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아는 오빠가 하나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고 고2가 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다. 1학년 2학기 때쯤이었나 우리 집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이사를 가서 나는 전학을 가야했다. 아는 친구도 하나 없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죽어라 떼를 썼지만 이사 간 집에서 원래 다니던 학교까지 다니기에는 절대적으로 무리가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 학교를 가는 첫 날 집을 나선 나는 엘레베이터 앞에 쪼그려 앉아 울었다. 그것도 엄청 펑펑. 혹시 왕따가 되면 어쩌나하는 불안함과 친구들이 보고싶은 그리움으로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데 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고 나와 같은 교복을 입은 남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올려다보자 남자애는 내 앞에 나처럼 쪼그려앉았다. "왜 울어 꼬맹아." "..." "지금 여기서 울고 있으면 어떡해." "..." "우리 안 뛰면 지각인데." "..." "학교 가자." 남자애가 웃으며 말하고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놀란 내가 그제야 울음을 그치자 남자애는 내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나를 이끌어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나는 버튼을 누르는 남자애를 힐끗 쳐다보았고 그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서 민윤기라는 세 글자를 보았다. "몇 학년이야?" "..1학년." "아 그래? 내가 오빠네. 난 2학년이야. 2학년 4반 민윤기." "..ㅇㅇㅇ이에요." "몇 호 살아? 나 1502호 사는데 왜 한번도 못 봤지?" "얼마전에 이사왔어요, 1501호에." 그렇구나 중얼거리며 민윤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 이상하게도 민윤기가 오빠였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민윤기라고 부르는게 더 편했고 편하다. "앞으로 물어볼 거 있거나 도움 필요하면 말해.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네." "아 그리고 존댓말 안해도 돼. 앞으로 자주 볼 거 같은데 불편하잖아. 그냥 말 놓고 오빠라고만 해." "네." "씁-" "..응." 민윤기가 아마 그 때 내 머리를 쓰다듬은 것 같다. 엄청 자상하고 다정보스인 손길로 말이다. 그 때 처음으로 누군가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순수했던 내 첫사랑의 감정을 그 때부터 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정하고 설렜던 그 손길과 눈빛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민윤기 덕분에 나는 학교에도 잘 적응했다. 등교 할 때는 날 기다려서 꼭 같이 가줬으며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새로 다니는 학원이 늦게 끝나면 날 데리러 오기도 했다. 진짜 내 친오빠인 것처럼 그렇게 민윤기는 다정했고 나는 그런 민윤기가 좋았다. 그 후에도 쭉 나에게 늘 다정하고 포근하고 자상한 오빠일줄로만 알았던 민윤기는 내 예상과는 어느새부터 다르게 변했다. 좋게 말하면 츤데레 나쁘게 말하자면 싸가지로 말이다. 남들이 미쳐 날뛴다는 그런 무서운 중2의 시절도 무난하게 넘긴 민윤기는 어찌된 일인지 그 시절을 중학교 마지막 무렵에 겪었다. 다정한 손길? 따뜻한 눈빛? 그런건 개뿔,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가 편해진 것인지 민윤기는 나를 놀렸고 괴롭혔고 부려먹었다. 민윤기가 나를 정말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나도 좋았다. 그치만 장난이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변한 민윤기는 그당시 순수했던 나에게 꽤 큰 충격이었다. 다정했던 윤기오빠는 사라지고 언젠가부터 민윤기새끼가 되어버린 민윤기가 낯설었다. 그래도 나는 민윤기를 좋아했다. 지금은 비록 민윤기새끼지만 언젠가는 다시 예전 그 때의 다정열매를 먹은 윤기오빠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거지같은 장난 속에서도 가끔씩 던지는 츤데레스러운 민윤기의 행동 때문에. 그렇게 내 첫사랑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조금씩 더 타올랐다. 민윤기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학교마저 달라져서 그 얼굴을 보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소리는 내게 개소리였다. 