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19 처음이었다. 이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를 걸어본 것도, 지나가며 만난 선후배, 동기들의 부러움 섞인 환호를 받는 것도, 무엇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윤기가 계속 내 손을 꽉 잡고 놓지 않는 것도 처음이었다. 손을 마주잡은채 학교를 걸으니 그제야 민윤기와 내가 CC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 이따가 전화해. " 믿을 수 없을만큼 민윤기는 내게 다정해졌다. 나를 강의실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은 물론이고 전화하라는 달콤한 말까지도 남기곤 했다. 그런 모습이 낯설었지만 싫지 않았기에 나는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얼굴 가득 드러나려는 웃음을 감추려고 애써야 했다. 조금은 어색해질 줄 알았던 김태형과는 다행히도 예전처럼 잘 지냈다. 한쪽으로만 향하던 일방적인 마음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바뀌었기에 나와 김태형 사이는 더욱 편해졌다. 민윤기의 수강신청은 이번에도 역시나 폭삭 망해버렸다. 꼭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강의가 있었고 나와는 아침에 오는 시간 빼고는 하나도 맞지 않았다. 반대로 김태형은 나와 시간도 비슷하고 심지어 같이 듣는 강의도 있었기에 나는 거의 맨날 김태형과 밥을 먹었다. " 요즘 날씨 진짜 좋은데. 선선해서 별로 덥지도 않고. " " 응. 짱 좋아." " 너 자전거 탈 줄 알아? " " 자전거? 그냥 조금? " " 그러면 이 근처에 커플자전거 빌려주는데 있던데 남자친구랑 가봐. " " 커플자전거? " 그리고 놀라우리만큼 김태형은 나와 민윤기의 연애 소식에 담담하게 반응했다. 어쩌면 이미 내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을 수도 있었기에 그럴 수도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애써 담담한 척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문득 자신이 날 빨리 잊는다면 내가 서운해 할 것이라는 김태형의 말이 떠올랐다. 사실 그런 생각을 안해본것은 아니다. 날 벌써 깨끗하게 잊었나. 나를 별로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았구나. 얼핏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떨쳐내려고 했다. 그런 생각까지 하면 난 정말 나쁜년인거다. 내 수업이 다 끝나고 민윤기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까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나는 민윤기를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 속에서 걸어나오던 민윤기가 나를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올려 살짝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따라웃자 민윤기는 걸어와 내 앞에 섰다. " 기다렸어? " " 응. 시간 보니까 비슷하게 끝나길래. " " 밥은? " " 나는 먹었는데... 너 아직 안 먹었지? 뭐 먹고갈까? " " 아니야. 그냥 집에서 먹을래. " 이렇다 할 사건 없이 민윤기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원래 막 수다스럽게 걷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했고, 특히 요즘들어 매번 꼭 붙잡고 다니던 손을 잡지 않았기에 이상하다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힐끗 민윤기를 쳐다봤는데 그 얼굴이 꽤나 시무룩해보였다. " 왜- " 민윤기를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고 있자 민윤기가 고개를 돌려 말꼬리를 늘리고 내게 물어왔다. 본의 아니게 몰래 훔쳐보고 있던 상황이 되어버린 나는 당황함에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 왜 자꾸 쳐다봐. " " 아니 그냥... 너 오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 " 내가 무기력한거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 " 그거야 그렇지만... " " ...근데 너 아까 저녁은 누구랑 먹었어? " " 어? " " 또 김태형이랑... 먹은거야? " " 어? 아, 응! " 갑자기 뜬금없이 그걸 왜 묻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 내 대답에 조금 더 시무룩해지는 민윤기의 얼굴을 보자 깨달았다. " 뭐야? " " ... " " 설마 질투해? " " ...질투는 무슨. " " 맞네, 질투! 너 지금 질투하는거지! " " 아니라니까. " " 너 내가 너랑 밥 안 먹고 김태형이랑 먹어서 질투하는거지? 그치? " 끊임없는 내 추궁에 극구부인하던 민윤기는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큰 웃음이 터져나왔다. 민윤기가 질투라니. 천하의 민윤기가 질투라니. 여태까지 한번도 못 해본 생각인 것 같은데, 지금 내 앞에서 질투를 하는 민윤기는 꽤나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더 짓궂게 말을 걸었다. " 우리 윤기 내가 밥 같이 안 먹어줘서 질투했어요? " " 하지마. " " 알았어알았어, 앞으로는 너 기다렸다가 너랑 밥 먹을게! " " ... " " 아니면 김태형이랑도 먹고 나중에 너랑도 먹을까? " " 이게 혼날라고. " 민윤기는 내 이마에 꿀밤을 선물했다. 