸어가 잠금장치를 풀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아요."
달깍 하는 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열어젖혀진 문 앞에는 남우현이 서 있었다. 낯선 표정과 함께. 남우현은 짜증기 어린 얼굴로 나를 원망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난데없는 남우현의 등장이라니, 사실은 조금 놀라 두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전화요? 내 반문에도 녀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진정되지 않은 발걸음을 학원 내부로 옮겼다.
딱히 인사치레라고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덤덤하게 그 동선을 눈으로 좇으며 문을 닫았다. 남우현이 끌고 들어온 바깥의 습기어린 공기가 내부로 끼쳐왔다. 살짝 도는 한기에 어깨를 움츠렸다가 다시 폈다. 남우현은 조금 젖은 저의 앞머리를 손으로 털며 말했다. 내가 벌써 몇 번이나 했는데.
"주말에까지 만나는 게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사람이 전화를 하면 좀 받아야 될 거 아냐. 그 때 내가 그랬죠, 언제 내가 중요한 연락 할지 모르는 일이라고."
"전화 온 줄도 몰랐어요. 근데 여기는 어떻게."
"박 선생님한테 듣고 왔어요."
너른 보폭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려던 남우현이 몸을 틀었다.
"왜 안 불렀는데. 내가 김성규씨랑 맡은 일 처리 하나 못 도울까봐?"
"무슨 말이예요."
"그게 아니면요."
처음 대면에서부터 느껴지던 화난 기색은 점점 더 열을 가하고 있었다. 남우현은 좀처럼 짓지 않던 낯선 표정으로 나를 질책했다. 남우현이 아무렇게나 의자 위로 던진 가방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내가 그렇게까지 싫어요?"
결국엔 조금은 엇나간 목소리가 나를 원망하며 말했다. 갑자기 처들어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이렇게나 뜬금없는 물음이라니.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키웠다.
"다짜고짜 뭐라는거예요. 앞뒤 다 자르고 그렇게 물어보면 어쩌자는건데요?"
"앞뒤 자른 거 아니에요. 말 그대로 내가 싫냐고."
"그건 왜요."
"이거, 우리 같이 하는 일이잖아요."
남우현이 바닥에 쌓인 교재 더미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에 내 시선도 자연스레 책 더미에 향했다. 분명 두시간 전까지만 해도 서둘러 끝내버리려고 했던 일거리였지만 지금은 최선으로 해야 할 숙제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남우현의 역정까지 듣고있으려니 어쩐지 울컥하고 뭔가가 치미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요?"
"이런 일조차 같이 하기 싫을 정도로 내가 싫은건가봐."
남우현이 인상을 구기며 내게 따지듯이 물었다. 나는 통로 쪽에 선 녀석의 얼굴을 힐끔이며 노려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프론트로 걸음을 옮겼다. 녹차 티백을 소리나게 꺼내어들며 남우현에게서 등을 돌린 나는 정수기 앞에 우뚝 멈춰섰다.
굳이 대답은 하고싶지 않았다.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개 이럴 때면, 불편하게 마주한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아니라며 빈 말로 대화를 마무리 해버리는 게 속 편한 짓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남우현 앞에서만큼은 빈말이라도 녀석의 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싫어하는 건 사실이고, 녀석은 그것을 정확히 짚어주었다. 차마 아니예요,하는 말이 떨어지지 않아 애꿎은 녹차 티백을 소리나게 찢어 컵에 담궜다.
누군가가 뒷통수를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운 게, 인기척도 없는 등 뒤의 상황은 안 보고도 뻔했다. 통로 쪽에 그대로 멈추어 섰던 남우현은 아직까지 이 쪽에 시선을 두고 있을 게 눈에 선했다. 나는 일부러 느린 동작으로 컵 속의 티백을 저었고, 녀석이 어떤 행동이라도 좋으니 뭐라고 마무리를 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애먼 헛기침만 두어번 시작했을 때였다. 남우현은 이 곳까지 들릴만큼 지쳐보이는 한숨을 뱉었다.
"대답하기 싫으면,"
"……."
