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bande 하늘엔 구름 한 점이 없고 청량한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고아원에 갔다. 경수가 오래전부터 있던 곳. 경수가 그리울 때 마다 이곳에서 종종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집을 나서서 평소처럼 지하철을 탔다. MP3를 켰고 두 귀에 이어폰을 꼈다. 피아노 소리가 내 귀를 적셨다.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 사이로 지하철의 요란한 소리가 내릴 곳임을 알렸다. 발소리 말소리로 가득찬 세상에 피아노 소리가 울렸다. 고아원 근처에서 이어폰을 뽑았다. 뚝- 하고 세상의 소리들이 크게 다가왔다. 고아원의 철문을 열고 들어갔다.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내게 달려왔다. 나는 가볍게 공을 차주고 원장님을 뵈었다. 언제나 인자하신 모습으로 원장님께서 날 맞아주셨고 난 기본적인 청소를 했다. 복도를 대걸레로 닦고 있는데 맨 끝 방에서 사람소리가 났다. 내가 알기로는 경수의 방이라고 들었는데 말이다. 대걸레를 밀며 복도 끝으로 갔다. 환한 밖과는 다르게 어두운 방 안. 침대 위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끼이이익- 살짝 문을 연다고 열었는데 문소리가 크게 났다. 내 쪽으로 두루마리 휴지가 날아왔다. 난 대걸레를 얼른 놓고 휴지를 받았다. 자기 딴에는 세게 던진 모양인데 여린 모습처럼 힘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 아이의 얼굴을 살폈다. 방은 이미 검정색 블라인드가 쳐져 있어서 어두운데다가 눈 주위에 붕대를 감은 듯 눈가에 무언가가 둘러져 있었다. "...가.." 기름칠을 하지 않은 문소리처럼 갈라진 목소리로 내게 이 아이가 말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일단 방에서 나왔다. 내 발소리가 작아지는걸 들었는지 그 아이는 다시 이불로 가는 모양이었다. 난 원장님께 서둘러 갔다. 원장님에게서 들은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저 아이는 도경수였다. 그냥 그 자체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도경수가 눈이 멀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경수는 내 어릴적부터 친구였다. 경수는 어릴 때 부터 피아노를 잘 쳐서 콩쿨에 나가면 늘 대상을 타곤 했었다. 난 경수를 따라 피아노를 배웠지만 겨우 입상을 하거나 탈락을 했었는데 경수는 늘 트로피며 꽃다발을 받고 대학교수가 러브콜을 보내기도 할 정도였다.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경수에게 한 가지 흠이라면 고아라는 사실 정도였다. 그렇지만 경수의 피아노 실력이 외국에 알려지고 경수의 가정환경도 알려지자 외국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그를 입양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던 다른 그 가정의 아이들이 경수를 괴롭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만들어 눈을 멀게까지 했다고 한다. 들으면서 화가 나서 주먹을 떨었다. 경수는 그 이후로 바로 귀국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렇게 그냥 누워서 지낸다고 한다. 난 원장실에서 나와 물 한 컵을 들고 경수에게 갔다. 다시 보니 경수였다. 방을 환하게 하려고 스위치를 눌렀지만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경수가 이불을 걷어 차고 앉아 내게 또 휴지를 던졌다. "..가!" 아까보단 힘이 있었다. 난 말 없이 경수의 손을 잡았다. 내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내가 더 꽉 잡았다. "도경수."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렀다. 반항하던 경수의 손이 멈췄다. 그 손에 물컵을 쥐어줬다. "마셔." 컵을 향해 얼굴을 가져다 댄 경수에게 한 말이었다. "물이니까. 괜찮아. 마셔." 경수가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처절한 목소리로, 물에 젖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불쌍해서 이러는 거니.." 불쌍.. 솔직히 불쌍한 마음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때 눈부시게 멋있던 친구였기에, 나의 성 정체성을 흐트려놓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수많은 말보다 내 몸이 먼저 움직여 그를 껴안았다. 4년만에 껴안은 친구는 그대로 작고 여린 모습이었다. 쓰다듬는 등에서 뼈가 만져질 정도였다. 햇빛처럼 뜨겁게 연주하던 모습은 가고 차가운 그믐달같이 얇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그런 모습이었다. "도경수." "응.." "내가 누군지 알겠어?" "...알지.. 김종인.." 경수가 내 이름을 말할 때, 딱 눈물이 났다. 이런 내 모습을 알아 차렸는지 경수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을 했다. "이젠 너가 좋아하는 내 모습은 없어. 빈 껍데기 뿐이야. 손도 굳었고 악보도, 피아노 건반도 볼 수 없어. 그리고 너의 얼굴도." 옷 소매로 참 많은 눈물을 닦았다. "외국에 나가니까, 그렇게 너가 보고싶더라. 다른 애들이 나 놀릴 때 딱 너를 생각하면 버틸만도 했어. 오케스트라 들어가면 제일 먼저 너를 초대하려고도 했어. 근데.." 