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ㅠ대신 분량은 오늘 2배 가까이 늘였어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w. Claire |
18세기 지구와는 분리된 별개의 세상이 있었다. 에덴(the garden of Eden), 천사와 악마만이 살아가던 낙원에 분열이 생겨버렸다.
장담컨대 자신과 자신을 이 성으로 인도한 카이, 그리고 카이의 품에 안겨있던 흔치 않은 페이스의 남자와 백호답지 않게 낑낑대던 작은 생명체를 제외하면 이 웅장한 성 안에 더 이상의 생명체는 없을 것이라고 세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암묵적으로 방에 갇히듯이 한 이후로 외로움과 무료함에 지친 몸을 침대에 늘어뜨린 세훈이 괜시리 짜증을 부린답시고 시트를 벅벅 긁어댔다. 생각해보면 몸이 춥거나 더워서 힘든 점은 없었다. 더우면 더운 대로 짜증이 나고 추우면 추운 대로 짜증이 나 예민하기로는 둘째라면 서러운 세훈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카이가 내어준 이 방에선 불쾌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또 생각하자면 입을 옷도 많았다. 마주칠 누군가도 없는 이 성에서 굳이 자신의 취향을 고집한다거나 멋을 부릴 생각도 없었건만 옷장을 열면 까다로운 세훈의 입맛에도 꼭 들어맞는 옷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생각하자니 조금 이가 갈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놈의 스파게티, 카이는 음식이라곤 스파게티 밖에 모르는 건지 매 끼 마다 스파게티를 가져다주곤 쏜살같이 걸어나갔다. 이젠 냄새만 맡아도 니글거리는 토마토 소스의 향에 세훈은 부러 식사를 걸렀다.
이런저런 경우들을 대입해봤지만 카이가 자신의 도움이 없다면 죽고 싶어질 만큼 자신을 필요로 할 이유는 없었다. 영생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2500년이 넘게 살아오고 있는 카이가 영생을 위해 애써 하등하게 여기는 변종악마가 될 이유도 없고, 조금 더 나아가자면 카이는 변종악마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하는 반려동물 또한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왜?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곤 온갖 말썽으로 에오스를 어지른 것 밖에 없으니 분명 카이의 의중의 관심은 유토피아의 연구 결과 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토피아의 연구 결과에서 변종 악마 생성을 제외하고 남는 건 한낱 에덴의 역사와 반란을 위한 여러 공격법들 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더욱 미궁으로 빠지는 느낌에 세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제제도 없었을 뿐더러 자신에게 거래를 요구하던 카이었으니 섣불리 자신을 죽일 리 없다는 판단으로 방 밖으로 나가볼 생각이었다. 문고리 근처에서 망설이듯 더딘 손길, 눈을 질끈 감고 세훈이 문고리를 돌렸다.
ㅡ아무도 없어요?
넓다란 성에 세훈의 목소리가 차차 퍼져나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떨리는 마음을 추스린 세훈이 성 안을 거닐었다. 길다랗게 뻗은 다리가 휘적거렸다. 바삐 고개를 기웃거리며 성 안을 둘러보는 눈빛이 호기심으로만 젖은 듯하면서도 어딘가 날카로움을 품고 있었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살펴봤지만 에덴에서 보아오던 여느 성들에 비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성이었다. 다만 무식하게 넓었고, 살아 움직이는 동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과거에도 다를 것 없었던 듯 성은 어쩐지 따뜻했지만 차가웠고, 정적인 느낌으로만 가득했다. 대체 여기 뭐야? 히스테릭한 짜증이 밀쳐 올라와 씩씩대는 세훈의 어깨에 차가운 손이 턱, 얹어졌다. 눈의 띄게 놀란 세훈의 뒤로 선명한 웃음소리가 퍼져왔다. 카이다, 잔뜩 긴장한 몸짓으로 고개를 돌린 세훈의 볼을 차가운 손가락이 꾹 눌렀다. 원래 성격이라면 한바탕 뒤집어놓을 세훈이었지만 입장이 입장이니만큼 티내지 않고 억누르고 있었다.