"하지마요. 어차피 좋은 말 바라고 물은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는 이내 의자를 끄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나는 그제서야 새로운 컵을 꺼내 냉수를 받았다. 사무실 저 편에서는 남우현이 종이를 뒤적거리는 소리만이 유일했다. 나는 아까 전까지 그랬듯이, 느린 걸음으로 슬리퍼를 끌었다. 멍청히 앉아 하나둘씩 교재를 꺼내는 남우현의 앞에 찬물을 받은 컵을 내려두었다.
일부러 쓸데없는 생각을 찾았던 것 같다. 녀석이 앉아있는 탓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젖은 앞머리가 실내에 들어오고 나서야 어지럽게 뜬 걸 보고는 웃기다고 생각하려고 했을 때였다. 남우현이 내가 내려놓은 머그잔을 꼭 쥐었다.
"그렇게 대답 하지마요. 끝까지. 성규씨는 자존심 지켜요."
"……."
"그 쪽한테는 그게 정답이잖아."
이번에는 내가 입을 열기로 했다. 재밌네요.
"자존심은 지키라고 있는거지, 누군가한테 챙겨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저를 싫어하느냐는 대답에 예의상 할 수 있는 아니라는 대답을 못 꺼내 준 건 미안하지만 싫은 사람이 끝까지 싫은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 술 더 떠서 말하자면, 몇 시간 전의 내게 똑같은 선택지가 주어져ㅡ 녀석과 단 둘이 산더미같은 일거리를 세시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혼자서 일곱시간 남짓하게 작업하는 일을 선택했을거라고. 그리고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내 선택에는 절대로 후회같은 감정은 남지 않을 거라고. 그게 어쩔 수 없는 내 자존심 문제라고 할지언정 나는 남우현에게 확실하게 선을 긋고 싶었다.
"그러니까 관심 꺼요."
혹시라도 이 말을 꺼내기까지 망설였다는 티가 날까봐 일부러 녹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남우현의 옆자리 의자를 뒤로 빼자 마룻바닥에 쇠 부분이 쓸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렇지않게 옆자리에 자리한 내가 몇 시간 전에 정리해두었던 재고 목록을 남우현 쪽으로 슬쩍 내밀었을 때였다. 남우현은 여전히 답답한 눈으로 고개를 가져왔다.
"미안한데 못 꺼요."
"……."
"지금 결정한건데, 이제부터 이건 내 자존심이에요."
남우현은 이제 제법 내 눈을 똑바로 노려볼 줄 알았다. 녀석이 내게서 눈을 거두어 펜을 집어들었다. 이제 뭐 하면 돼요. 묻는 말인지, 혼잣말이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내려앉은 목소리가 분위기를 낯설게 했다. 어딘가 모호한 기분에 입을 열지 않고 있자 남우현이 힐끔거리며 내 표정을 살폈다. 뭐 하면 되냐구요. 재차 묻는 목소리에 단호함이 실렸다. 나는 만지작거리던 머그컵을 놓고 재고수량 비고란을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
* * * * *
유난히 말을 아끼며 일을 하고 있는 와중에 알아 챈 사실이 하나 있었다.
사실 머리가 복잡해 피곤해하는 게 눈이 뻔히 보일 정도면서, 괜찮은 척 기지개를 켜던 남우현에게 무심코 눈길을 돌렸을 때였다. 지극히도 녀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탓인지, 훤하게 색이 빠진 옷깃이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소리나게 종이를 정리하다가 베었던 손가락을 감싸쥐다가 남우현의 프로필사진을 떠올렸다. 분명 환하게 웃고 있었던 아까의 프로필사진도 같은 옷이었던 것 같은데. 조금 더 찬찬히 녀석의 뒷통수를 훑어보았다. 비에 젖어 조금 가라앉긴 했지만, 분명 아까의 머리스타일도 그대로였던 것 같다. 반 별로 배부할 책을 쌓아놓던 남우현이 잠시 책상에 엎드렸다. 어깨선과 딱 떨어지는 깃도 아까 전, 얼핏 보았던 옷이 맞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놀기 바빴던 남우현은 연락을 받고서 중간에 이리로 빠져나온것이 분명했다.
"별 거 아닌 질문인데요."
