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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정국/사극] 새벽 2시 ep1 | 인스티즈

 

 

 

 

 

새벽 2시.
나는 오늘도 새벽이 되도록 손에서 폰을 놓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방탄소년단 때문이었다. 고3이 되고 어쩌다 이들에게 빠지게 되었는지...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이렇게 방탄소년단을 보다가, 눈이 점점 감겨 쏟아져 오는 잠을 주체할 수 없을 경지에 이르러서야 나는 휴대폰을 옆에 두고 눈을 감으며 하루를 끝마친다. 우리 엄마는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내 방을 보며 혀를 쯧쯧 찬다. "이때까지 배우고 온 거 복습할 거 아니면 빨리 자! 이때까지 공부하고 오면 뭐해? 자기 전에 방탄이나 보면서 다 날려버리는데..."라고 소리치며 잔소리를 해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하지만 아무도 날 막을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보지 않으면 수업시간 때도 계속 계속 떠오르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이제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난 비몽사몽 한 상태로 폰을 옆에 둔 후, 이불을 끌어올리며 눈을 감았다.
'띠링'
휴대폰 알람 소리에 다시 눈이 떠졌다. 아, 소리 끄는 거 깜빡했다. 나는 일단 무슨 알림인지 확인하려 휴대폰을 들었다.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알람 내용을 살폈다. '날 도와줘' 문자였다. 발신자 제한 번호로 온 문자. 내용은 더 이상했다. 날 도와달라니.. 니가 누군 줄 알고? 며칠 전부터 계속 이런 문자가 왔었다. 밤중에 온 건 처음이다. 밤에 보니 더 소름 돋는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내일 일어나면 신고부터 해야지.







"야! 지금 당장 일어나지 못해?!"
"아, 알았어요..."

으... 벌써 아침인가 보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가 날 흔들어 깨우셨다. 피곤하다. 더 자고 싶어. 나는 대답만 하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는 급기야 내 팔뚝을 때리며 소리쳤다.

"이게 미쳤나... 빨리 안 일어나?!"

평소엔 대답하면 그냥 나가시더니,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나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폰을 찾으려 손으로 옆을 더듬거렸다. 응? 이건 내 침대의 촉감이 아닌데? 휴대폰은 또 왜 없어? 나는 번쩍 정신이 들면서 눈을 떴다. 내 눈앞에는 어이없다는 듯이 날 노려보는 웬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여긴 내 방이 아니다! 어쩐지 바닥이 좀 딱딱한 것 같았어. 나는 당황함을 숨기지 못한 채 이게 무슨 일이냐고 더듬거리며 허겁지겁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내가 지푸라기로 얇게 깔아놓은 바닥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어째 어깨가 더 쑤셔온다. 주변을 둘러보니, 허름한 시골집의 창고같았다. 내 바로 옆엔 지푸라기 더미가 쌓여있었고, 옆으로는 온갖 잡동사니가 나뒹굴고 있었다. 왜 내가 이런 곳에 있는지? 아, 혹시 나 납치당한건가?
그렇게 멍청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더니 아주머니가 내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제야 옆에 있던 여자애 한 명이 보였다. 날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아주머니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헉! 그녀의 얼굴은 아주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무서워. 그 커다란 얼굴이 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상태로 바로 눈앞으로 훅 들어온다면 그 누구라도 나처럼 공포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날 납치한 것일까? 그렇다면 대체 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슬금슬금 몸을 뒤로 뺐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아야!"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그 솥뚜껑만큼 두꺼운 손으로 내 등짝을 내려쳤다. 윽... 아파죽겠네. 우리 엄마랑 똑같아. 모든 아줌마의 손맛은 이리도 매운 것인가?

"저한테 왜 그러세요...? 저한테 왜 그.. 하, 참.. 몰라서 묻느냐? 너 내가 창고에서 저번에 갖다 놓은 서적들 좀 갖고 오랬더니, 여기서 잠이나 쳐 자고 있어?"
"네? 그게 무슨..."
"너 아직도 잠에서 덜 깼느냐? 오냐. 내가 아주 정신이 번쩍 들게 하여주마!"
"으악!"

