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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
왜 죽였어요?
W. 뽀베
'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7월 12일 오늘 오후 9시 경, 집 안에 시체를 유기하고 스스로 신고를 한 범인이... '
형사님, 이 새끼 도통 입을 열지를 않는데요. 호석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윤기에게 속삭였다. 방금 전까지 심문실에서 범인과 같이 있던 호석 또한 큰 수확를 얻지 못한 모양이었다. 벌써 여러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 형사, 심리 상담가 등 그 직업 또한 다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째 범인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찰 측에서 제공해주는 밥까지 마다하며, 며칠간 밤을 샌 것이 피곤하지도 않은지 범인은 여전히 제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창을 통해 심문실 안의 범인을 바라보던 윤기는 제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겼다.
도대체 자기 스스로 신고를 하고서 입을 열지 않는 심보는 무엇일까. 윤기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범인의 행동을 관찰했다. 관찰이란 말이 부끄럽게 범인은 부동 자세였다. 잡혀온 그날부터, 범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심문실에 앉아 며칠을 보냈다. 처음에는 쉽게 끝날 사건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던 형사들 또한 위에서 내려오는 압박에 점점 애가 타고 있었고. 제 혀로 입술을 축인 윤기가 걸음을 옮겼다.
" 형사님이 들어가시게요? "
" 어. "
" 에이, 소용 없다니까요? 저 새끼 저러다 망부석 돼서 죽어도 아무도 안 놀랄걸요. "
호석이 윤기를 졸졸 따라오며 말을 걸었지만 윤기는 묵묵부답으로 심문실의 문을 열었다. 끊임없이 조잘거리던 호석의 입이 굳게 닫혔다. 오늘 밥 안 먹을 거니까, 또 시켜놓지말고. 호석을 뒤로 한 채 담담히 말한 윤기가 심문실의 문을 닫았다. 윤기의 말에 무어라 대답하려던 호석은 단호히 닫혀버린 문에 신경질적으로 뒤돌았다. 저 새끼 진짜 입 안 연다니까. 호석이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려 닫혀버린 심문실의 문을 빤히 쳐다보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 이름, 전정국. 나이는? "
심문실 책상에 놓여진 프로필을 들어 훑어보던 윤기가 손가락으로 정국의 이름을 쓸며 고개를 들었다. 윤기가 심문실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따라온 시선은 여전히 끈질기게 윤기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볼 땐 유해보였는데, 생각보다 살기를 가진 눈빛이었다. 제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정국에 윤기가 미간을 구겼다. 나이. 재차 질문했지만 정국은 윤기를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 몇 살이나 쳐 먹었냐고. 그거 대답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
" ... ... "
" 너 그렇게 사회 생활하면 좆 돼, 알아? "
" ... ... "
" 내가 이미 존나게 겪어봤거든, 그거. "
" ... 거기에 쓰여있잖아요. "
" 어린 놈이 싸가지 없게. "
제 손바닥으로 고개를 괸 채 윤기가 나른히 정국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험한 말투로 말이 나갔다. 그런 제 말투에 정국은 눈을 치켜뜨더니 반항적으로 대답했다. 스물 밖에 안됐으면서, 어른한테 버릇이 없네. 윤기가 다시 프로필로 눈을 돌린 사이 정국은 그런 윤기를 노려보았다.