그 세기가 꽤나 강해서 그제야 나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은 막을 길이 없었다. 아마 내 기억으로는 온갖 멋진 척, 본인은 세상 제일가는 상남자인 척을 다 하던 민윤기가 처음으로 정말 질투 다운 질투, 눈에 보이는 질투를 한 날이었다. 실실 웃으며 걷자 어느새 내 집 앞에 도착했다. 아까 민윤기를 놀린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잡고 있던 손을 아쉽게 놓은 민윤기는 그후에도 바로 뒤돌아 걸어가지 않았다. 뭐 하고 싶은게 있는 것 같은데 민윤기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결국 갈 곳을 잃어버린 민윤기의 손은 애꿎은 내 머리만 흐트려 놓았다. 잘 자라는 인사와 함께 민윤기는 결국 뒤돌아섰다. 멍청이. 뭐하려는지 나도 다 아는데. 진짜 민윤기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멍청이다. " 민윤기! " 결국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멈춰세운 것은 나였다. 조금 높게 뱉어진 내 목소리로 인해 민윤기가 걸음을 멈춰 뒤돌아섰고 그를 향해 나는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걸어오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던 민윤기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민윤기의 두 볼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민윤기가 굳어버렸다는 것이 너무나도 잘 느껴졌다. 미동없이 꼼짝도 않는 민윤기때문에 살짝 뻘쭘해진 나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그러자 곧바로 마주한 민윤기의 두 눈에 얼굴에 열이 확 오르자 민윤기에게 잘 자라고 한 후 다급하게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유 덥다. 화끈거리는 두 볼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고 확 돌렸다.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인줄 알고 정말 깜짝 놀란 나는 그 얼굴의 주인공이 민윤기라는 사실을 깨닫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민윤기에게 투정아닌 투정을 부렸다. " 아 진짜, 깜짝 놀랬잖, " 하지만 그 투정은 민윤기에 의해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윤기에 입에 의해서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두 볼을 붙잡은 민윤기는 그대로 내게 입을 맞췄다. 정말 깜짝 놀란 나는 아까 민윤기처럼 꼼짝없이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민윤기는 두 볼을 잡고 있던 손으로 내 허리를 감았고 나도 살며시 눈을 감은 채 두 팔로 민윤기를 붙잡았다. 꽤 깊은 키스였다. 그리고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랜만의 키스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냥 이 키스를 첫키스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민윤기와 다시 연애를 시작한 후의 첫키스였으므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났어도 내 마음은 고등학교 때 눈 오던 날 밤에 했던 그 첫키스의 감정 그대로였다. 그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커버린 우리였지만 그날 밤 민윤기와 함께 나눴던 첫키스의 감정만큼이나 떨리고 순수하고 설레던 키스였다. " 같이 자전거 타러 가자, 응? " " 그냥 동네에서 타면 되지. 왜 굳이 공원까지 가서 타야해. " " 커플자전거 타고 싶다구. 어? 동네에서는 못 타잖아. " " 커플자전거 그거 그냥 자전거랑 다 똑같아. " 내 애원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기는커녕 꿈쩍도 않는 민윤기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 오늘 자전거 같이 타러 가주면 내가 일주일동안 김태형 안 만날게. " " ...어? " " 아니 2주동안! 김태형 안 볼게! " 한번 본인이 질투 했다는 것을 인정한 민윤기는 그 후로도 김태형에 대한 질투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김태형이 아직도 내게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투덜대며 김태형과 내가 친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우리 둘이 만나는 것을 더욱이 싫어했기에 나는 교묘하게 그 점을 이용했다. 태형아, 미안. 오늘만 너 좀 이용할게. 요지부동으로 꼿꼿하게 나를 외면하던 민윤기의 눈빛이 흔들렸고 고개가 살며시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 ...진짜 안 만날거야? " 작전성공. 목적을 달성한 나는 민윤기를 이끌고 공원으로 향했다. 일사천리로 자전거까지 빌린 나는 먼저 뒷자리에 앉아 민윤기를 독촉했다. 끝까지 머뭇거리던 민윤기는 결국 내 독촉을 이기지 못하고 앞자리에 앉았다. 민윤기는 겉보기에는 말랐지만 체력은 튼튼한 편이었다. 