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퓨전 커플입니다. 거부감 있으신 분들 뒤로!
※ 5화 까지 연재합니다.
무서운 익숙함 1/5
처음에는 분명히 순수한 의도로 만나자고 했으면서 초록색 병은 왜 보이고 성열이가 우리 아빠가 힘들게 공수해온 술병이라는 것은 도대체 왜 들리는 건지, 왁자지껄,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의 투닥거리는 소리들이 한참 장내를 울리고, 곧 무슨 회식의 장이라도 되듯 성열은 벌떡 일어나서 잔을 들어보였다. 아직 잔에 술을 채우지도 못한 아이들이 허겁지겁 잔에 술을 채우기 시작했고, 성열은 목소리를 높여 건배! 를 외쳤다. 다들 뒤따라 건배를 외치고, 담겨있던 액체들이 싸하게 목을 타고 내려갔다. 되도않는 감탄사들을 내뱉으며 컵을 내려놓았고, 몇 십명이나 되보이는 아이들이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때마다 골이 울렸다. 너희들이야 한마디만 하면 되는거지만 그 한마디가 몇십명을 거친다면 몇십마디가 되는것을 왜 모르니, 두준은 한탄을 하듯 숨을 내뱉은 후, 다시 초록빛을 내는 병을 들고서는 잔에 술을 채웠다.
유명한 막창집이라길래, 엄청 고급스러울 줄 알았더니 딱히 그런것도 아니었네, 철제로 이루어진 테이블에 병을 내려놓고 채워진 잔을 다시 입으로 털어넣었다. 각자 몇명씩 테이블을 선점하고 있는 가운데 단독으로 테이블을 선점한 두준이 흔히 볼수 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재질의 의자에 다리를 벌린 채 앉아 다시 잔에 술을 채웠다. 마치 무슨 애인에게 차인 것 마냥 숨을 뱉어대는 모습이 궁상맞아 보였다. 아이들과 한참 게임을 하고 있다가 괜히 혼자 먹는 두준이 신경쓰였는지 성규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두준이 앉아있는 단독 테이블로 발을 옮겼다. 벌써 한 병을 다 비웠는지 바닥에는 떨어진 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누가 윤칠칠 아니랄까봐.
" 혼자 먹으니까 좋냐 "
" 어, 이게 누구야, 우리 얼굴보기 힘든 애인님 아냐? "
당황한 성규가 급하게 두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말을 밖에서 막 내뱉고 다녀, 성규는 마치 세 살짜리 아이를 달래는 엄마마냥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타박했다. 나름 유명한 대학이라면 대학에서, 사람들에게는 밝힐 수 없지만 나름 오래된 CC였다. 초반에 만났을때는 난항이었지만 만나고 난 후는 가볍게 순항을 겪었다. 둘다 혈기왕성한 나이의 사내들이라 진도도 금방 빼내었고, 애인을 극진히 아끼는 성격의 두준과 남 모르게 남을 잘 챙기는 성규의 궁합은 꽤나 잘 들어맞았다. 두준이 베시시 미소를 짓자 성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저도 웃음을 지으며 두준의 앞에 있는 잔에 술을 채웠다.
" 먹고 죽자 "
" 왜 죽어, 나는 우리 성규 데리고 천만년 살아제낄거야 "
그럼, 그러시던가. 여유로운 미소를 얼굴에 띄운 성규가 잔을 비워냈다. 술마실때는 서로 터치 안하기로 했으면서, 잔뜩 잔을 비워내는 모습에 두준이 성규의 팔을 부여잡는다. 아무리 꽐라가 됐어도 자기 애인 챙길 정신은 있나보네. 성규는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채우며 잔을 내려놓았다. 두준이 그렇지, 하며 아빠 미소를 입가에 띄워보인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방패삼아 성규는 자리에서 몰래 일어났다. 정신없는 와중에 두준도 어깨에 인 채로, 막창집 밖으로 발을 옮겼다. 귀청 떨어지겠어, 여기 2시간만 더 있다가는 아주 고막파열 되겠네. 투덜거리며 나온 밖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열대야가 기승이라더니 그건 우리동네에는 해당 없는 얘기였나보다.
