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야 난 니가 나한테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정국의 낯빛은 담담했다. 여주는 차오르는 숨을 내뱉고 싶었지만 힘이 다 빠져버린 몸이 버거워 그것마저 어려웠다.
내가 너한테 얽매여 사는 걸로 보였어?
그래서 그런 내가 부담스러워 졌어? 내가 싫어졌어?
내가 아는 너는, 없어?
하고 싶은 말이 여주의 입 안을 맴돌았다. 그러나 끝내 역행해 속으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이 또한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아 없애버려야 하는 말들이였다. 늦었어, 얼른 자. 이젠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이 제멋대로 바깥으로 나왔다. 내가 뱉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였는데. 여주는 초점없는 눈을 숨기려 고개를 떨어뜨렸다. 가슴속에 쌓인 말이 또 심장 부근을 찔렀다. 아, 더 찢겨질 조각도 없을텐데. 이제야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
위스키에 퐁당 빠진 얼음이 영롱하게 빛났다.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낮은 채도를 담은 조명에 눈이 피곤해졌다. 눈을 꾹꾹 누르다가 이내 문지르는 여주의 손을 태형이 붙잡았다. 손목을 잡은 손이 부드럽게 타고 올라가 여주의 손등을 따스히 감싸안았다. 눈 그렇게 비비면 안돼. 꽤나 단호한 어조에 여주가 픽 웃음을 내뱉었다.
"정국이가 딴 여자랑 사귄대"
"드디어 헤어진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넌 너무 끌려다녀, 여주에 말에 담담히 대꾸한 태형이 새로운 잔을 집어들었다. 잔을 닦는 손길이 익숙했다. 여주가 테이블을 사이로 제 앞에 선 태형을 눈에 담았다. 붉은 빛과 파란 빛이 섞인 조명 탓에 태형의 머리칼이 오묘한 색으로 물들었다. 빛으로 물들었네. 작게 중얼거리는 여주의 음성을 놓치지 않은 태형이 입꼬리를 올렸다.
"딴 여자 우리집 앞까지 데려와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
"글쎄?"
"걔는 세컨드래. 난 아직 지 여자친구라 이거지"
잔을 닦던 태형의 손길이 멈췄다. 크리스탈 조명에 반사된 유리잔이 알록달록하게 빛났다. 천천히 잔을 내려놓은 태형이 여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붉기도 파랗기도 한 조명 아래에서 여주의 눈동자가 섞인 빛으로 물들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여주를 본 태형이 테이블을 넘어 여주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참 올려다봐야 했던 태형의 시선이 가깝게 내려왔다. 여주는 그제야 제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태형이 눌린 입술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어차피 전정국을 못 떠날거래"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너도 고등학교 때부터 봐와서 알잖아 정국이 그런 애 아니라는거. 근데 요즘 너무 아파, 걔가 날 너무 아프게 해 태형아.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태형이 입술에 놓인 손을 내렸다. 이내 여주의 어깨를 감싸안고 제 어깨 위로 고개를 뉘이게 만들었다. 태형의 귀로 여주의 색색이는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적당한 온기에 힘이 들어간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여주의 뒷통수를 살살 쓸어주는 태형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근데 웃긴 건 태형아"
"응"
"난 정말 그렇더라"
"드디어 헤어진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넌 너무 끌려다녀, 여주에 말에 담담히 대꾸한 태형이 새로운 잔을 집어들었다. 잔을 닦는 손길이 익숙했다. 여주가 테이블을 사이로 제 앞에 선 태형을 눈에 담았다. 붉은 빛과 파란 빛이 섞인 조명 탓에 태형의 머리칼이 오묘한 색으로 물들었다. 빛으로 물들었네. 작게 중얼거리는 여주의 음성을 놓치지 않은 태형이 입꼬리를 올렸다.
"딴 여자 우리집 앞까지 데려와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
"글쎄?"
"걔는 세컨드래. 난 아직 지 여자친구라 이거지"
잔을 닦던 태형의 손길이 멈췄다. 크리스탈 조명에 반사된 유리잔이 알록달록하게 빛났다. 천천히 잔을 내려놓은 태형이 여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붉기도 파랗기도 한 조명 아래에서 여주의 눈동자가 섞인 빛으로 물들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여주를 본 태형이 테이블을 넘어 여주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참 올려다봐야 했던 태형의 시선이 가깝게 내려왔다. 여주는 그제야 제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태형이 눌린 입술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어차피 전정국을 못 떠날거래"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너도 고등학교 때부터 봐와서 알잖아 정국이 그런 애 아니라는거. 근데 요즘 너무 아파, 걔가 날 너무 아프게 해 태형아.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태형이 입술에 놓인 손을 내렸다. 이내 여주의 어깨를 감싸안고 제 어깨 위로 고개를 뉘이게 만들었다. 태형의 귀로 여주의 색색이는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적당한 온기에 힘이 들어간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여주의 뒷통수를 살살 쓸어주는 태형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근데 웃긴 건 태형아"
"응"
"난 정말 그렇더라"
"드디어 헤어진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넌 너무 끌려다녀, 여주에 말에 담담히 대꾸한 태형이 새로운 잔을 집어들었다. 잔을 닦는 손길이 익숙했다. 여주가 테이블을 사이로 제 앞에 선 태형을 눈에 담았다. 붉은 빛과 파란 빛이 섞인 조명 탓에 태형의 머리칼이 오묘한 색으로 물들었다. 빛으로 물들었네. 작게 중얼거리는 여주의 음성을 놓치지 않은 태형이 입꼬리를 올렸다.
"딴 여자 우리집 앞까지 데려와놓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
"글쎄?"
