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별모양곰돌이
터덜터덜 걸어 방으로 들어온 우현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이제야 정신이 조금 드는 듯하다. 성규의 향기가 가득했으니까. 침대에 눕기 위해 몸을 움직여 침대 앞으로 간 우현은 걸음을 멈췄다. 성규가 언제나 잠투정을 했던 침대. 성규가 엎드려 책을 읽던 침대. 성규와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침대. 성규와 함께 달콤한 꿈을 꾸었던 침대...
"김성규... 일어나야지."
마치 잠이 든 성규를 깨우 듯 읊조린 우현은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거울. 거울 속 우현은 혼자였다. 그 전신거울은 성규가 유독 아끼던 물건이었다. 옷을 입을 때면 꼭 저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매만졌었다.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던 성규는 항상 노래를 흥얼거렸다. 거울을 통해 눈을 마주친 우현과 성규는 웃었었다.
거울을 외면한 우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책상이었다. 성규가 앉아서 책을 읽거나 가끔은 꾸벅 꾸벅 졸기도 하면서 공부를 했었다. 때로는 안경을 쓰기도 했고 쓰지 않기도 했다. 책상에 어지러이 놓인 문서들을 잘 못 정리했다가 한 판 싸운 적도 있었다. 나름 키워보겠다고 했던 작은 어항 속 물고기는 햇빛을 받지 못해 죽어버렸다.
몸을 돌린 우현은 이 공간 안에 성규와 관련되지 않은 물건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성규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곳에 오면 성규가 환하게 웃으며 안겨들 줄 알았는데. 이제는 품 안에 성규가 없다. 성규를 죽였다. 성규는 사라졌다. 한 줌의 가루가 되어 따듯하게 안아줄 틈도 없이 그렇게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렸다.
**
호원과 동우는 손을 잡고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달빛이 환하게 비춰주는 정원은 아름답게 빛났다. 마치 나뭇잎 하나하나가 별빛을 받고 그 존재를 뽐내는 듯 아름답다.
"진짜 이걸 성종이 혼자 다 한 거야?"
"응. 기분이 좋아진다면서."
"애늙은이 같아."
"애늙은이는 무슨. 늙은이지. 늙었지. 늙었어. 쯧쯧."
혀를 찬 호원이 동우를 이끌고 그네에 앉혔다. 그네에 나란히 앉아 발을 구르는 호원은 자신의 힘을 이용해 조그만 조약돌을 잡아 당겨 손에 얹었다. 마치 실이 달린 것처럼 호원의 손에 얌전히 안착하는 조약돌을 본 동우가 눈이 동그래졌다. 호원이 한 번 해 보라는 듯 동우의 보드라운 손바닥 위에 조약돌을 올려주었다. 동우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약돌을 빤히 쳐다보았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고 공기를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조약돌을 서서히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생각 해."
"으으...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고."
옆에서 열심히 동우를 응원하는 호원과 달리 동우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힘을 확- 쓰고 싶지만... 지금 동우가 연습해야 하는 것은 넘치는 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제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계속 시도를 해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짜증이 난 동우는 조약돌을 그냥 멀-리 던져버렸다.
"으악!! 짜증나."
"왜 그래. 연습 해야지."
"씨이... 어떻게 힘을 조금만 쓰지?"
울상인 동우의 머리를 쓰다듬은 호원이 호원의 어깨를 껴안듯이 하고 동우의 톡- 튀어나온 입술을 검지로 꾹- 눌렀다. 입술을 비죽이던 동우가 보랏빛 눈동자를 하고 호원을 빤히 바라보았다. 호원의 검은 눈동자가 어색하기만 하다. 그때 다시 살아났을 때 호원이 그랬었다. 내 심장을 너한테 준 거라고- 동우는 호원에게 다가가 스치듯 호원의 입술을 건드렸다. 호원이 피식 웃으며 동우의 턱을 들어 진하게 키스를 했다.
"왜 애교야."
"그냥... 고마워서."
"뭐가."
"그냥... 너가 날 이렇게 사랑해주니까."
호원의 허리를 끌어안고 안기는 동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호원은 문득 고개를 들어 저택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동우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처진 눈꼬리를 하고 호원을 바라보았다. 경계심으로 호원의 검은 눈동자가 검붉게 일렁였다. 저택 안에 있던 명수, 성종과 성열도 문 밖으로 나왔다. 그들에게 간 호원과 동우는 저택의 대문을 바라보았다. 저 밖에 누가 있는 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열어."
