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편을 안읽으신 분은 읽고 와주세요!
BGM :: 두번째달 - 봄이다
第 一 章 :: 꽃피는 봄이오면 (1)
하하호호.이 잔 받으시오, 저 잔 받으시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과 계집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이 난잡한 연회의 가운데에 민석이 있었다. 눈을 내리깐채로 그저 가야금만 뜯는 민석의 머릿속에는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났으면, 하는 바램만이 가득했다. 민석의 가야금소리는 이미 뒷전이 된지 오래였고 연회석의 사내들은 옆에 낀 계집의 치마폭을 들추며 음탕한 말들을 내뱉었다. 한소절, 한소절. 민석은 곡의 마지막절이 끝나자 마자 가야금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조용히 뒷걸음쳐 물러나던 민석의 움직임이 불쑥 올라온 손에의해 저지되었다.
"어허- 아직 연회가 파하지 않았거늘, 어딜 간다는 게냐."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민석을 훑는 사내는 화란정에서도 기피하는 손님인 김대감이였다. 워낙 난잡하게 노는 자 인지라 화란정의 그 누구도 그를 손님으로 맞고싶어하지 않았으나 워낙 손에 틀어쥔 권력이 대단해 화란정에서도 어쩔수 없이 받는 자였다.자리에서 일어난 김대감이 민석에게로 다가오자 민석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민석의 모습에 김대감의 눈빛이 징그럽게 빛났다.김대감이 민석의 손을 움켜잡았다. 기분나쁘게 축축한 살이 손에 붙어오는 느낌에 민석이 몸서리 쳤다.
"이, 이러지 마시옵소서."
잡힌 손을 빼내려는 민석의 행동을 저지한 김대감이 민석의 손을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일단은 손님이기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채로 김대감의 품에 가만히 안겨있는 민석은 이대로 딱, 죽었으면 싶었다. 목언저리에 느껴지는 뜨거운 숨결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러지 마시라며 바르작거리는 민석을 더 꽉 안은 김대감의 손이 민석의 치마폭을 더듬었다.
"그래, 여기 숨겨놓은 것이 얼마나 진귀하기에 이리 비싸게 군단말이냐."
노골적인 말에 얼굴을 붉힌 민석이 치마폭을 더듬는 손을 뿌리치며 김대감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런 민석의 행동에 허허, 이년보게. 도도한것이 아주 사내맘을 흔드는구먼!하며 웃는 김대감과 그런 김대감을 보며 왁자한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까지. 모든것이 치욕이였다. 치욕, 치욕, 대치욕! 입술을 짓깨물며 주먹을 꼭 쥔 민석이 서둘러 운향각 아래를 내려갔다. 김대감은 그런 민석을 붙잡지는 않았으나 민석의 뒤로 꽂히는 김대감의 말은 민석에게 또다른 치욕을 안겼다.
"내 언젠가 저년 치마폭에 숨겨진 것을 먹고말것이야, 두고보게나. 헛허!"
운향각을 등진채 걸어나오는 민석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오늘따라 다리에 감겨오는 치맛자락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다리에 감기는 비단의 느낌이 마치 자신을 옭아매는 밧줄같아 민석은 당장이라도 치마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낸 민석이 자신의 방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방에 들어와 치마자락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떨구던 민석은 자신의 머리타래를 조심히 어루만지며 장신구를 빼내는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종대였다.
"울지마. 이런일 한두번 겪었누? 오늘따라 왜이리 약하게 굴어.
사내의 몸으로 계집처럼 살아간다는게 쉬운일인줄 알았어?"
타박하는듯한 목소리와는 반대로 민석의 머리타래를 풀어내리는 종대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럽기만 했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고 땋아 올려진 머리타래를 풀고 곱게 빚어 한갈래로 땋은 종대가 눈물로 젖은 민석의 얼굴을 닦아냈다.
"쯧, 화장이 다번져서 어째. 곱던 얼굴이 엉망이 되었어. 응?"
말은 그렇게 해도 자신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말임을 알기에 민석은 괜히 더 눈물이 났다. 종대야, 종대야. 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민석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종대가 민석의 등을 토닥였다. 어릴적 부터 자신과 함께한 이 아이는 작고 여렸다. 겉으로 보기엔 드세고 날카로워 보이나 이렇게 한꺼풀을 벗기면 작은 바람한점에도 쉬이 흔들리며 힘들어하는 아이였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민석의 모습에 종대가 깊은 함숨을 내쉬었다. 김대감이 심하긴 했어. 자신의 품에 안겨 엉엉우는 민석의 얼굴을 들어올린 종대가 민석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민석아, 내일은 하루 쉬고 나들이라도 갔다오련? 뒷산에 벚꽃이 만개했어.
