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저택 – 하
겨우 동우를 끌어안고 있는 힘을 다해 어느 동굴로 들어갔다. 그나마 운이 좋았던 건 파도에 휩쓸려 멀리 가지 않았다는 것과 가까운 곳에 바위섬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호원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동우를 눕혔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고 호흡도 고르게 잘 하고 있다. 오히려 잠이 깊게 든 것이 동우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쿨럭,”
기침과 함께 호원은 가슴 속에서 뜨거운 핏덩어리들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막으니 피가 튀어 옷에 얼룩이 졌고 손에는 핏덩이가 잡혔다. 손이 심하게 떨리며 요동을 쳤고 점점 호원의 초점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호원은 이를 세워 손등을 물어 피를 냈다. 피를 빨아 입 안에 머금고 동우에게 입을 맞춰 자신의 피를 삼키게 했다. 동우의 떨어지던 체온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후 쳐진 몸을 이끌어 나뭇가지들을 주웠다. 동우가 누워있는 곳 옆에 쌓아 불을 붙이니 동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호원은 동굴 벽에 몸을 기대앉았다. 기절한 듯 잠이 든 동우를 보던 호원은 웃어버렸다.
“하아... 아직도 물이 무서운 거냐. 이호원.”
호원은 자기 스스로가 한심해 지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이야 인간들만이 느끼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백 년 전. ‘새벽의 전쟁’이 일어났던 때와 같이 그대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니. 호원은 여전히 동굴에 몸을 기댄 채 멀어지는 정신을 느꼈다. 아직은 이러면 안 되는 데... 동우가 눈을 뜨는 것 까지는 봐야 하는 데... 다시 목을 타고 터져 나오는 핏덩어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낀 호원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동우를 덮어주었다.
“장동우, 넌... 내가 죽겠는데... 자냐...”
“...”
“진짜 죽을 거 같아... 이 멍청아.”
잠이 들 듯 눈을 감은 호원은 그대로 굳은 듯 동굴 벽에 기대어 정신을 잃었다. 미약하게 타오르던 불들이 갑자기 환하게 타오르기 시작하면서 열기를 뿜어냈고 호원의 얼굴에는 그늘을 만들었다. 그 열기에 눈을 뜬 동우는 한참을 깜박이다 눈을 비볐다. 여기가 어디지. 천국인가, 지옥인가. 몸을 일으킨 동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사태파악을 하다 제 몸에 덮여있는 호원의 옷을 보았고 거기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보았다.
“호원아!!!”
호원이 죽은 듯 벽에 기대어 있었다. 온 몸에 힘이 빠진 듯 축 늘어진 호원을보고 놀란 동우가 호원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호원아! 정신 차려!!”
“...”
“호원아, 호원아!!”
눈을 뜨지 않는 호원의 몸이 심하게 차가운 것을 느낀 동우가 호원의 몸을 끌어안았다. 아직 숨은 쉬고 있는 데... 호원이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한 동우가 호원의 이마, 뺨, 입술 할 것 없이 자신의 입술을 맞추며 호원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 동우의 간절함이 호원의 무의식에 닿았는지 호원이 입을 열었다.
“동우...”
“호원아... 죽지마, 죽지마... 호원아...”
“나 안 죽어...”
“근데 손을 왜 이렇게 떨어? 응? 호원아...”
“무서워...”
“응?”
“무서워... 물이... 물이 너무 무서워서...”
무섭다고 중얼거리는 호원이 동우의 품을 파고들었다. 동우의 품을 파고 든 호원의 몸떨림이 고스란히 동우에게 전해졌다. 동우는 호원의 머리를 끌어안은 그대로 허리를 숙여 최대한 호원을 품에 안으려 했다.
“이젠 내가 지켜줄게. 호원아.”
**
“몇 시지?”
“2시.”
“해가 밝아 오려면 아직 멀었네.”