성종이 너무나도 쉽게 말을 했다. 문을 열어도 좋다며 태연하게 말 한 성종은 다소 불안해 보이는 동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열어도 돼."
그 말에 호원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간 뒤 저택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열려진 저택의 대문에는 우현이 있었다. 너무나도 초췌한 모습의 우현은 마치 살아있는 시체와 같은 느낌까지 뿜어내고 있었다.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온 우현은 고개를 들어 호원을 보고 마주섰다. 그리고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동우를 보았다. 호원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인간. 보랏빛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원은 검은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사태파악을 잠시 한 우현은 설마- 하는 놀라운 표정으로 호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슬픈 눈을 했다.
"너가 그랬냐... 성규를 가루로 만들어 버린 거..."
우현이 동우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호원은 동우를 자신의 뒤로 숨겼다. 호원은 편안한 얼굴로 우현을 마주했다. 저 혼란스러워 하는 우현의 눈동자가... 마치 동우가 잠시 죽었을 때의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호원이다.
"뱀파이어는... 죽는다고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거나 하지 않아. 그런데 왜... 왜!! 성규는 사라진 거야!!"
악에 받쳐 우현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슬픈 목소리의 외침이라 그 누구도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이호원!! 넌 끝까지 성규를!!"
"김성규 스스로 한 거다."
"...뭐?"
"모르겠나. 김성규 스스로 그런 거라고."
우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그 어떤 뱀파이어가 스스로 몸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는가. 우현은 총을 장전시켰다. 호원이 또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에 분노감이 느껴졌고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호원은 작게 한 숨을 쉬었을 뿐이다.
"뱀파이어가 죽으면 그 육체는 그제야 시간의 제약을 받아버리지. 불노불사의 몸이 아니게 되니까. 몇 백 년을 살았던 그 육체는 주름투성이의 늙어버린 가죽이 되어버린다."
"..."
"너도 헌터니까 잘 알겠지. 그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지를... 차마 썩지 못한 늙어버린 살덩이들이... 어떤 모습인지."
"..."
"김성규는 너에게 그런 최후를 보이기 싫었던 거야. 너를 사랑했으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기 싫었,"
"그만해!!"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른 우현이 총을 든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맥없이 팔을 늘어뜨렸다. 그 반동에 흔들리는 우현의 몸이 마치 바람을 타고 날아가 버릴 듯 위태롭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은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은 우현은 몸을 돌려 터덜거리며 걸었다.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 본 호원은 저택의 문을 천천히 닫았다. 동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저 사람... 이제 어떻게 될까? 잘 살까?"
동우의 말에 성종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저 사람 수명... 얼마 남지 않았어."
"뭐?"
"아마... 김성규를 따라서 가겠지."
성종의 말에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뭔가 마음 한편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내가 김성규를 죽이지 않았던 건. 김성규가 나를 봤었기 때문이었어.”
호원은 저택으로 들어가며 말 했다. 명수와 성종도 알고 있었다. 성규는 필사적으로 호원에게 우현을 살려달라 눈으로 애원하고 있었다. 총에 맞은 자신의 몸은 회복시키지도 않고 호원을 보며 힘겹게...
“그 눈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우현을 살려달라는 것 같더군. 그런데 스스로 그렇게 최후를 맞이 할 줄은 몰랐어.”
아무도 그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우현은 그대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으로 갔다. 무릎까지 오는 풀들이 바람을 타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현은 성규를 쏘았던, 이제는 단 한 발의 탄환만이 있는 총을 들어 관자놀이에 겨누었다. 그리고 다른 손에 들려있던 기름을 들어 몸에 뿌렸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몸을 점점 더 적시는 그 기름 냄새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그리고 총을 장전시켰고 철컥- 거리는 소리가 너무나도 상경하게 들렸다.
"김성규... 사랑해... 보고 싶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컴컴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눈이 부시도록 하얗다. 온통 빛만 있는 느낌이야- 그리고,
타앙-
정직하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우현의 몸은 쓰러졌다. 그리고 총이 발사되면서 붙은 불은 기름과 함께 타오르며 우현을 점점 더 잿더미로 만들었고 그 가루는 바람을 타고 성규가 그랬던 것처럼 바다를 향해 홀연히 날아갔다.