프로필을 보니 더 골 때리는 놈이다. 지금까지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고, 가족 관계도 원만할 뿐더러 착실하게 살아온 새끼가 왜, 그것도 살인을. 학벌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곁눈질로 살핀 얼굴 또한 반반한 편이었다. 쓸데없이 완벽한 놈일세, 이거. 윤기가 답답한 듯 제 뒷통수를 박박 긁었다. 정국의 신상 정보를 보아봤자 도움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힘이 실린 손으로 투박하게 프로필을 내려놓은 윤기가 짧게 한숨을 토해냈다. 원체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워낙 저런 놈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 왜 죽였어? "
" ... ... "
" 아, 너무 많이 들은 질문이라 식상한가. "
" ... ... "
" 그럼 난 좀 색다르게 해볼게. "
" ... ... "
" 왜 자수했어? "
" ... ... "
" 아직 스무살 밖에 안 쳐 먹었잖아, 너. 남은 인생 좆같이 살거야? 네가 살아야 할 인생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나 알아? 최소 60년은 남았어. 인생 반도 안 살았다고. "
" ... 무서워서. "
묵묵히 침묵을 유지하는 정국이 답답했는지 윤기가 말을 빠르게 토해냈다. 원래 범죄자를 혐오하지만, 어딘가 안타까웠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애처롭게 CCTV를 바라보던 눈이 잊혀지지를 않았다. 몇날며칠을 가만히 앉아있던 것은 정국 뿐만이 아니었다. 윤기 또한 정국이 잡혀온 그날부터 기본적인 생활들을 마다한 채 정국을 보기 바빴다. 그러다 발견한 정국의 눈은, 또다시 상기되는 장면에 윤기가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가시가 돋혀 쏟아낸 말은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제 말을 다 듣긴 들었는지 정국이 작게 대답을 했으니까.
무서워서. 짧은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에 퍽 박혔다. 이제서야 제대로 본 정국의 눈에는 살기 뿐만 아니라 두려움 또한 담겨있었다. 살기로 숨긴 두려움은, 그 안에 자리한 어린 아이는 벌벌 떨고 있었다. 어떤 것이 이 아이를 겁 먹게 만든걸까. 정국의 말을 들은 뒤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을 서로 마주보다 윤기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뭐가 무서웠는데. "
" ... 그냥, 다. 다요. "
" 다? "
" 그 상황 자체가 다... 무서웠어요.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
" 그래서. "
" 무서워서, 경찰한테 전화를 했어요. "
" 그 후로는 이렇게 된 거다. "
" ... 네. "
더듬거리며 열린 정국의 입에선 두서없는 말들이 내뱉어졌다. 덤덤한 척을 하는 목소리 속에서는 정국이 떨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랬구나. 윤기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법적으로는 성인이었지만 스물은 아직 완벽한 어른이 아니었다. 스물이 훨씬 넘은 이들 중에도 완벽한 어른들이 없는 마당에, 정말 스무살은 어떻겠나. 어린 아이같은 정국의 모습에 윤기는 입 안이 텁텁해짐을 느꼈다. 입고 있던 후드의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낸 윤기가 정국에게 내밀었다. 필래? 윤기의 물음에 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안 좋은 건 늙은 놈이 다 하고 뒤지지, 뭐. 라이터를 마저 꺼낸 윤기가 제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저기 금연이라고 쓰여있는데. "
" 사람 죽이는 것도 법으로 금지잖아. 너나, 나나 마찬가진데 뭘. "
"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
" 그럼, 왜 그랬는데. "
고개를 흘끗 돌려 심문실 내부의 벽에 붙어있는 금연이란 팻말을 본 정국이 윤기를 향해 말했다. 제 흰 손가락에 담배를 끼워 연기를 내뱉는 윤기에 정국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무심히 튀어나온 윤기의 말에 정국은 그나마 풀어졌던 표정을 무섭게 굳혔다. 조금 전과는 달리 제법 빨리 튀어나온 대답에 윤기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정국이 볼 새라 재빨리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정국에게 되물은 윤기가 얼마 피지 않은 담배를 책상에 비벼 끄고는 정국과 시선을 맞췄다. 정국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아직 무리인가. 제가 끈 담배 탓에 검게 그을린 부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던 윤기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 이야기가, 길어요. "
" 그 이야기 다 들어줄 시간은 돼, 내가. "
" ... ... "
" 형사라고 해서, 다 바쁜 건 아니거든. "
" ... 정말이죠. "
" 어차피 들어야 하기도 하고, 말해봐. "
하아. 한숨부터 내뱉은 정국이 조심스레 제 얼굴을 들었다. 입술을 앙 다물며 고민을 하던 정국은 결심한 듯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 사귀던 사이였어요. 걔랑, 나랑. "
꽤 덤덤히 나온 첫 문장을 시작으로, 정국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너와 나는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다. 항상 좋은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네가 내 눈에 깊게 들어찬 건 평소와 다를 바 없던 중학교 시절의 어느 하루였다. 언제나 그래왔듯 우리는 함께 하교를 하고 있었고, 같은 반이 아니었던 탓에 수업이 모두 끝나고서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던 너의 얼굴에는 왜인지 고민이 가득했다. 나와 함께 있을 때면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짖궂은 장난을 쳐오기 바빴던 너이기에, 걱정이 되어 너에게 물었었다.