ㅡ재밌어요? ㅡ재밌어서 여기저기 헤집던 건 너 아니야?
나는 재밌어서 헤집던 게 아니라 뭐 좀 알아보려고, 억울한 표정으로 말을 잇던 세훈이 입을 다물었다. 정찰하려 했다는 말을 해서 좋을 건 없었다.
ㅡ불안해서 그러는데요. ㅡ전혀 겁먹을 것 없어.
어디 들어볼까? 매력적인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숨을 한껏 들이쉰 세훈이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예요. 그리고, 당신 말 빌려서, 당신의 목표에 반드시 필요한 도움이 뭔데요?
ㅡ그게 벌써 궁금해?
하긴, 이제 말할 생각이긴 했어. 듣는 사람이 없음에도 부러 세훈의 고개를 끌어와 카이가 세훈의 귓가에 사근사근 속삭였다. 이야기를 듣는 세훈의 동공이 일순간 크게 뜨였다. 위험한 생각이다, 위험한 거래임에 틀림없다. 들어줄 거지? 분명 일어날 폭풍 같은 일들이 눈앞에 선했건만 카이의 얼굴은 지나치게 평화로웠다. 대답을 바라는 아이같은 얼굴에 불복할 수 없음이 천추의 한이라고 생각하며 세훈이 어색하게 웃었지만 카이는 자신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다음 성 밖으로 걸어나갔다. 카이의 종적을 파악하기 위해 세훈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사라지고 난 이후였다. 발로 성의 바닥을 툭툭 치며 세훈이 한숨을 내뱉고 있을 즈음에 세훈을 윗층 난간에 몸을 기대고 서있던 경수가 눈을 쉴새없이 깜빡이며 바라보던 중이었다. 카이의 말대로라면 저 사람이 제 영생을 쥐고 있음이 분명했다. 저 사람이 영생을 주지 않으려 하면 어쩌지? 불안해하는 경수의 발치에서 얼쩡대던 백호가 순간 크게 짖었다. 야아, 백호를 나무라려던 경수의 눈과 소리에 움직인 세훈의 눈이 공중에서 마주쳤다. 조금은 먼 거리라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눈을 찌푸릴 법도 했으나 세훈은 어렵지 않게 경수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사라진 카이와 자신 빼고 사람이 더 있을 리가. 우물쭈물 머뭇대던 경수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ㅡ저기, 그러니까. ㅡ예?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계집애처럼 쪼르르 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하자 경수가 도톰한 입술을 오물거렸다.
ㅡ심심하면 나랑 놀아요.
간만에 네스토르 회의장에 불이 켜졌다. 3000여년 가량 네스토르를 등지듯 하고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백현의 취급 문제와 완성된 베아뚜스로 깨어난 찬열의 처우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회의의 중심에 선 백현이 손으로 빨개진 눈가를 세게 문질렀다. 끊임없이 백현만 바라보던 찬열이 그 손목을 쥐었다. 눈 상해요, 잡힌 손을 뿌리치려던 백현이 찬열의 얼굴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너 나 본 적 없어? 한 마디가 목에 걸려 백현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좀처럼 나오지 않는 백현의 목소리에 답답함을 느낀 찬열이 선수쳤다. 나보고 불쌍하다면서요, 찬열의 말을 들은 백현의 눈이 커다래졌다. 베아뚜스? 백현이 되물으려던 찰나에 눈부심을 수반한 집중조명이 찬열과 백현이 서 있는 자리에만 비추어졌고, 그를 제한 회의장의 불이 모두 꺼졌다. 회의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찬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백현이 결국 고개를 돌렸다. 가운데 앉아있는 장로대표가 입을 뗐다.
ㅡ백현은 돌아왔는가. ㅡ돌아왔습니다.
엄숙한 분위기가 회의장을 웃돌았다. 정자세로 선 백현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찬열 또한 불편한 자세를 유지했다. 대회의의 관례였다.
ㅡ도움이 필요하다고? ㅡ뻔뻔하다는 거 알지만, 필요합니다.