못보니까 오히려 더 보고싶고 그리워졌다. 야자를 끝낸 민윤기가 돌아올 때까지 집 앞에서 기다린 적도 많았다. 그런 나를 본 민윤기는 "아직도 안 자냐. 그니까 키가 그 모양이지 꼬맹아." 라고 핀잔을 주며 내게 꿀밤을 먹였다. 평소같았으면 지는 얼마나 크다고 그러냐 바락바락 우겼겠지만 그런 잔소리마저 달콤한 말로 들리던 그 순간부터 내 짝사랑의 심해졌다는 것을 격하게 느꼈다. 나는 민윤기와 같은 학교를 가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왜 또 공부는 잘해서 이렇게 높은 고등학교에 간 것인지. 내가 10시까지 민윤기를 기다리고 만난 후에 집에서 얼마나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야했는지 민윤기는 모를 것이다. 만약 그런 내 노력을 알고 있었다면 민윤기는 나에게 그러면 안되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나는 민윤기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사실을 들은 민윤기는 깜짝 놀랬다. "우리 꼬맹이 공부 열심히 했네?" 그 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민윤기가 내 머리를 쓰다듬은 이후로, 그 후에 변하고 나서 다시 장하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그 날 하루종일 좋아서 혼자 이불 속에서 얼마나 실없는 웃음을 지었는지, 중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빨리 고등학교 교복 사러 가자며 엄마에게 얼마나 졸랐는지 민윤기는 아마 모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민윤기가 만약 알고 있었다면 민윤기는 절대 내게 그러면 안됐다. 민윤기와 같은 학교에 간 내 로망은 야자가 끝나고 민윤기와 함께 집으로 걸어오는 일이었다. 단 둘이 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서 내려 같은 아파트, 같은 층까지 걸어오는 일. 참 낭만적이라고 생각했고 입학하고 한동안 그 낭만적인 내 로망은 이루어졌다. 같이 걸어올 때마다 나는 이게 꿈인가 싶었다. 그정도로 황홀하고 좋았다는 말이다. 사람 마음이라는게 참 간사해서 처음에는 그냥 같이 걷기만 해도 좋았는데 자꾸 많은 것을 바라게 되었다. 민윤기새끼에게 어떻게 감히 그런 것을 바랄 수 있나 싶으면서도 민윤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걸었으면, 그와 팔짱을 끼고 걸었으면, 민윤기와 손을 잡고 걸었으면... 하는 마음들은 계속 커지고 커져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커져간 그 마음들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윤기가 어느새부턴가 야자가 끝나고도 늘 만나던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문자로 '미안, 먼저 가.' 그게 끝이었다. 처음에는 한두번이던 일들이 자꾸만 주기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왠지 모를 내 불안함도 자꾸만 늘어났다. 그리고 내 불안함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이 곧 밝혀졌다. 어김없이 나타나지 않는 민윤기에 결국 먼저 집으로 왔고 오늘은 반드시 자꾸 나타나지 않는 그 이유를 물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근처 의자에 앉아서 민윤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민윤기의 모습이 내 시야에 나타났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그를 향해 걸어갔고 민윤기와 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들려오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응. 나 방금 집에 다 왔어." "..." "진짜라니까. 너네 집이랑 우리 집이랑 그렇게 안 멀어. 너 데려다줘도 집가는데 안 늦어." "..."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건데 뭐." "..." "응, 나도 보고싶어. 잘자고 내일봐." 민윤기를 부르려는 목소리도, 그를 향해 뻗어있던 내 손도 다 숨어버린지 오래였다. 민윤기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내 불안함이 말해줬기에 나는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민윤기는 나를 보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자상한 민윤기로 돌아왔지만 그 상대는 내가 아니였다. 민윤기새끼에서 다시 달달한 설탕 민윤기로 돌아왔지만 그 이유는 내가 아니었다. 