" 무슨 일 있냐? "
" ... 아, 진짜 말해도 되나. "
" 말해봐. 너랑 내가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
" 나, 좋아하는 애 생겼어. "
꽤나 단호한 표정으로 내뱉은 너의 말은 순전히 아프다거나 등의 말을 기대했던 나에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워낙 이성에 굼떴던 너였고, 가끔 너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네게 고백을 해올 때면 미안한 얼굴로 거절을 하기 일쑤였으니까. 그런 너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니. 나는 너의 오래된 친구였고, 가족과도 다름 없는 사이라 생각했기에 당연히 축하해주어야 할 일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어왔는데, 네 입을 통해 직접 들은 말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답답했다.
그 순간에서는 너에게 단순한 응원의 말을 건넸지만 너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후 피어난 이상야릇한 감정에 한참을 고민했다. 대체 이 감정이 무엇일까, 하며. 수없이 든 생각들 중에서는 내가 너를 좋아하고 있다,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너를 친구로만 여겼었기에 그 생각을 바로 무시했고, 후에 나는 이때 그 생각에 더욱 가능성을 두었어야 한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네가 좋아한다고 내게 고백했던 아이는 나의 친구였다. 엄청 친한 것은 아니었어도, 같이 노는 그런 친구. 서로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성격이 나빴던 친구도 아니었기에 잘 지내왔던 관계가 네 말을 들은 이후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 친구의 얼굴을 보기가 꺼려졌고, 가끔 네가 그 친구와 둘이 있는 것이 못마땅해 끼어들 때도 있었다. 별로 말을 많이 하던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가시 돋힌 말들을 툭툭 내뱉었다. 그것을 참다 못해 그가 내게 불만을 표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짝사랑은 쉽게 끝났다. 내게 그 사실을 고했을 때는 마냥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너의 감정은 빠르게 식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여전히 좋아하냐는 내 물음에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부터 알아봤어야했나. 너는 무언가에 빨리 질려버리고, 쉽게 감정이 식는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중학교를 졸업했고, 우리는 또다시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네게 내 마음을 고백하게 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너와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그 흔한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상태였다. 누군가 우리에게 그 이유를 물을 때면 너는 관심이 없다 말했고,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며 말을 돌렸다. 그러던 우리의 사이는 만우절을 이유로 한 너의 장난에 의해 허무하게 전개되었다. 네가 그 친구를 좋아한다고 선언했던 그때처럼, 너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턱대고 새벽에 나를 불러낸 너는 한숨만 폭폭 내쉬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 나, 유학 가. "
" 그게 무슨 소리야. "
" 외국으로 간다고, 나. 언제 올 지도 몰라. "
" ... 정말이야? "
만우절인 것을 아직 몰랐던 나는 너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내 말에 너는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상황과 감정들이 겹쳐져 하나의 답을 만들어냈다. 고백,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곧 떠날 너를 잡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내 마음을 숨기기엔 내 스스로가 괴로웠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제 집으로 돌아가려는 네 어깨를 잡아세웠고,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게 내 마음을 고백했다.