**
우현은 눈을 떴다. 이곳이 어디인지. 온통 하얗다. 자신이 지금 누워 있는 지, 서 있는 지. 방 안에 있는 지 아니면 어떠한 공간인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중력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그 이상한 공간에 우현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아무것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졸졸졸- 물이 흐르는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우현은 이리저리 몸을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현은 막무가내로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걸음을 한 걸음 옮겼다. 지금 평지를 걷는 것인 지,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모르겠다. 아무런 감각이 없는 그 곳을 걷는 데 조그마한 물줄기가 보이고 조그만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우현은 그 물고기를 따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곳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조금씩 푸른 잔디밭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하늘도 보였다. 곧게 뻗은 나무도, 아름다운 새들도, 색색이 아름다운 꽃들도, 향기도 다 느껴지기 시작했다. 밟고 있는 풀의 싱그러움도 느껴졌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그 하얀 공간은 사라지고 온통 푸르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넓어진 물줄기에는 그 물고기와 똑같이 생긴 물고기들이 떼 지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게 귀여워 그것만 보고 걷고 있는 데 어디선가 흥얼거리는... 너무나도 익숙한 노래가 들렸다. 기분 좋은 흥얼거림... 고개를 든 우현은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눈을 감고 있는, 마치 천사 처럼 하얀 옷을 입은 성규를 보았다.
"김... 성규..."
더듬거리며 성규의 이름을 부르자 성규가 우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현이 너무나도 그러 워하던 환한 미소로 우현을 반겨주었다. 우현은 그대로 성규에게 달려가 성규를 한 품에 가득 끌어안았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엉엉- 울었고 성규는 그저 우현의 등을 토닥여 주었을 뿐이었다.
---------------
<후기>
네!!!!! 끝이 완전히 났네요... 일까요? 하하... (시즌2를 생각하고는 있는데...........하하)
사실은 이건 쓴 지 1년인가 됐을 거에요. 2년인가... 잘 기억은 안 난다ㅋ
뭐 나름대로 제가 쓴 글 중에서 가장 공 들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여요ㅜㅜ...
스토리도 많이 구성을 해 봤고, 여러번 다시쓰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인피니트가 데뷔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끄적이며 썼던 거라서...
야동은 달달하고 호원이는 강하지만 여리고 동우는 여리지만 강한 캐릭터고
현성은 마냥 아련하고 성규가 미련할 정도로 희생적으로 우현이는 제 욕심이 먼저인... 그런 캐릭터죠?
사실 아직도 그런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해요...
왜 이렇게 성규가 나같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 하면서 아픈 구석도 많고 혼자 울고 마음 터 놓을 사람 없어 외로워 하고... 하하;; 왜 그런걸까요?ㅋㅋ
이러거나 저러거나...
사실 저는 제가 쓴 것은 다 좋아요///
하지만 열 손가락 깨물어도 살살 깨문 녀석은 덜 아픈 법이죠?
조용한 저택은 제가 가장 공 들인만큼 아끼는 녀석이고...
붓과 건반의 교향곡도 그렇고... 또 다른 녀석이 하나 있는 데 그 녀석도 제가 참 좋아합니다...(곧 연재를 할 것이여요.)
뭐... 꾸준히 댓글 써 주시고 암호닉 해 주신 분들께 바치는 소설을 두 개 쓰고...
그 다음에 단편 하나정도 쓰고
다시 연재를 해야겠죠?
어쨋든 조회수가 1 이라도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뭔가를 창작하고 써야한다고 생각해영.
제가 재밌어서 하는 거니까...ㅎㅎ
그치만... 요즘 너무너무 바쁘다는...ㅜ.ㅜ....................
진짜 미칠듯이 바빠서 잠도 하루에 2시간씩 혹은 4시간씩 쪼개서 자기도 하지만...
저는 잉피이 좋고... 여기 댓글 쓰고 피드백 가능한 시스템도 좋고...*^^*
큰 일 없는 이상 계속 연재를 하겠습죠라잉???
잉피도 컴백을 했고~ 하니까 다들 열심히 살아 보아요~
끝이 뭐 이런 지 모르겠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후기를 남겨 보고 싶어서~
혹시 제가 쓴 것들에 대해 내용적으로나 뭐라도나 궁금한 게 있음 댓글로 달아 주떼영~
P.S
아 그리고 텍파니 뭐니 그건 뭔가요ㅜㅜ?? 뭐 어떻게 하는 건지...?????????? 해 달라는 분이 몇 있으셨는데
뭔지 모르니 뭘 할 수가.....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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