백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회의장이 한 번 크게 술렁댔다. 평소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음에도 초기 악마라는 네임벨류로 영향력이 강한 백현을 곱게 보지 않은 세력 탓이었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주제에, 대놓고 낄낄대던 이들이 백현의 눈초리와 장로들의 저지에 헛기침을 하며 몸을 수그렸다. 가만히 선 백현을 턱을 괴고 바라보던 장로대표가 아주 오랜 세월 전 어린 백현을 떠올렸다. 에덴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 몇 없던 악마들이 세력을 늘리기 위해 가이아에서 동족이 태어나길 고대할 때, 오랜만에 태어났었던 악마인 백현을 자신이 처음으로 네스토르에 이끌었었다. 제 손 아래에서 크며 아무것도 모를 적에는 이러마 저러마 하며 제 말이면 곧이 곧대로 들었었는데, 조금 크고 난 어느 순간부턴가 자신의 명은 등지더니 이젠 네스토르까지 등지려 하던 너를 어떻게 해야 하나, 정과 도리 사이에서 세월에 때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ㅡ물러날 겁니다. ㅡ뭐라고? ㅡ이번만 저를 도와주시면, 모든 힘을 놓고 물러나겠습니다.
백현의 포고에 다시금 회의장이 술렁였다. 이봐, 지금 내가 똑바로 들은 거 맞아? 한 악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백현에게 이죽였다. 찬열도 커다래진 눈으로 백현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다급한 일이기에 앞으로의 영생에서 누릴 수 있을 부과 명예를 모두 놓겠다는 걸까. 백현의 간절함을 맛보고 나서야 회의장이 침묵으로 가득 찼다. 한결 안정적인 표정의 백현이 웃었다. 우선 제 능력의 봉인을 해제한 후에,
ㅡ네스토르에서 가장 강한 것을 제게 빌려주세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가장 오래 살아온 장로에게로 닿았다가, 순식간에 찬열에게로 옮겨갔다. 어느 누구도 남은 영생의 안정성과 맞바꾸겠다는 백현의 요청을 기각할 수 없었다. 백현과 찬열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장로들을 향했다. 고개를 한 번 빙 돌린 장로 중 대표가 일어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들은 침묵을 지켰다. 회의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고 장로의 입에서 나올 결과만이 남았다. 그리고 결과 선언이 울려퍼졌다,
ㅡ네스토르에 해를 가하지 않을 것, 네스토르를 위해 살아갈 것과 집과 일부 재산을 제외한 네 권력을 모두 환원할 것, 그리고.
네 간곡한 일을 설명한다면 베아뚜스를 빌려주고 네 능력을 풀어주겠다. 나름대로 너그러운 판결에 이번엔 모두가 백현의 '간절한 일'에 관심을 보였다. 꽂히는 시선을 무시한 채 백현이 머릿속으로 경수를 떠올렸다. 너를 찾아와야 한다는 이유로 내 모든 권력을 버리겠다는 나를 내 동료들은 어떻게 바라볼까. 백현의 자조적인 웃음 이후에 이어지는 대답에 회의장의 화젯거리가 사그라들었다.
ㅡ천사 하나를 찾고 싶습니다.
더 말해드릴 건 없습니다. 혼자서 말을 끝맺은 백현이 찬열의 손목을 잡았다. 너 많이 컸다? 한껏 눈을 휘며 웃은 백현이 그대로 술렁이려는 회의장을 벗어났다. 먼저 나가버린 백현을 나무라려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앉아있는 회의장에서 장로들이 의자를 빼내는 소리가 울려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군거리던 모든 악마들이 빠져나갔다.