" 좋아해. "
" ... ... "
" 오래 전부터, 많이 좋아했어. "
" ... ... "
" 안 받아줘도 상관 없어. 그냥, 그냥 알아줘. "
알아달라는 말을 끝으로 나는 뒤돌아섰다. 네가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청승맞게도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었기에 네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뒤돌아 걸었다. 너는 나를 잡지 않았다. 이대로 정말 우리의 관계는 끝이구나. 절망적인 마음이 더해져 어깨를 들썩였다. 그렇게 추하게 울면서 걷기를 잠깐, 너는 급히 달려와 내 허리를 껴안았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잡다니. 너무 놀라 흐르던 눈물도 멈추었다. 숨이 차는지 너는 미약하게 몸을 들썩거렸고, 나는 동상처럼 굳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전정국, 멍청아! "
" ... ... "
" 그렇게 말하고 가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
" ...? "
" 나도, 나도 너 좋아한단 말이야... "
네 말에 나는 바로 몸을 돌렸다. 방금 전의 나처럼 너는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흐느끼며 우는 너를 내 품에 꼭 안은 채 달래주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연애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분홍빛이었다. 모든 것에 웃음이 났고, 모든 것이 다 행복해보였다. 너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후의 내 감정이 그랬다. 너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났고, 너는 보면 볼수록 예뻐서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토록 잡고 싶었던 너의 손을 잡고 데이트도 했고, 연애를 시작한 지 몇개월이 지나서는 심장이 너무나 빨리 뛰어 터져버릴 것만 같았던 입맞춤도 했다. 우리는 그렇게 행복했다. 영원하기만 할 것 같던 1년이 지나가고, 우리는 점점 더 기울어가기 시작했다.
체육계였던 나와 달리 넌 인문계였다. 그랬기에 더욱 치열했고, 더욱 노력하며, 더 힘들어했다. 그런 네가 안쓰러워 너를 품에 안아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면 너는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수능을 보고, 우리가 스무살이 된다면 다시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11월이 다가올수록 너는 예민해졌고, 내 품에 안겨 위로 받던 너는 아예 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너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수능이 끝났고, 긴장이 풀려버렸는지 까무룩 정신을 놓아버린 너를 업고 병원으로 갈 때 나는 너를 볼 수 있었다.
고3이라는 관문이 끝난 후에는 다시 괜찮아질 것이라 믿어왔다. 내 생각대로 우리의 관계는 그 전처럼 호전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과는 무언가 달랐고, 서로에게 불안이라는 싹이 틔워져 싸움을 하는 나날이 잦아졌다. 서로의 마음이 꽁꽁 얼어 풀지 못한 채 불신의 뿌리만 깊어져 가던 참혹한 겨울이 끝나고, 너와 나는 스무살이 되었다. 기대했던 밝은 나날과는 영 차원이 다른 나날들이 진행되었다. 대학이 갈리고, 우리는 만남을 가질 때마다 말싸움을 했다. 감정의 골만 깊어가며 서로의 얼굴을 아예 보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 야, 전정국. "
" 왜. "
" 저거 네 여친 아니냐? "
" ... 뭐?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 너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전전긍긍하던 그 순간, 친구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친구의 말대로 너는 나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와. 그 모습을 본 나는 목에 큰 돌이 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품어간 것은 맞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고. 나는 너를 여전히 사랑했고, 너 때문에 애를 태웠으며, 너 때문에 속이 상했다. 너를 미워하고도 좋아했다. 나는 아직 네가 필요했다. 그러나 너는 나와 전혀 달랐다. 너는 시종일관 나에게 냉한 태도를 보였고, 나와는 말도 하기 싫어했으며, 아예 나를 거부하려 들었다. 그런 네가 내게 정말로 마음이 식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너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너에 대한 감정을 알았던 그날처럼,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웃으면서 너를 놔주어야 할까. 하지만 내게는 그렇게 할 자신이 없었다. 아직 나는 너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기에, 내 마음은 식지 않은 상태였기에 너를 보내주기엔 무리가 있었다. 허나 너를 보내주지 않는다면 너도, 나도 서로가 괴로울 걸 알았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감정의 굴레에 갇힐 것이고, 우리의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새벽을 지새게 만든 고민의 결론은 하나였다. 어떻게든 너를 놔주자는 것.