성종은 갑판 위의 난간에 묶인 채 성규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미끼로 쓸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죽이라고 했지만 김성규는 얌전하게 죽여줄 위인은 아니었다. 성종의 앞에서 우현은 성규가 주었던 총을 만지작거렸다.
“자... 여기에 너가 이렇게 있으면 이호원이 알아서 올까. 안 올까?”
“...”
“응? 이성종.”
우현이 장난스럽게 성종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옆에서 달을 보던 성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세상 참 공평해... 그치?”
“김성규...”
“이호원은 살아남을지 몰라도 그 옆에 인간은 죽겠지? 2년 전 이호원이 그랬어. 뱀파이어가 사랑한 인간의 최후를 보라고.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네? 그렇지?”
“호원이는 죽지 않아. 동우를 구했을 거야.”
성종은 천천히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넌... 그저 불쌍한... 불쌍한 녀석일 뿐이야.”
“사태파악이 상당히 느리네.”
성종의 배를 구둣발로 가격한 성규는 고통에 숨을 쉬지 못 하는 성종을 보며 씨익- 웃었다. 달빛을 받은 성규의 눈동자는 푸르스름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
따라오라던 호원의 명령에 성열과 명수는 요트를 타고 크루즈를 뒤쫓았다. 하지만 바다 속으로 떨어진 호원과 동우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성열은 요트의 엔진을 끄고 소리에 집중했다. 명수보다 뱀파이어의 피가 진한 성열은 명수보다 청각이 좋았다. 성열이 말을 기다리던 명수가 성열을 재촉했다.
“어때, 들려?”
“안 들려. 호원이 목소리는 안 들리고... 성종이 목소리가 들려.”
“... 성종이?”
“위험해... 성종이가 위험해.”
성열의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이성종이 위험해!!”
성열은 요트에 시동을 걸고 크루즈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곧 해가 떠. 어떡하지?”
“젠장.”
“해가 뜨면 넌 움직이지 못 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올라갈게.”
“뭐?”
크루즈에 닿기도 전에 명수는 손톱과 이를 세워 바다속으로 뛰어 들었다. 성열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명수는 헤엄을 쳐 크루즈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이씨, 하...”
바다의 아침을 빨랐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저 수평선에는 차츰 빛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성열은 답답한 노릇이었다.
“어...?”
성열은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 머리에서 울리는 듯한 그 목소리... 이호원. 호원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성열은 당장 명수와 성종이 걱정이 되지만 명수를 믿기로 하고 요트의 방향을 틀었다.
**
갑판 위에 등장한 명수를 본 성규는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 했다. 반면 우현은 성규의 뒤에서 키득거리며 붉은 눈을 하고 이와 손톱을 세운 명수를 보고 있었다. 명수는 이미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명수의 옆에는 쓰러진 헌터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명수의 회복력이 한계에 다다른 모양인 지 뺨에 난 상처가 쉽게 아물지 못 하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태양은 강해져 갑판 위를 밝게 만들고 있었다. 금세 숨을 거칠게 내쉬며 한 쪽 무릎을 꿇은 명수는 비틀거리며 성종의 몸을 끌어안았다. 태양에 유독 약한 성종은 이정도의 햇빛에도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 둘 다 죽여.”
성규의 명령에 헌터 하나가 칼을 들고 성종과 명수에게 다가갔다. 명수가 몸을 일으키려다 하지 못 하고 성종의 옆에 쓰러졌다. 명수와 눈이 마주친 성종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오지 말지... 그들의 앞에는 칼을 든 헌터가 있었다. 성종은 고개를 들어 헌터를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성규와 우현도 보았다.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호원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명수를 살려야겠다.
“김성규...”
“다 갈라진 목소리로 성규를 부른 성종이 입 안에서 흐르는 피를 삼켰다.
“그 인간의 저주. 내가 풀어주지...”
“...”
“내가 풀어 줄 수 있어.”
