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연애중 번외 ( 부제 : 연애 말고 결혼 ) 오늘의 날짜 2020년 6월 17일. 민윤기가 내게 프로포즈 아닌 프로포즈를 한 후로 4년하고도 362일이 더 지났다. 즉 그 때 말했던 5년까지 이제 딱 3일 남았다는 소리다. 뭐가 그렇게 좋다고 실실거리며 달력에 대문만하게 써놓았던건지 난 참 살벌하고 칼 같게도 날짜를 세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칼 같은건 나뿐인건지 민윤기 이 새끼한테는 도무지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5년간의 우리 연애 얘기를 하자면 정말 그냥 그런 연애였다. 뜨겁진 않지만 또 차갑지도 않고 그저 미지근한 그런 연애. 그게 우리 연애의 방식이었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민윤기에게 내가 익숙하다는 사실이, 내게 민윤기가 익숙하다는 사실이 나는 싫지 않았다. 더이상 예전같이 혼자 오해하고 상처받지 않았기에 나는 그런 우리의 사이를 좋은 마음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나는 내 직업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 부모님도 참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라며 마음에 들어하셨다. 만족스러워하는 수많은 중 딱 한 사람, 민윤기만이 내 직업을 싫어했다. " 왜 하필 선생님이야. 선생님이 얼마나 바쁜데. " " 일 하면 다 바쁘지 뭐. " " 그래도 야자까지 하면 대체 몇시에 끝나는거야. 우리 만날 수나 있긴해? " " 초등학교 선생님은 야자도 안하고, 고등학교도 안 가네요. 그려러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 이유는 그랬다. 내가 바빠질까봐. 그래서 못 만날까봐. 참 간단하고도 단순한 이유였다. 나보다 졸업이 늦은 민윤기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내가 더 바빠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스펙 쌓으려고 여러 시험도 보고 자격증도 따려고 밤낮으로 바쁜 것은 민윤기도 마찬가지였다. 끼니도 거르고 잠도 잘 못 자면서 그렇게 노력하는게 뭔가 절실해보였기에 나는 민윤기가 우리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도 했고 그런 민윤기가 기특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던 민윤기는 원하던 건축회사에 취직했다. 한 회사의 막내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민윤기는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그 불같은 성격에 이건 정말로 못해먹겠다며 화를 내는 것을 말린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민윤기도 나도 각자 하게 된 잘 적응해서 살고있다. 꽤 오랫동안 적응 못 할 것 같던 민윤기는 생각보다 빨리 일에 적응했고 능력 있고 성실한데 싹싹하기까지한 그런 직원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물론 지 입으로 말한거라 다 믿기진 않는다. 뭐 워낙 재능이 있으니까 능력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특히 싹싹하다는 부분은 더더욱 의심스럽긴 했다. 그리고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던 나는 학교에서도 애들과 잘 소통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두번째까지 아기자기한 아가들보다는 덩치있고 성숙한 6학년만 두번 맡았던 나는 비로소 귀엽고 앙증맞은 1학년의 담임을 맞게 되었다. " 처음에는 귀엽고 좋지. 근데 조금만 지나봐라? 6학년 애들보다 더 까불고 정신없는 애들이 1학년이야. " " 그래그래. 나도 처음 1학년 할 때 진짜 힘들었지. " 다른 선생님들은 곧 6학년을 그리워하게 될거라며 절대 그동안 상상해왔던 귀여운 1학년이 아닐거라며 내게 충고를 했다. 그래도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아니 새학기가 되고 일주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짜 취소. 그런 생각은 정말로 취소해야한다.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1학년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들떠있는 상태였다. 그런 아이들을 진정도 시켜보고 차분히 해보려 노력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가끔은 울고 싸우고 막무가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 말썽꾸러기 애들을 미워할 수가 없는게 나를 보면서 웃을 때면 진짜 사랑스럽다. 