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61.
언젠가 폭포를 본 적이 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제주도에서 본 게 생애 첫 폭포였는데, 그 소리가 들어 본 소리 중에 가장 컸는데도 거슬리지가 않았다.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서로 손목을 붙잡고 소리쳤던 기억은 떨어지는 폭포의 전경에 묻혔다. 꽤나 멀리 있는데도 어찌나 많은 양이 떨어지던지 물방울이 얼굴과 머리칼 곳곳에 튀었다. 정성들여 고데기 한 머리가 풀려 몇몇 친구들이 난간에서 한 발짝 떨어졌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저들은 스스로가 엄청난 소리를 내뿜으며 자연의 일부가 된 적 있었다는 걸 알까. 호수나 바다로 나가 저들끼리 떠들지도 모르겠다. 이 미미한 내 목소리도 모이면 우레 같은 중력의 소리를 만들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이곳에서 파도를 넘실댈 수 있노라고.
“올해는 5년마다 한 번 열리는 트리위저드 게임이 열리는 해입니다. 덤스트랭, 보바통, 호그와트 세 학교가 돌아가며 장소를 제공하고, 마지막 게임인 미로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올해는 영광스럽게도 호그와트에서 게임을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들을 추스르며 박수쳤다. 폭포보다 작은 소리임에도 거슬리는 손뼉 부딪히는 소리.
잠시 마법부 관계자들 소개가 있고 본격적으로 타 학교 학생들의 입장이 시작됐다. 덤스트랭과 보바통 순으로, 각 학교가 위치한 지역과 특색에 맞춰 간단한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나는 그것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옛날의 기억으로 덧칠될 것만 같아서.
“오늘 연회가 끝난 뒤부터 내일 만찬이 끝날 때까지 불의 잔에는 전 학년을 대상으로 용기 있는 학생들의 이름을 받습니다. 준비된 학생들은 그때까지 이름을 넣어주세요. 내일 만찬이 끝난 후 불의 잔에서 이름이 뽑힐 것입니다. 그럼, 먼 길 와 주신 덤스트랭과 보바통에게 감사를 표하며. 만찬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름을 넣을 사람은 많았다. 민윤기 선배와 전정국, 그리고 내가 넣을 예정이었고 학생회를 통솔하기 위해 우리 일을 알고 있던 회장도 넣겠다 했다. 불의 잔은 어쨌거나 내 이름을 뽑을 것이었다. 마법부에서 허락한 유일한 조작은 이것이었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돼 내 이름이 뽑히지 않더라도 내가 게임에 연루되게끔 하면 될 일이었다. 나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수저를 들었다. 어딘가에 적힐 내 이름의 촉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긴장하지 마.”
“…….”
“결국 우리 뜻대로 될 거니까.”
전정국이 목걸이에 가 있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내렸다. 손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묘하게 익숙했다. 나는 전정국을 한 번 보고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 뜻’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손도 안 댄 접시가 빙빙 도는 듯했다. 그 ‘우리’에 내가 속해있는 게 역겨웠다. 내가 뭔데 기회를 준다 만다야. 내 손 위에 겹쳐진 전정국의 손이 뜨거워서 속도 뜨거워졌다. 내가 너한테 기회를 줄 자격이나 있을까. 요동치는 생각들이 폭포를 이뤄 떨어졌다. 아래로, 아래로, 어디까지 가라앉을 참인지 묻고 싶을 만큼.
이기적이게도 감정을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기억이 끊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넣은 것처럼 시간은 꾸역꾸역 내 기억으로 온전히 남았다. 먹은 것을 게워내고 방에 들어왔을 때, 절로 테라스에 시선이 가는 나를 발견하고 다시 변기통을 잡았다.
“희완아, 김희완. 괜찮아?”
누가 들어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누군가 내 등을 두드렸다. 겨우 입을 닦고 고개를 돌렸을 땐 김남준 선배가 서 있었다.