“저주는 저주를 건 자의 피로만 풀 수 있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성종은 피식 웃었다. 우현은 그런 성종이 신기하다는 듯 소년 같은 눈빛으로 보며 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래, 그 인간에게 저주를 건 자는... 바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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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별모양곰돌이
“날 기만하는 건가.”
“사실이야... 정말 순수혈통이 인간에게 저주를 걸었다면. 저 인간은 저렇게 살고 있을 수 없어.”
최대한 발음을 똑바로 하려고 성종은 정신을 곧게 차렸다. 이건 승부수가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명수였기 때문에.
그 날. 호원이 성규를 풀어주자고 했던 날. 성종은 혼자 가겠다는 호원을 따라 나섰다. 깊은 산 속에 갇혀 있는 성규의 옆에는 헌터 우현이 있었다. 우현의 손에는 호원을 절망으로 넣었던 그 총이 있었다. 폭주하려던 호원을 막은 성종은 묘책을 냈다. 김성규가 사랑하는 인간에게 저주를 걸어 김성규를 풀어주자는 것이었다. 김성규가 인간과 뱀파이어들을 죽인 죄 갚음을 끝내면 저주를 풀어주어 자유롭게 해 주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성규는 그대로 인간을 데리고 사라졌고 1년 뒤 인간의 피 냄새를 가득 묻히고 세력을 넓혀 나타났다.
성종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숨을 쉴 때 마다 피가 역류하는 것이 느껴졌다.
“날 죽이게 된다면...”
“...”
“영원히 저주를 풀 수 없어...”
성규는 짧게 고민을 했다. 헌터에게 칼을 바로 받은 성규는 성종에게 다가갔다. 햇빛이 성규의 몸을 덮어 온 몸이 따가웠지만 우현의 저주를 풀 수 있다는 생각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명수가 꿈틀거렸지만 많이 움직이지는 못 했다. 몸을 낮춘 성규는 칼로 성종의 뺨을 그었다. 길게 그어지는 상처를 통해 피가 흘렀고 그 피는 칼날을 타고 성규의 손을 적셨다.
“그냥 죽여버리고 싶지만...”
“... 하아... 하아...”
“햇빛에 타들어 죽는 모습을 보면... 더 좋을 것 같아.”
웃음기 없는 말과 함께 성규는 다시 우현에게 갔다. 우현은 어느새 성규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우현은 성규의 피 묻은 손을 잡아 제 입에 댔다. 혀를 내밀어 성규의 손을 타고 흐르는 성종의 피를 핥았다. 우현은 들고 있는 총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우현아, 나 햇빛 따가워...”
“...”
“들어가자...”
성규는 밝게 웃었다. 이제 우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우현아. 들어가자... 응?”
우현은 한동안 성규의 손에 묻은 피를 핥았다. 성규의 손에 피를 다 핥은 우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규의 눈을 맞췄다. 성규가 눈물이 가득한 눈을 한 채 웃고 있었다.
멍청한 놈.
우현은 총을 들어 성규의 심장에 겨누었다.
“저주 푸느라 고생 많았어. 이건 선물.”
가벼운 총소리와 함께 성규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 쓰러진 성규를 본 우현이 가볍게 웃었다. 사냥감 주제에 꽤나 성실하게 제 몫을 다 해 주었다. 우현은 성종에게 걸어갔다. 인간의 피가 단 한 번 섞인 성규, 아주 오래 산 성종, 그리고 뱀파이어 하나. 뱀파이어 셋을 사냥한 우현은 내리쬐는 태양을 보며 팔을 벌렸다.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 저주에 걸려 직접 움직이지는 못하는 것에 싫증을 느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 잘 하면 이호원까지 잡을 수 있다. 우현은 그 생각에 온 몸이 짜릿해짐을 느꼈다.
“재밌어, 응? 뱀파이어들이라고 뭐 별난 거 있어? 인간들하고 똑같이 물고 뜯고 하는 하잖아.”
