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안이 벙벙했고 어이도 없었다.
날 찾아올 거였다면 한 달 전 우리가 병원에서 마주친 날, 그때 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이제야 널 다시 잊기 시작할 즘에야 나타난 걸까.
무시하자. 잊어버리자. 멈춘 발걸음을 한 발씩 떼어서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한 발씩, 당혹스러운 표정은 감추고 아무것도 못 본 듯이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렇게 민윤기를 지나쳤을 때 나는 다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많이 바빴어. 그래도 최대한 일찍 온 건데 그렇게 매정하게 가지는 말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민윤기는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가 아닐까 하는.
"...왜 온 건데"
"보고 싶었어"
"윤기야, 나 너한테 그런 말 듣기엔 아직 좀 힘들다. 들어갈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내뱉고 집으로 들어왔다. 손에 들린 봉지에서는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날 대신해 울어주듯이.
난 잘 울지 않았다. 슬픈 영화를 봐도, 힘든 일이 있어도, 아파도 꾹 참았다. 여자의 눈물은 무기라지만 난 그런 무기를 둔 적도 없었고 쓰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울었던 순간을 손으로 꼽으라면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중 하나는 민윤기와 헤어졌을 때였다. 후련하다고 생각했다. 슬픔을 애써 잊으려고 하루 종일 놀았다.
친구들과 맛 집도 가고 술도 진탕 먹고 노래방에서 소리도 지르고 정신없이 놀고 비틀거리며 집에 들어와 자려고 누웠을 때,
핸드폰에 뜬 민윤기의 부재중 전화 한 통에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난 다음날 눈도 뜨지 못해 연차를 냈었다.
역시 오늘도 난 울지 않았다. 먹먹한 상태로 잠을 청했다.
.
.
.
주말이라 늘어지게 자고 싶었지만 단잠을 깨우는 전화 한 통에 잠이 깼다. 핸드폰을 보니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 지웠지만 잊을 수는 없는 번호. 민윤기에게 전화가 왔다.
난 고민하지 않고 핸드폰 볼륨키를 누르고 베개 밑으로 집어넣었다. 그만 흔들었으면 아니, 그만 흔들렸으면 좋겠다.
이미 다 깨버린 잠을 이어가기란 꽤 힘들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 바다는 민윤기였고 파도는 과거였다.
생각해보면 내 삶은 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민윤기와 함께 했던 3년, 민윤기가 떠난 후 3년.
우린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첫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6년 전, 난 대학을 졸업한 취준생이였다. 말이 취준생이지 백수가 따로 없었다. 평일엔 취직할 곳을 찾아다니고, 면접을 보러 다녔고 주말엔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는 면접을 신나게 말아먹은 날이었는데 기분이 너무 꿀꿀해 지금 당장 달달한 걸 먹지 않으면 머리가 터져버릴 거 같아 근처 카페로 가 '아이스초코 엄청 진하게요!'를 외치곤 디자인 북을 열어 분노의 스케치를 하는 중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어딜 가나 구두 디자인북은 가지고 다녔다. 어디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르니까. 주문했던 아이스초코가 나왔고 달달한 게 들어가니까 조금 진정이 되었다. 불편한 구두를 벗고는 디자인 북에 끄적거리다 대학 동기의 전화에 늘어놨던 포트폴리오와 디자인북, 색연필, 필통을 챙겨 카페를 나왔다.
점심 겸 저녁을 먹고 그대로 술집으로 향했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정신없이 먹다 보니 정신을 잃는 건 당연했다. 내 푸념을 들어주던 친구는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날 택시에 태워 귀가시켰다. 다음날 윙-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입안이 텁텁 한걸 보니 화장을 지우기는커녕 양치질도 안 하고 잔 모양이었다.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고 나니 한결 개운했다.
화장대 앞에 앉아 드리이기로 머리를 말리며 핸드폰을 들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살아있네"
"어, 속 쓰려 죽겠다"
"계좌로 술값 보내라"
"나 돈 없는 취준생인데"
"돈도 없는 게 그렇게 많이 처먹어?"
"어제는 먹을 만한 이유가 타당했잖아"
"어휴, 택시비는 냈어?"
"기억은 안 나는데 지갑이 침대에 올려져 있는 거 보니까 그랬나 봐"
"귀찮다고 라면으로 해장하지 말고 밥해서 먹어"
"알았어 끊어-"
말은 알겠다고 했어도 숙취해소에는 라면이지하며 라면를 끓여먹었다. 먹고 나니 속이 더 쓰리는 거 같기도 하고. 오늘은 면접도 없었고 주말도 아니니 하루 종일 디자인이나 하며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방 속 디자인북을 찾았다. 근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카페에서 챙긴 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꺼낸 적도 없고 술을 먹고 난 후부터는 기억도 없었다. 적어도 7년이나 공들였던 디자인 북인데. 마지막 한 장을 남기고 다 채워가는 디자인을 보며 뿌듯해하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근데 그런 디자인 북이 사라졌다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이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천천히 생각해봐도 전혀 생각 나는 곳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의 희망을 가지자면 택시에서 지갑 꺼낼 때 같이 딸려 나와 내가 앉아있던 시트 위에 고스란히 있기를. 기사 아저씨가 앞 페이지에 적어놓은 내 번호를 보고 전화해주시기를.
디자인 북이 없으니 모든 의욕이 상실됐고 하루 종일 핸드폰만 바라보며 전화를 기다렸다. 주말에 알바를 할 때에도 정신을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실수가 다반사였다.
정확히 일주일하고도 이틀이 지난날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수첩 주운 사람입니다. 주인 맞으시죠?'
이게 우리의 첫만남 하루 전의 일이었다.
| 사담 |
안녕하세요, 인사 할 면목도 없는 0901입니다. 너무 늦게 왔죠ㅠㅠ죄송합니다. 제 글 기다려 주신 분이 계실까하면서도 기다리시면 어쩌나 하면서 한달이 지났네요. 게다가 분량도 작죠...하하...저를 매우 치세요. 이번 편은 과거 회상이였는데 다음편이랑 이어질 거 같아요! 앞으로는 부지런히 오겠습니다 약속~ 댓글,신알신 항상 감사합니다♡ |
| 암호닉 |
슈 님, 민슈기 님, 웅비 님, 동글이 님, 민트 님, 카누 님, 생활과윤리 님, 헬로키티 님, 라 현 님, 가온 님, 복동 님, 버블버블 님, 민슈가 님 민슈기 님과 민슈가 님이 헷갈리실거 같아서 색을 좀 다르게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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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석이 T도 상처 받는다던데 T들 상처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