“체했어? 약 받아줄까?”
“아, 괜찮아요. 점호하러 왔어요?”
“어, 그런데 너 상태가…… 폼프리 부인한테 가야겠는데. 얼굴이 창백해.”
“괜찮아요.”
“음……근데 내가 안 괜찮을 것 같다. 여기서 병동까지 꽤 멀잖아.”
선배는 기어코 나를 일으켰다. 병동으로 가는 내내 내가 토기에만 집중할 수 없게 말을 걸어줬다. 주로 대답이 필요하지 않은 본인의 근황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걔네 삼촌이 만든 미로 체험이 엄청 잘 팔렸었잖아. 올해 트리위저드 게임 열린다고.”
“…….”
“흠, 혹시 너도 이름 넣을 거야? 임시완은 넣는다고 하더라고. 대충 보니까 민윤기도 넣는 눈치던데.”
“……네.”
병동 앞에 도착했을 때, 먼저 문손잡이를 잡으며 대답했다. 병동에는 아무도 없었다. 달빛이 창을 통해 내려오는 게 꼭 교회나 성당 같았다. 침대에 앉은 나는 약을 받아먹고 간단한 마법치료를 받은 뒤 다음 날 아침까지 있기로 했다. 선배는 아직 점호가 덜 끝나 가야했다. 혼자 있기 뭐하면 누굴 불러준다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폼프리 부인도 자리를 비운 빈 병동. 혼자라 칸막이도 없이 누웠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이곳에서도 떠올릴 수 있는 기억들이 많았다. 나는 눈을 감으면 그것들이 생생하게 재생될까 쉬이 잠들 수 없었다.
“또 혼자 청승 떨고 있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그럴 때마다 나타나주는 박지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무슨 청승을 떨어.”
“표정이 딱 그래.”
“너 나한테 숨긴 거 없어?”
“……갑자기?”
“아니면 깜빡하고 말 못 한 거나.”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보며 말했지만 시야이 주황색이 들어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박지민은 한참동안 아무 말을 않더니 내 손에 자기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고 언제부터 쥐고 있었는지 모를 내 주먹을 천천히 펴줬다. 손바닥에 하얗게 손톱자국이 남았다.
“난 알아.”
네가 말 못 한 게 뭔지.
“그런데도 물어보는 이유는.”
확신이 필요해서 그래.
“내가 이렇게 해도 되는지. 아니면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박지민이 이번에는 내 손을 힘 있게 쥐었다.
“나도 몰라.”
“…….”
“그래서 묻잖아. 확신이 필요하니까.”
“너……너…….”
“넌 어쩌다가 그 사람의 호크룩스가 된 거니.”
“…….”
박지민은 한참을 입을 벙긋거리더니 내 말에 다물었다. 동공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나는 박지민의 손을 밀어내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주황색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너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거 당장 그만 둬.”
“…….”
“알겠어? 그만두라고.”
“박지민.”
“대답해.”
“하지만 이 굴레를 막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더 이상 나 하나 살기 위해, 그리고 나 하나 때문에 거쳐 왔던 무한의 시간들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죄책감이라는 게 참 무서워. 나 아직 열일곱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초연해질 수 있다니.”
백 년도 더 된 전생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더 산 거라고 해도 되려나.
“……사실은 조금 무섭다. 이 모든 걸 무르고 그냥 그 사람한테 가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해. 그러면 결과가 어쨌든 간에 끝은 나지 않을까?”
“김희완. 대답하라고.”
하지만 말하지 않았으면 존재했는지도 몰랐을 부모님이, 나로 인해 죽어나간 모든 목숨들이.
“한 번만 무시하면, 그냥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되는 것들이 아니라서. 그렇게는 못 하겠다.”
왜 나였어야만 했나.
왜 나는 그 애를 사랑하고 그 애는 나를 사랑했을까.