내가 너 좋다하는 당과도 챙겨줄께. 그러니 그만 뚝, 하렴. 응?"
"기, 기생어멈이 나를 혼낼꺼야."
"내가 잘 말해줄께. 기생어멈도 너 김대감한테 당한꼴을 알면 이해해 줄꺼야.
그렇게 야박한 사람이 아니란거, 니가 제일 잘 알잖니?"
으응..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민석의 눈물젖은 얼굴에 살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나이를 먹어도 이이는 여전히 어린아이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런 민석을 바라보던 종대도 민석을 따라 빙긋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얼른 자려므나.
*
하루종일 격무에 시달리던 루한은 하늘에 별이 총총히 뜰 무렵에야 한숨을 돌릴수 있었다. 10년을 해온 일이것만, 이놈의 일들은 끝이 없었다. 날마다 각지에서 올라오는 상소문에 루한은 눈코뜰새없이 바쁜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나마 이 생활에 작은 위안을 주는것은 하늘에 뜬 달을 보며 마시는 차 한잔과 자신의 앞에 마주앉은 우판의 존재였다.
"그래, 그아이는 찾았느냐?"
예, 하는 믿음직한 목소리에 루한의 마음이 설렘으로 울렁였다.
"여전히 곱더냐? 무얼 하고있든? 지금도 어린날 처럼 맑게 웃더냐?"
하나씩 천천히 물으시옵소서, 하는 우판의 말에 루한이 머쓱하게 웃었다.
허허, 짖궂은 이로고.
"왕께서 물은 그아이는 화란정에 있나이다."
"화란정?"
그곳은 기생집이 아니더냐? 하는 루한의 물음에 우판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일을 한다고, 설마 기둥서방노릇이라도 한단 말이더냐?"
"아닙니다. 그런게 아니옵고…."
말끝을 흐리는 우판의 모습이 답답한지 루한이 대답을 재촉했다. 그런 루한의 모습에 짧게 한숨을 내뱉은 우판이 말을 이었다.
"기생… 으로 있었나이다."
"기생?"
"예, 계집의 옷을 입고 웃음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뜻밖의 대답에 얼굴을 굳힌 루한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이는 어릴때도 참 고왔지. 근데 그이는 사내라 하였어.
"무슨 사정이 있는듯 합니다. 사람이란 말하지못할 사연쯤은 하나씩 가진 존재이니까요."
"어릴적에도 사정이 있어 계집의 옷을 입고있는다 하였지. 그래, 그럼 그건 되었고 잘 지내기는 하더냐? 웃는 모습은 보았어?"
자신의 물음에 또 말을 흐리는 우판의 모습에 루한이 답답함에 자신의 가슴을 쳤다.
"평소의 모습은 잘 모르겠으나 제가 본 날은 어쩐일인지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이다.
치마자락을 움켜쥐고 입술을 꾹 깨문채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처연하여…"
되었다! 하며 우판의 말을 끊은 루한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10년만에 전해들은 민석의 소식에 루한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계집의 옷을 입고있던 것으로 보아 평범하게 살 아이는 아니라고 여겼것만 기생에, 눈물바람에. 자신의 품에 안겨 눈물을 떨구던 어린시절의 민석이 떠올랐다. 또 어디선가 서러웁게 울고있을거란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우판, 내일 잠행을 나가야 겠다."
"아니되옵니다."
"어째서?"
"일단 내일도 밀린 격무가 많사옵고, 또.."
왜 잠행을 나가선 안되는지 요목조목 따지는 우판을 향해 루한이 짐짓 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어명이다. 주군의 명을 따르는것이 신하의 도리이거늘, 지금 어명을 어기려는 게냐?"
단호한 루한의 말에 눈을 끔뻑이던 우판이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옵니다. 내일 채비를 해둘터이니 이제그만 침소에 드시지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우판의 모습을 본 루한이 속으로 웃으며 뒤돌아 섰다. 그저 군신의 도리를 읊어대는 우판을 갑갑하다 느꼈던 날이 수도없이 많았건만,
어명이라는 말로 찍어눌러 잠행을 얻어낸 오늘같은 날은 그런 우판의 성품이 꽤나 마음에 드는 루한이었다. 허허, 꽉막힌 저이의 성품도 도움이 될때도 있구먼.
*
"조심해서 갔다와!"