결론을 내렸지만 너와 직접 대면하여 말을 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너를 발견했던 그날 이후로도 너는 연락이 없었다. 나 또한 네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연락이 끊기고, 결론을 내린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야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는 정말 우리 사이를 끝내야겠다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네게 연락을 했다. 너도 생각보다 오래 연락을 하지 않았던 네가 나름 걱정이 되었었는지 다행히도 금방 답장이 왔다. 너와 약속을 잡고 집을 나서는 길, 항상 기대를 하며 나섰던 길이었는데, 무거운 발걸음은 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오랜만이다. "
" ... 응. "
" 잘 지냈어? "
" 할 말 있다며. 할 말만 해. 나 바빠. "
" ... 뭐 때문에 그렇게 바쁜데. "
" ... ... "
" ... 하나만 물어볼게. 난 너한테, 대체 어떤 존재야?"
" ... ... "
" 나를 정말 좋아하긴 했어? "
" 처음엔... 진심이었어. "
처음엔. 네 말에 내 가슴 속에 큰 바위가 턱, 내려앉았다. 그랬구나, 처음엔 그랬구나. 그래도 진심이었던 적이 있긴 하구나. 네 말을 끝으로 너와 나는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네게 언제나 진심이었는데, 너는. 너는 처음 이후로는 내가 우스웠던걸까. 한숨만 내뱉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 너를 내려다보았다. 항상 당당하게 내게 따지기만 했던 네 모습이 그날따라 초라해보였다. 작아진 네 모습이 죄인같아 보이기도 했다.
" 나한테 미안하긴 해? "
" ... ... "
"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넌. "
" ... ... "
" 마지막으로 하나만, 하나만 더 물을게. "
" ... 뭔데. "
" 그 남자 누구야. "
네 말에 너는 놀란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허탈한 웃음이 잇새를 비집고 튀어나왔다. 네 눈빛이 흔들렸고, 네 몸이 흔들렸다. 그건 어떻게... 심하게 말을 더듬는 네 모습을 보자 그나마 좋았던 감정은 모두 사라졌다. 오로지 분노와 원망 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너에겐 내가 광대에 불과했구나. 너의 눈을 집요하게 따라갔지만 너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의 눈을 피했다. 정말, 끝까지 넌.
" ... 씨발. "
" ... ... "
" 내가 존나 우스웠겠네. 이미 넌 볼 재미 다 봤는데, 혼자서만 끙끙 앓고. 안 그래? "
"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정국아. "
" 내 이름 부르지마. 좆같으니까. "
" 내가 다 설명할게. 그러니까, 응? 미안해. 미안해, 정국아... "
냉정하게 뒤돌아선 내 허리를 너는 끌어안았다. 우리가 처음으로 행복하기 시작했던 그날과 오버랩이 되어 복합적인 감정이 휘몰아쳤다. 우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울컥 올라오는 눈물과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며 내 이름을 불러오는 너였지만, 야속하게도 내 화는 끓어넘쳐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네가 내 등에 얼굴을 묻고 몸을 벌벌 떨 때, 나는 몸을 돌렸다.
" 네가 어떻게, "
그날과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 그럴 수가 있어. "
증오에 가득 차 너를 바라보며,
" 나는 널 사랑했는데! "
내 눈 앞에서 겁 먹은 모습으로 떨고있는 너를,
" 나는 아직도 널, "
너를, 네 목을,
" 씨발, 미련하게 좋아한다고. "
졸랐다.
너는 크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광기에 사로잡혀 네 목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너는 빨개진 얼굴로 다급히 손을 들어 나를 밀어내려했지만 이미 반쯤 미쳐버린 나에게 네 힘은 통할리가 없었다. 소리를 지르려 연 네 입에서는 쇳소리 밖에 나오지 않았고, 너는 결국 눈을 감은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예쁘다, 참 예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너는 마지막까지 예쁘구나. 나는 힘을 풀지 않은 채 울부짖었다.