왜 나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내가 이런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만약 그 사람을 만났을 때 그가 이제 그만하겠다고 한다면? 내 말에 모든 걸 놓고 반성한다고 하면? 그러면 어떡해?
“김희완!”
“그 사람은 이제 나한테 온전한 악역도 아니게 됐단 말이야.”
“김희완. 내 말 잘 들어.”
박지민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그 탓에 머리칼이 마구 흐트러졌으나 박지민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 자식의 호크룩스라 해도 내 꿈에 들어온다거나 기억이 연결된다거나 하는 직접적인 영향은 못 줘. 내 힘이 커서, 걔는 내 자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해. 겨우 봉인만 조금 할 뿐이야. 그마저도 이젠 전부 풀렸고 나한테 남은 건 호크룩스라는 사실뿐이야. 그 영혼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지만 아무 영향도 주지 못 해! 내 힘이 이 정도야!”
소리치다시피 말하는 박지민에 고개를 들었다. 역광이었지만 얼굴은 분명히 보였다.
“그러니까 나를 이용해. 마음껏.”
박지민은 울고 있었다.
“너는 내 친구잖아…….”
우레 같은 중력의 소리를 만들며.
리원은 걸음을 빨리 했다. 자신이 본 것을 믿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그것을 바꾸기 위해 희완을 따라 잡았다. 어깨를 잡아 돌린 손길이 꽤나 부드러웠음에도 희완이는 힘없이 비틀거렸다.
“희완, 아니.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너 괜찮아?”
고개를 끄덕이는 희완에 리원의 결심은 확고해졌다. 희완이 방금 불의 잔에 이름을 넣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리원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이 트리위저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마법실력을 겨룬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5년에 한 번씩 열어 그 희소성을 높이면서 참가할 기회를 얻는 학생들에게는 영광인 것처럼 꾸민다. 최근 축제에서 트리위저드에 참가했다는 졸업생이 미로를 만들어 그 인기가 대단했던 것을 떠올리며 리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 불의 잔에 이름 넣었어?”
“응.”
“왜?”
“넣고 싶어서.”
대개 퀴디치를 하는 학생들이 트리위저드 게임에 참가하는 비율이 높았다. 비행과 몸싸움에 능통하며 순간적인 판단과 순발력 등 지성과 신체를 동시에 겸비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퀴디치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모험심이 강했으니까. 리원은 혹시나 희완이 그런 부류일까 걱정했다.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것은 좋은 것이었으나 그것을 트리위저드 게임에서 시험하고 싶다면, 한없이 말리고 싶었다.
“네 용기는 정말 칭찬하고 싶지만, 이건 분명 위험한 짓이야. 내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혹시라도 네가 머글세계에서 와서 모를까 봐…… 트리위저드 게임이 말이 게임이지 엄청 위험해. 최근에는 학생들의 ‘마법’실력만을 검증하기 위해 위험요소들은 제거되는 분위기지만 아예 안전할 수는 없어. 다시 한 번 생각해주면 안 될까?”
“너 정말 강례원이랑 닮았다.”
“어어?”
“너무 당연한 말이었나……. 강례원은 잘 만나고 왔고?”
“아, 응…….”
희완이는 잠시 말을 않고 리원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리원은 그런 희완이의 눈길을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희완이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다음에는 얼굴 바꾸지 말고 가. 그대로 너를 보여줘.”
“…….”
“그게 정말 강례원도 원하는 거일 테니까.”
그러고 뒤 돌아 가는 희완이의 걸음은 조금 전보다 힘 있었지만 리원은 희완이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굴어서.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지민이 우는 짤 보고 같이 울었네요(?) 왜 그렇게 슬프게 우는 건지.. 보는 사람 마음 아프게..
여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얼추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연하지만 두려움에 떨고 자꾸만 다른 방도가 없는지 생각하는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잘 드러났는지 모르겠어요.
다음 화에는 정말 트리위저드 게임이 열립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축제에서 인물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고 어떤 일을 벌이는지 지켜봐주세요!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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