아직 어린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을 볼 때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 선생님! " 그 중에서도 내가 참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 응응, 지훈아. 밥 맛있게 먹었어요? " " 네! 아 선생님, 이거 드세요! " 방긋 웃으며 내게 막대사탕을 건네는 아이. 민지훈이라는 아이다. 처음 만난 날부터 나를 보며 웃었던 아이. 내게 거리낌없이 달려와 안겼던 아이. 점심을 먹고 나면 늘 나에게 사탕을 건네주는 아이. " 우와 선생님 주는거야? 감사합니다- " " 네! " " 이제 가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아요! " 내 말에 지훈이는 꾸벅 인사를 하고 친구들에게로 총총 걸어갔다. 그리고 이 아이는 민윤기를 참 많이 닮았다. 하얗고 체형이 마른거부터 생긴거까지. 심지어는 성도 같다. 딱 하나 애교가 많은 것만 빼고 민윤기와 참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지훈이를 보며 이런 생각도 해봤다. 내가 민윤기랑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면 지훈이와 꼭 닮아있지 않을까. 신기하기도 하고 민윤기고 뭐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해서 지훈이 사진을 민윤기에게 보여줬다. 너랑 닮았지 않았냐고 물어오는 내 말에 민윤기는 ' 별로? ' 라며 무심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 내가 뭘 바라겠나. 아무래도 올해는 절대 아닐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을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민윤기는 아주 큰 돼지저금통을 채우는 것처럼 꽉꽉, 정말 10년을 꽉 채울 기세다. [ 잘나가는 변호사인데 너보다 한 살 많고 키도 크고 잘생겼대. ] " 엄마 제발. 소개팅은 무슨 소개팅이야. " [ 너 선생님이라니까 더 좋아하더라, 참하다고. 바로 약속 잡잔다. ] " 나 남자친구 있잖아. 엄마 윤기 싫어해? 아니잖아. 윤기한테도 잘 해주면서 왜 그래? " [ 윤기가 싫긴 왜 싫어. 몇 년째 보는데. ] " 그러면서 왜 그래. 왜 소개팅 하라는거야. " [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지금 너한테 더 조건 좋은 남자가 생길 수가 있는데 엄마가 욕심이 안나겠어? ] " ... " [ 게다가 너 평생 윤기 하나만 보고 살래?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봐야 남자를 제대로 알지. 도대체 윤기 하나로 몇년째니. ] " 아, 몰라. " [ ... ] " 민윤기가 좋은데 그럼 어떡해. 나 소개팅 안 나갈거야. 그러니까 약속같은거 잡지마. 알았지? " [ 으유, 너도 맨날 마음대로니까 나도 내 마음대로 하련다. ] 애매한 대답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진짜 엄마 때문에 미치겠다. 어디서인지 계속 소개팅 약속을 잡아와 내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한다. 요새 자꾸만 이제 좋은 남자 찾아서 결혼하라며 나를 달달 볶는데 진짜 미치겠다. 좋은 남자는 이미 찾은지 오래고, 나도 그 남자랑 결혼하고 싶은데, 그런데 상대방이 묵묵부답인데 내가 뭘 어찌하겠나. " 그래서 나가려고? " " 미쳤어? 내가 거길 왜 나가! " 결국 김태형을 불러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러나저러나 이런 얘기를 속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었는데 그 중에서 김태형은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윤기와 친하다는 것도 내가 지금 김태형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이유 중 하나였고. " 어머니가 나가라고 하셨다며. " " 몰라. 엄마가 민윤기랑 사귀는 거 모르는 것도 아니고.. 싫다고 분명히 했으니까 약속 안 잡겠지. " " 근데 민윤기 너랑 결혼은 하겠대? " " ...어? " " 거의 5년전인가? 그 때쯤 너한테 프로포즈 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말했었잖아. 그 후로 아직 묵묵부답인거지? " 입을 꾹 다물었다. 왠지 모르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김태형은 학교를 졸업하고 패션 쪽에서 일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쪽 분야에서 아주 잘 나간다고 한다. 연애도 안하고 자기 일에 열심히 빠져서 산지 꽤 되었다. 돈도 그저 월급쟁이인 나와 민윤기보다 훨씬 잘 번다. 그러다보니 언젠가 김태형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그러게 너 내가 고백했을 때 잡았어야지. 