" 으음, 음, 우리 애인, 오빠도 끌고 나올줄 알아 "
" 지나가다 과 애들이 듣는다. 입 닫아 "
" 뭐 어때, 내 건데 "
호선을 그리며 미소를 지은 두준이 옆에 바로 보이는 성규의 뺨에 짧게 입을 내려맞췄다. 급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저를 쳐다보는 성규에 두준은 두 말 않은채 다시 입을 맞췄다. 작은 눈 동그랗게 뜨니까 더 귀엽네, 두준은 여전히 입가에 호선으로 미소를 그리며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치 강아지 마냥 취급당하는 것에 예전같았으면 손 치워, 라며 단말마로 말을 뱉었겠지만 취기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설레임에 성규는 그냥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두준이 비틀거리며 꼬인 발을 풀다가, 끝내 성규를 지탱하고 꼿꼿이 다리를 세웠다. 약간은 비틀거리는 느낌이 나면서도 똑바로 걸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웃겨 성규가 비웃듯이 병신아, 라고 말을 쏘아붙였지만 두준은 정말 병신인건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건지 잇몸 웃음을 보이며 성규를 놓고 앞서 걸었다.
" 같이 가! "
얼른 와! 나 달리기 실력 알지? 해맑게 외치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고백하고 받아낸, 오늘 1일 된 연인 같았다.
ㅡ
사실 다들 누구든 남 모르는 고민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두준 역시 그런 고민 하나쯤은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물론 제 손으로 새기려고 해서 생긴 고민은 아니었다. 생활체육과는 흔한 과가 아니었고 두준 역시 이런 곳에서 여자를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남자들만 징하게 많고, 두준 역시 남자들과 노는것이 익숙했으며, 여자와 대화의 물꼬를 트기는 매우 어려웠다. 생활 체육과에서 여자를 발견한 것은, 희대의 한 수라고 둘 수 있겠다. 체육과에는 나름 외모가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른 과에서, 또 다른 대학에서 소개팅도 자주 들어왔고, 미팅도 자주 들어왔다. 두준은 그럴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눈에서 가까워 지면 마음에서도 가까워 지는거니까, 알지? 만나지 마! 했던 여우같은 성규의 목소리가 귀에서 웅웅거렸다. 그 말을 절대 잊지 않고, 두준은 항시 여자를 대하면 철벽같이 대했다. 그것이 만일의 근원이었을까, 새로 들어온 체육과 신입생은 꽤나 들이대는 성격이었다.
" 선배, 오늘 밥 안드세요? "
" 어, 따로 먹을게 "
" 옆에 사람이 있는데 따로 먹는다고요?, 저랑 같이 먹어요. 어차피 연습실로 같이 갈거 "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다. 체육과다보니 연습실도 같이 쓰고, 다른 쪽으로 연습을 한다면 몰라, 하필 육상쪽으로 연습하는 여자이기에 손사래를 치며 밀어낼 수도 없었다. 보통 다수의 사람들은 그러면 너가 마음을 안 주면 되지 않느냐, 하는 천편일률적인 얘기들을 꺼낸다. 하지만 아까 머릿속에 있는 성규가 말하듯, 두준의 머릿속에서는 그 말만이 떠올랐다. 눈에서 가까워지면 마음에서도 가까워진다.