민윤기에게 여친이 생겨서, 이제는 민윤기가 더이상 나와 같이 걷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서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예전과 같이 나는 펑펑 울고 있는데 그 때의 그 민윤기는 없었다. 나를 달래주며 꼬맹아라고 부르던 자상한 민윤기는 없었다. 그 때의 민윤기가 그리워서, 그 때의 자상함이 그리워서 그리고 이제는 그런 민윤기의 자상함이 나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아서 나는 그 날밤 더 한참을 울었었다. 나는, 내 첫사랑은 상처받았다. 민윤기가 너무한다고 생각이 들어 그가 자꾸 미워져만 갔다. 이게 초라한 짝사랑의 결말이라고 생각했고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민윤기를 잊고 싶었다. 그냥 첫사랑이었던 사람으로 묻어두고 앞으로는 민윤기를 정말 아는 오빠로만 그렇게 대하고 싶었다. 그래도 그 상대가 누굴까라는 생각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민윤기에게 직접 물어보기는 또 자존심이 상해서 그의 뒤를 몰래 밟아 여자친구를 보았다. 정말 속상하고 짜증나게도 민윤기의 여자친구는 예뻤다. 심지어는 몸매까지도 좋았다. 그랬기에 민윤기를 뺏겼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내 열등감은 더 커졌다. 그런데 세상의 설탕이라는 설탕을, 꿀이라는 꿀을 다 먹은 것처럼 하던 민윤기의 연애는 얼마 못 가서 끝이 났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민윤기는 "몰라. 하나도 안 떨리고 안 설레. 요즘 계속 기분 좋은게 걔때문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 라며 깔끔하게 이별했다. 나는 잊었다고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는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기쁨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민윤기를 잊었다고 더 이상 민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여자친구까지 사귄 놈을, 나를 여자로 보지도 않는 그런 놈을 아직까지도 좋아한다고 인정하기 싫었다. 내가 인정한 것은 단지 딱 하나. 이제 윤기오빠는 없고 민윤기새끼만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런 내 자존심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민윤기에게 처음 상처 받았던 작년 여름부터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니라고 부정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난 민윤기와 그저 친한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낼 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었다. 지금처럼 그렇게 편하고 같이 있으면 투닥거리지만 또 서로를 챙겨줄 수 있는 그런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부정을 하는데도 자꾸만 커지는 이 마음은 나를, 민윤기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민윤기를 그냥 오빠가 아닌 남자로 보는 내 시선이, 민윤기에게 느끼는 편함이 아닌 설렘이 우리 사이를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관계가 위태롭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고 또 외면했지만 나는 아직도 민윤기를 좋아한다. 그냥 아는 오빠로도, 내 첫사랑으로도 그리고 바라만 봐도 설레는 남자로도 민윤기가 좋았다. 하지만 난 자신이 없었다. 나처럼 민윤기도 나는 보면 설레고 기분이 좋을지, 나를 여자로 볼지 나는 아무런 자신도 확신도 없었다. 내 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나와 민윤기 사이의 모든 것을 잃게될까봐 나는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더 꽁꽁 내 마음을 감춰야만 했다. 그런데 이 새끼는 내가 감추고만 있으니까 진짜 내 마음을 1도 모르는 것 같다. 꽁꽁 감추려고만 했던 마음이지만 정말 몰라주니까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서운함이 더 커졌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꾸 민윤기에게 티를 내고 싶었다. 평화롭게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쓰레기 좀 버리고 오라는 엄마의 잔소리 때문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귀찮음에 툴툴거리며 집을 나섰고 엘레베이터를 타기 위해 그 앞에 섰다. "꼬맹아, 어디가?"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바라보니 민윤기가 어딜 나가는 모양인지 옷을 차려입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윽, 취향저격 당했다. 