너 나같은 남자 놓친거 나중에 후회한다? " 사실 부러워는 해봤다. 나중에 누가 김태형과 만나서 행복하게 연애를 하고 찬란한 미래를 꾸려나갈지. 그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궁굼하기도 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후회는 안한다. 민윤기와 다시 만난 그 날부터 한번도 후회 한 적은 없다. 사람 발목을 꽉 묶어놓고 결혼하자는 말 한마디도 없는 나쁜놈이라고 욕은 했어도 후회는 안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김태형에게 내가 민윤기한테 쩔쩔 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난 너 아니어도 잘 살 수 있다. 이런 쓸데없는 자존심이랄까. 그런데 뭐... 그런 자존심은 엄마 전화를 받고 김태형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부터 이미 버려진지 오래였다. " 아니면 이 참에 소개팅을 나가서 민윤기를 자극해보는 건 어때? 막 질투하게. " " 에이- 걔가 그런 걸로 그럴 애냐. 겁나 무심하게 넘길걸. " " 야, 넌 민윤기를 몇 년을 보고도 모르냐. 겉으로는 진짜 티가 안나도 속으로는 엄청 많이 질투하는 놈이야. " " ...그런가? " " 그래! 그러니까 민윤기한테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되었다고, 진짜 잘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슬쩍 말해봐. " 솔깃했다. 어차피 안 나갈거였지만 말이라도 해볼까? 정말 질투라도 해서 날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고백이라도 하지 않을까? 게다가 민윤기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알 수 없는 흥분감을 선사해주었다. 뭐 그래서 난, 한번 김태형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하루를 마치고 민윤기와 나의 생활패턴은 거의 비슷했다. 밥을 먹고 티비를 보다가 잠이 드는 것. 한 사람 집에서 같이 자주 티비를 보았기에 자연스럽게 그 집에서 자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 날도 그랬다. 금요일 밤이었고 내일은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더 여유로웠고 천천히 밥을 먹고나서 나는 티비를 보고 민윤기는 내 무릎을 베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그 말을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무시무시한 도전이었다. " 윤기야. " " 왜? " 여유있게, 느릿하게 민윤기가 대답했다. 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거짓말이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 있잖아 나. " " 응. " " 그... 내일 소개팅 나갈거 같아. " 멈칫, 진짜 말 그대로 민윤기가 멈칫했다. 민윤기의 손이 멈추고 고개를 돌린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마주한 민윤기의 눈은 심하게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면 내가 변태일까? 민윤기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자 묘한 기분이 들며 거짓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 ...왜? 아니 갑자기 왜... 무슨 소개팅이야? " " 엄마가 나가래. 어디서 좋은 자리가 났다고 이번에 안 나가면 진짜 호적 파버리겠대. " " ... " " 잘나가는 변호사라고 이번에 진짜 꽉 잡으라고 난리야. " " ...그래서 나간, 다고? " " 나는 물론 안 나간다고 했지. 너도 있는데. 진짜 안 나가려고 했는데 요즘 우리 엄마가 많이 불안하신가봐. 나 시집도 못 갈까 걱정하셔. " 민윤기, 이번에는 좀 찔렸냐? 어디 한번 대놓고 찔리라고 한 말인데 좀 제대로 찔려줬으면 좋겠다. " 그래서 이번에는 나가보기는 해야할 것 같아. 엄마가 너무 걱정하시니까 나도 무작정 좀 버티기가 그래. " " ... " " 괜찮지? " 마주한 민윤기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천천히 두 눈을 두어번 감았다가 뜬 민윤기는 한숨을 내쉬며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걸어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을 마시고 쾅 소리가 나게 컵을 내려놓은 민윤기는 식탁에 앉아 내게 몸을 돌린채로 대답했다. " 알았어. " " ...어? " " 걱정하신다며. 그니까 알았다고. 너 소개팅, 나가는거 이해한다고. " " 아.. 응, 고... 고마워! " 왜 이런 반응인건지. 두 눈이 흔들리고 한숨을 내쉬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왜 그 다음으로 하는 말이 긍정의 대답인건지. 