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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 X D.O
#1."V story" w.정부끄
(뻔한결말 주의)
(*표시는 시점 교체)



2013년 1월 12일, 하얀 눈이 내리던 날.
나는 그 하얀 눈 보다도 하얀 경수를 만났다.


"경수."

두어달째 나와 마주하는 거면서, 여전히 나를 볼때마다 꿈적이며 움직이는 눈이 너무 사랑스럽다. 처음 만나던 날. 눈 색깔이 특이하고, 이렇게 추운날 멀끔한 와인색 정장 하나만 입고서 나타난 내가 섬뜩했던건지 두세번 돌아보며 저요? 하고 저 자신을 가리키던 경수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 왜 왔어. 오지말라고 했잖아."

그는 오늘도 역시 나를 거부한다. 그는 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아하고, 내가 자신에게 아는 척 하는 것 또한 좋아하진 않는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이미 난 너에게 각인 되어 버린게 틀림 없기 때문에. 싫다고 해도, 계속 찾아갈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너에게 있으니까.

"안오는게 안된다고 몇번 씩이나 말했을텐데. 우리집 가."
"뭐가 아쉬워서 너네 집까지나 가. 됐어, 안가."

그 물음에 그 대답이다. 거부할 수 없이 강렬한 무언가가 없으면 안 하는 경수의 성격에 내가 또 한번 맞춰야 하나.

"...막대사탕있어, 집에. 너 좋아하는 딸기 크림맛."

이거다, 막대사탕. 경수에게는 거부할 수 없이 강렬한것. 경수의 눈 빛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으이그, 쉬운 놈.

"....그거만 가지고 바로 갈거야. 개수작 부리지마."

내가 하려던 이야기는 이렇게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경수의 일부를 소개했으니, 내 소개를 좀 해야겠다. 내 이름은 김 종인이고, 영어이름은 카이. K,A,I. 쉽다.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언젠가 누가 내게 그렇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뱀파이어다. 불로장생의 생명체.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그렇게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16세기 부터 살아왔으니, 한 오백년 살았나? 앞으로 얼마나 더 살다 갈지는 모르겠다. 이미 죽어버린 상태라. 당신들이 생각하는 뱀파이어 모습과 흡사하다. 흰 피부를 가졌고, 체온이 섭씨 15도를 넘지않는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입술색이 푸르거나, 그런건 아니다. 내 입술색을 묘사하자면 눈에 입술만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붉고, 내 입술이 또 두꺼워서 더 그렇게 보인다. 한국에 들어온지는 4년쯤 된것같다.(날짜를 일일히 다 세면서 사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 한국에서도 사람 많은 곳만 골라 살았다. 내가 뱀파이어라고 해서 사람 없는 조용한 곳에 살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럼 난 뭘 먹고 살라는 말이야. 먹는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주식은 피다. 동물 피도 먹고 사람피도 먹는다. 모기처럼 째째하게 앉았다 가는 스타일이 아니라(그런 뱀파이어도 보기는 봤다. 한번만 앙 하고 무는.) 거머리..같이 한번 앉으면 내 배는 다 채우고 간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맛은 다 똑같던데, 내가 동물을 입에 안대는 이유는 요즘들어 동물보호가 너무 엄격해져서 건들 수가 없을 뿐이다. 그리고 나도 동물을 좋아하고. 그래서 동물을 하나 키우는데, 내가 키우는 '벨라'는 말라뮤트 종의 대형견이다.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집을 못 지킨다는 그 종류. 사람이 아닌 나도 좋아하길래, 그냥 한마리 주워다 키우는 중이다.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

"너, 왜 나야?"
경수와 함께 집으로 가던 길에, 그가 내게 물었다. 왜 자기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본 것 같은데..

"몰라, 나도. 혹시 각인이라고 들어봤나?"
"..각인? 그거 책에서 한번 읽어봤어. 그건 늑대인간이 걸리는 거."
"늑대인간도 하는데, 뱀파이어한테서 더 잘 일어나. 뭐, 알고 있다니까 다행이네. 입 아프게 설명 안해도 되니까. 각인 된 것 같아, 너한테."
"그러니까 왜 하필 나냐고, 그게."