처음에는 힘들다며 역시 오는게 아니었다고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나를 태우고 공원을 제법 쉽게 돌았다. 처음에는 자전거가 잘 달리지 않을까봐 열심히 밟다가 생각보다 민윤기가 잘하길래 슬쩍 발을 놓았다. " 씁- " " ...뭐. " " 똑바로 안하지. " 그렇지만 발을 떼자마자 귀신같이 그건 어떻게 알았는지 정곡을 찔러오는 민윤기 때문에 다시 발을 올리고 페달을 밟아야했다. 그저 바람을 느끼며 공원을 돌아다니는게 다였지만 민윤기를 보며 민윤기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 만족하며 감사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민윤기와 함께 있는 그 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친구까지 이용하고서 얼마만에 하게된 소중한 데이트였지만 정말 불행하게도 하늘에서 무심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내리는 비를 보니 쉽사리 그칠 소나기가 아닌듯 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자전서를 서둘러 반납하고 우산을 사기 위해 빠르게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 아니, 두 개 사자니까? " " 뭐하러 그래. 같이 쓰면 되지." " 작을텐데... " " 하나만 사도 돼. 너가 워낙 쪼그매서 괜찮아. " 우산을 두 개 사서 하나씩 쓰자는 내 제안에도 불구하고 민윤기는 꿋꿋이 우산을 하나만 샀다. 그리고는 자신있게 그 우산을 펼쳤다. 우산을 향했던 우리의 시선이 다시금 허공에서 마주쳤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노려보는 내 시선에 민윤기가 머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 ...작긴 좀 작네. " 아담한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우산은 제 구실을 톡톡히 하는듯 했다. 다행히도 내리는 비에 비하면 생각보다 난 많이 젖지 않아서 안심했다. 집 앞에 도착하여 우산에서 빠져나왔을 때 내가 본 것은 한 쪽 어깨가 온통 흠뻑 젖어있는 민윤기였다 " 뭐야. 너 왜 이렇게 젖었어? " 정말 순수하게 물었다가 아직까지도 세차게 쏟아져 내리는 비와 작은 우산, 그리고 하나도 젖지 않고 너무나도 멀쩡한 나를 연관시키니 스스로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못 살아, 내가. " " 괜찮아. " " 뭐가 괜찮아. 이러다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 " ... " " 속상하게 진짜... " 어깨뿐만 아니라 대체적으로 몸의 많은 부분이 젖어있는 민윤기를 바라보니 속상함에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그런 내 얼굴을 보자 민윤기는 정말 괜찮다며 나를 토닥여주었다. 이럴 때보면 민윤기는 나보다도 참 많이 미련했다. " 가서 먼저 따뜻한 물로 씻어. 안 그러면 감기 걸려. " " 응. 알았어. " " 꼭이야. 귀찮다고 대충 말리지 말고. " " 알았어. " " 너 씻고 나오면 밥 먹자. 내가 뭐라도 사서 갈게. " 민윤기에게는 따뜻하고 맛있는 밥이라도 사갈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내가 고민끝에 주문한 것은 치킨과 맥주, 즉 치맥이었다. 그래, 우리한테는 이게 어울려. 혼자만의 합리화였다. 전에도 민윤기네 집에서 자주 먹었기에 머리를 말리고 나온 민윤기도 아무렇지 않게 거실에 놓은 테이블 옆에 털썩하고 앉았다. 맛있는 치킨에게다가 시원한 맥주까지 꿀꺽꿀꺽 오늘따라 맥주를 마시는데 거침이 없었다. 결국 민윤기의 냉장고 속에 있는 맥주까지 꺼내어 마시기 시작했다. 빈 맥주캔들이 한캔두캔 점점 줄을 지었고 쉬지 않고 맥주를 마시던 민윤기는 기분이 좋았는지 맥주만으로도 주량을 넘긴 듯 했다. " 어? 네가 친구라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아? 내가 그 날 집에서! 펑펑! 울었다고! " " ... " " 친구는 무슨 친구야! 넌 친구랑 그렇게 손도 잡고 그러냐? " " ... " " 하긴 우리 하는 것보면 친구나 다름 없지 뭐. " 물론 취한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인데도 부담없이 쭉쭉 들어가던 술은 결국에는 날 취하게 만들었다. 둘다 잔뜩 취한 상황에서 지나간 이야기를 온통 털어놓는 나만의 취중진담이 이어졌다. 물론 내가 칭얼대고 나보다 더 많이 취한 민윤기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엉엉거리며 내 속내를 털어놓던 나는 어느새 민윤기에게로 성큼성큼 몸을 움직였다. 어느새 그 코앞까지 다가가 힘이 없어 축 늘어진 민윤기의 두 손을 붙잡았다. " 손도 잡고, " 나는 민윤기를 안았다. " 껴안기도 하고, " 그리고 민윤기에게 짧은 뽀뽀를 했다. " 이렇게 뽀뽀도 하는데, " " ... " " 다음은... " 다음 말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내뱉을 수는 없었다. 지금 아무리 내가 취했다고 한들 그래도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머뭇거리는 시선으로 입을 꾹 다문채 민윤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취해서 그런지 조금 풀린 눈으로 잠자코 나를 쳐다보고 있는 민윤기에게 됐다며 이마로 박치기를 선물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니. 취한 사람한테 무슨 얘기를 해. 