사실적으로 대꾸하자면 그래, 설레고 있었다. 성규는 편했으며, 익숙했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새로움은 없었고 달라진 것 역시 없었다. 사람은 조금 더 특별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 두준 역시 그런 감정들을 자제하기에는 조금 혈기왕성한 나이의 남성이었다. 천성적으로 남자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고등학교때의 첫 사랑은 여자였다. 이런 변명을 열가지 쯤 늘어놓아도 지금의 행세는 합리화 되지 않을것이 뻔한데, 혼자 합리화식으로 고민하는 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곧, 말 없는 점심식사가 끝나고, 두준은 바지를 툴툴 털고 일어섰다.
" 자, 잠깐만요, 같이가요! "
" 됐어, 먼저 가 있을게 "
허겁지겁 저를 따라오려는 모습이 왜인지 귀엽게만 보였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큼성큼 앞서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먹다 말던 도시락을 들고 저를 따라오는 모습에 두준은 한참을 그녀를 쳐다보았다. 대충 수습하고는 발을 옮기려는 모습에 두준이 매너있게 그녀의 도시락을 들어주었다. 여자가 고개를 들어 두준과 눈을 마주치며 귀엽게 웃었다. 또 설레.
" 선배 은근히 매너가 좋아 "
" 은근히가 아니라 진짜 좋아 "
" 애인 있어요? 만약 있다면 애인은 좋겠다, 이런 남자도 잡고 "
분명히 그냥 넘어가듯 하는 물음에, 두준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있다고 해야지, 빨리! 엄청 예쁜 애인이 있다고!
" 아, 아니 없어 "
" 헐, 진짜? 뻥치지 마요 "
그래, 지금이라도 뻥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두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또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거려 아냐, 하고서는 거짓말을 한번 더 시전했다. 여자가 진짜? 하면서 약간의 기대감을 섞은 표정을 내비쳤다. 이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쯤 예전에 파악한 두준이었다. 어느여자건 관심을 표해도 눈길하나 안 주던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눈길이 갔다. 두준은 무엇에라도 이상하게 이끌리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 앞에서는 거짓으로 똘똘뭉친 자신이 되는것이 역겨웠지만 몸은 제 말을 듣지 않았다. 여자는 은근슬쩍 두준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넣었다. 멀리서 보면 누가봐도 애인사이 같았다.
분명 애인은 있는데.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
ㅡ
숨을 조여오는 애인 마냥 보채고 싶지는 않았다. 답답하다고 주위에서 딱 욕을 퍼부을 유형이었지만, 성규는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어림잡아 근처의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분명히 욕을 퍼붓거나, 멱살을 잡거나, 어떻게 너가 나한테 이럴수 있나며 따지며 남자의 숨통을 조여왔을테지만, 평범한 커플도 아니고, 게다가 두준을 너무 좋아했던 성규는 그저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여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애인이 없다고 했던 대답들은 까맣게 태워버린 채 쇼파에 누워서 공허한 머릿속을 무자비하게 채워넣으려 티비를 쳐다보았다. 화면에 떠다니는 내용들이 머릿속에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은 좀 덜나니까… 쇼파에서 다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곧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규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문 쪽으로 두었다.
" 야, 왜 전화 안 받아 "
" 전화? 아, 핸드폰 저쪽방에 두고 와서 "
" 뻥 아니고? "
" 또, 또 쓸데없는데 의심한다 "
먼저 의심해야할 건 나잖아. 툭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두준은 아이고, 피곤하다. 라는 실없는 단어를 뱉으며 쇼파 아래에 있는 카펫에 엉덩이를 붙였다. 성규가 시선을 다시 아래쪽으로 거두었다. 두준이 뒤를 돌아 성규와 눈을 마주쳤다. 의심이 머릿속에 가득한 성규는 당연하게도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얼마나 포커페이스인지, 두준은 실실대며 웃다가 곧 성규의 머리를 붙들고 입을 짧게 맞췄다. 성규가 무표정으로 입을 맞추자 뗀 입을 두고 두준이 표정을 굳혔다. 분명히 오늘따라 좀 이상해.
