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너가 백현이야? 반가워. 종인이가 집에 친구도 데려오고! 처음이야."
들떠있는 형을 지나쳐 방으로 가려는데 백현이가 손을 잡아 멈춰세웠다.
"안녕하세요 형. 저도 뵙게되서 반가워요."
예쁘게 웃는 백현이는 좋다. 형이 하얗게 웃는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아, 방에 들어가 있어. 형이 맛있는거 해줄게! 종대도 곧 올건데."
형이 급하게 부엌으로 향한다. 작은 뒷모습이 백현이를 닮았다.
"너네형 되게 좋으시다."
"...응."
좋은사람. 그런 말로 형을 표현 할 수 없다. 김종대와 내게 신보다도 절대적이고 강한 존재가 형이다. 희생으로 점철된 사람.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백현이는 특별할 것도 없는 방안을 쉴새없이 둘러보고 있었다.
"종인아."
아, 백현이가 내이름을 부를땐 누군가 몇초전이라도 미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침을 한 번 삼키고 백현이를 바라봤다.
"대답 안해?"
조금은 장난스럽게 얼굴을 구기며 말하는 백현이에게 조그맣게 응. 하고 대답했다.
"내가 왜 좋아?"
처음부터 나를 끌었던 너의 작은 등. 서서히 고개가 들리며 나를 바라보던 아이같이 맑은 눈. 그리고 나를 향해 이렇게 말했잖아.
여기 있어. 라고
소리내 말하지 못하고 그저 백현이를 바라봤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그냥..너니까."
그건 변백현의 등이었으니까. 변백현의 눈이었으니까. 너의..목소리였으니까.
백현이가 다가와 내등을 감싸안았다. 말없이 조금은 길게 이어진 시간있지만 나는 그 누구의 품보다도 깊은 포근함을 느꼈다.
너를 지키겠다 했지만 사실 너의 품에 기대 쉬는건 나다.
"종인아-백현아-나와서 떡볶이 먹어."
형의 조금 큰 부름으로 백현이는 내게서 떨어졌다. 가볍게 돌려지는 몸이 아쉽다. 부엌 식탁에 앉아 형이 접시에 담은 떡볶이를 먼저 입에 넣고있던
백현이가 눈을 휘며 나를 재촉했다. 빨리 와 종인아! 진짜 맛있다.
"백현이 잘먹네. 종인이랑 종대는 해줘도 몇개 먹다 마는데.."
"왜요? 저는 이런거 맨날 먹어도 안질릴것 같은데!"
"형 진짜 기분좋다. 자주 놀러와 백현아."
형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집에서 하는 말이라곤 그저 돌아왔음을 알리는 짤막한 겉치레뿐인 나와 김종대와는 다르게 살갑게 구는 백현이 어지간히
맘에 드는가보다. 자리에 막 앉으려는데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어! 종대 왔나보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백현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열심히 포크질를 하는 모습에 살짝 웃음이 났다. 거실에서는 형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방으로 향하려는
김종대를 기어코 부엌으로 데려오나 보다.
"백현아. 인사해! 얘는 종대라고 같은 학굔데 알아?"
형은 내 동생이라며 소개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백현이를 쳐다봤다. 포크를 떨어뜨렸다. 백현이가.
"..얘를 김종인이..데려왔다고?"
"어?..응. 종인이가 처음으로 반친구를 데려왔는데..아는 사이야?"
"...아니."
"그래..?"
"쟤랑 무슨 사이..이딴거 아닌데."
명백한 적대감이다. 김종대가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종대를 제일 잘 알고 있다. 이유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야."
나를 부르는건지 백현이를 부르는건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을 바란 부름이 아니다.
"개수작말고 꺼져라."
백현이가 급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잡을 새도 없이 현관으로 달려갔다. 곧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일인지 깨닫기도 전에 김종대가 말을 이었다.
"상종도 하지마 미친새끼야."
"....뭐?"
"박찬열도 저년때문에...."
"....."
"...됐다. 니가 그런다고 들어쳐먹냐."
무슨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형은 그대로 굳어 나와 김종대를 바라보기만 했고 김종대는 곧 뒤를 돌아 부엌을 빠져나갔다.
아, 백현이 가방이 내방에 그대로 있다. 내일 아침 일찍 백현이네 집으로 가야겠다. 가방을 매지 않으면 혼나니까.
아직 동도 크기전에 집을 나섰다. 백현이의 가방을 등에 맨채로. 조금은 가파른 언덕을 올라 어제 백현이가 일러준 집앞에 섰다. 작고 허름하지만
백현이와 어울리는 빛이 드는 그런 집. 크레파스 낙서가 가득한 낮은 벽에 기대 기다리다보니 해가 뜨고 있었다. 꽤나 오랜시간이 지난것 같은데.
