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두번째달 - 봄이다
第 一 章 :: 꽃피는 봄이오면 (3)
"종대야, 이거 꽂을까? 아,아니다. 이게 더 고우려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리도 하기도 싫어하던 단장을 즐거이 하는 민석의 모습에 종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나들이를 다녀온지 열흘, 여전히 민석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아무래도 그날의 나들이가 민석에게 큰 위로가 된듯 싶었다. 음, 이게 더 나을것 같아. 하며 붉은 산호머리꽂이를 민석의 머리타래에 꽂은 종대가 민석의 얼굴에 뽀얀 분을 발랐다. 뺨을 발그레 하게 물들이며 방실방실 웃는 민석의 얼굴이 종대의 눈에도 참 고와 보였다. 입술에 붉은 연지를 바르는것을 마지막으로 민석의 단장을 끝낸후 민석의 방을 나온 종대의 앞으로 애기기생 하나가 홍등을 들고 다가왔다.
"소향언니, 이것좀 매달아 주어. 대문이 너무높아 달지 못하였어."
소향, 이라는 이름에 잠시 멈칫한 종대가 이내 빙긋웃으며 아이의 손에서 홍등을 건네받았다. 응, 언니가 달아 놓을테니 돌아가서 일보렴. 응! 하고 다다다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종대가 화란정의 대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향. 참으로 그립고, 또 가슴아픈 이름이었다. 자신을 대신해 칼끝에 스러져간 누이. 기방에서 자그마한 애기기생들을 볼때마다 눈앞에 어린 누이가 자꾸만 아른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지는 누이의 얼굴이 안타까워 기생어멈이 기방에서 쓸 이름을 말하라 할때 저도 모르게 소향 이라 대답했다. 그 때문에 소향이라 이름을 불리울때 마다 떠오르는 누이의 생각에 조금 우울해질때도 있었으나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라고 종대는 생각했다. 화란정의 대문앞에 붉은 홍등이 걸렸다. 장사의 시작을 알리는 등불. 화란정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홍등이 걸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린 도성하늘이 붉은 홍등의 행렬로 환히 밝혀졌다. 바야흐로, 화란정의 밤이 시작되었다.
*
"허허, 오늘은 우리 홍월이가 기분이 좋은가 보구나. 방글방글 웃는게 저기 피어있는 꽃보다 더 고우이."
예,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민석의 얼굴에 사내의 얼굴에 벙싯 미소가 걸렸다. 그럼, 홍월이 가야금에 소향이 노래한곡조 청해도 되겠느냐? 하며 작은 비단주머니를 내민 사내의 모습에 민석이 반색을 하며 손을 내저었다. 어른께는 얼마든지 들려드릴테니 어서 넣으시옵소서. 허허, 그래도 넣어두거라. 하며 기어코 민석의 손에 비단주머니를 쥐어준 사내가 다시한번 민석과 종대에게 청을 했다. 노래한곡 해다오. 민석의 손가락이 스친 가야금의 현에서 맑은 소리가 울렸다. 맑게 울리는 가야금 선율을 위로 종대의 청아한 음색이 얹어졌다. 꽃향기를 실은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세사람이 앉은 방을 가득 매웠다. 이것이 풍류로다! 하며 손뼉을 치는 사내와 마주한 종대와 민석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노래가 끝나고, 가야금을 한쪽 구석에 세워둔 두사람이 사내앞에 곱게 앉았다.
"어르신, 요새 왜이리 발걸음이 뜸하셨나이까? 소녀 참으로 섭섭하였소."
"홍월이랑 저가 어르신만 기다리는거 아시면서 너무하오."
새치름하니 말을 건네는 두아이의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린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하구나. 라고 대꾸했다. 민석과 종대앞에 앉은 사내의 이름은 김준면 이었다. 그저 세상흘러가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던 세사람의 사이로 적막이 내려앉았다. 한참동안 이어진 그 적막을 깬 이는 준면이었다.
"민석아, 종대야."
준면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민석과 종대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어르신, 그, 그이름은. 하고 말을 더듬는 종대와 가만히 고개를 숙인채 입술을 깨문 민석의 손을 잡은 준면이 빙그레 웃었다.
"내가 곧 기적에서 빼줄터이니. 조금만 더 참고 견디거라. 이제 계집아이 노릇은 그만하고 나와 함께 가자.
내 집에서 노래하고, 가야금도 타고 내 일도 도우며 그렇게 살려므나. 이 기방에서 썩히기엔 너희의 재주가 너무 아까워."
