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먼 기억이다.
추억을 더듬어 보며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곳은 학교가 끝나고 두 세시간 후쯤의 음악실이었다.
학원 교재를 가져오지 못해 그 더운 여름날 헐레벌떡 뛰어 들어 온 학교에선 저 복도 끝에서 아득하게 피아노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얼마나 매력이 있었느냐면 내가 왜 학교에 온 것인지도 까먹고 그 소리의 주체를 찾았을 정도?
그래 아마 그 정도.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 음악실에선 나보다 한 뼘 작아보이는 왜소한 소년이 피아노를 치고 있더랬다.
내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선 피아노 옆에 둔 제 가방을 들쳐메고 나가려는걸 붙잡고 제목을 물었었다.
물론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앤 그저 날 빤히 쳐다보기만했다.
아주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아이는 벙어리라고 했다.
그렇게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그 애는 같은 시간에 똑같은 곡을 쳤다.
마치 날 부르기라도 하는 듯이.
그럼 난 그 애의 등 뒤에서 가만히 듣고있다가 잘 친다고 칭찬해주었고 그럼 그 아이는 내 칭찬에 보답하듯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이 좋아서, 그래서, 더욱 과장하여 칭찬하기도 하였다.
"나 이제 학원 가야 돼. 내일 또 들려줘. 알았지?"
한참동안 피아노를 듣다 학원에 갈 시간이 되어 음악실을 나서기 전엔, 내일도 쳐줄것을 약속하며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 아일 보고서야 학원에 달려갔었다.
그리고 그 후로 그 아이는 몇 주 동안 음악실에 오지 않았다.
내가 항상 먼저 가버려서 화가 난 걸까, 저번에 잘친다고 해주지 않았는데 서운해서 그런걸까
마음 졸이며 기다려도 그 아이는 오지 않았다.
죽었다고했다.
원래 몸이 안 좋은 애였다고, 병원에 갇혀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렸다고했다.
초라하고 썰렁한 장례식장 안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오열하는 그 애 엄마뿐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의 네 얼굴과 그 옆 변백현이라는 세 글자가 낯설었다.
네 이름을 읽어보다가 네 사진을 쳐다보고, 또 다시 네 이름을 보다가 예쁘게도 웃고있는 사진 속에 널 보는데.
그러다 괜히 눈물이 터져 나도 거기서 한참을 울고 왔더랬다.
백현아. 네가 가버리고 십년이 지났다.
십년 전 그 해 여름과 똑 닮은 온도에 가슴이 턱 하고 막혀와.
아직도 내 안엔 피아노를 치며 웃던 네가 생생하게 살아있어 백현아.
아직도 내 방엔 난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가 있어.
어디선가 찬열아, 하고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분명 네 목소리다.
들어보지 못했지만, 분명 이건 네 목소리야.
"백현아. "
저 끝에서 아득하게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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