응! 하고 곱게 웃으며 종종걸음 치는 민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종대가 어쩔수 없다는 표정으로 푸스스 웃었다. 어제 저녁에 그리도 울어놓고선 오늘 아침에 퉁퉁부은 눈으로 찾아와 당과보따리 줘. 하던 민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이 건네는 보따리를 풀어 곱게 쌓인 당과를 보며 베시시 웃는 민석에게 원, 그리도 좋으니? 하는 핀잔에도 그저 웃어넘기는 민석의 모습이 참으로 오랜만인듯 하여 종대도 그냥 따라웃어버렸다. 그동안 기생노릇에 치이느라 힘들었던 저 작은아이에게 오늘의 외출이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가만히 서서 민석이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종대는 이내 화란정안으로 사라졌다. 부디 즐거운 나들이가 되기를.
*
민석이 향한곳은 시냇가였다. 어린날의 자신이 자주 놀러오곤 하였던, 또 루한을 만났던 그곳. 어린시절에는 예까지 오는게 그리도 힘에 부쳤었는데 지금은 얼마 걷지도 않아 이곳에 다달았다. 참 한결같은 곳이었다.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시냇물도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여전히 계집의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도. 단 한가지 그때와 다른것은, 루한의 존재였다. 그날 자신과 당과를 나눴던 작은 소년은 10년이라는 세월동안 이곳에 단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머릿속을 휘젓는 어린날의 추억에 민석은 옷고름의 노리개를 만지작 거렸다. 이곳에 올때마다 옷고름에 걸었던 노리개는 민석의 손때를 타 반들반들하게 빛나고 있었다. 루한과의 추억을 잠시 상기하던 민석은 이내 보따리를 한쪽에 내려두고 버선과 꽃신을 벗어 보따리옆에 곱게 놓았다. 이내 치마를 둥둥걷어 올리고 시냇물안에서 물장구를 치니 어린시절로 돌아간것 같은 느낌에 민석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민석의 물장구에 공중으로 튀어오른 물방울들이 치마를 짙은 색으로 물들였다. 그렇게 한참을 뛰놀던 민석은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에 물가에 앉아 종대가 챙겨준 당과 보따리를 풀었다. 종대가 싸준 보따리에는 민석이 좋아하는 색색의 당과들이 한가득 놓여져 있었다.
참, 곱기도 하지.
빙긋 웃은 민석이 당과하나를 베어물고 살짝살짝 물장구를 쳤다. 입안데 달디단 당과를 베어문채로 물장구를 치니 어린시절 함께했던 루한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졌다.
건너편에 보이는 수풀에서는 금방이라도 루한이 쑥 하고 나타날것만 같았다. 꼭 다시 올것처럼 해놓구선.. 자기한테 시집오라 해놓구선.. 당과를 손에 쥔채로 고개를 떨군 민석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아롱아롱 맺혔다.
"안녕?"
갑작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번쩍 든 민석의 눈에서 눈물이 툭 하고 흘러내렸다.
"왜 울어?"
루한이었다. 꿈인듯, 생시인듯 구분이 가질않는 민석이 눈물로 흐려진 눈을 북북 문질렀다. 세게 문지른 탓에 붉어진 눈가를 쯧, 하고 짧게 혀를 찬 루한이 부드럽게 매만졌다.
"이리 문지르면 고운 피부가 상할꺼야."
정말 루한..이야? 조금은 어수룩한듯한 자신의 말투에 빙긋 웃은 루한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흘러간 세월속에서 소년은 사내로 변해있었다. 언뜻보면 계집아이로 착각할만큼 선이 곱던 얼굴은 사내다운 맛이 더해져 늠름한 미장부가 되어있엇다.
"미안, 좀 늦었지?"
왜 이제온거야. 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민석을 끌어안은 루한이 낮게 읊조렸다. 미안, 정말미안해. 이렇게 민석을 안고있으니 어린시절의 그때로 돌아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조그마한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콩콩 내리치며 울음을 터트리는 민석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루한이 민석의 뺨에 짧게 입맞췄다. 근데 넌 여전히 참 곱다. 응? 고와. 정말? 응. 이제 나한테 시집와도 되겠다. 너가 무에그리 곱다고 내가 시집을 가니! 하고 빽 소리를 치는 민석의 뺨에 한번더 입맞춘 루한이 민석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이거 놓으래도! 싫어. 놓으라니깐! 싫어. 놓지못해! 정말 놔? …아니.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서로를 끌어안은 두사람의 머리위로 벚꽃잎이 흩날렸다.
바야흐로, 두소년이 함께했던 봄이 다시 돌아왔다.
| 구중궁궐과 함께하는 이쁜이들 (암호닉 받지 않습니다!) |
0408,동그라미,페라리,창징,쥬시쿨,작가님내꺼,콩쥐,자몽슈밍,민트,비트겐슈타인,빠오슈,미니,슬민,나무,강가,꺄흥,자판기율무차,⊙♥⊙,실삔,수수,몽몽,고기만두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EXO/루민클첸] 구중궁궐 0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f/e/0/fe08175842ad1cd65e4ef4f19df6fe28.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