길다란 발톱 사이에 끼워진 빗자루가 위태로웠다. 낑낑거리며 열심히 빗자루질을 해보지만 이내 빗자루가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먼지에 고르고스가 눈물을 흘렸다. 켈록거리다가 결국 창고 청소는 포기하기로 한 듯 문을 닫고 성 중앙으로 나갔다. 몸을 부르르 털어내자 먼지가 휘날리다가 바람을 타고 사라졌다. 이처럼 사라진 주인을 대신해 준면과 몇 시간 내내 청소만 해댄 보람이 있는 듯 성 전체가 반짝였다. 티는 안 내지만 좋아할 주인을 생각하니 뿌듯해진 고르고스가 배를 앞으로 쭉 내밀고 손으로 슥슥 쓸었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침대 시트를 걷어서 들어오던 준면이 고르고스를 보고 웃었다. 청소 다 했냐? 바닥에 시트를 내려두고 확인차 창고로 들어간 준면이 순식간에 자신을 덮쳐오는 먼지바람에 휩싸였다. 눈물을 쏟으며 황급히 밖으로 나왔지만 준면의 표현을 빌려 주인을 닮아 얍삽한 고르고스는 자신이 팽개쳐둔 시트를 들고 침실로 들어가버린 이후였고, 이제 막 성에 들어선 듯 문 앞에 서있는 백현과 한 남자가 먼지를 뒤집어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못났다, 고개를 저은 백현이 웃었다. 준면이 억울함을 표할 새도 없이 찬열의 손목을 잡은 백현이 위층으로 사라졌다. 아씨,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낸 준면이 백현을 쫓아가려다 계단 앞에서 멈칫했다. 한 번만 봐준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준면이 무언가에 머리를 강타당했다. 아 존나 뭐야! 성 안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사이를 날아오르는 매 한 마리가 있었다.
심심하면 놀자는 말에 전혀 사양 않고 경수를 따라오긴 했지만 낯을 가리는 세훈으로서는 지금의 분위기 또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카이와 경수 외의 생명체가 신기한 듯 세훈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킁킁대고 냄새를 맡는 백호 또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스 마실래요? 주스도 있어요? 경수의 질문에 곧바로 반문한 세훈이 말을 접었다. 아니에요, 좋아하니까 그냥 주세요. 세훈의 반응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던 경수가 어깨를 으쓱이고 컵에 주스를 따랐다. 그런 경수를 지켜보던 세훈이 다시 혼자 툴툴댔다. 여기는 주스도 주나, 어깨 으쓱이는 건 카이한테 배웠나, 망글망글 피어나는 세훈 혼자만의 세계에 불쑥 주스를 쥔 경수의 손이 뚫고 들어왔다. 놀래라, 벌어지려는 입을 다물고 주스를 받아든 세훈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적당한 거리에 앉은 경수가 홀짝대며 주스를 마셨다.
ㅡ나는 세훈인데, 이름이 뭐예요? ㅡ아, 경수요.
이름이 경수구나, 제 말에 화들짝 놀라며 답하는 모양새가 어색했다. 답하고서도 베시시 웃는 웃음 또한 자신이 봐도 어색하게 보여서 세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카이의 보호 아래 있는 네가 나를 그렇게 어려워 할 필요가 있나? 카이의 부탁을 확인한 세훈이 경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매력이 그를 사로잡은 걸까.
ㅡ어려워하지 마요. ㅡ아니예요. 그냥, ㅡ이제 곧 우리 중요한 사이 될 건데.
그렇죠? 의미심장한 세훈의 물음에 경수가 말하려던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있었네, 여부를 떠본 세훈이 강아지같은 미소를 띄었다. 그러나 망설임이 없는 얼굴로 보아 그를 동반하는 대가는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누가 봐도 귀엽고 착하게 생겼을 경수의 얼굴이 세훈에겐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다. 본연을 알 수 없는 마음이 내면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대단한 카이가, 너를 왜 좋아할까?
ㅡ나한테 잘 해야겠어요. ㅡ네? ㅡ혹시 몰라, 내가 손이라도 떨면 경수 씨 죽을 가능성도 있는데.
제 말에 경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자 등에서부터 하얗고 반짝이는 날개가 돋아났다. 깃털이 사방에 하늘거리며 내려앉았다. 죄송해요, 나는 세훈 씨를 경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놀래서. 저 잘못이 아닌데도 겁 먹은 눈망울로 자신을 달래려는 모습 자체가 더 이상 재볼 것도 없이 확실한 천사였다. 순진하고, 솔직하고, 자신 보다 남을 위하는 전형적인 천사. 귀엽기는 하지만 카이가 너를 왜 좋아할까.