경수도 감정이 올라 찼는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씻을래." 경수가 내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공용화장실로 들어갔다. 상처투성이인 몸. 그리고 더러운 붕대를 풀었다. 눈 주변은 큰 상처가 나 있었지만 맑은 눈은 그대로였다. 내가 경수를 샅샅이 보던 찰나에 경수가 날 가볍게 치면서 얼른 씻겨달라고 했다. 부끄럽다며. 경수를 씻기고 옷을 깔끔하게 입혔다. 고아원에 잠시 있으라고 하고 난 고아원에서 뛰어서 근처 안경점으로 향했다. 경수 눈 주위 자국이 가려질 만큼 큰 선글라스를 샀다. 다시 경수에게 갔다. 붕대 대신 선글라스를 끼라는 말과 함께 선글라스를 껴줬다. 뭐 그런대로 상처가 가려져 눈에 보이지 않았다. "도경수. 우리 데이트 할까?" 긴장한 듯 두 입술을 꼭 깨물고 경수가 멀뚱히 있었다. 난 어서 경수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 원장님께 허락을 받고 경수와 밖을 걸었다. 차도에서 나는 엔진소리, 가게들에서 울려퍼지는 가요, 사람들의 말소리가 경수를 긴장시켰다. 나는 앞을 한 번 보고, 경수를 보고, 다시 앞을 보고, 경수를 보는 것을 반복했다. 어느 틈엔가 경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날 잡는 손에는 힘이 꽉 쥐어져 있었다. "왜..왜그래?" 이유없는 눈물, 게다가 도경수의 눈물이었다. "좋아서..." 나는 경수의 선글라스 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햇빛이 보이지 않아도 느껴져. 그 햇빛만큼 따뜻한 너도 느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다른 소리들이 무서워. 보이지 않으니까 상상이 안돼. 그런데 너는 상상이 돼." "..도경수..." "눈물이 흐르는 것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나는 너무 상했어." "야. 너 조용히 하고 따라와." 나는 경수의 손을 더 세게 잡고 차도 변으로 나아가 택시를 잡았다. 라디오 소리만이 택시에 들렸다. 낮 시간이라 클래식 음악이 들렸다. 경수를 계속 바라보던 내 시선이 경수의 손에서 멈췄다. 경수는 내가 잡은 오른손은 꼭 잡았으면서 왼손으로는 자기 무릎을 피아노 삼아 손을 까딱이고 있었다. 난 그 모습에 씩 웃어주었다. 택시에서 내렸다. "도경수. 여기 ㅇㅇ슈퍼 앞이야. 기억나?" "..응." 천천히 슈퍼 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몇 걸음 뒤 문구점이 나타났다. "@@문구점이야. 우리 여기서 뽑기 많이 했는데." "아직도 뽑기 있어?" "아니.. 없네. 있으면 뽑기 했을텐데."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걸어갔다. 멀리서 어렴풋이 피아노 소리가 났다. "##피아노 학원이야. 도경수. 기억나?" "당연히... 너랑 처음 만나 피아노 배운 곳이잖아." 피아노학원 앞에 도착했다. 초등학생들의 건반 소리가 들렸다. 내가 경수의 얼굴을 쳐다 보았을 때, 경수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 또 경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들어가볼래?" 경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여니 들리는 종소리도 여전했다. 선생님은 우릴 보더니 반갑다는 듯 인사했다. 선생님이 경수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하자 내가 먼저 잠시 빈 방에 들어가 봐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우리는 소망방이라고 쓰인 곳에 들어갔다. 그곳의 벽에는 경수가 콩쿨에서 대상을 탄 모습이 찍힌 사진이 걸려 있었다. 워낙 오래된 지라 색이 좀 바랜것은 흠이었지만. 경수는 그것도 모른채 멍하니 내 옆에 서 있었다. 경수와 내가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뚜껑을 열고 경수의 양 손을 피아노 위로 올려주었다. 경수은 멍하니 검지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렀다. 가운데 도를 찾는 모양이었다. 내가 경수의 손을 잡아서 위치를 잡아주려던 찰나 경수가 말을 했다. "내가...내가 할게." 그 후로 몇번 움직이다 찾았는지 경수는 양 손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오랜만에.. 듣고 싶은거 없어?" 경수는 그랬다. 늘 나에게 피아노를 직접 들려줬다. 악보가 없는 노래도 척척 다음날이면 연주했다. 내가 피아노를 관둔 뒤에도 경수는 이메일로 연주 동영상을 찍어 보내줬다. 지금은 그 곡들을 내가 mp3로 변환해서 듣고 있다. 오랜만에 경수의 라이브를 듣는 시간이다. 많은 음악들 중에서 고민하느라 시간이 걸리자 경수가 나를 보챘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움직이던 나는 아까 그 빛바랜 사진을 보았다. "너가 처음 콩쿨 나가서 뭘로 상 받았더라.." "사라방드?" "아. 그거 쳐줘." 경수는 다시 심호흡을 하더니 연주를 했다. 천천히, 그리고 몇번의 실수도 있었지만 경수가 만들어내는 음악소리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점점 피아노 건반이 느려지고 경수가 연주를 마쳤을 때 경수를 꼭 안아줬다. 경수의 울음이 가장 기뻐보이던 순간이었다. ----- 브금은 헨델의 사라방드입니다. 유투브에서 음성만 따 온거라 출처를 남깁니다. m.youtube.com/watch?v=72TRvxjSnYo --_ 부족한 실력이라 부끄럽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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