" 난 너를, 사랑해. "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너는 갸냘픈 모양새로 고개를 푹 숙였다. 네 목이 꺾여버리자 놀란 나는 그제서야 네 목에서 손을 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걸까. 네 집 앞 골목엔 아무런 인적도 없었다. 원래부터 흐르던 눈물에 죄책감이 더해졌고, 내가 손에 힘을 풀자 벽으로 털썩 힘없이 쓰러져버린 네 몸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나는 공황상태가 되어 머릿 속이 하얘졌고, 이제는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온기조차 없는 네 몸을 끌어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아무리 울부짖고 소리 쳐봐도 너는 돌아오지 않았다.
너는 죽었고,
내가 너를 죽였다.
*
미동도 없이 앉아 정국의 말을 듣던 윤기는 끝내 눈을 감아버렸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무것도 없었다. 괴롭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 정국에게 위로를 해줄 수도 없었다. 깊게 한숨을 토해내고 천천히 눈을 뜬 윤기는 흐느끼며 울고 있는 정국의 모습을 제 눈에 담았다. 정국은 서럽게 울고 있었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처럼 그렇게 울고 있었다. 겨우 제 팔을 들어 정국에게 뻗으려던 윤기는 다시 제 손을 내려놓았다.
" ... 이젠 다 끝났어. "
" 저, 아니, 나도 이제 죽는 거예요? 그 애를 죽였으니까, 나도 죽어요? 잘못했어요, 형사님. 나도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생각나는 게 아무 것도 없고, 형사님. 형사님, 나 어떡하면 좋아요. "
비극적인 희극의 결말은 참혹했다. 희극의 주인공인 광대는 자신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미쳐 살인을 저질렀고, 제 가면을 벗은 채 울고 있었다. 그런 광대를 지켜보는 관객은 말없이 답답한 가슴을 부여잡았다. 광대의 울부짖음을 듣던 관객은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 객석에서 일어나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공연장에는 여전히 오열하고 있는 광대가 남아있었고, 그런 광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새로운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
" 형사님, 걔 기억해요? "
" 누구. "
" 걔 있잖아요, 형사님이 자백 받아냈던 애. "
" ... 아. "
" 교도소 독방에서 자살했대요. "
" ... ... "
" 솔직히 어린 애가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살겠어요. 어휴, 사랑이 죄악이지. "
" ... 언제 죽었는데. "
" 며칠 전인가, 얼마 안됐어요. 아무튼 나는 이래서 사랑을 못하겠다니까. "
" 지랄 마, 그냥 못하는 거겠지. "
" 아, 형사님! "
혼자서 종알대며 잘도 떠들어대던 호석의 머리를 헝크러뜨린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그렇게 됐구나. 씁쓸함을 입 안에 가득 머금자 텁텁하기만 했다. 담배라도 피어야겠다. 금연구역이라고 말했던 흰 얼굴이 아직도 선명했다.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입에 물고 걸어가는 윤기의 뒤로 호석이 소리쳤다.
" 형사님! 점심은요! "
너나 먹어라. 난 생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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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면서 왜이렇게 칙칙한 글로 왔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네요.. 제가 저번편에서도 말했듯이 멤버별 단편 시리즈물은 거의 완성이 되어가고 있었는데 말이죠 음 지민이 글이 날라갔... (오열) 그래서 일단 어제 급하게 쓴 글로나마 여러분을 위로해드리기 위해 왔어요! 사실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빨리 오고싶어서 막무가내로 와버렸네요ㅠㅠ 글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엉엉 아 참 그리고 학클이! 드디어! 돌아왔더라구여! 완전 신남! 여러분 학클 보세여 두 번 보세여ㅠㅠㅠㅠㅠㅠ 어쨌든 저는 이렇게 물러갑니다 조만간 다시 돌아올게요! 암호닉 설날 침침 은하수 카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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