우현은 뱀파이어들을 조롱하듯 태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 가려진 태양을 손에 쥐 듯 주먹을 쥐었다.
**
호원이 이끄는 소리에 요트를 움직이던 성열은 바위섬 하나를 발견했다. 저기구나. 천천히 접근한 성열은 바로 앞에서 호원과 동우를 찾을 수 있었다. 동우가 호원을 부축해 동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성열의 도움으로 호원을 옮긴 동우도 요트 위에 올라갔다. 햇빛이 차단이 된 운전실로 들어가니 호원과 동우는 쓰러지듯 서로에게 기댔다.
“괜찮아?”
“죽을 것 같아...”
“내 피라도 좀 먹을래?”
“너까지 위험해. 해가 떴어.”
“지금 성종이랑 명수가... 위험해.”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은 호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한 숨을 깊게 쉬었다. 지금으로써는 방법이 없었다. 도움을 청할 순 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다. 호원은 갑자기 강하게 흐르는 피 냄새에 눈을 뜨고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성열도 동우쪽으로 고개를 돌려싸. 동우가 자신의 팔을 깨물어 피를 내고 있었다.
“장동우! 왜 이래!!”
호원이 동우의 팔에 난 이빨자국을 보곤 상처를 치료하려는 데 동우가 호원의 손을 뿌리쳤다.
“내 피로 대신 해.”
“장동우!”
“제발... 나 어차피 얼마 살지도 못 하잖아. 내 피라도 마셔, 제발 마셔줘.”
“안 돼. 난 인간의 피는 안 마셔. 이건 내 맹세야.”
“니 몸에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발... 응?”
단호하게 말 하는 동우가 팔에 힘을 줘 피를 흘렸다. 호원이 잠시 망설이다 동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춘 뒤 동우의 상처를 통해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동우는 빠르게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호원은 어느정도 피를 마신 뒤 회복된 자신의 힘으로 동우의 상처를 치유했다. 동우는 호원의 어깨에 기대 호흡을 가다듬었다. 갑작스럽게 대량의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자 온 몸에 힘이 빠진다.
“어지러워?”
“조금...”
“조금만 참아. 꼭 집으로 돌아가게 해 줄게. 명수랑 성종이 데리고.”
“응...”
호원은 동우의 손에 깍지를 껴잡았다. 크루즈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호원은 망설임 없이 운전실에서 나와 햇빛을 맞았다. 눈이 부시고 피부가 따가웠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호원이 도약을 해 크루즈의 벽을 타고 올랐다. 성열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크루즈에서 조금 떨어지기로 했다. 동우는 기도를 하며 크루즈에 오른 호원의 모습을 아슬아슬하게 바라보았다.
**
완전히 몸을 회복하고 인간의 피를 마신 호원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크루즈의 헌터들을 물리친 호원은 갑판 위에 있는 성종과 명수를 그늘로 옮겼다.
갑판 위에는 성규도 쓰러져 있었다. 예전에 자신이 입었던 상처를 그대로 받고 피를 흘리고 있는 성규를 보며 호원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호원은 성규를 안아 그늘로 옮겨 주었다.
호원은 주위를 돌아보며 우현을 찾았다. 우현의 최종목표는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아는 호원은 크루즈 안에 있는 홀로 들어갔다. 아래로 좁은 구조를 한 홀은 상대를 찾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우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원의 눈동자는 사냥을 위해 붉은 빛으로 빛났다.
흡사 짐승의 숨소리와 같은 것이 우현의 온 몸을 휘감았다. 위치가 들통이 난 걸까? 우현은 최대한 태양이 많이 비추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을 끌수록 인간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우현은 몸을 최대한 가리고 호원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총알은 단 하나 남았다. 한 방 게임이다. 우현은 가까운 곳 보다는 먼 곳에서 정확하게 호원을 쏘는 것이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호원은 규칙적으로 들리는 인간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심장소리가 빨라졌다 천천히 잦아들고 있었다.