진짜 민윤기는 맨날 내가 설레하는 스타일로 옷을 입어서 내 마음에 더 불을 지핀다. 그나저나 어딜 가길래 저렇게 차려입은건지. 설마 여자 만나러? 아니면 소개팅이라도 하는건 아니겠지? "보면 몰라? 쓰레기 버리러가잖아." 별별 생각으로 예민해졌기에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민윤기는 개의치 않는지 슬쩍 웃으며 걸어와 내 옆에 섰다. "우리 꼬맹이 착하네. 엄마 심부름도 다 하고." "너는 어디가는데." "오빠는." "..오빠는." "이 오빠는 약속이 있다." 설마 내 거지같은 예상이 맞는 건가? 내 촉, 이 개같은 놈은 이럴 때만 쓸데없이 예리하다니까. "..무슨 약속?" "꼬맹이는 몰라도 돼." "고3이 공부는 안하고. 지금 성적 잘 나온다고 이렇게 놀다가 폭삭 망한다." "응응." "머리도 안 쓰다보면 굳는다고 이게. 더 멍청해질 수도 있다니까? 오빠 이러는거 아줌마도 아셔?" "아유, 우리 꼬맹이 잔소리 또 시작이네." "..." "알았어알았어. 오늘만 놀고 내일부터 빡세게 공부할게. 그니까 오빠 한번만 봐줘라 꼬맹아." 민윤기의 말을 그냥 듣고 있었는데 자꾸 말들이 계속 거슬렸다. 처음에는 뭐가 문제지했는데 차분히 생각해보니 민윤기의 모든 말마다 붙는 그 꼬맹이라는 호칭이 거슬렸다. 민윤기의 마지막 말까지 붙은 그 호칭에 나는 결국 열이 뻗쳤다. "야, 민윤기." "뭐? 야 민윤기? ㅇㅇㅇ, 오빠는 어디다가 팔아먹었어." "몰라 됐고, 오빠 너 왜 자꾸 나한테 꼬맹이 거리는데?" "..어?" "왜 나한테 하는 말마다 꼬맹이꼬맹이 거리냐고." 민윤기가 넋이 나갔다. 아무래도 내 말에 심히 놀란 듯 싶었다. 하긴 나도 내가 내뱉은 말이 놀라웠다. 그런 말할 용기가 대체 어디서 났는지... 그래도 이미 뱉은 말이었기에 다시 주워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오빠한테는 내가 아직도 그 때 중1 꼬맹이야? 그냥 그래? 고작 한 살 차이면서 난 아직도 너한테 동생 그것 뿐이야?" "..." "너랑 내가 알고 지낸지가 벌써 몇년인데 왜 난 아직도 그 때 꼬맹이냐고!" 결국 폭팔하듯이 내뱉은 내 말을 끝으로 민윤기와 내 사이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민윤기는 당황한 듯 멍해있었고 나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면 내 말을 들은 민윤기가 무슨 반응이라도 취할 줄 알았다. 직접적인 고백은 아니었어도 알아들을 말이었다. 그런데 민윤기는 나보다 더 조용했고 오고가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데 엘레베이터가 올 때까지 민윤기는 내게 말 한번 건네지 않았고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런 민윤기 때문에 속상해진 나는 열린 엘레베이터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내가 그래도 역시 민윤기는 내게 옆모습만을 보여준 채로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진짜 나쁜새끼네 저거. 그런 민윤기 때문에 나는 화가 났다. 요지부동 않는 그 모습이 꼴보기 싫어 엘레베이터에 닫힘 버튼을 눌렀다. 이내 천천히 문이 닫히고 민윤기의 모습이 사라질 때쯤 내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민윤기가 이 모습을 못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오려는 눈물을 막기 위해 고개를 드는 순간, 거의 다 닫혔던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당황해 그대로 고개를 내렸고 두 눈에 눈물이 고인채로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니 말대로 내가 요즘 머리를 안 써서 멍청해졌는지." "..." "니가 방금 한 말이 잘 이해가 안되거든?" "..."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드는 생각은 하나인데 이게 아니면 생각이 안되거든 내가." "..." "근데 내 생각이 이게 진짜 맞는건지, 이걸 너한테 물어봐도 되는건지, 이러다 너 불편해지면 어쩌지싶고." "..." "이게 말이 되는건가, 내가 이렇게 생각해도 되나, 설마 지금 꿈인건가 아니면 내가 진짜 미친건가 싶은데." 민윤기는 그 말을 끝으로 다음 말까지 한참이나 망설였다. 한숨도 내뱉고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한 손으로는 버튼을 누르고 있는 그 손을 절대 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엘레베이터 안에, 민윤기는 엘레베이터 밖에 대치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도 드는 생각은 하나라서." "..." "ㅇㅇㅇ." "..." "너 나 좋아해?" 