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논 X 디노
특이 취향 02
w. 스핑
여자친구가 생겼다.
짙은 쌍커풀에 키가 아담하고 귀여운 여자친구가.
하지만 한솔에게 그 아이를 소개시켜줬을 땐,
"못생겼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는데, 쟤는 너한테 관심 없어. 나한테 있지."
라는 재수 없는 말을 했을 땐 솔직히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남의 여자친구보고 못할말이 없구나.
존나 막장이네.
하지만 결국 며칠 뒤 한솔에게 고백하는 제 여친을 본 찬은 헛웃음을 지었더랜다.
그리고 그 아이는 까였다. 최한솔한테. 정말 말 그대로 개까였다.
이유는 '찬이는 너한테 뭐냐? 개년이네. 미안하지도 않냐?' 였다고.
의리있는 새끼.
그렇게 휘청일것 같던 우정은 돈독해졌고, 그렇게 고3까지 스스럼 없이 지내게되었다.
"내가, 내가 고3이라니- 내가 고3이라니!!!"
"닥쳐. 쪽팔려."
"야, 넌 실감 안나? 우리 입시원서 쓰는게?"
'나지. 안나냐 병신아."
"야, 방학식 했는데 니네집 가서 플스나 한판 땡기자."
"입시원서 쓰고."
"콜?"
"입시원서 먼저."
말없이 한솔을 째려본 찬이 앞장서서 한솔의 집으로 향했다.
빨리와서 문을 열라는 익숙한 찡찡거림에 한솔이 귀찮다는듯 문을 열었다.
"번호 알잖아."
"그럼 내가 니 집 문 따고 들어가리?"
"내 말은, 그냥 들어가도 괜찮다고."
"내가 안괜찮아, 븅아."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한 찬에 한솔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안계셔. 킁, 한솔의 말에 괜히 코먹는 소리를 내는 찬이다.
노트북을 키고 'my document'를 클릭한 순간 마우스를 뺐으려는 한솔에 찬이 괜히 심술이나 한솔을 밀쳐냈다.
"뭔데, 야동이라도 있냐?"
"아냐. 내놔 빨리,"
"오올 최한솔 남자다? 엉?"
"아니라고. 빨리.."
한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린 파일에 한솔이 입을 다물었다.
"어.."
수십장의, 아니 수백장의 사진이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모니터를 빼곡히 채운 제 사진들에 찬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야? 찬의 눈빛이 말했다.
찬의 눈빛을 외면한 한솔이 그대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갔다.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 제 방에 있던 한솔의 동생이 놀라 뛰쳐나왔다.
"오빠랑 싸웠어?"
모니터를 재빨리 닫아버린 찬이 그것을 책상 밑으로 밀어넣고 대답 없이 한솔을 따라 나섰다.
"최한솔!"
더운 숨이 쏟아져나왔다.
한솔의 이름을 불러재끼며 한참 뛰어다니던 찬의 걸음이 멈추었다.
땀으로 범벅된 얼굴을 손등으로 쓸어넘긴 찬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앉았다.
두 시간 동안이나 뛰어다녀 뜨거워진 얼굴을 매만졌다.
비가오려는듯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비 오려나.. 라고 말을 끝내기 무섭게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를 그대로 맞으며 찬이 눈을 감았다.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있었다.
나를 대하는 행동들과 말투, 그것들이 다른이들에게 행해지는것과 다른것도.
그리고 그것들에 점점 흔들리는 제 마음도.
하지만 확신이 없고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젠 점점 확신이 생겨갔다.
물어봐야 하는데, 이 멍청이는 도망가려나보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에 몸이 차게 식어갔다.
에츄! 큰소리로 재채기가 나왔다.
몸을 벌벌 떠는데 갑자기 멈춘 빗줄기에 찬이 고개를 들었다.
우산을 들고 서있는 한솔을 바라본 찬이 벌떡 일어났다.
"감기들어, 병신아."
젖은 찬의 몸 위로 아끼는 후드집업을 걸쳐주는 한솔에 찬의 눈에 눈물이 점점 고여갔다.
"들킨건 난데 왜 니가 울고 지랄이야."
한솔의 말에 눈물이 투둑투둑 떨어졌다.
급기야 엉엉 울기 시작한 찬에 한솔이 당황하며 찬을 향해 어정쩡하게 손을 내밀었다.
한솔의 품 안으로 푹 파고들어간 찬에 한솔이 멈칫, 하는듯 하다가 손으로 찬의 등을 감싸안았다.
"못생긴게, 울면 더 못생겨진다."
우산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쟁쟁히 울렸다.
장마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