"걔는 세컨드래. 난 아직 지 여자친구라 이거지"
잔을 닦던 태형의 손길이 멈췄다. 크리스탈 조명에 반사된 유리잔이 알록달록하게 빛났다. 천천히 잔을 내려놓은 태형이 여주의 눈을 바라보았다. 붉기도 파랗기도 한 조명 아래에서 여주의 눈동자가 섞인 빛으로 물들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무는 여주를 본 태형이 테이블을 넘어 여주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참 올려다봐야 했던 태형의 시선이 가깝게 내려왔다. 여주는 그제야 제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태형이 눌린 입술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어차피 전정국을 못 떠날거래"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너도 고등학교 때부터 봐와서 알잖아 정국이 그런 애 아니라는거. 근데 요즘 너무 아파, 걔가 날 너무 아프게 해 태형아.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태형이 입술에 놓인 손을 내렸다. 이내 여주의 어깨를 감싸안고 제 어깨 위로 고개를 뉘이게 만들었다. 태형의 귀로 여주의 색색이는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적당한 온기에 힘이 들어간 주먹을 천천히 풀었다. 여주의 뒷통수를 살살 쓸어주는 태형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근데 웃긴 건 태형아"
"응"
"난 정말 그렇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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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니까, 아직도 표정이 왜 그래. 반짝반짝 빛나는 여주의 눈동자를 담으며 태형이 말을 이었다. 그런 태형에 할 말이 없어진 여주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한참동안 이어진 정적에도 태형은 재촉하는 기색없이 잠자코 여주를 기다렸다."나 너 이용하는거야"
한참을 생각하다 입을 연 여주가 귀여웠던 태형이 살풋 웃음을 지어보였다. 괜찮아, 그래도 돼. 이어지는 말은 진심이였다. 여주의 귓가에 태형의 말이 꽤나 간지럽게 울려퍼졌다. 그와 다르게 웅웅거리며 바 전체를 떠도는 노래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근데 난 너 말고 세컨드 안 만들래"
태형이 고개를 숙인 여주의 머리를 짧게 쓰다듬은 뒤 얼굴을 감쌌다. 손이 큰 탓에 여주의 얼굴 절반이 가려졌다. 천천히 여주의 고개를 들게 한 태형이 저와 눈을 맞추지 못하는 여주를 보며 흘러내린 옆머리를 넘겨주었다. 오랜 시간 태형의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였다.
"오늘은 왜 여자 안 달고 오는지 궁금하죠"
여주는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문을 여는 지민에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여주가 눈에 띄게 떨리는 손을 숨기려 볼펜을 세게 쥐었다. 가계부를 보는 척 눈을 내리깐 여주를 보며 지민이 조소를 흘렸다. 볼펜을 쥔 채로 굳어버린 손이 얼얼했다.
"아, 그 땐 죄송했습니다"
"뭐가 죄송해요, 매일 바꿔 끼는 내 잘못이지"
그 이후로는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지민이 일방적으로 제 말만 하고 자리를 뜬 탓이였다. 여주는 음료수 코너로 가 커피를 고르는 지민의 뒷모습을 멍하니 응시했다.
방금 말투가 분명히 시비조였는데, 그냥 때려칠까, 근데 이 시간에 이만한 시급 또 구하기도 어려운데. 아니야 그냥 때려치는 걸 진지하게.. 수십가지 생각이 여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새 커피를 고른 지민이 카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에 남모를 한숨을 쉰 여주가 떨리는 손을 꼭 잡고 놓았다. 힘겹게 바코드를 찍을 때마저 진득히 달라붙는 시선에 여주의 머릿속이 잠시 암흑으로 변했다. 결국 수십번 내뱉은 커피 가격을 보려 포스기를 다시 한번 보아야만 했다.
"1800원 입니다"
"오늘은 콘돔 안 줘요?"
"..네?"
"그쪽이 어제 썼다고 한거요"
마치 평범한 손님이 빨대 없냐고 묻는 것마냥 자연스러운 말투였다. 카운터 위에 놓인 여주의 손이 잘게 떨리는 것을 본 지민이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이 막 고개를 든 여주의 시선에 들어왔다.
"하긴 매일 밤 바쁘실텐데 오늘도 드릴까요?"
고개를 들자마자 보인 남자의 표정에 사과하려던 마음까지 싹 사라진 여주가 입을 열었다. 열이 뻗쳐 즉흥적으로 대꾸한 말이였지만 그리 후회되진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마저 들었다. 지민의 내려간 입꼬리를 보며 여주가 작은 숨을 알맞게 터뜨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였다. 굳은 지민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알바가 손님한테 이렇게 싸가지가 없어서야"
"진짜 안 잘리겠다, 그쵸"
훅 들어오는 익숙한 향에 여주의 몸이 얼어붙었다. 갑작스럽게 불어온 공기 속 섞인 향에 여주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한참을 가까이에서 여주를 응시하던 지민이 카운터 위로 짚은 손의 힘을 풀었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이어진 행동이였다. 지민 특유의 쿨한 향과 섞인 담배 냄새. 평소 은은하게 찔러오던 향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쳤다가 멀어졌다. 천천히 옅어지는 향에 여주의 등줄기가 뻐근해졌다.
"그럼 또 봐요"
여주의 손에 쥐여있던 커피를 가져간 지민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커피를 쥔 지도 몰랐는데, 찬 커피의 온도가 손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여주는 느껴지는 손과 코의 감각을 뒤로하고 멍하니 남자가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한참 뒤에야 뻑뻑한 눈을 재우고자 힘없는 눈꺼풀을 내렸다.
좆됐다는 예감은 늘 이렇게 잘 들어맞는다.
===
바텐더 김태형은 옳다...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암호닉 남겨주세요!
나중에 결말 번외 같은 거 보내드리고 싶어요ㅎㅎ
예쁜 댓글 넘 감사합니다
현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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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