한숨을 내쉬며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민윤기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았다. 꽤나 강한 힘이었기에 아팠던 나는 곧바로 민윤기 쪽으로 몸을 돌렸고 그 다음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내 손목을 당긴 민윤기는 그대로 내게 입을 맞추었다. 닿아오는 민윤기의 체온이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고 행동은 거침이 없었고 당돌했다. 잡힌 손목이 아팠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민윤기는 이전과 다르게 깊게 입을 맞추었고 그 때문에 나역시 조금씩 숨이 차왔다.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간단하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민윤기도 나도 취했기에 서로 이성을 잃었고 멈추지 않는다면 그 다음은 뻔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이성보다 본능이 더 앞섰다는 표현이 맞겠다. 나는 그저 민윤기에게 맡긴채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다 순간 민윤기가 멈추었다. 갑작스러운 멈춰짐에 이상함을 느낀 내가 살며시 눈을 떴을 때 본 광경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는 민윤기였다. 민윤기는 쾅소리를 내며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아니 기절하듯이 쓰러졌다고 해야하나. 당황한 내가 민윤기를 흔들어깨웠을 때, 들려온 것은 민윤기가 잠들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색색거리는 숨소리였다. " 허- "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뭐 이런 상황이 있어. 세상에 어떤 남자가 키스를 하다말고 술기운에 기절하듯이 골아떨어지냐는 말이다. 남은 맥주를 한번에 들이키고 민윤기를 방으로 옮기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 술이 쎄기는 무슨. 겨우 맥주 몇 캔에 나가떨어지면서. " 뭐, 겨우 몇 캔은 아니었다. 테이블에 즐비하게 나열된 빈 캔의 대다수가 민윤기의 것이었다. 그냥 내가 서운해서 투덜거린 말이었다. " 으씨, 더럽게 무겁네. " 술에 취해 축 늘어진 민윤기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민윤기를 깨우기 위해 민윤기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 민윤기. " " ... " " 윤기야, 일어나봐. " " 으... " " 응? 윤기야. 들어가서 자. 일어, 악! " 토닥거리며 민윤기를 깨우던 내 말은 비명으로 끝이 났다. 민윤기가 갑자기 나를 잡아당겨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민윤기의 팔을 베고 누워 그 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 " 야! " " ...자자. " " ... " " 자장... 자장... " 민윤기는 내 등을 토닥이며 혀가 다 풀린 발음으로 자장가를 불렀다. 벗어나려고 몇 번을 더 발버둥치다가 그냥 체념하고 포기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잠이나 자자하는 마음에 살며시 눈을 감고 민윤기의 자장가를 들었다. 새삼 느끼지만 민윤기는 노래를 진짜 못 부른다. 어쩜 취해서 부르는 자장가마저 삑사리가 나는지. 과연 이 노래를 들으면서 잘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었다. 웃기긴 참 웃긴데도 취해서 그런건지 잠은 곧바로 밀려왔다. 나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상황은 웃기지만 또 설레긴 죽도록 설레는 잠을 청했다. 평소처럼 몸을 뒤척이려다가 느껴지는 불편함에 눈을 떴다. 내가 어디서 잠이 들었는지 그새 잊어버린 나는 내 앞에 모습에 정말 기절할뻔 했다.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민윤기가 두 눈을 감은채 잠자고 있었다. 게다가 두 팔로는 나를 꽉 안고 있었다. 어제 이 상태로 잠들긴 했지만 아침까지도 그대로 이러고 있을 줄이야. 고개를 살짝 돌려 시계를 보니 8시를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음, 아직은 더 자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내 앞의 민윤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민윤기는 새근새근한 숨소리까지 내며 누가 업어가도 모를듯이 자고 있었다. 그 때 간호한 후로 민윤기가 이렇게 차분하게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어차피 이미 깨버린 잠이었기에 나는 흥미롭게 민윤기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예전부터 부러워하던 속눈썹, 피부 그리고 콧대까지. 꼼짝없이 안겨 있는 상태라 차마 손을 뻗어 만지지는 못하고 그저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누구 남친인지 참 잘생겼네.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작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입가에 가득 미소를 띄우고 민윤기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눈을 뜬 민윤기와 허공에서 두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내 두 눈은 커지고 민윤기는 느리게 눈을 두어번 감았다가 떴다. 