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번외 ; 두 사람
*민윤기
왠일로 눈이 일찍 뜨였다. 평소의 나였으면 알람 소리를 듣고 겨우 일어나는데 이상하게 오늘만큼은 몸이 개운하다.
미팅을 한 두 번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설레는 마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파트를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고 엘리베이터의 7층 버튼을 눌렀다. 7.. 숫자 좋네.
휴게실에 들어가 스텝들과 미팅을 하는데 처음 너를 보는 순간 쪽팔리지만 첫 눈에 반했다. 이상하게 자꾸만 시선이 너에게 향했다. 자꾸만 말을 걸고 싶은데 유독 말이 없는 너.
낯을 많이 가리는지 말끝도 흐리고 시선도 떨어트리고. 옆에 앉은 태형씨와 친해 보였다. 태형씨랑 친구? 의외네.
그렇게 아쉬운 미팅이 끝나고 저녁에 퇴근하는데 우연히 아파트에서 영화같이 널 만났다. 심지어 같은 동 바로 윗 층에 너가 살 줄이야.
이대로 보내기 싫어 저녁까지 같이 먹고 잘 자라는 생전 보내보지도 않았던 문자도 보내고. 첫 방송 때 방송에 집중하는 척, 무심한 척했지만 실은 다 보고 있었다.
떨리는 두 손을 붙잡고 라디오를 듣는 모습, 방송이 끝나고 환하게 웃는 얼굴. 회식 가자고 했을 때 즐거워하던 모습. 다 이쁘다. 그런데 김피디를 만나고 나서부터 넌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태형씨 옆에 붙어서 고갤 푹 숙이고 걷는 모습 왜 그러냐고 속으론 백번도 넘게 물었지만 차마 소리 내어 묻진 못했다. 괜히 너가 싫어할 까봐.
술에 약한지 몇 잔 안 마셨는데도 빨개진 두 뺨마저도 귀여웠다. 미치겠네. 단 둘이 집으로 가는 길에 취한 척하고 손이라도 잡을까 고민하는 내가 부끄러워 말도 별로 못했는데.
결국 아까 왜그렇게 말이 없었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그냥 괜찮다는 대답뿐. 너가 피곤하단 걸 뻔히 알면서도 철없이 계단으로 가자고 졸랐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었으니까.
집에 돌아오고 나서 너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또 얼마나 이쁘게 하는지. 결국 피곤해 보이던 널 억지로 계단으로 가자고 조른게 미안해서 아침 일찍 출근 전 너의 집 앞에 다녀갔다.
아 맞다. 오늘 비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생각난 비에 다시 집으로 내려가 우산을 하나 더 챙겼다. 이 아가씨 오늘 비 온다는데 우산은 챙겨올까 모르겠네. 회의 시간에 늦지 말라고 말했는데
10분이 지나도 안 온다. 밖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고. 결국 십분만에 회사 안에서 널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조금이라도 빨리 보고 싶으니까.
나오자마자 횡단보도 너머에 서 있는 너가 보였다. 수많은 인파 속에도 너만 뚜렷하게 보였다. 민윤기 언제 이렇게 바보였다고 안 하던 짓을 골라 하냐. 너도 날 봤는지 놀라는 표정이다.
전화를 거니 역시나 놀라는 너 음료 잘 마셨다고 말하는 데 쑥스러워 미칠 뻔 했다. 나에게 달려오는 너 다음번에 뛰어올 땐 회의에 늦어서가 아니고 내가 보고 싶어서 달려오는 거 였으면 좋겠다.
찻집으로 가자는 말에 정국씨를 묻는데 실은 정국씨에겐 비밀인 회의다. 그냥 둘만 있고 싶은데 마땅한 핑계가 없어서. 찻집으로 걸어가는데 눈이 마주쳤다.
괜히 놀리고 싶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자 당황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근데 눈이 왜 이렇게 많이 부었지? 울었나? 왜? 하지만 너가 숨기고 싶어하는 것 같아 곧바로 묻지 않고 물음을 삼켰다.