나는 또다시 손을 드는 아줌마를 피해 벌떡 일어나 창고 구석으로 도망쳤다. 저 무서운 아줌마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나는 도대체 하나도 알 수가 없다. 미친 것일까? 그러고 보니 옷차림도 이상했다. 바닥까지 끌리는 치마에 통이 넓은 소매. 한복 같진 않은데, 저건 대체 무슨 패션인가. 저런 옷을 파는 곳도 있나? 그 뒤의 여자애도 아줌마와 같은 취향인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줌마는 내가 피했다는 거에 더 열 받은 건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져서는 무섭게 쫓아왔다. 이러다 또 맞을 거 같아 나는 다시 다른 쪽으로 몸을 피했다. 뛰어가던 중, 나는 무언가를 밟고 넘어졌다. 아니, 이게 뭐야! 나도 똑같은 옷을 입고 있잖아? 너무 정신없어서 내 옷이 바뀐 줄도 몰랐다! 당장 내 옷을 찾고 싶었지만 일단 저 무서운 아줌마를 신고해야 한다. 밖으로 나가야 해. 문이 어딨지? 저기다! 내가 햇빛이 살짝 비쳐오는 나가는 문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도망치려는 순간, 아줌마 옆에서 걱정스런 얼굴로 날 보던 여자애가 아줌마를 말렸다.


"말숙 아주머니! 정국 도련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이게 다 니 년 때문이다!"

아니, 왜 내 탓을 해?! 아줌마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책더미들을 번쩍 들고 헐레벌떡 달려나갔다. 저렇게 많은 책을 저렇게 번쩍 들다니, 역시 힘이 장난이 아니다. 또 그 책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건지, 아줌마가 그것들을 들고 날 지나칠 때 그 책 위의 먼지들로 인해 재채기가 나왔다. 나는 재채기를 하는 순간에도 달려나가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스 타이밍! 이제 저 여자애만 나가면 나도 여기서 탈출할 것이다. 나는 긴 소매를 이용해 입을 막고 그 여자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애는 오히려 나간 아줌마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오지 마! 너도 빨리 나가라고!

"괜찮아?"

여자애는 갑자기 내 앞에 꿇어앉더니 내 치마를 홱 들어올렸다. 무릎이 까져 빨간 피가 살짝 맺혀있었다. 좀 따갑지만 그래도 걷는데 지장은 없는 정도다. 여자애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로 날 올려다봤다.

"그러게 왜 여기서 자고 있었어... 졸리면 빨리 심부름 끝내고 방에서 잘 것이지. 일단 나가서 치료부터 하자."

그 애는 내 손을 잡고 창고에서 나왔다. 이게 뭐지? 마치 과거로 온 거 같은 이 풍경은?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 여자애는 나의 당황스러운 속마음도 모른채 나를 끌고 가더니, 나를 마루에 앉혔다. 여자애는 약을 가져오겠다며 어디론가 가버렸다. 내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대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나 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 내가 더이상 어떤 추리를 하기도 전에 여자애는 어느새 다가와 내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제 무릎 위에 올렸다.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살피더니 내 치마를 조심히 올린 후,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무슨 약초를 빻아 낸 즙을 바르는 것 같았다. 꼼꼼히 약을 발라주고는 흰 천으로 내 무릎을 돌돌 감았다. 붕대 감을 필요까진 없어보이는데... 무튼, 그 감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한두번 한 솜씨가 아닌데? 여자애는 치료를 마친 후 뿌듯한 얼굴로 내 무릎을 쳐다봤다. 진짜 뿌듯해하는게, 이 녀석은 정말 착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애는 갑자기 내 뒤를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저기 정국 도련님 나가신다."
"정국 도련님?"