그때 대문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벽에서 몸을 뗐다. 한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이제 가 빨리."
"아 존나 아프다니까?"
"그래도 빨리가. 밤새 너때문에 내가 더아파."
"그래도 나 대단하지 않냐."
"뭐가 또. 빨리 가라니까?"
"이렇게 아픈데 어제 네번했어."
뭘 했다는거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박찬열같은데. 밤새 둘이서 뭘 했나보다. 박찬열은 백현이에게 화가 나있는게 아니었나. 아닌가.
대문이 열리고가장 먼저 날 발견한건 박찬열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백현이까지.
"조..종인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백현이는 아침에 봐도 예쁘다.
"일찍...왔네?"
".,주번..이니까."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나와 박찬열을 번갈아보던 백현이가 곧 내 팔을 잡았다. 들어와서 기다려 종인아.
백현이가 이끄는대로 대문안으로 발을 들였다. 문이 닫히고 박찬열도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백현이는 계속 손을 부여잡고 나를 쳐다보았다 이내
바닥을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왜그러지.
"종인아..그게 찬열이는..어제..내가..오지말라고..그게.."
"...백현아."
"..응."
"어제..가방 두고 갔어."
아. 짧게 탄식하던 백현이가 멍하니 내등에 매인 자신의 가방을 쳐다봤다.
"...나 여기서 기다리면 되..?"
나를 빤히 쳐다보던 백현이는 곧 어제처럼 다시 웃었다.
"응."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다른데 보지도 말고.."
"나만..기다리고 있어."
알겠어 백현아. 그렇게 할게.
김종인이 친구를 데려왔다고 들뜬 형의 목소리가 아직도 들린다. 변백현. 그 축처진 눈꼬리에 뭘 숨기고 다니는지 모르겠지.
박찬열은 사실 잘 알지 못한다. 쉽게 소문에 의해 누구를 판단하지 않는다.
오세훈을 만나기로 했다. 멀리서 보이는 모습에 아무렇게나 바닥에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샛노란 머리가 보인다.
"또 길바닥에 앉아있냐?"
"야."
"왜 새끼야."
담배를 하나 꺼내물더니 내게도 권한다.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수인이가 싫어해서 끊으려고 했는데 안되겠다.
"김종인이."
"엉."
담배를 입에 매달고 눈을 가늘게 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오세훈이 말을 잇지 않는 나를 힐끗 쳐다봤다.
결국 손으로 담배를 옮겨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재촉한다. 김종인이 뭐.
"변백현..을 집으로 데려왔어."
"뭐?"
"김종인이 집으로 데려온거면 말다했어. 이거 어쩌냐."
오세훈이 하. 내뱉듯 웃으며 담배를 깊이 한모금 마셨다. 담배를 말아쥔 손으로 이마를 두어번 만지더니 말을 이었다.
"널 봤어?"
"어, 보더니 존나 도망치던데."
"와 나 씨발. 그래서. 그걸 그냥 뒀냐?"
"너나 나나 어차피 변백현이랑 다를거 없이 한번 해본거고."
"...."
"김종인은 아니야."
김종인은 우리와 다르다. 그새끼는 오로지 하나밖에 모른다. 눈앞에서 변백현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모습이 보여도 그를 숨겨 품어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할 새끼다. 변백현은 영악하다. 며칠만 지나보면, 아니 이미 알고 있을지도.
김종인이라는 보호막을 얻었으니 변백현에겐 이제 거칠 것이 없을것이다. 변백현 자신이 가졌던 그 어떤 방어벽보다 높고 견고한 것을 알것이다.
변백현은 뱀이다. 아주 얇고 가는. 보이지 않게 가장 깊은곳까지 닿아 홀린다.
오세훈도 나도 변백현이 놓은 덫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했다. 박찬열은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마 나도 오세훈이 아니었다면 아직까지 변백현의 종이기사 노릇이나 하고 있었을지도.
김종인이 위험하다.
(종인 과거는 이어집니다.)
"김종인이 아직도 그대로일것 같냐?"
응. 김종인은 영원히 안변해. 내가 알아.
"아무리 너한테 미친새끼라도 씨발 인간이라면."
박찬열...너 어떡해?
"너 죽이고 싶을것 같은데."
김종인이 돌아왔대.
재밌다. 그렇지?
이제 내가 너한테 안매달리면 너 어떡하지 찬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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