민윤기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이 갈 곳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사실대로 말해야하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부정하고 외면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 말이 긍정이던 부정이던 우리의 사이가 어색해지는 그런 미래가 자꾸 눈 앞에 그려져서 나는 그저 참을걸, 꼬맹이인지 뭐든간에 꾹 참을걸하는 후회만 되뇌이고 있었다. "..아니." "..." "아니..야..." 결국 나는 부정의 답, 거짓말을 택했다. 그래도 거절당하고 차여서 민윤기와 어색해지는 것보다 순간 둘 다 정신이 나가서 이상해졌다고 상황을 무마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내 대답이 끝나자 민윤기의 두 눈이 더 거세게 흔들렸고 팔에서 힘이 빠지는지 스르르 버튼을 누르고 있던 손을 떼었다. 이내 민윤기는 아래로 고개를 숙였다. 곧이어 엘레베이터 문이 닫히고 마지막에 그 문이 닫히는 작은 틈새로 갑자기 고개를 들은 민윤기와 눈이 마주치자 결국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서럽게 울다보니 어느새 1층에 도착해있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눈물을 닦고 엘레베이터 밖으로 걸음을 떼었다. 쓰레기장에 도착하니 버려진 쓰레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 나역시 들고 있던 쓰레기 봉투를 놓으며 생각했다. 내 짝사랑도 이렇게 한번에 버려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쓰레기를 버리고 뒤돌아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방향은 나였고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자 나는 그 사람이 민윤기라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뭘 한건지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난 민윤기는 내 앞에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골랐다. 나는 그 모습을 그냥 잠자코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후 민윤기가 이제 정상적인 호흡을 되찾았는지 말을 꺼내었다. "ㅇㅇㅇ 너." "..." "나 진짜 안 좋아해? 진짜?" "..응." "정말 안 좋아해? 나 너한테 그냥 오빠 말고 남자 아니야?" "..아니라니까." 개미만한 내 목소리가 이어지자 민윤기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야 넌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티나게 하냐?" "..." "하려면 좀 잘하던가. 너 거짓말 할 때마다 다리 떠는거 내가 다 아는데."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내 다리를 쳐다보았다. 정말 내 다리가 주체 할 수 없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씨- 이제 난 망했다.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고 곧바로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민윤기의 두 눈이 달랐다. 장난스럽고 짓궂응 지금까지의 그런 눈빛이 아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다정함이 묻어나오는 그런 눈빛이었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당황해하고 있는데 민윤기가 입을 열었다. "니가 왜 그냥 꼬맹이야. 내 꼬맹이지." "..." "내가 왜 널 꼬맹아, 우리 꼬맹이 부르겠어." "..." "니가 귀여워서 그러는거 아니야." "..." "내가 왜 니가 귀여워죽겠고 보고 있으면 자꾸 웃음이 나겠어." "..." "좋아서. 다 니가 좋아서 그러는건데. 진짜 어떻게 된 둔탱이가 그것도 모르냐." "..." "나 너 좋아해." 진짜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고싶지 않다. 앞으로 그냥 영원히 꿈 속에서 살아도 좋으니 깨고싶지 않다. 그런데 꿈이라기엔 너무 현실처럼 생생하긴한데 이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렇게 생각 할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었다. 무작정 흔들다가 강약 조절을 실패했고 어지러움이 밀려와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꽝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아, 개아프네. 아파..? 왜 아프지..? 이거.. 꿈 아닌가? "어유 칠칠아." 민윤기는 넘어진 내 앞에 쭈그려앉아 내게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뭐야? 이것도 아프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거 같은데 근데 이게 되게 아프다?" "뭐?" "요즘은 꿈도 아파?" "허- 미치겠다. 