뭐, 정국이? 나는 고개를 획 돌려 정국 도련님이라고 불리는 사나이를 봤다. 헉, 진짜 정국이잖아? 정국이의 옷차림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했다. 아니, 비슷한 복장이었지만 좀 더 화려하고 번쩍이는게 좀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정국은 아줌마가 들고 나간 책 더미를 들고 있었다. 정국이 심부름으로 왔던 걸까? 그 옆엔 남준이가 서있었다. 역시 같은 종류의 옷이었지만, 남준이의 옷은 좀 더 어둡고 간단했다. 거기다 칼까지 차고 있었다. 그나저나 정국이랑 남준이가 왜 여기에... 혼란스러워 하던 중, 정국이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나는 어버버거리며 어찌할 줄 몰라했지만, 정국은 이쪽엔 관심이 0.00001%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주머니는 떠나가는 정국의 뒷모습을 보며 허리를 구십도로 숙였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아줌마는 고개를 획 돌려 날 노려봤다. 이크, 까먹고 있었다. 저 아줌마가 지금 내게 엄청나게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아줌마는 내게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날 방으로 따라오라며 무섭게 내려깔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이상한 상황에서,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 뿐이라는 걸 깨달았고, 일단 이 상황에 맞추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아줌마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니가 정국 도련님을 싫어한다는 건 알고있었지만, 이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나는 그래도 니가 공과 사는 구별할 줄 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제가 정국이를 싫어한다니요!"
"아니, 이게 이젠 아예 맞먹으려 하네?"
"아, 도련님이요! 정국 도련님! 제가 더위를 먹어 실성했나봅니다."
"..."

내 빛나는 임기응변에 아줌마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조용히 입을 닫고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렇게 한참을 있더니 아줌마는 푹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하긴, 니가 몸이 좀 허약하긴 했지. 이제 좀 활발히 지내길래 건강해졌나 했더니, 내가 너에게 이런 심부름을 시키는게 아니었는데..."

아줌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한숨을 푹푹 쉬더니, 내게 '니 방 가서 쉬어라'며 날 쫓아냈다. 나는 그 방에서 나와 내 방이라고 하는 곳으로 가야했다. 이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로 유추해 봤을 때, 난 이 곳에서 있던 사람이다. 납치되거나 갑자기 뚝 떨어진게 아니란 말이다. 이 곳에서 예전부터 같이 살아오던 사람이란 얘긴데, 그나저나 내 방이 어디야? 여기서 내 방이 어디냐고 물었다간 정신병자 취급받을 듯 한데...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고 있으니 아까 그 착한 여자애가 내 손을 붙잡았다.


"여기 계속 서있다간 또 더위 먹겠다. 빨리 방에 들어가자."
"...엿들었니?"
"...너도 가끔 그러잖아."

여자애는 민망한 듯 웃으며 날 끌고 어떤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내 방이구나? 쨌든 고맙다. 덕분에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 않고 내 방에 찾아들어오게 됐다. 여자애는 날 방으로 데려다 주고는 자신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 혼자 남았다. 얼른 이 혼란스런 상황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벽에 기대앉아 가만히 생각해 봤다. 일단 여기는 대한민국이 아니다. 현대가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고 조선시대도 아니고... 옛날이긴 한데, 내가 아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제 3세계인 것 같다. 즉, 이건 꿈이라는 결론이 난다. 지금 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가끔 이런 스토리가 있는 꿈을 꾸긴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생한 적은 처음이다. 이게 루시드 드림이란 걸까? 갑자기 흥분된다. 나 루시드 드림은 처음이야! 그것도 방탄이 나오는 방탄몽!