" 너 오늘 이상하다? "
" 뭐가, 또 "
" 다시 입 내밀어 봐 "
탐탁치 않은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분명히 몇일 전 까지만 해도 좋아 죽던 모습은 없었다. 짧게 뽀뽀만 해줘도 웃음이 가득하고, 마치 연애를 금방이라도 시작하는 아이들 같은 모습은 바람이 불어 가루가 된 듯 싶었다. 눈치가 빠른 두준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 있었고, 억지로 성규의 입술에 짧게 뽀뽀를 하다가, 호선을 그리거나 하는 반응이 없자 입을 깊게 맞췄다. 억지로 혀를 들이미는 모습에 성규가 얼굴을 순식간에 찌푸렸다. 입을 살짝 벌려 혀를 더 깊게 밀어 넣고, 두 손을 어깨에 놓아 쇼파로 세게 뉘이자 성규가 끝내 두준의 몸을 힘있게 밀어냈다. 관계를 가질때나, 키스를 할때나 절대 이런적이 없었는데, 두준이 당황스러움에 얼굴을 떼고, 저 아래에서 울상을 짓고 있는 성규를 쳐다보았다. 잔뜩 상처라도 받은 표정에 의구심이 더해졌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거지, 여기서.
" 왜, 왜그래… "
" 나쁜 새끼, 개같은 새끼, 나와 "
분명히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앞뒤 다 잘라먹고 무작정 나오라고 하면, 두준은 분명히 이 상황에서는 화를 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약한것이 드러나니 두준은 어쩔 줄 모르고 순순히 위에서 몸을 내렸다. 쇼파 아래 카페트에 엉덩이를 붙이자 몸을 일으킨 성규가 눈물을 쏟아내며 제 아래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머금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두준과 시선을 마주쳤다. 더 밉다. 너무 좋아해서 더 원망스럽기만 하다.
" 좋냐? "
" 무슨일 있어? 왜 울고 그래, 일단 나 봐, 울지마 봐, 뚝 "
" 나와, 나가 줄테니까 "
나가 준다고? 두준이 여전히 의구심을 가득 품은 표정으로 성규에게 물었다. 두준이 묻는 말을 무시한 채 일어서려는 성규를 제지한 팔이 생각보다 강했다.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노려보는 모습에 두준이 재빨리 손을 들어 성규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었다. 울지마, 울지마. 마치 한 명의 아가를 달래듯 성규를 달래는데에 두준은 쩔쩔 매었다. 가지런히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있는 성규의 다리를 두 손으로 붙들고 두준은 계속해서 물었다.
" 왜 그래, 응? 말해봐 "
" 말 하면 알아듣기나 해? 애인있다는 말 왜 안해? 여자가 맘에 들어? 애초부터 여자가 맘에 들면 나한테 왜 사귀자고 했어? 입 뚫렸지? 변명이라도 해봐, 어? 왜 그랬어? "
뒷통수에 마치 종이라도 크게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걸 보고 있었을 줄이야, 보통 연습시간에는 잘 찾아오지 않는 성규라서 방심했던 탓일까, 두준은 아득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할 변명 따위가 없었다. 그것이 전부 사실이고 진실이고, 더 덧붙일 나부랭이같은 변명따위가 두준에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다리를 붙들은 손에 힘이 쭉 빠졌다. 지금 눈물을 품고 있는 이 아이에게 할말은 채 두마디가 되지 않았다. 그저 해결책은 빌거나, 또 빌거나. 결국에는 비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눈을 마주치고 성규를 쳐다보자 의도치 않게 두준은 눈이 잔뜩 흔들렸다. 성규는 놓치지 않고 그 부분을 캐치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 ...진짜구나 "
" ........ "
나 갈게. 성규는 짐 하나도 챙기지 않은 채 바로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두준은 그 순간에도 멍하니 나가는 성규를 쳐다보았고, 신발을 마구 구겨신은 성규는 곧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아예 순식간인 이별통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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