그래도 궁금한 탓에 물어봤지만 역시나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이 아가씨야 난 안 괜찮네요.
*김태형
며칠 전 나에게 문자를 보낸 너. 바쁜 와중에도 니 문자는 꼭 확인하는 나이기에 메이크업을 받던 도중 그냥 문자를 확인했다.
꿈꾸는 꿀FM 라디오 작가가 됐다는 소식에 마치 내가 작가가 된 것처럼 뛸 듯이 기뻤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너의 연락을 받고 이틀 뒤 섭외 전화를 받았다. 너랑 같이 일하게 되다니 미치겠네.
지민이는 걱정도 된다며 신중해지자고 했지만 지민아 그럴 때가 아니야. 내가 노력하면 되잖아. 그렇게 첫미팅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저 멀리서 너가 뛰어오는 걸 봤다.
황급히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고 너를 보았다. 놀라는 표정에 볼이라도 꼬집어 주고 싶었지만 방송국이니까 참자 김태형. 내가 같은 라디오 디제이가 됐다는 말에 기뻐하는 너.
정말이지 꼭 안아주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내가 널 만나고 나서부터 참는 데는 도가 텄다. 미팅 때 얼마나 긴장하는지 손이라도 잡을까 하다가 괜히 너가 오해 받을 까봐 어깨만 살짝 토닥여주었다.
갑자기 잡힌 스케줄에 너랑 약속도 취소하고 섭섭해 죽겠네. 그런 내 맘을 넌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해맑다. 그래도 좋다. 속앓이는 나만으로 충분하니까.
첫 방송 때 시선이 자꾸만 너에게 가는 걸 겨우 대본으로 돌리고 방송을 열심히 했다. 너가 쓴 대본이라 그런지 외우는 데는 젬병인 내가 대본을 달달 외웠다. 지민이도 살짝 놀라는 눈치다.
지민이도 모르는 짝사랑을 벌써 몇 년 째냐.. 처음엔 정말 친구였는데 자꾸만 너가 좋아졌다. 보고 싶고 목소릴 듣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왜 볼 때마다 자꾸만 몸이 약해지는 지 걱정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내가 미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회식 가는 길, 보고 말았다.
널 아프게 했던 그 사람. 애처롭게 고갤 떨어트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을 뻔했다. 회사 밖에 나와서도 앞을 제대로 못 보던 너. 안아주고 싶은데 그 사람 때려줄껄 그랬나봐.
미안해 탄소야. 내가 손을 잡고 부축하다시피 걸어가는 너. 내가 손을 잡아도 하나도 안 떠는 너. 당연한 건데 슬프다. 그래도 나라도 밝은 척해야 너가 웃지.
회식이 끝나고 다음 날 잠깐 다른 방송 때문에 방송국에 일찍 왔다. 다른 방송이 끝나고 너랑 저녁을 먹고 꿀FM을 하려고 했다. 널 볼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적어도 우는 널 보기 전까진.
작가실에 살금살금 들어가 널 놀래켜주려고 했다. 너의 자리에 가니 잠든 건지 엎드려 있는 너.. 근데.. 아니다. 너의 어깨가 떨리고 있다. 옆엔 휴지를 쌓아놓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니 책상에 붙여진 작은 쪽지를 읽어버렸다. 끊어질 것 같은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막무가내로 널 끌고 비상계단으로 갔다. 그제야 얼굴을 보여주는 너.
퉁퉁 부은 눈에 젖은 눈동자를 마주하니 마음이 찢어졌다. 왜 그런 놈을 좋아하는 거야 왜.. 괜찮다고 아니라고 하는 데 뭐가 괜찮아.
김탄소 너가 우는 데 도대체 뭐가 괜찮냐고. 난 하나도 안 괜찮단 말이야.
오늘은 불토니까 글을 두개 지르고 갑니다! 다들 조금밖에 안 남았지만 토요일 잘 보내길 바래요!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 암호닉은 다음 화에 또 정리해서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