이제 이 꿈 속 설정들을 파악해보자. 정국이는 도련님이라고 불렸다. 우리보단 신분이 높다는 뜻이겠지? 옆에 남준이는 칼을 차고 정국이 뒤에 붙어 갔다는 것으로 봤을 때, 높은 신분인 정국이의 호위무사인 것 같았다. 캬... 얘네는 어떻게 꿈 속에서도 이렇게 멋지냐? 그리고 나는? 나는 이 허름한 방에서 아줌마의 심부름을 하며 사는 애인 것 같다. 저 여자애와 친하게 지낸 걸까? 방도 같이 쓰고 쟤가 날 챙겨주는 것 보면 그런 것 같다. 아줌마의 말로는 난 나약한 몸이었지만 요즘은 건강을 회복하여 활발해졌고, 정국이를... 싫어하는 애였다. 아니 어떻게 정국이를 싫어할 수가 있단 말이냐?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건 너무 말도 안되는 설정이잖아. 밖은? 이 집 밖은 어떤 세상일까? 어떤 설정이지? 내 꿈이니까 내 상상대로 되겠지? 그럼 내 상상대로 저 밖은 티비 속 사극같은 모습일까... 나는 벌떡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꿈 속에서 이렇게 지루하게 앉아있을 수는 없지! 처음 꾸는 루시드 드림인데, 이렇게 앉아만 있다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얼른 대문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내 상상대로다. 나는 흥분감에 빠져 여기저기 구경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다. 집밖에 없는 거리를 벗어나 이제 장터가 보였다. 나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여유롭게 걸으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 쫙 펼쳐진 장신구들이 눈에 띄었다.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내 옷차림을 보니 그럴 순 없었다. 딱 봐도 난 시종. 가난한 시종이었다.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런 화려한 장신구들과는 전혀 어울릴 수가 없는 복장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다른 걸 구경하려고 발걸음을 돌렸을 때, 누군가가 내 뒤에서 날 덮쳐 입을 막고 골목 구석으로 끌고갔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내 비명 소리는 하나도 세어나가지 않았으며, 그 바람에 이 놈이 내 입을 더 세게 막아 숨 쉬기까지 힘들어졌다.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난 골목 끝까지 그 놈의 손에 이끌려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나는 놈의 얼굴을 확인하고 비명을 질러 사람들을 불러내기 위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나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놈의 무리는 한 두명이 아니었고, 그 속에서 지민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뭘 노려 봐?"


지민이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성격은 지민이와 딴판인데... 얼굴은 어찌 이리도 똑같은지. 꿈이라 그런가?

"그렇게 경계할 줄이야. 난 이 모습을 하면 니가 달려들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뭐, 뭔 개소리야?"

이딴 식으로 끌고와서 이런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아무리 지민이라도 내가 달려들겠어? 로맨틱하게 다가와야지!


"아, 그런건가? 뭐, 상관없어. 난 내 할 말만 전하고 갈거니까."

뭐야, 이 자식. 지금 내 속을 읽은거야? 꾸,꿈이라서 스토리가 중간에 생략된거야, 아님 내가 그냥 말해버린거야?

"정말 이게 꿈이라고 생각하나? 뭐, 니 입장에선 말도 안되는 상황이긴 하지."
"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꿈이라고 생각하는게 더 편하면 그렇게 해. 난 내 목적만 이루면 끝이야."
"..."
"정국이란 놈. 만났지?"


난 지민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했다. 뭐야... 저 말은 지금 이게 꿈이 아니라는 얘기잖아? 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민은 이런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잠깐, 나 얼굴 빨개지는거 아냐?

"그 녀석 아버지를..."
"거기 뭐야?!"


뒤에서 골목을 막고 있던 무리 중 한 녀석이 소리쳤다. 그 소리에 지민이의 말을 듣지 못했다. 정국이 아버지를 뭐? 난 다시 말해달라는 눈빛으로 지민이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잘생... 아, 이게 아니지! 다시 말해달라고! 그러나 지민이는 자신을 방해한 자에게 화가 났는지 내 반응은 보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뭐하는 놈들이냐?"

지민을 방해한 자는... 남준이였다.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신경끄고 꺼져."


무리 중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이것들이 어디서 남준이한테 그런 막말을! 난 여기서도 방탄 덕질을 멈출 수 없나보다. 남준이한테 꺼져 한마디 한게 왜 이렇게 분하냐...

"네 놈들이 어떤 여자를 끌고 간 걸 알고 왔다. 좋은 말로 할 때, 곱게 그 여자 놔두고 꺼져라."


하... 날 구해주러 온거야? 그런거야? 꺼져라는 말이 어찌 저리 섹시하게 들릴 수 있단 말이냐?
그 때 지민이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저 망할 놈! 왜 방해하고 지랄이야!"
"지, 지민이가... 남준이한테 망할 놈이라니... 지랄이라니..."

내가 충격에 휩싸여 그를 보고 있으니, 지민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나 지민이 아니야. 그냥 지민이 모습... 아니다. 지금 말해 좋을 것도 없지. 암튼, 니 세계에 있던 방탄이랑 여기 애들이랑 똑같지만 똑같은 건 아니니 그런거에 일일이 충격받지 마. 후... 저 놈들 죄다 약골들 아냐? 어떻게 다굴인데도 밀려?"