내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민윤기가 입을 떼었다. " 사람 자는데 왜 이렇게 쳐다봐. " " ... " " 아무리 잘생겨도 그렇지. " " ...허. " " 설레서 잠을 못 자겠네. " 절로 터져나오는 헛웃음 뒤에 반박의 말이라도 하려던 나는 민윤기의 뒷말에 의해 그대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해지는 나를 보며 씨익 웃은 민윤기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내 두 눈을 감기게 했다. 그리고는 나를 다시 품에 안은채 등을 토닥였다. " 몇 시야? " " 8시 좀 넘었어. " " 그러면 조금만 더 자자. 나 아직 졸려. " " 밥 먹어야하는데... 해장국 끓여야지. " " 이따가, 이따가 내가 할게. " 결국 나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 민윤기의 품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더는 오지 않을 것 같던 잠이었지만 민윤기랑 안고 있어서 그런가 포근한 느낌이 들어 나는 금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지속적으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자연스럽게 잠에서 깨었다. 옆이 허전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옆에 민윤기가 없었다. 어디 갔지? 게다가 바닥에서 자고 있던 내가 침대에서 눈을 뜬 것도 의아해 머리를 긁적이며 방에서 나왔다. " 어? " " 일어났어? " 달그락거리던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민윤기였다. 아까 자기가 아침을 하겠다고한게 그냥 한소리인줄 알았는데 나름 그 말을 지키겠다고 요리를 하고있는 모양이었다. 거창한 요리라도 하는 듯이 주방은 유난히 정신이 없어보였다. 물론 나도 딱히 요리를 잘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민윤기에게 뭐라할 처지는 못 되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민윤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근데 뭐하는 거야? "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물었다. 그러자 민윤기는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 콩나물국. 해장해야지. 속쓰려 죽겠어. " " 그 때 니가 끓여준거? " " 응 ."
" 와, 그거 진짜 맛있었는데. 해장하는데 딱이더라. " " 그치." " 응응. 그런거 끓이는건 또 어디서 배웠어? 나도 잘 못 끓이는데... " 내가 조금은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민윤기는 냄비를 올리고 가스불을 킨 후 나를 향해 돌아섰다. 싱크대를 잡고 선 민윤기의 모습이 생각보다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의외였다. " 인터넷에서 배웠지. " " 오. " " 넌 요리는 영 아니니까 내가 해야지 뭐. " " ... " " 둘 중에 한명이 할 줄 알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겠지? " 아, 심쿵. 민윤기는 나를 보며 웃은 후 다시 뒤돌아섰다. 그래, 내가 저 미소에 잼처럼 발려버린다. 민윤기의 말에 심장이 쿵하는 느낌을 받은 나는 입가에 퍼지는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책상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그리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 민윤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터인지 추측도 못하고 얼마만큼인지 짐작도 못한다.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도 미친듯이 설레게 될만큼 민윤기가 좋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녹아내릴 것처럼 민윤기가 좋아졌다. 투정도, 귀찮음도 다 이해가 될만큼 민윤기가 좋아져버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민윤기를 만나면서도 못 해봤던 생각이었다. 새삼 나는 민윤기가 내 남자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하 저 요새 진짜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ㅠㅠㅠㅠㅠ왜 이리도 시간이 안 나는지ㅠㅠㅠㅠ(찡찡)
그래도 오늘 올려야할거 같아서 부리나케 달려왔어요!!
이번 글도 재미있게 보셨나요?! 나름 설렘설렘한 내용 쓰느라 상당히 고생했다는건 안 비밀...ㅎ
아 그리고 어쩌면 저만 슬플지도 모르는(?) 소식 하나가 있어요
9년째 연애중을 20화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지을까해요 길고 길었던 삽질 끝에 시작한 연애지만 처음 구성할 때 이렇게 구성했던 글이라.. 어쩔수가 없네요ㅠㅠㅠ
길고 긴 얘기는 다음에 할게요! 지금은 그저 마지막 이야기까지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늘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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