이거 꿈 아닌데." "어?" "이거 꿈 아니고 진짜. 현실이야." "..진짜?" "응." "그런데 니가, 아니 오빠가 날 왜 좋아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순수한 내 질문에 민윤기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왜 널 좋아하냐니. 너니까 좋아." "..." "솔직히 말하자면 너 좋아한지 좀 오래됐는데 이게 말할 용기가 안나더라. 니가 나 싫어하면 어떡하나해서. 내가 좀 못되게 굴었어야지." "..." "그러다가 너랑 어색해질까봐 걱정도 되고. 그래서 혼자 속앓이만 하고 있었는데 아까 니가 먼저 말 꺼내서 진짜 놀랐다." "..." "이게 내가 알고 있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는건가, 내가 혼자 착각하고 있는건 아닌가. 그래서 엄청 고민하다가 너한테 물어봤는데 니가 아니라고 하는거야." 쭈그려 앉아있던 민윤기는 결국 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그 덕분에 우리 둘은 쓰레기장 근처 바닥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그 때 진짜 심장이 내려앉더라. 이제 망했다. 너랑은 어색할데로 어색해지고 내 마음은 다 들킨 것 같고." "..." "그래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는데 니 다리가 막 떨리고 있는거야. 처음에는 추운가했는데 딱 그 생각이 들더라." "..." "우리 겁쟁이가 겁은 많아서 거짓말 할 때 다리 떨던거. 그 생각이 들면서 니 마음 확인한거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는데 닫히는 문 사이로 니가 우는게 보이는거야." "..." "니가 오해하는 건가 막 걱정하는 마음이 들어서 너 붙잡으려고 계단으로 막 뛰어왔어." "..15층을?" "응, 나 진짜 미쳤지. 엘레베이터보다 빨리 가보겠다고 막 뛰어 내려갔는데도 니가 없더라. 근데 쓰레기 버리러간다는거 생각나서 여기로 달려왔어." "..." "그러니까 니가 있네." 민윤기는 내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와 마주한 눈빛이 달달했다. 그래 이 눈빛이다. 내가 설레고 좋아하고 반했던 그 눈빛. 민윤기새끼에서 윤기오빠가 될 때의 그 눈빛. "미안해. 내가 너 울게 만든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고 너무 미안해." "..." "좋아해, ㅇㅇ아." "..." "니가 쪼끄만 꼬맹이던 눈치 없는 둔탱이던 넘어지고 다니는 칠칠이던 아니면 소심한 겁쟁이든지 다 좋아. 내가 널 뭐라고 불러도 넌 웃어주니까." "..." "앞으로도 내 꼬맹이로 있어줘." 말하는건 딱 나 놀릴 때 민윤기새끼인데 눈빛은 윤기오빠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상반된 이미지가 너무 잘 조화되어 나를 더 설레게했다. 아니 어쩌면 민윤기새끼는 사라지고 다정했던 윤기오빠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불쑥 민윤기에게 안겨버렸다. "나도 좋아." "..." "니가 자상하고 설레는 윤기오빠던 아니면 답없고 개같은 민윤기새끼던 다 좋아." "..." "너~무너무너무 좋아." 내 말이 끝나자 민윤기가 나를 꽉 안으며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민윤기 냄새가 나는걸 보니까 진짜 꿈은 아닌 것 같다. 세상에 내가 민윤기한테 안겨 있는 이런 날이 올 줄이야. 그렇게 행복에 젖어서 안겨있는데 내 귓가에 민윤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응?" "아까 한 말 그거 뭐야?" "어?" "답없고 개같은 민윤기새끼?" 민윤기는 나를 품에서 떼어내 얼굴을 마주 했다. 분명 웃고는 있는데 아까 그 달달한 웃음이 아니었다. 아, 민윤기새끼는 사라지지 않았다. 태꿍입니다:) 무슨 글인지 정체를 1도 알 수 없는 그런 글... 이번주도 글을 안 올리면 안 올린지 2주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독자분들 보고싶어서 올렸어요ㅎ 가끔은 이렇게 단편으로도 올릴까해요 제목은 그 때마다 다르겠지만 예전에 올린 타이밍의 중요성처럼 ㅇㅇ의 중요성 이런 식으로 할 거 같아요 나름의 시리즈..? 아무튼 이 글은 그냥 가볍게 봐주셨으면해요! 아 그리고 저 뜬금없지만 뭐 하나 해보고 싶은게 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태꿍의 최애차애 맞추기!(빠밤) 별건 아니고.. 친구들한테 물어봤는데 진짜 아무도 못 맞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추시면 저랑 데스티니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놀라울 만큼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항상 감사합니다!X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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