지민은 쓰러져가는 무리를 보며 제 할 말만 하고는 손을 들어 내 눈을 가렸다. 내가 지민의 손을 떼기 위해 손을 들었지만, 그의 손에 닿기도 전에 그는 사라졌다. 그니까, 지민이의 손에 의해 눈이 감기자마자, 그 손의 느낌은 사라지고, 눈을 뜨자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모두를 쓰러뜨리고 홀로 가운데 서 있는 남준이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지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살펴봤지만, 지민이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거야? 꿈 같은 상황이 분명한데... 아까 지민이는... 이게 꿈이 아니라고 했어. 물론 꿈이라도 꿈 속에서 꿈이 아니라고 말할 순 있... 아,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내 눈 앞엔 남준이가 가까이 다가 와 있었다.


"괜찮습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지나가던 행인이 납치되는 모습을 발견하여 제게 도움을 청해 온 것이니, 오해는 마십시오."


...무슨 오해요? 아무튼, 남준이는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며 날 앞장 세웠다. 원래는 이 곳을 구경해보려고 나왔지만, 이 상황에선 나도 더 이상 마음껏 구경하며 즐길 수 없을 거 같다. 마음이 무거운게, 얼른 집으로 가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다. 나는 골목을 나와 집으로 가려고 한발 한발 내딛었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으, 너무 흥분해서 이리저리 구경하느라 어딘지도 모르면서 너무 막 이동했다. 길을 모르겠다. 여기서 집으로 가는 길을 모르겠다고 하면 이상할까...?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자, 남준이가 내게 한발짝 다가왔다. 헙.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가 좋아하던 스타의 모습으로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다면, 그 어느 누가 이렇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으랴! 이런 내 속사정을 남준이가 알리 없지! 남준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아까 일 때문에 그렇습니까?"
"네?"
"그럼 제가 부축해 드릴테니 제게 기대시죠."
"아..."

남준이는 내가 아까 골목으로 끌려간 것 땜에 충격먹었다고 생각한 듯 했다. 나는 조심스레 남준의 팔을 잡았다. 남준은 내가 자신의 팔을 잡는 것을 확인 한 후, 조심히 한 발 한 발 이동했다. 내가 조심히 걸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 나는 지금 이 상황이 왠지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어 설렜다. 남준이는 내 집을 알고 있었다. 날 부축해 집까지 오는 것에 성공했다. 사심이 없던 건 아니지만, 힘든 척하고 남준이 부축 받기 참 잘했다. 간만에 머리 쓴 기분이다. 남준이는 날 내 방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집으로 오자, 아줌마가 날 기다렸다는 듯이 씩씩대며 "대체 어딜 갔다온거냐!" 소리치며 달려오다가, 남준이를 발견하고는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 남준아..."


남준아? 둘이 친해?

"아주머니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네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조금 부끄럽구나."
"아닙니다. 활달하신 모습도 참 보기 좋습니다."
"그러는 너는 어찌 이렇게 바뀌었느냐. 예전에 너는..."
"아주머니."
"...미안하다. 이렇게 둘만 보는게 너무 오랜만이라, 이 아줌마가 그만 주책을 부렸다."


둘은 어느새 나는 안중에도 없이 둘만의 대화를 나누었다. 둘이 옛날에 정말 많이 친한 사이였나 보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너무 많이 혼내시지 마세요."
"뭐?"
"아까 저잣거리에서 납치를 당해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정..."

남준이는 말을 하다 말고 내 눈치를 살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어떤 분이 발견하서셔 다행입니다."


남준은 이 말을 마치고 아줌마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다시 떠나갔다. 나 많이 혼날까봐 걱정하고 가는 것 좀 봐! 여기서도 남준이는 매력터지는구만! 아줌마는 아련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획 돌려 날 노려봤다.

"너는 정말... 하, 아니다.  놀랐을텐데 들어가서 쉬어라."


내가 아무 말도 안하고 나가서 걱정하고 있었던 걸까?


"죄송해요, 걱정 끼쳐드려서..."


나는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이제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정리를 해봐야겠어.