ㅡ농담이에요.
오늘 계획은 뭐예요, 카이랑 끌어안기? 겁 먹을 필요는 없어요. 나는 그냥 경수 씨 귀여워서. 웃는 얼굴로 나가는 세훈을 경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안심해도 좋다는 저 말을 정말로 믿어도 좋은 걸까? 거짓말에 익숙하지 못한 경수가 고개를 살살 저어냈다. 항상 솔직하게 자신을 대하던 백현의 말도 모두 사실이었을 거고, 겁 먹을 필요 없다는 저 사람의 말도 사실일 거라고 자기 자신을 애써 위안했지만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백호의 눈에 비친 경수의 얼굴은 부정할 수 없는 울상이었다.
조심성 없는 손길로 문을 닫고 선 세훈의 표정 역시 밝지만은 않았다. 내가 왜 그랬지? 전혀 잘못 없는 사람에게 이상할 만큼의 히스테리를 부렸다. 전혀 자신과 상관 없을 카이의 마음에 이상할 만큼의 집착을 보였다. 따져 물어 영생을 동경하는 것이 당연한 전형적인 천사인 경수를 몰아붙일 이유도, 경수를 좋아하는 카이의 마음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그 어느 이유도 없었다. 문에서 조금 떨어진 벽에 기대 선 세훈이 한숨을 쉬었다. 움직이던 시선이 아까 자신과 카이가 서 있던 성의 1층 중앙에 꽂히자 그 외의 감정들이 천천히 사그라들고 귓속에 속삭이던 차가운 입술의 감각만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ㅡ불안해서 그러는데요. ㅡ전혀 겁먹을 것 없어.
어디 들어볼까? 노련한 카이에겐 그래봤자 드러났을 경계심을 감춘 자신에게로 천천히 다가오던 얼굴. 아마도 에덴에서 가장 강할 존재.
ㅡ여기가 어디예요. 그리고, 당신 말 빌려서, 당신의 목표에 반드시 필요한 도움이 뭔데요? ㅡ벌써 그게 궁금해?
하긴, 이제 말해줄 생각이긴 했어. 카이는 항상 상대가 답답해 할 정도로 여유로웠고, 느렸다. 어쩌면 성급한 상대가 어설프게 숨기는 진심에 대한 확답을 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느리게 다가온 차가운 입김, 지금 실로 세훈을 자극하는 것이라곤 없었지만 세훈은 그 냉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을 떨었다.
ㅡ여기는 펠롭스라는 섬이야. 에덴의 남쪽에 있는 커다란 호수를 건너 위치하고 있어.
그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나 넓은 호수 너머에는 그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깬 첫 번째 충격, 그리고.
ㅡ영생을 불어넣어줘. 내가 아니라 그때 봤던 귀여운 남자애한테. ㅡ그 백호, 걔 반려동물 아니야? 그럼 죽어. ㅡ상관 없잖아?
두 번째 충격을 수반한 대답으로 세훈은 카이가 어쩌면 진실로 나쁜 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귀엽게 재롱을 부리는 백호가, 경수의 영생이 앗아갈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경수는, 카이가 환장하는 그 귀여운 얼굴로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세훈만의 세상에서 솟구치는 여러 호기심이 허공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로 인해 산산히 흩어졌다. 벽에 기대어 섰던 세훈이 느리게 고개를 돌린 끝에는 아마 경수의 방으로 걸어오고 있었을 카이가 있었다.
ㅡ왜 여기 있어? ㅡ……. ㅡ경수랑 놀았어?
고개를 끄덕이려던 세훈이 카이의 눈빛을 마주하고서 그대로 굳었다. 순수한 궁금함 외의 탐심 가득한 눈빛을 읽어낸 세훈이 고개를 저었다. 심심해서 돌아다녔어요,
ㅡ스파게티 말고 다른 거 좀 없나 찾아다닌 것도 같고. ㅡ스파게티 싫어? ㅡ싫으니까 다른 것 좀 줘요. 난 경수랑 입맛 다르거든요.