찾았다.
우현이 호원을 향해 총을 쏘는 순간 도약한 호원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우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호원은 총을 들고 있는 우현의 오른 팔을 길게 할퀴고 목을 졸라 벽으로 밀쳤다.
“으큭.”
그대로 홀 밖으로 우현을 내던졌다. 우현의 몸은 호원의 힘에 그대로 갑판위로 날아가 떨어졌다. 순간적으로 숨을 못 쉴 정도의 충격이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갈비뼈가 부러진 듯 통증이 밀려와 몸을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 넘어지려는 몸을 겨우 이끌어 난간에 기대었다. 이호원이 천천히. 마치 죽음을 가지고 오는 사신처럼 자신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 특유의 보랏빛 눈동자와 까만 머리칼을 가지고. 우현은 갑자기 밀려오는 공포심에 심장이 뛰는 것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호원은 쓰러진 성규를 보고 있었다.
“하하! 그래도 같은 뱀파이어라고 연민은 느끼나 보지?”
우현의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기침을 하니 피가 토해져 나왔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른 모양이었다.
“날 먹어 봐! 왜 겁나? 인간을 잡아먹는 게? 그렇다면 영광인데? 이호원을 인간의 피로 더럽히게 한 최초의 인간이 나일 테니까!!!”
“미쳤군.”
호원은 우현을 외면하고 몸을 돌렸다. 명수는 어느 정도 몸을 회복했는지 성종을 끌어안고 있었다.
“돌아 가자.”
“응.”
호원은 성종을 안고 크루즈의 가장 밑층으로 내려갔다. 호원의 뒤로 우현의 외침이 들렸다.
“어서 날 잡아 먹으라고!! 이호원!!! 으아아악!!!!!!”
멀어지는 호원을 보며 우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숨 쉬기가 힘들어졌다. 숨을 쉴 때 마다 목을 타고 피가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 떨어진 피들을 보며 우현은 웃음이 났다. 허무하다... 너무나도 허무해... 우현은 서서히 감기는 눈을 거부하지 않았다. 화가 나는 감정도 이제는 피곤하다...
“남... 우... 현...”
누군가가 뒤에서 자신을 안았다. 강하게 자신을 끌어안는 탓에 우현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김성규가 자신의 허리를 감고 힘을 주고 버티고 있었다.
“저리 꺼져!!!”
우현이 몸부림을 치며 성규를 떨쳐내려고 했다. 아직 살아있다니. 최후를 맞이해도 이렇게 최후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현은 성규를 떼어내려 했지만 성규는 막무가내로 힘을 주고 저항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우현은 성규의 손을 떼어 냈다. 우현은 성규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숨을 몰아쉬었다. 피맛이 나는 침을 삼키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 김성규...”
그리고 우현은 알았다. 숨을 쉴 때 피가 쏟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호원이 할퀸 상처가 사라졌다는 것을.
“너...”
“...”
“왜, 나를... 나는 너를 죽이려고...”
이제는 숨을 쉬지 않는 성규를 향해 달려간 우현은 성규를 품에 안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죽은 성규의 몸은 우현의 손이 닿자 바스러져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릴 뿐이었다.
**
저택은 조용히 시간이 흘렀다. 명수는 하룻밤 자고 나니 완전히 회복하고 여전히 부엌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다. 성열은 원로들의 죽음으로 비어있는 원로의 자리에 새로운 원로가 되었다. 성종은 원로를 사퇴하고 저택에서 휴식을 취하며 몸을 회복하는 데에 집중을 했다. 호원은 사건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뱀파이어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하지만 오늘. 오늘 만은 동우의 옆에 있기 위해 모든 일을 제쳐두었다. 그들은 모두 동우가 누워있는 방에 모였다. 성종이 동우의 마지막 날을 암시했기 때문이었다.
“장동우. 마지막으로 눈만 좀 떠라.”