*





"상태는 좀 어땠나?"
"좀 많이 놀라신 듯 했습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는 듯 했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남준이 말숙 아주머니의 집을 나오자마자 자신을 기다리는 정국이가 보였다. 정국은 남준이를 보자마자 탄소의 안부를 물었다. 사실, 탄소가 납치된 것을 발견한 어떤 분은 정국이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의 이복동생인 여동생에게 줄 선물을 하나 마련하기 위해 장신구들을 구경하고 있다 탄소를 보았다. 탄소가 저잣거리에 나와, 그것도 장신구를 구경하는 것은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보는 모습이라, 정국은 여동생의 선물을 사기로 한 것도 잊고 그녀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다. 참 오랜만이었다. 저렇게 천진난만한 얼굴로 예쁜 장신구를 구경하는 모습은... 또래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꾸미기를 좋아하여 당연한 모습이였거늘. 오랜만에 또래다운 모습에 정국은 가슴이 시려왔다.


'또래라면 본래 저런 모습이어야 했거늘... 나 때문에 이 때까지 그러지 못하고...'


탄소가 보던 장신구를 내려놓고 가자, 그녀가 유심히 보던 장신구가 뭔지 궁금하여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웬 남성이 그녀의 입을 막고 끌고갔다. 바로 쫓아갔지만, 나설 수 없었다. 본인이 직접 나섰다가 탄소는 오히려 노발대발 성낼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 때처럼 자신의 도움을 받느니 죽는게 낫다며 자결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정국은 다급하게 남준이를 찾았다. 동생 선물 고를 동안만이라도 편히 앉아있으라고 간만에 휴식시간을 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비록 남준이가 자신의 호위무사라 할지라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부탁에 의해 도움을 준 것이라 한다면 괜찮을 것이다. 한편 남준이는 정국이가 쉬라고 했지만, 호위무사인 만큼 어느 곳에서도 그를 보호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국의 눈에 띄지 않지만 정국의 동태를 살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정국은 남준이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준은 탄소를 구했고, 다행히 탄소는 남준이의 도움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까 그 놈들 정체는?"


탄소의 안부를 묻던 정국의 표정이 어느새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차갑게 변한 그의 얼굴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가슴 안쪽에 숫자 八이 새겨져있던 걸로 봐서, 팔각 무리들 같습니다."
"뭐?"


팔각은 거액의 돈을 받고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무리다. 의뢰인 신변 보장을 중요시 여겨, 사실을 고할 바에 혀를 깨물어 스스로 죽어버리는 것이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 여기는 자들이라, 누가 탄소를 납치한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탄소를 납치하라 시킨 자는 대체 누군가. 설마 탄소의 정체를 눈치챈 자인가...!

"안되겠다. 탄소를 주시해라. 이번에 놓쳤으니 또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정국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누구라도 다시 탄소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정국은 분노에 차, 꽉 쥔 그의 손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남준은 그런 그가 안쓰러웠다. 아직도 과거의 일로 자신을 자책하고 모든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그가... 하지만 그와는 주종관계일 뿐이어야 한다. 언제든지 정국을 대신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호위무사여야 한다. 사사로운 감정들로 그를 흔들어선 안된다. 어렸을 때의 관계만으로 이렇게 남준과 탄소를 챙기는 정이 많은 정국인데, 여기서 남준이가 다가간다면 정국이가 남준을 잃었을 때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남준이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분노로 떨리는 그의 어깨를 잡아주지 못했다. 강하고 대담했던 그가 오늘따라 한없이 작고 외로워 보인다.

 

 

 

 

 

 

 

 

 

------------------------------------------------------------------------------------------

 

 

 

 

 

 

 

 

 

 

 

음... 여러 의문들을 심어놨어요!ㅋㅋ 서서히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세계관이 좀 허술하긴 한데...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개연성은 있게 쓰도록 노력할테니 지켜봐주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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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05.18
떡밥이!!!! 뭔가 어마어마한 일이 있었던것 같은데!!!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되요!!!! 다음편도 기다릴께요!!!
8년 전
enai
감사해요ㅜㅜ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기분이 좋네요ㅋㅋㅋㅋ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ㅎㅎ
8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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