남우현은 내 말에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내려다 본 손가락에는 아직 멈추지 않은 피가 방울져 고여있었다. 근처에 있던 휴지를 뽑아 손가락에 가져다 대며 툭 던지듯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남이 힘든 일 대신해준다고 하면, 남우현씨한테는 좋은 일인데 왜 굳이 찾아왔어요?"
"그게 질문이에요?"
"네."
"질문 좀 똑바로 해요. 질문같지도 않은 거 하지 말고."
남우현은 내 말에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고개를 테이블로 갖다 댔다. 질문같지도 않은 질문이라는 말에 잠시 발끈하려던 찰나, 녀석의 말은 곧 이어졌다. 미미씨 같으면요.
"그렇게 하면 나는 좀 편할 거 같아요?"
"……."
"놀던 거 팽개치고 오더라도 해야할 건 해야죠. 게다가 가뜩이나 나 싫어하는 사람한테 일거리 맡겨놓고 그나마 쌓은 점수 잃긴 싫어서요."
뒷말에는 특히 비아냥을 섞은 남우현이 불현듯 상체를 일으켰다. 하긴, 여기서 더 점수 잃을 것도 없겠다. 그쵸. 그렇게 말하며 방금까지 내가 정리해두었던 보드에 소리나게 매직을 그었다. 찌이익거리며 매직이 짓이겨지는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약올랐다. 손가락을 감쌌던 휴지를 대충 옆으로 던져버리고 억지로 입꼬리를 당겼다. 네. 떨어질 점수도 없겠네요. 비아냥에는 비아냥으로 갚아주어야한다. 그렇지만 한 풀 더 거칠것 없이 뱉어낸 내 말에도 남우현은 웃었다. 알아요. 다짜고짜 화부터 내던 아까의 모습은 또 어디로 간 건지, 밑도 끝도 없이 유한 목소리가 너무도 쉽게 수긍했다.
"바닥은 원래 그래서 좋은거잖아요.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으니까."
"…뭐 하나만 더 물을게요."
"물어봐요."
"내기 좋아해요?"
남우현은 힘겹게도 내리누르며 글씨를 쓰던 매직을 보드에서 떼어냈다. 그러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돌았다. 내기?
"그냥, 뭐. 남들만큼?"
정말이지 별 것 아닌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남우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만큼. 어려운 대답이었다. 무엇을 먹고싶냐는 질문에 아무거나, 하는 대답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붕붕 뜬 마음에, 그 대답은 성에 차지 않는다고 받아칠 뻔 했던 것을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만큼 좋아한다는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건지.
내기는 왜요? 다시 고개를 바로 한 남우현은 보드에 재고 수량을 받아 적으며 물었다. 이번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바쁜 키보드 소리만 들려 주었을 뿐. 심심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남우현도 딱히 대답을 바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계 초침 소리만 사무실 공기를 예리하게 가르고 있었다.
잠깐씩 멈추었다가 다시 내리던 비는 저녁 여덟시가 다 되도록 그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한 층 더 거세어진 비는 칠흙같은 어둠까지 동반해왔다. 여름은 해가 짧다더니, 오늘만큼은 그것마저도 틀린 말이었다. 무서운 기세로 유리창을 두드려오는 빗소리를 듣다가, 마지막 엔터와 함께 몇 시간 내내 깜빡거리는 커서도 창 안에 묻어버렸다. 이 쪽은 다 됐는데, 남우현씨는? 내 물음에 남우현은 보드를 이 쪽으로 들어 보여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
"비 진짜 많이 오네."
그야말로 쏟아져내리는 빗속에 서 있자 무의식적으로 뱉은, 탄식 어린 말이었다. 우산이 없던 탓에, 남우현이 쓰고 온 우산 하나에 신세를 지게 된 거라 어정쩡하게 위치한 손을 둘 곳은 없었다. 핸드폰이라도 들고 있을까 하던 차에 떠오른 담배 생각은 이미 겉잡을 수 없이 간절해져 꺼내 물었던 담배가 절반 정도 짧아져있었다. 남우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류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덩달아 멈추어 선 정류장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토록 비가 쏟아지는데 밖엘 나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애매하게 남은 벤치 자리를 뒤로 하고 어색한 우리 둘의 우산이 정류장 팻말 옆 쪽에 나란히 섰다.