끝까지 예측할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이다. 심지어 지금은 등을 보이고 앉아서 표정이 어떤지 볼 수도 없다. 그만큼이나 내가 민윤기의 마음을 보기는 힘들었다. 예전보다는 많이 표현한다지만 참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그냥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졸렸지만 자꾸만 드는 생각들 때문에 쉽사리 잠들지는 못했다. 괜한 걸 물어봤나, 괜히 찔러봤나 싶었다. 아까 민윤기를 속였다는 생각으로 들었던 묘한 기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대신에 쓸데없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차지했다. 나를 절대적으로 믿는 건지, 아니면 진짜 혹시 설마 그새 나랑 결혼하겠다는 마음이 사라져서 내가 뭘 하던 상관이 없어진건지 모르겠다. 안돼, 후자인 경우는 정말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다. 머리맡에서 들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느리게 눈을 떴다. 머리가 복잡해 늦게 잠들더니 대체 얼마나 잔건지. 대충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에는 이젠 너무 많이 봐서 단번에 알아챌 수 있는 그 주인공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 여보세요. " [ 나야. ] " 응, 왜? " [ 너... ] " 어? " [ 오늘, 소개팅 몇 시야? ] 진짜 하나도 예상치 못했던 물음에 당황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이런걸 묻는지했지만 그 의도는 뻔했다. 아닌척 했지만 상관없는척 했지만 신경쓰이는 것이다. 궁금하고 못마땅하고 마음이 불편한거다. 나는 그 사실이 참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거짓말이 술술 튀어나왔다. " 이따 점심에. 준비 다 했어. 그래서 지금 막 나가려고. " [ ...지금 나간다고? ] " 응! 늦지 않게 나가야지. " [ ... ] " 근데 너 그거 왜 물ㅇ, " 뚝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내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전화가 끊겨버렸다.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화났나, 진짜 화난건가, 그러면 어떡하지. 내가 왜 그랬지.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아니라고, 거짓말이라고 말할까. 애초에 있지도 않은 용기로 거짓말하는게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머리만 굴리며 동동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다급한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고는 그만큼이나 다급해보이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 너 아직 집에 있지? " " 윤기? 윤기야? " " 응, 나야. 문 좀 열어봐. 너 나가기 전에 꼭 할 말이 있어. " " ...어? " 미친, 망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은 대형참사를 만들었다. 그러게 왜 지금 나간다는 거짓말은 해가지고, 아니 그 전에 왜 그런걸 나간다는 거짓말은 해서 이 꼴을 만드냔 말이다. 일단 다 집어치우고 이 상황을 어떡하지. 방금 일어나서 부은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 세상에 게다가 눈꼽도 꼈다. 일단 급한대로 거울 앞으로 가서 대충 몰골을 정리한 뒤에 문을 움켜잡았다. 절대로 열리지 않게 꽉. " 안돼! 나 지금 바로 나가야해서 바빠. " " 잠깐만, 진짜 잠깐만. 얘기 좀 하자. " " 다음에! 아니 나중에! 나중에 해! " " 너 가기 전에 지금 꼭 해야해. 응? " " 아... " " 문 좀 열어봐. " 어쩔 수가 없다. 어차피 문 안 열어주면 집 앞에서 밤새도록 기다릴 테세인데 더 버티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고 내 꼬라지를 본 후 쏟아질 민윤기의 말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너... " 작게 터지는 목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을 때 보였던 민윤기의 표정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커진 동공과 벌어진 입 황당하다는 표정. 나는 결국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입을 열었다. " 미안. 나 거짓말 했어. 진짜 미안하다, 미안해! " " ... " " 나 방금 일어났어. 