다정한 준면의 목소리에 민석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준면의 말이 믿기지 않는듯 멀거니 준면의 얼굴을 바라보던 종대는 이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어르신, 정말 ,정말, 이은혜는 죽어서도 갚지못할것입니다. 그런 두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준면의 눈에 애정이 담뿍 차올랐다. 참 착한 아이들이로고. 내가 이아이들을 거둬야지. 가진 재주만큼이나 참으로 고운 아이들이 아닌가.
"그럼, 이만 가보겠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응?"
민석과 종대의 머리를 쓰다듬은 준면이 화란정의 대문을 나섰다. 김준면. 그는 예조판서 김준하의 막내아들로서 관직에 나가지는 않았으나 예조의 수장인 아버지를 도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시와 이야기, 음악을 모으는 자였다. 예조에서 편찬하는 책들의 반은 김준면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다는것은 과장된 소문이 아니었다. 또한 사람의 신분 보다 재주를 귀하게 여기는 그의 성품 덕분에 아국땅에 내로라 하는 재주꾼들은 모두 그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재주꾼중 특출난 가야금 실력과 고운 음색으로 준면을 사로잡은 이가 민석과 종대였다. 언젠가 흘리듯이 말했던 기적에서 빼주겠다는 그의말. 그 후로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그냥 해본 소리겠거니, 했던 두아이는 오늘 준면이 한 말에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손을 맞잡은채 화란정으로 들어가는 두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준면이 기방을 떠난후 오랜만에 함께 자지 않으련? 하는 민석의 말에 자리에 함께 누웠던 종대는 어쩐일인지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옆에서 준면의 이야기를 하며 조잘대던 민석이 고르게 숨을 쉬며 잠든것을 확인한 종대가 살그머니 이불을 젖히고 방을 나서 화란정의 후원으로 향했다.
"기적에서 빼주겠다."
종대의 머릿속에 준면이 했던 말이 빙빙 맴돌았다. 자신의 손을 잡은채 참말 잘되었어, 응? 하며 곱게 웃던 민석의 얼굴을 떠올리던 종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는 민석과 마주 웃으며 응, 참으로 잘된일이야 하며 웃었지만 사실, 종대는 기적에서 빼준다는 준면의 말이 썩 달갑지 않았다. 물론 계집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으나 김준면은 예조판서의 아들이었다. 나라의 행사를 관장하는 예조판서 김준하의 집에는 나라에서 행사가 있을 때 마다 예조에 소속되어 있는 관료들이 모여들었다.그 관료들 중 혹여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눈을 질끈 감은 종대의 머릿속에 '그날' 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에게 누이의 옷을 입히고 유모의 품에 안겨주며 집밖으로 밀쳐내던 어머님, 사내의 옷을 입고 자신처럼 꾸몄던 누이 소향의 모습, 칼끝에 쓰러진 아버님, 불에 타오르던 집. 아비규환 이었다. 지옥도가 현실에 있다면 이런모습일까 싶었다. 한꺼번에 밀려오는 고통스러운 기억에 비틀거린 종대가 이내 몸을 추스린채 천천히 주저 앉았다. 바닥에 앉은 종대의 눈앞에 샛노란 민들레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피어있었다. 민들레 처럼 작고 귀엽던 누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마치 자신의 누이를 쓰다듬는듯, 조심조심 꽃잎을 쓸던 종대의 눈에서 눈물한방울이 흘러내렸다. 소향아, 이 오라비는, 널 죽이고 살아남았어. 모진 목숨이라 끊어내지도 못한채 이리 살고 있어. 소향아, 소향아. 작은 내 누이야. 이 못난 오라비는, 널 죽이고 살아남았어.