"이 상황에서까지 담배를 펴야겠어요?"
남우현이 내 쪽을 돌아보려다 만 고개를 뻣뻣히 고정하며 말했다. 웃겨.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느라 담배를 떨어트릴 뻔 했다. 남우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흡연자도 아니면서. 남우현씨도 피잖아요."
"…어쨌든 지금은 안 피고 있잖아요."
"꼬우면 남우현씨도 피든가."
윈윈하자구요. 우산 끝에서 빗방울이 제법 빠른 속도로 뚝뚝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덕분에 이미 신발코가 젖어들어간지는 오래였다. 거의 너나잘하세요 식으로 받아친 내 말에 남우현은 작게 헛웃음을 쳤다. 그게 무슨 논리래요. 살짝 기울여진 우산을 똑바로 고쳐 잡으면서 남우현이 웃었다.
"거절. 가뜩이나 눅눅한데 그러고 싶진 않아서요."
이제는 완벽하게, 정말로 씻은듯이 화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였다.
불과 두시간 쯤 전 일인데, 남우현의 기분은 정확히도 원상복구였다. 어쩌면 그 길었던 두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어색했던 기류와 녀석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건 온전히 나뿐이었던 것 같았다. 사실은 일거리를 끝마치고,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순간까지도 아까의 남우현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 녀석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류장 안 쪽에 앉은 아저씨가 통화를 하느라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간간히 우리 둘 사이의 침묵 속에 파고들었다. 남우현은 그 말을 끝으로 달리 입을 열지는 않았다. 녀석과 나의 시선은 곧바로 건너편에 있는 상가 간판 쪽으로만 나란히 향했고, 남우현은 말 없이 우산 끝을 천천히 돌리기도 했다. 나는 엉성하게 문 담배를 다잡기 위해 손을 올렸다. 그 때, 남우현의 손이 눈 앞으로 다가와 얹어졌다. 반대편 상가 골목으로 넋을 빼고 있던 내 시야가 완벽히 가려졌다.
"좀 더 뒤로 와요."
남우현은 우산을 조금 더 뒤쪽으로 빼면서 내 팔을 잡아당겼다.
"담배 끝 다 젖었어."
답답하게 눈 앞을 가린 손바닥은 끝이 짧아진 담배 위로 천천히 기울어졌다. 남우현의 말마따나, 시나브로 젖어들다가 습기에 찬 담배끝이 조금 휜 것이 보였다. 우산 끝에서 뚝 뚝 떨어지던 빗방울은 남우현의 손등 위로 떨어져내렸다.
이제는 미미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녀석의 손바닥을 스미다가 흩어졌다. 거의 다 피워가는 담배라지만 굳이 뱉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남우현은 한참동안이나 우산 속에서 또 다른 작은 우산을 만들어냈다.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손바닥이 시야에서 자꾸만 어른거리기를 십여분 째. 녀석의 집 방향과 정 반대인 버스는 도착했고 나는 그제서야 담배를 뱉었다.
7.16 |
너무 멀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너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멀다9ㅜㅜㅜㅠㅠㅠ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픽속에서 비가 와서 너므 좋아여 나는 비가 짱좋아 비오면 뭔가 어 깨끗해지는 기분 안들어요? 마당이라던가 음 하늘이 좀 더 깨끗해지고~,- 파라디랑 적당한해석이 겨울픽vs여름픽 이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 !! 그냥 바깥 날씨를 묘사하면서 쓰다보니까 그렇게 됐나봉가 ★그렇게 1년은 완성되고★ 처음이라그래 몇일뒤엔 괜찮아져~,@~ 아..픽 다쓰고 아직도 비오나?하면서 바깥을 봄 비따위는 오늘 애초에 오지 않았다는걸 까먹어떠염 내 생각 속에서만;;;;; 오직 내가 전지전능하게 픽속에서 비를 내렸을 뿐이졍 나는 전지전능 눈과 비를 마음대로 ㅇ어유 오늘은 왠지 헛소리가 하고싶은 밤 헛소리 헛헛 ㅋ.ㅋ이 브금이 왠지 헛소리 돋게 만들지 않아요?나만그런가~ 이 의식의 흐름 숨김말따위.. 스킵해요 그대들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