알았어, 그거 말고는 할 말 없어? 질문에 미련 없는 눈빛으로 카이를 지나쳐 몇 발짝 걸어가던 세훈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카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부동을 유지하고 있었다. 뒤돌아본 자신이 의외라는 듯 카이가 다시 자신의 호기심을 드러낼 때,
ㅡ할 말 남았어요. 나도 주스 마실 줄 알거든요? ㅡ방금 경수랑 입맛 다르다며?
아, 그냥 그런 줄 알아요. 콧잔등을 비죽이며 카이를 흘겨본 세훈이 다시 홱 돌아서 걸어갔다. 걸어가는 발걸음이 백현처럼 어딘가 쌀쌀맞았다고 카이는 세훈을 보며 상자에 예쁜 얼굴을 묻고 울던 백현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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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2감사하신분들+짤막한코멘트s2 |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맨처음프롤로그에첫댓글달아주시고항상기다리신다말해주시면서글업뎃할때마다꼭찾아와주시는제게있어미친존재감미카엘님ㅋㅋㅋs2 암호닉이없어서제대로불러드릴수가없어아쉽지만잘읽어주셨다는댓글달아주셔서한없이감사하고앞으로도잘읽어주세요좋은하루보내시길바라요독자2님s2 매일마다와서카디빙의를원하시는듯한니포님매장마다너무귀여우세요ㅠㅡㅠㅋㅋㅋ이번장에서도쏴주실하트기대하고있습니다늘찾아주셔서스릉흠드니포님s2 분량좀늘려달라는말로오늘저를폭풍글쓰기할수있도록만든덜자란왕자도경수님!(맞으시죠?)부족한팬픽이지만재밌게읽어주셔서감사하고있어요사랑합니다s2 꾸준히찾아와주시기쉽지않은데항상빠짐없이와주시는우리환자님!헐어감이쵸큼이상하기는하지만ㅋㅋㅋㅋ환자님도제가많이알랍하는거알죠사랑합니다많이s2 암호닉도너무귀여우시고매번남겨주시는코멘트도너무너무귀여우신우리됴르르님!항상즐겁게읽어주시는것같아서저너무기뻐요ㅠㅠㅠ진짜많이사랑합니다s2 저번장에서브금칭찬해주셨던독자7님ㅋㅋㅋ늘똑같은브금이라쓸때마다찔리는작가한테힘을주셔서감사합니다ㅠㅠㅠ재밌게읽어주셔서고마워요사랑합니다s2 비회원이셔서늘댓글내용뜨길기다리는즐거움을주시는빛나리님ㅋㅋㅋ비회원이라신알신도안떠서찾기힘드실텐데매번와주셔서더감사해요ㅠㅠ사랑합니다s2 역시비회원이신데늘어려운발걸음해주시는모바일님역시너무너무감사합니다5장도재밌게읽어주시고앞으로도쭉뵈었으면좋겠어요정말로ㅋㅋㅋ사랑합니다s2
고작짧은코멘트라너무너무죄송해요ㅠㅠㅠ진짜로제가아낍니다우리독자님들s2s2ss2s2s2s2s2s2s2s2s2 +오타는복붙아니라는증거..ㅁ7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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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설명 |
4장은 별로 설명해드릴 게 없는 것 같아요ㅋㅋㅋ아마 거의 다음 장 스포일 것 같습니다
1. 백현이 능력의 봉인 비밀은 아마도 다음 장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것 같아요! 2. 펠롭스 섬은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르지만 에덴 남쪽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독자 분들은 아실 것 같아요ㅋㅋㅋ 그 바다를 건너면 나오는 섬입니다. 순간 이동 능력이 있카이만이 지금 유일하게 드나들 수 있어요. 3. 저기 회의에 나오시는 대표 장로님은 별 비중 없으십니다ㅠㅠㅠ그냥 백현이 어릴 적에 키워주신 분이세요! 4. 세훈이는 약간 히스테릭한 캐릭터가 될 것 같기도ㅋㅋㅋ지겨운 브금이 다음 장에서는 바뀝니다! 기대해주세요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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