지금 나간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아니 애초에 소개팅 한다는 것도 거짓말이야. " " ... " " 내가 너를 두고 무슨 소개팅이야. 안해 그런거. " " ... " " 근데... 그게 왜 그랬냐면... 그 벌써 5년이 다 지나, " 생각했던 변명은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채 그대로 삼켜졌다. 민윤기가 갑자기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나를 달래듯이 내 등을 쓸어내리며 민윤기는 말했다. " 다행이다 진짜. " " ... " " 밤에 한숨도 못 잤어. " " ..." "너 그렇게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쿨한척 괜찮은척 하는게 아니었는데, 나가지 말라고 사실대로 말했어야하는데, 너 진짜 나가면 어떡하지 불안해서. " " ... " " 아침까지만해도 내가 널 잡아도 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 너는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 내가 그걸 막는건 아닐까. " " ... " " 근데 나, 너 남자친구잖아. 그냥 가만히는 못 있겠더라. 내가 너를 어떻게 다시 잡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 " " ... " " 그래서 달려왔어. 너 잡으려고. 뻔뻔할지 몰라도 나가지말아달라고 무릎이라도 꿇고 너 붙잡으려고. " 민윤기가 나를 품에서 떼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그런데 네가 이렇게 있어주니까, 아직 내 옆에 있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 " ... " " 너 이렇게 편한 모습, 자연스러운 모습 나한테만 보여줄거잖아. 나만 너 이런 모습 볼 수 있는거잖아. " " ... " " 네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내가 널 사랑해주니까. 나는 널 사랑할테니까. " 이것 참,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말해주는게 좋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 내 처지가 그런 말을듣고 서서 막 좋아하고 있기는 좀 그랬다. 민윤기가 이보다 더 심한 모습을 본게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웠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지만 명색이 남자친구인데 예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게 당연한 마음이었다. " 이제 가. 나 들어갈래. " " 왜- " " 왜긴 왜야. 지금 내 꼴이 이렇잖아. 창피해. " " ... " " 한숨도 못 잤다며. 다 거짓말이고 나 아무데도 안가니까 너도 집에 가서 발 쭉 뻗고 잠이나 자. " 가라고 민윤기의 등을 떠밀고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분명히 걸어가고 있던 민윤기가 백허그를 해서 놀라 발걸음을 멈추기 전까지. 지금까지 한번도 안 해본 스킨쉽이었기에 놀란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고 민윤기는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말했다. " 우리 결혼하자. " " ...뭐? " " 너가 나 유학가는 줄 알고 울었던 그 날부터 그리고 내가 널 놓치는 줄 알고 미치도록 불안했던 오늘까지. 딱 5년이 됐어. " " ... " " 우리 이제 그러지 말자. 나는 너없으면 안되고 너도 나없으면 안되는데, 서로가 그런거 잘 알면서 울고 불안해하고 그러지 말자. " " ... " " 내가 너가 어떻든 다 좋은거 아무래도 콩깍지가 제대로 씌여진거 같은데 이 콩깍지가 벗겨질거 같지가 않거든. " " ... " " 그러니까 그냥 평생 이 콩깍지 끼고 너랑 살래. 그러고싶어. " 내가 진짜 민윤기때문에 미치겠다. 이렇게 뜬금없이 대낮에 하는 프로포즈가 어디있나. 심지어 내 꼴은 또 이게 뭐람. 이렇게 시간도 엉망이고, 장소도 꽝이고 게다가 준비도 하나도 안되었는데 훅 들어온 프로포즈임에도 참 좋았다고 하면 그건 내가 호구인걸까. 그냥 좋다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싶은걸 보니 나야말로 민윤기에게 제대로 콩깍지가 씌인 모양이다. " 5년 지난거 기억하고 있었네... " " 당연하지. " " 야, 근데. " " 어? " " 너 진짜 아무리 내가 널 많이 좋아한다지만 이 프로포즈는 좀 아니지 않냐. " " ...응? " "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게 어디있어. 나는 아직 하나도 준비가 안됐는데. " 나를 감싸안고 있던 민윤기의 팔을 푸르고 민윤기를 마주보았다. 황당하다는 듯 내뱉은 내 말에 민윤기는 조금 당황한 듯 얼굴이 벙쪄있었다. 민윤기와 마주 서며 그 얼굴을 보고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 다시 해. " " ...