3일 전부터 동우는 눈을 뜨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도 않는 지. 입이 근질거리지도 않는 지. 그냥 얌전히 누워서 잠만 자고 있었다. 그때부터 모두들 동우의 죽음을 예감했지만 부정하고 있었다. 호원은 모두에게 나가달라 부탁을 했다. 계속 있고 싶었지만 호원의 울 것 같은 표정을 보자 그들은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
“동우야... 내 장동우야. 너가 살 수만 있다면... 나는 이 눈동자도 버를 수 있어. 영원히 살 수 있는 뱀파이어도 포기할 수 있어. 너가 살 수 있다면...”
동우가 누워있는 침대에 앉아 동우의 손을 잡고 동우를 바라보았다. 규칙적인 숨을 쉬는 동우가 마치 그림같다. 점점 더 호원은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육감이라는 것. 그것을 부정하려고 했지만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것. 점점 더 숨이 얕아지고 심장 박동이 느려지는 동우의 손을 꼭 잡고 호원은 동우의 입술을 맞췄다. 동우가 숨이 완전히 끊어지는 그 때 까지 호원은 동우의 입술에서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완전히 동우의 숨이 끊어지자 호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는데...
복도에 있던 성열은 갑자기 들리는 빗소리에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명수도 성종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호원이 우는 듯.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몰아치는 천둥 번개를 보며. 그들은 동우가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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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비가 쏟아 내렸고 방 안에서는 호원의 통곡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동우의 방 밖에 있던 명수가 먼저 눈물을 흘리며 훌쩍였고 명수를 달래던 성열도 급기야 눈물을 흘렸다. 성종은 덤덤하게 둘의 옆에 가만히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비가 그쳤다.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그친 비 사이로 밝은 달빛이 보였다. 의아함에 셋 모두 멀뚱히 서로만을 바라보는 데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야, 이거 설명 좀 해 봐.”
열려진 동우의 방에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의 호원과 너무나도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 서 있는 동우가 있었다. 그리고 호원의 검은 눈동자도. 동우의 보랏빛 눈동자도.
**
“명수 울였냐? 에이...”
“사람이라는 게... 감정이 있잖아요...”
소파에 앉아 여전히 훌쩍거리는 명수 옆에서 동우가 명수를 달래주고 있었다. 호원은 동우를 가만히 보다가 손목을 잡고 끌고 침대에 앉혔다. 동우의 눈동자는 선명한 보라색이다. 성종은 이번에 호원을 보았다. 선명한... 검은색이다. 성종은 동우의 맥을 짚고 눈동자도 가까이서 본다.
“심장이 멈췄어. 동우의 수명도 보이지 않아. 마치 뱀파이어처럼...”
“호원이 너... 혹시 힘을 잃어버린 건 아니지?”
“꼭 그런 건 아닌데...”
“아닌데?”
모두가 호원의 다음 말에 집중을 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순수혈통의 힘을 잃은 것 같아.”
“뭐?”
“뭐라고?”
“왜!!!”
순수혈통의 힘을 잃었다니? 호원이 심장을 잃는 게 아닌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죽을 수 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저 눈동자와 함께 동우에게 갔나봐. 어디까지나 내 예상이지만 말이지.”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마...”
“내 심장을 동우에게 줬다고 생각할래. 마음 편해, 나는.”
정말 편안한 마음인 지 호원은 밝게 웃어버렸다. 검은 눈동자의 호원은 어색했지만 어딘가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긴 하다. 성종은 한 숨을 깊게 쉬었다. 아무래도 다시 원로일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우리 이제... 나도 이제 영원히 같이 살 수 있는 거야?”
눈물을 글썽이는 동우가 울먹이며 물었다.
“응... 같이 살 수 있어.”
호원과 동우가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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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지금까지 봐 주신 모든 분들 갬새햄대... 애주매니 갬새햄대...
외전 하나 남아 있습니다... 하하
자세한 이야기는 그 때 해용~ 아디오스~~~~~'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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