*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종대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완전히 사라지자 민석의 눈이 반짝 하고 떠졌다. 비어있는 종대의 자리를 가만히 손으로 쓸어내리는 민석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소향이 생각이 나는게지. 그래서 저리 잠을 못들고 헤매는 것이야. 종대의 사연을 처음들었을때, 민석은 종대의 손을 붙잡고 섦게 울었다. 서러운건 난데, 왜 너가 우니? 하며 눈물을 닦아주며 빙긋 웃던 종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종대는 자신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자신보다 더 가슴에 품은 한이 많은 아이였다. 가만히 종대의 얼굴을 떠올리던 민석은 애써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흩트렸다. 괜히 눈물이 날것 같아서였다. 종대의 생각에 울적하던 민석의 머릿속에 기적에서 빼주겠다는 준면의 말이 떠올랐다. 이리 좋은날, 좋은생각만 하자. 울지 말자.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민석이 방안의 장농을 열고 루한이 주었던 노리개를 꺼내어 가슴에 품었다. 자신의 것과 한쌍이라며 보이던 루한의 노리개. 봄날처럼 따뜻하던 정인의 목소리가 떠올라 민석의 가슴이 울렁였다. 작게 열린 창문틈 사이로 달빛이 흘러들어 왔다. 루한, 나 있잖아. 기적에서 빠질수 있을것 같아. 그럼 기생노릇도 안해도 되고, 다른 남자들한테 웃음을 팔지 않아도 되. 그저 너만 바라보면서, 그렇게 예쁘게 연모할수 있을것같아. 베시시 웃음을 흘리며 얼굴을 붉히는 민석을 지켜보던 달님이 구름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사라진 달빛에 캄캄해진 방안에 앉은 민석의 얼굴이 밤에 뜬 해처럼 하냥 붉기만 했다.
*
"에잇, 이게 아니란 말이다!"
구깃구깃하게 구긴 종이를 옆으로 던진 루한의 옆에는 방금 전에 던져진 종이와 똑같은 모습으로 구겨진 종이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벌써 몇장의 종이를 구겨던진건지, 이대로 가다가는 온 궁궐의 종이가 남아나질 않을것 같았다. 그런 루한의 모습에 한숨을 내쉰 우판이 루한의 옆으로 다가 갔다.
"전하, 어찌 또 그러시옵니까?"
에잉, 아무래도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민석이 한테 좋은 시를 써 보내주고 싶은데 말이야, 오늘따라 글씨가 왜이리 지저분 하누. 투덜대는 루한의 모습에 빙긋 웃은 우판이 새 종이를 건네었다. 지금도 충분히 명필이시옵니다. 그러니 조금만 차분하게 써 보십시오. 지금 전하의 모습이 마치… 내 모습이 마치? 칭찬받으려 애쓰는 어린아이 같사옵니다.
짓궂은 우판의 놀림에 얼굴을 붉힌 루한이 흠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원래 정인이 생기면 다 그런것이야. 우판 너도 두고보렴? 그 뒤로도 한참동안 글을 쓰고 종이를 구기길 반복하던 루한이 드디어 만족스러운듯한 미소로 붓을 내려놨다. 좋다! 누가 쓴건지 참으로 명필이야. 그렇지? 능글맞게 웃는 주군의 모습에 함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우판이 말했다. 예, 참으로 명필이시옵니다. 그런 우판의 대답이 만족스러운듯 벙싯웃던 루한이 종이를 곱게접어 봉했다.
"자, 전해주거라."
예? 지금말입니까? 하는 우판에게 루한이 억지로 편지를 안겼다. 오늘같은 밤에 어울리는 시이니 꼭! 전해주거라. 어명이니라. 어명에 특히 힘을주는 루한의 말에 우판이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오겠나이다. 어둠이 짙게 내린 궁궐안에 때아닌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이럇!하며 말을 모는 우판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편지를 건네며 웃던 주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짐짓 엄한목소리로 편지를 건네는 왕의 얼굴에는 정인에 대한 숨길수 없는 애정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지 10년. 내내 칼날위를 걷는 듯한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주군의 마음에 따뜻한 훈풍이 불어온것 같아 우판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따뜻한 봄바람이 우판의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스치는 봄바람에 잔잔한 꽃내음이 실려왔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던 우판의 입가에 벙싯 미소가 걸렸다.
봄이란, 참으로 좋은 계절이 아닌가.
| 구중궁궐과 함께하는 이쁜이들 (암호닉 받지 않습니다!) |
0408, 동그라미, 페라리, 창징, 쥬시쿨, 작가님내꺼, 콩쥐, 자몽슈밍, 민트, 비트겐슈타인, 빠오슈, 미니, 슬민, 나무, 강가, 꺄흥, 자판기율무차, ⊙♥⊙, 실삔, 수수, 몽몽 , 고기만두, 미개루, 빵떡이, 금붕어, 자몽, 레어닉, 머그컵, 워더, 치킨, 뀨잉, 턍큼이, 우산, 메리, 이랴, 에어컨, 레몬, 아아, 민서긩, 마카롱, 단호박, 당과, 치즈스틱, 구름, 징징이, 종대생, 물결하트, 방, 모닝빵, 파파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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