어? " " 나 지금 이 프로포즈 못 받아주니까 나중에 다시 하라고. " 사실 지금도 엄청 좋았지만, 민윤기라서 그저 충분했지만 그냥 한번쯤은 투정 부리고 싶었다. 그래도 평생 한번뿐인 프로포즈인데 멋지고 예쁘게 프로포즈 받고 싶은게 여자의 당연한 심리였다. " 다시 하면 받아줄거야. 아니면 절대 안돼. " " ... " " 그러니까 잘 준비해서 와. 알았, " ' 쪽 ' 당당히 요구하다가 순식간에 내 입술을 다녀간 민윤기의 뽀뽀 한번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놀래서 두 눈이 동그래진 나를 바라보며 민윤기는 씨익 웃었다. " 결혼하자. " " 야... 너... 내가 제대로 다시 하, " ' 쪽 ' " 결혼하자. " " 이게 진짜... 너 내가 이런다고 그냥 넘어갈 거 같, " 한번 더. " 결혼하자. " " ...너 어? 나 집 지어준다며! 너 아직 그것도 못했, " 또 한번 더. " 결혼하자. " " 미치겠네. " 이거 뭐 민윤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겨우 뽀뽀 몇 번에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그대로 완패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더 따진다고 민윤기가 내 말을 들을 거 같지도 않고 그런데 또 민윤기는 미치도록 좋고.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할지 난감하여 말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민윤기가 또 한번 꾸욱 입술도장을 찍는다. " 사랑해. " " ... " " 정확하게 언제부터인건지 그리고 얼만큼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확실해. " " ... " " 내가 잘할게. 아침에는 먼저 일어나서 너 깨워주고 내가 밥도 해줄게. " " ... " " 그러니까 너는 그냥 내가 일어나서 눈 떴을 때 눈 앞에서 있어주기만 하면 돼. 내가 해준 밥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돼. " " ... " " 우리 결혼하자. " 뭐가 더 필요할까. 민윤기의 마음이, 진심이 여기 있고 내가 그 마음을 아는데 뭐가 더 필요하다고 나는 고집을 부렸을까. 그냥 눈물이 터져나왔다. 순전히 좋아서, 진짜 좋아서, 미치도록 행복해서 터져나온 눈물이었다. 민윤기는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고는 나를 다시 안았다. 그리고 나를 쓰다듬는 손길에 나는 투정을 부렸다. " 나쁜놈. " " ... " " 너는 나한테 나쁜놈일 때가 더 많았어. 너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줄 알아? " " ...알아. " " 나쁜놈인데 그런데도 너가 좋은거 보면 진짜 콩깍지 제대로 씌였나봐. 나 이제 어떡해. " " 어떡하긴 뭘 어떡해. 나한테 평생 발목 잡힌거지. " " 짜증나는데 그래도 하나하나 다 맞는 말이라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 " ... " " 나도 사랑해. 응, 좋아, 우리 결혼하자. " 고급 레스토랑도, 알이 큰 빛나는 다이아몬드 반지도, 뭐 이렇다 할 특별한 모습도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가장 행복한 프로포즈였다. 더이상 서로에게 숨길 마음도, 그리고 있다하더라도 숨길 그런 이유도 없었다. 민윤기의 마음, 그거 하나면 됐다. 그렇게 정말 민윤기가 말했던 5년이 지난 그 날 민윤기와 나는 결혼을 약속했다. " 민윤기! 너 또 지각하겠어. 빨리 안 나가! " " 나가나가- 지금 나가! " " 너 이러다가 부장한테 또 찍힌다. 승진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늦장을 부리면 상사들이 좋아하겠어? " " 안 찍혀! 내가 일을 얼마나 잘하는데. 걱정마. " " 아유- 그러세요? 근데 그렇게 일을 잘하시는 분이 왜 아직도 약속을 안 지키실까? " " ... " " 우리집 대체 언제 만들어줄거야! 처음에는 5년만! 그 다음에는 3년만! 합쳐서 벌써 8년이다! " 대충 짐작하다시피 민윤기와 나는 결혼을 했다. 올해 들어서 3년째고. 그리고 민윤기 이 자식은 아직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건 사기결혼이다. 민윤기가 반지를 가지고 다시 프로포즈 했을 때 그랬다. 진짜 3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그리고 3년이 지났고 민윤기는 내게 설계도만 내밀었을 뿐 딱히 달라진건 없었다. " 내가 제대로 낚여서 살았지. 이게 진짜 약속도 안 지키고. " " 에이,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니까. " " 너 진짜 약속 안 지키기만해봐. 확 그냥 네가 잡은 발목 탈출하고 나가버릴테니까. " " 씁- 말조심! 우리 미니 다 듣는다. " " ...어? 어어, 미니야. 미안해. 엄마가 잘못 말했어. 그런거 아니야. 