경수는 자신이 나의 각인 대상이라 여간 싫은게 아니라는 거였다. 울상에, 짜증에. 근데 별 수 있나, 내가 어쩔 수 없는데.

"너도 나 좋아할 수 밖에 없어. 각인된 상대는 결국 나중에 상대방에게 각인 당하거든. ....아, 그 반대인가? 기억이 잘 안 난다."
"웃기지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경수는 막대사탕이 어디있냐며 성을 내었고, 나는 순순히 막대사탕을 까서 입에 물려주었다. 역시 입에 원하는게 들어가니까, 말문이 트이네.

"넌 왜 뱀파이어야?"
"그런 막장같은 질문이 어딨냐, 다른 질문."
"넌 왜 여기 살아?"
"사람이 많으니까."
"아... 그러면 진짜로 사람 피 막... 먹고 그래?"

사람이 많아서 여기 산다는 말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듯, 눈이 조금 더 커졌다. "넌 안 먹을테니까 걱정마, 귀여운 놈." 하며 정수리 부근을 쓰다듬어 주는 내 손길에, 지레 겁을 먹는다.

"무서워 너... 그러면 너 살인자 잖아."
"그렇게 부르지마, 어차피 너랑은 관계 없는 사람들이잖아."
"그래도 이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니가 죽인거야."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지만 세상이 필요로하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처리해 준것 뿐이야."

맞다, 내 말이. 나는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내 먹잇감으로 삼지 않는다. 생각은 있기에, 금방 사라져도 찾을 사람이 없는, 예를 들어 범죄자 같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던가 그런 사람들을 내 먹잇감으로 삼는다. 도경수가 이걸 이해할 날이 오겠지.

"집 구경할래?"
"아니. 집 구경하다 막 시체나오고 그러면 어떡해. 너 무서워."
"시체.. 내가 시체를 집에다 놓을 만큼 집 크기가 여유롭지가 않아서.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는듯 가방을 막 챙기는 경수의 손을 겹쳐 쥐었다. 차가운 살갗이 그의 뜨거운 체온과 만나자 금방 그의 열이 내 몸으로 전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움에 놀란건지, 경수는 눈이 또다시 5mm정도 커진채로 손을 움직거리다 순식간에 확 잡아 뺀다.

"나, 무섭지."

이를 드러내 눈을 매섭게 뜨고 쳐다보며 물었다. 표정을 굳히고, 살금살금 그에게 다가가니 이번에는 눈이 주름을 만들며 꼬옥 감겼다.

"에이, 나 봐. 이래도 무서워?"

표정을 풀고 웃으며 다시 되물었다. 그제서야 눈을 사알, 뜨는 경수.

"처음 표정은 내 먹잇감들한테 짓는 표정이고, 두번째가 너. 그러니까 쓸데없이 겁먹지 말라는 말이야. 넌 내 먹잇감이 아니니까. 난 쓸데없는 짓하는거 제일 싫어하거든. 다리에 쥐날텐데, 그 자세 계속하고 있으면."

다리를 뒤로 접어 본의아니게 꿇어 앉아있는 그가 다리를 통통치며 일어나다 힘이 풀려버린것 같아 내가 받쳐주었다. 사람이 이렇게 둔해서야, 원.

"무서운지 안무서운지는 내가 생각할 일이고. 다음에는 진짜 너네집 안올거야. 그렇게 알아."

쿵쿵소리나게 걸어가는 경수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왜 따라오냐고, 계속해서 가라는 손짓을 하는 그를 앞에 두고 계속계속 따라갔다. 우리집에 안온다니까 그의 집이 어딘지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한참을 돌아가는가 싶더니, 여기가 자기네 집이라며 "안녕." 인사만 남기고 쏙 들어가 버린다.

"여기네...."

크지 않은 주택. 작은 경수는 작은 집에 살았다. 한참을 지켜보다 낮에 다시 오기로 하고, 그렇게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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