취소취소! " 그리고 그 3년동안 민윤기와 나에게 작은 선물이 하나 왔다. 너무 소중하고 또 소중해서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선물. 민윤기는 그 선물이 자신의 성을 딴 민씨라며 민이에서 변화시켜 미니라고 불렀다. 민윤기가 선뜻 먼저 나서서, 게다가 꽤 오글거리는 태명을 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이나 민윤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미니야. 아빠 회사 다녀올게. 엄마랑 잘 놀고 있어. " 민윤기는 어느덧 제법 불러온 내 배를 쓰다듬었다. 나는 이러다 진짜 늦겠다며 민윤기를 재촉했다. " 먹고 싶은거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해. 내가 사가지고 올테니까. " "ㅊ알았어. 조심해서 갔다와. " " 응응. " 민윤기는 내 재촉에 서둘러 신발을 신었고 집을 나서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돌리지 않은 그 상태로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민윤기가 뭘 하고자 하는지 알았기에 나도 민윤기를 보며 따라 웃었다. " 사랑해. " " 사랑해. " 우리의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려퍼지고 민윤기는 그제야 문을 열고 걸어나갔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민윤기는 집을 나갈 때마다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더이상 민윤기와 나 사이에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그대로 내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표현하다보니 예전에는 낯뜨거워 잘 못했던 사랑한다는 말도 이제는 어렵지 않았다. 그 어느 누가 내가 민윤기와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 받는 날이 올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오랫동안 생각한건데 민윤기는 진짜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도 아직도 민윤기에게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 사람들은 연애를 하면서 그 사람을 알아간다고 하는데, 나와 민윤기의 연애가 너무 편해서 내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뭐 어쩌겠나. 이미 결혼해버렸는데. 어쩔 수가 없다. 그냥 민윤기랑 부둥켜 안고 살면서 부딪히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그렇게 알아갈 수밖에 없다. 이제 더이상 민윤기랑 나 사이는 연애가 아닌 결혼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음 갑작스러운 번외에 좀 놀라셨나요?ㅎㅎ 사실 계획에는 없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번외를 들고 왔네요! 뜬금없는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계속 신작이 미뤄지고 있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죄송하네요ㅠㅠ 그래도 다음에 신알신이 울린다면 정말로! 새 글일 거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항상 감사하고 사랑해요^-^/ [사랑하는 암호닉분들!♡] + 이제 암호닉은 다음 신청글에서 받을게요! 슈웁 / 석진센빠이 / 샘봄 / 루리 / 수대 / 윤기부인 / 부릉부릉 / MSG / BBVI / 전정ㄱ국 / 전정국부인 / 충전기 / 밤열한시 / 슙 / 달달 / 초딩입맛 / 설날 / 꾸탱 / 슙슙 / 넠넠 / 반딥 / 두둥 /슈나무 / 윤여 / 깜냥 / 단미 / 남준시 / 콩 / 자몽 / 계피 / 딸기 / 워킹 / 하이쭈 / 메로나 / 소녀 / 짝꿍 / 청춘 / 후니 / 강강수월래 / 나도 / 예지앞사헕 / 은하수 / 융기융기 / 아카시아 / 슙쓰 / 화양연화 / 아가야 / 태태 / 깇 / 0530 / 누텔라 / 전국정국 / 미융 / 푸랑푸 / 쵸니 / 소금 / 월하 / 윤기나는윤기 / 짱구 / 김성규 / 민빠답없 / 윤기야 / 탄뚱탄뚱 / 오만원 / 쿠키 / 토마토마 / 손가락 / 알비노포비 / 작가님사랑해요 / 원 / 민트 / 민빠답없 / 현지 / 금붕어 / 리베 / 앵무새 / ☆요다☆ / 슙끼슙끼 / 민슈가 / 들레 / 연꽃 / 플로 / 태굴태굴 / #두근 / 음향 / 데빌 / 39 / 미늉이 / 김망고 / 홈매트 / 린슈가 / 토끼시러 / 끄앙 / 망망이 / 딱풀 / 츄파춥스 / 사말어는윤기 / 됴종이 / 센빠이안녕 / 두두둔 / 위험한슈가 / 쿠룡 / 짐니 / 색시 / 어만군이 / 라일락 / ♥민슈가♥ / 팩실 / 누나 / 핫초코 / 봄 / 연이 / 민면 / 카누 / 꽃밭 / 윤기야 나랑 살자 / 빼빼로 / 미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